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일본문학하면 소위 쿨한 작품, 뒷끝 없이 가볍고 부담감 덜한 소위 경박단소형이 대세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중후한 작품을 내고 있는 일본 작가들도 꽤 있답니다. 이들의 진지한 작품을 접해보아야 일본문학의 심도와 다양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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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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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의 다인 리큐의 일대기를 시간 역순으로 기록한 책인데 아름다움의 극한에 이르고자 하는 미학자의 집요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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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가가 되려면 어떤 각오로 임해야하는지, 목숨을 걸고 힘을 다해 써야하는지를 밝히고 있는 작가 입문서라 하겠다.
우울한 얼굴의 아이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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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인생을 정리하며 펴내고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작가와 가족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철학적이고 시대 비평적인 작품이다.
체인지링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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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와 처남의 기구한 인생을 소재로 인간 존재에 대해 묻고 있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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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독자들도 단순히 주어진 책을 수동적으로 읽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글을 쓰고 더러는 책으로 펴내려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소개하고픈 글쓰기 관련 책들입니다. 지레짐작으로 고식적인 작문기법이라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대부분 필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이야기들이고 또 이를 격의 없이 진솔하게 소개한 것이라 실제 글쓰기에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저도 맘에 새기고 본받으려 하지만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곤 한답니다. 그러면서도 한걸음씩 나아가야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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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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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며 경험한 실제 사례를 통해 글쓰기와 내면 치유의 관계를 밝힌 책.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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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아름다운 문장을 보고 배우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작가가 찾아낸 빼어난 글들, 그리고 이에 얽힌 내밀한 이야기들이 글감을 찾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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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작으로 유명한 강준만 님의 책입니다.
그런데 글쓰기가 즐겁다니요.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듯...
하지만 맛깔스런 글을 따라가다 보면 동감하게 됩니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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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까지 담고 있는 책입니다.
글쓰는 작업의 원리를 쉽게, 친근하게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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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불고 꽃 흐드러지게 피면 심란한 게, 왜 사는지 이러다 어떻게 될는지 여러 갈레 상념들이 교차할 때가 많습니다. 또 살짝 들뜨곤 해서 늘 벙벙하게 어정쩡 소일하기 쉽습니다. 이럴 때 마음결 가다듬고 고요히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기에 책만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특히 단편과 에세이류에서 그런 위안을 받곤 한답니다. 그런 것으로 소설도 빼어나지만 에세이에서 더 격조를 느끼곤 하는 공지영 님의 글이 딱입니다. 특히 [빗방울처럼 혼자였다]를 읽곤 아! 하고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또 도가니나 우행시 등의 베스트셀러도 좋지만 저는 조용한 단편 모음집인 [별들의 들판]에서 많은 위로와 생명에 대한 경이, 그리고 삶에 대한 활력을 얻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이들과 자연에서 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김용택 님, 또 길을 걸으며 터득한 지혜를 담고 있는 신영복 님이나 김희경 님의 책도 이 봄에 어울릴 듯합니다. 좋은 책들에 기대어 이 심란한 봄바람 견뎌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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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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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시인 루미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가 너무 잘 어울리는 고독한 글, 아련한 글 그러면서 잔잔한 감동과 기쁨도 주는 글들입니다. 일상사에서 길어올린 평범한 글들이 어떻게 이리도 짠하게 다가오는지요. 이 봄 아픈 마음, 시린 영혼 모두 이 글로 위안받았으면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3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4월 05일에 저장

평생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연과 시와 더불어 살아오신 김용택 님의 에세이 모음입니다.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인간에 대해, 자연에 대해 또 시와 교육에 대해 발언하는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서슬 퍼렇던 마음 눈 녹듯 말랑말랑해질 것입니다.
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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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글들 모음이라 하겠습니다. 하나 같이 작은 개별자 인간에 대한 성찰, 따뜻한 관심으로 가득합니다. [베를린 사람들] 꼭 읽어보세요.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18,800원 → 16,920원(10%할인) / 마일리지 9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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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02일에 저장

스페인 카미노를 걸으며 떠올린 삶에 대한 명상록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왜 걷느냐, 무얼 얻느냐 하는 거창한 다짐과 의미 부여 없이도 걷는 자체에서 기쁨을 누리고 그러다 절로 깨닫게 되는 지혜로운 가르침을 얻기도 하는 자연스런 여정이 잘 녹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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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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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바타, 마더와 도터

<1Q84년>에는 실체인 마더와 실체의 그림자 도터가 등장하는데 도터는 또 다른 자기, 즉 분신을 말한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에도 분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가 흥미롭게 오버랩된다. 다만 영화 <아바타>에서는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인간 대역 로봇을 만들어 분신처럼 행동하는 단순한 구조라면 <1Q84년>에서는 리틀 피플이라는 가공할 존재가 공기 번데기라는 매체를 만들고 그 공기 번데기 안에 마더의 대역 도터가 들어있고 그 도터는 마더와 가까이 있어야 분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주로 신접한 퍼시버로 리시버인 리더와 성교를 통해 신탁을 전하는 일을 맡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여 같은 분신을 소재로 한 이야기지만 <1Q84년>의 그것은 상당히 중층적이고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분신에 대해서는 인류가 오래 전부터 떠올렸던 것이지만 이처럼 정교하고 치밀하게 분신을 창조하고 역할을 부여한 것은 하루키의 도저한 상상력이 아니고선 가 닿을 수 없는 지경이라 하겠다. 


