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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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저작과 마찬가지로 김훈의 이번 글에서도 선이 굵은 남성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지리멸렬하는 논리가 없고 주장에 유야무야가 있을 수 없다. 그 앞에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극도로 단순하고 명료해지며 이러한 사상들은 김훈에 의해 머뭇거림 없이 통렬하게 일갈되어지고 있는 것이다.김훈의 대상으로 삼는 글감이나 글의 내용, 또 그 지향은 일반인의 그것에서 많이 일탈해있다. 통상적인 수준에서 누구나 거론할 수 있는 차원의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거의 없다. 그만큼 견해가 독자적이고 성향이 개인적이며 모든 것 앞에 불안하게 홀로 서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안쓰러움과 더불어 신비감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김훈의 글은 형식이나 대상을 불문하고 시적이고 미학적인 명문이다. 격렬한 주장이나 치열한 논리도 일순 숨을 고른 듯 세련된 문장으로 아름답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은 때로 주장의 강도와 긴급성을 완화시키는 감도 있으나 은근하고 친근감이 있으며 격조 있게 씌어진 글로 말미암아 읽는 이들이 자신의 주장에 거부감 없이 동조하게끔 몰고 가는 면도 있다. 어느 사이 김훈에 감화되게 말이다. 치열한 논리에 독특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미학적인 그의 글에 매료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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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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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부터 이번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 이르기까지 홍세화의 글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읽을 때에 마음이 지피는 것은 물론이고 읽고 난 다음에도 잔잔한 여운에 휩싸여 한동안 그 자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그의 글에 흠뻑 빠질 때마다 도대체 그 흡인력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늘 의문을 품어보곤 했다. 우선 글의 주된 소재가 프랑스 사회에 관한 것이 많아서 이국적인 것에 대한 생경함이랄까 새로운 차원의 것에 대한 호기심의 발동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요소이긴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굴곡이 지닌 극적인 서사성이 흥미를 유발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았는데 이 역시 만족할 만한 결론은 아니었다.

그러면 그의 녹록치 않은 글 솜씨가 독자들을 흡인한 것일까 하고도 생각할 수 있겠는데 그런 형식적인 것만은 아닌 듯 했다. 오랜 숙고 끝에 겨우 그의 글에 녹아있는 맑고 향기로운 영혼이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정서적으로 공감케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그의 정신 세계는 우리가 어느새 잃어버리고 있었던 인간 본연의, 우리 겨레 고유의 소중한 원형을 아직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복하고 지배하는 동물적 권력욕에, 또 세상의 잡스런 이해관계에 오염되지 않은 식물적인 심성 그대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글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내면의 향기에 우리가 이끌렸던 것이다. 그의 글은 영혼을 바탕으로 가슴으로 씌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홍세화의 내면에 비쳐진 조국의 현실은 그가 맑은 향기만 뿜어내게 버려 두지 않고 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게끔 터무니없이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세화가 밝혔듯이 그에게는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프랑스 사회라는 두 개의 거울이 있는데 거기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실상은 너무나도 기괴하고 참혹하여 그를 불가피하게 악역을 맡게끔 몰고 간다는 것이다. 몰상식과 불의로 가득 찬 그리하여 이성적으로는 비관할 수밖에 없는 지경인 우리 사회의 질곡이 이 눈 푸르고 가슴 맑은 홍세화를 단호한 논리와 자극적인 발언으로 무장한 투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악역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리하여 준엄하고 냉혹하게 사회 귀족과 프로피퇴르들을 질타하고는 있지만 그의 글에는, 아니 바로 한 꺼풀 아래 그의 내면에는 축축한 물기 같은 안타까움이 배어 있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이 가혹한 땅의 힘겨운 현실이 남의 것이 아닌 바로 우리의 일이기에 보다 못해 엄혹한 비판을 가하더라도, 비판받고 있는 이들에게까지 애정 어린, 더 나아가 연민이 일어나는 것이 그의 심성인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자탄 내지는 비애의 마음도 억누를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상대방을 준열하다 못해 극단적으로 비판하여 인격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서도 뻔뻔하게 한 점 부끄럼도 없이 태연자약한데 말이다. 홍세화는 비판 대상이 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도 안쓰럽고 측은하게 생각하며 또 그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고 슬픈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애에 잠기는 가운데에서도 홍세화는 낙관적인 전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성적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는 말처럼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육을 통해 의식을 개조하고, 억압받고 학대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살려내야 할 교사들과 그러한 교사들에 의해 길러져 자아를 실현해 나갈 청소년들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땅에서 슬플 수밖에 없는 홍세화의 마음을 위로해 줄 이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과 그들을 올곧게 길러 낼 이 땅의 교사들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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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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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훔치기, 도대체 이게 어떤 작업인지 고종석은 좀처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의 지적 역량을 시험해 보기라도 하듯이. 완독을 한 다음에도 글의 구성이나 내용의 행간에 배치한 여러 장치들로 인해 또렷하게 그 의미를 떠올리기는 힘들다. 겨우 짐작하기는 21세기 사회의 암호(code)처럼 불가해한 모습이나, 그 시대를 지배할 삶의 규칙(code)들을 훔쳐오듯 미리 파악하여 미래 사회를 전망해보고 이를 토대로 바람직한 상황을 모색해 보자는 뜻으로 읽었다. 지적인 글읽기가 요구되는 저작이다.

