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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최저점을 읽는 핵심 수업 - ‘부동산발 대공황’ 시장의 재편과 투자 전략
박감사(박은정)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10월
평점 :
요즘 들어 내 집 마련이라는 단어는 점점 더 신화처럼 들린다. 부모 세대에게는 인생의 한 장면이었던 그것이, 우리 세대에 이르면 거의 불가능한 서사처럼 느껴진다. 커피 한 잔 값이 오른 게 문제가 아니다. 내 월급으로는 평생 전세조차 어렵겠다는 냉혹한 현실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매일같이 지금은 사면 안 된다와 이제 곧 반등이 온다는 상반된 예언을 쏟아내고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책, '부동산 최저점을 읽는 핵심 수업'. 짙은 남색 표지 위에 번개 모양으로 새겨진 선 하나가, 이상할 만큼 절박하게 다가왔다. 마치 지금이야말로 공부라도 해야 할 때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저자의 문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들어왔다. 그는 시장은 숫자의 결과물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반영이라고 단언한다. 부동산 차트의 굴곡선 뒤에는 언제나 군중심리의 파도가 있고, 그 파도를 읽을 수 있어야만 최저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거래가 멈추고, 수요가 사라지고, 공급이 넘치는 시점. 모두가 두려워할 때, 그 공포의 골짜기 속에 진짜 기회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단호하다. 그 기회는 결코 감이나 용기로 잡히지 않는다. 준비된 자, 곧 데이터를 이해하고 구조를 분석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열린다.
그의 설명은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다. 단순히 가격이 떨어졌다고 덥석 사는 것이 아니라, 공급 구조와 인구 변화, 정책 리스크, 그리고 시장 심리의 지표를 종합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축과 기축의 공급 사이에서 생기는 시간차, 인구의 이동과 출산율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수요 공백, 정부 정책이 만들어내는 인위적 변동 등,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그는 이를 거대한 심리적 생태계라 부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경제서가 아니라, 인간 심리학과 사회학, 나아가 문화사적 통찰이 교차하는 텍스트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실패담이 자꾸 떠올랐다. 몇 년 전, 전세 만기가 다가오자 불안감에 휩싸여 급히 아파트를 매수했다. 더 오를 것 같아서가 아니라, 집이 없어질까 봐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달부터 가격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공포감은 시장이 아니라 내 감정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책 속의 문장처럼, 나는 시장이 아니라 공포에 반응했던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 최저점 매수의 본질은 용기가 아니라 준비다. 이 문장을 밑줄 긋고 오래 바라봤다. 부동산 공부를 투기로만 치부하던 내 시선이 부끄러워졌다.
책의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전문 용어로 독자를 겁주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공급은 신축과 기축, 두 가지 물결로 온다, 모두가 뛰어들 땐 잠시 걸어가라 같은 명료한 문장을 쓴다. 마치 난기류 속에서도 침착하게 조종하는 노련한 파일럿 같다. 무엇보다 그는 부동산 시장을 돈의 세계로만 보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과 불안, 기대와 후회가 얽힌 현대성의 실험장으로 해석한다. 그 지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투자서의 경계를 넘어선다. 철학적이고, 동시에 심리학적이다.
읽고 나서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부동산을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수익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를 이해하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 마련이란 생존의 문제이자, 자기 신념의 문제다. 타인의 조언보다 스스로의 데이터와 사고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저점을 찾는 일은 남들보다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조용히 오래 기다리는 일임을 깨달았다. 결국 시장도, 인생도, 타이밍보다 체력의 문제다.
책을 덮으며 문득 엉뚱한 비유가 떠올랐다. 요즘의 나는 마치 겨울잠 앞둔 다람쥐 같다. 도토리를 모으는 대신 통계청의 주택공급 데이터와 한국은행의 금리 그래프를 모은다. 매일 밤 그래프를 바라보며 심리 저점을 계산하는 나를 보면, 우습기도 하고, 어쩐지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면 괜찮다. 진짜 봄은 언제나, 가장 추운 겨울 다음에 오니까. 이 책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는 법을,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