그러나 고종석의 미래 예측 작업은 지적인 측면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담고 있다.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망은 일종의 예언이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예언은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추상적으로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 이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필자는 21세기의 사회상에 대해 과학적이고 가치 중립적이며 냉정한 예측을 시도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소 과학적 신뢰도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가치 함축적인, 인간의 온기가 스며있는 소망을 담아서 21세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글 곳곳에서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물론 거기에는 자유주의적이고 공리적인 그의 노선이 은근히 배어있다.

이처럼 지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측면을 지닌 이 책은 미래 사회에 관한 40가지의 다양한 주제를 경쾌하게 서핑하듯이 두루 섭렵하게 해준다. 독자는 읽는 동안 21세기의 사회상뿐만 아니고 미래로 이어질 오늘의 현실까지 읽을 수 있으며 더불어 그러한 현실 인식을 가능토록 해 주는 의식의 고양까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의 지적 단련에 특히 적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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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바다에서 헤엄치기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연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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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및 구술이 대학 입학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되어 버렸다. 수능 점수와 내신 성적이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논술 및 구술 면접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이를 대비한 서적의 출간도 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등장한 저작들 가운데 흠결이 없이 여러 요건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은 찾기 힘든 지경이다. 그런 가운데 지식의 바다에서 헤엄치기는 나름의 수준과 품격을 지닌 저작처럼 보인다. 이 책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기초 지식과 기본 관점 배양이다.

현란한 기교나 풍부한 배경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의 밑바탕을 이루는 토대가 정작 필요한데 이런 측면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너무 기본 이론에 치중한 나머지 생동감이 떨어지고 읽는 이의 맥이 빠지게 하는 면이 있다. 인내심이 있어야 통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 지식이 워낙 부족한 요즈음 청소년들에게는 힘겹지만 거쳐야 할 지식의 통과 의례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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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 안도현의 내가 사랑하는 시
안도현 지음 / 나무생각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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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이가 드물어진 시대이다. 읽는다 하더라도 낙서같은 감상을 자극하는 수준 미달의 시가 범람하고 선호되고 있는 풍토이다. 본격적인 순수시가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가 이렇게 대중에게서 멀어진 이유중의 하나가 시인들의 시가 어렵다는 것과 더불어 한 권의 시집에 실려있는 모든 시가 일정한 품격의 완성도 높은 시가 아니라는 점도 있다. 따라서 읽고 싶은 한두 편만을 위해 시집을 사야 하는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면을 고려하여 나온 것이 시선집이다.

그런데 시선집도 너무 인기 시 위주로 발간되는 감이 있어 몇 번 접해본 독자들에게는 식상하기 짝이 없다. 안도현이 엮은 이 시집은 시인 개인의 삶의 곡절이 녹아있는 특별한 시선집이다. 따라서 다른 시선집에서 보기 드문 미덕을 갖고 있다. 우선 시인의 성장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구분하여 그 시기에 가장 절실하게 다가왔던 시들을 묶어서 독자들의 개인 경험과 중첩되게 만듦으로써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한편 잘 알려지지 않았던 좋은 시들을 발굴하여 소개함으로써 대중들의 시 이해 수준을 높이고 선택의 다양성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소장하여 마음이 지필 때마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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