2. 하루키와 노벨상 


매년 가을이 되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곤 하는데 그 중 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아마 가장 뜨겁지 않을까 싶다. 최근엔 한국 작가도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고은 시인과 황석영 작가가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일본의 대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일본 작가로는 이미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한 바 있지만 일본의 국력과 매사 주도면밀하게 접근하는 성격으로 미루어 이미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지명도가 높은 하루키가 더 수상에 근접했다는 것이 정설이라 하겠다. 이번 <1Q84년>에서도 노벨상을 의식한 티가 조금 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정교한 스토리 라인과 발산적인 상상력뿐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에세이 같은 대목을 많이 깔아두고 있는 것 등 말이다. 아름다운 문장에 지혜가 깃들어 있는 잠언을 읽노라면 작가의 역량을 평가하는 데 긍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는 계산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문장 진행 상 절로 그랬는지 노벨상을 의식하여 수준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노리고 그랬는지 잘 분별이 되지는 않지만 그 부분에서 색다른 묘미를 느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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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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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글자가 겹쳐 보인다. 눈을 비비고 또 크게 부릅떠 보지만 여전히 두세 개로 어른거린다. 안구혹사랄 정도로 붙박인 듯 읽기에 몰두하여 어느새 1,300여 쪽을 훌쩍 넘겨 버렸으니 짓물러질 밖에. 이러다 정말 달까지 두 개로 보이는 건 아닐까 슬몃 걱정이 일기도 한다. 퍼뜩 가다듬는다. 내가 무슨 생각이람.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걸 보니 <1Q84>에 빠지긴 단단히 빠졌나보다. 

그런데 하루키는 왜 이리도 막막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어쩜 그리 절절한 얘기로 심란하게 만드는 것일까? 덴고와 아오마메 둘을 그렇게 엇갈리게 해야만 했을까? 그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먹먹해진 마음결 추스르느라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을 것 같다. 
 


1.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운명이기에 새로운 시공간이 필요했다 

그들은 뭘 찾는지 실체도 모를 간절한 목마름 속에 헤매다가 마침내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또렷이 알게 되지만 너무 때 늦은 깨달음이었다. 결국 1Q84년 출구 없는 막다른 세계에서 스치듯 만나지만 또다시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길이 없게끔 다른 세계로 나눠진다. 그러면서 그들을 끌어당기는 인력, 그 운명적인 흡인력이 1Q84년 그 막막한 지경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찌할 수 없는 손길의 인도로 그들은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데 어찌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있겠는가?

“어째서 꼭 나여야 했어요?”

“지극히 간단한 일이야. 그건 자네와 덴고가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야.”(2권 331쪽)

그동안 1984년의 현실에서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에 의식 밑바닥에 잠재된 근원적인 그리움을 해소할 길을 도무지 알지 못할 밖에. 하여 어이없게도 다른 대상에 집착하는 현상으로 투사되기도 했다. 덴고는 연상의 유부녀와 정기적인 섹스 관계를 유지하며 나름의 위로를 받는데 곰곰 따져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라 정욕 해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아오마메도 중년의 머리 벗어진 남성들과 원 나잇 스탠드를 시도하며 갈증을 달래보려 하지만 늘 공허함만 남게 되었고. 그러다 덴고는 우연찮게 원고 대필 업무로 후카에리와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녀에게서 아오마메의 그림자를 얼핏 읽게 된다. 후카에리와 퍼시버와 리시버 관계의 다의적인 교접을 행하는 순간 덴고는 그녀가 자기 이름을 부르며 환영 속으로 이끄는 것을 느낀다. 곧 아스라이 멀어져간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아오마메와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내게 되었고.

“1984년에서는 나와 덴고가 걸어가는 길이 교차되는 일조차 없었다. 그런 얘기인가요?”

“그래. 자네들 두 사람은 전혀 관련을 맺지 못한 채 서로를 생각하면서 각자 고독하게 늙어갔을 거야.”(2권 343쪽)

초등학교 때의 안타까운 이별 이후 현실에서는 도무지 만날 수 없게 운명 지어진 관계였기에 그들에게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던 것. 하여 레일 포인트가 전환되듯 1Q84년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진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Q84년으로의 진입은 현실에서 엇갈리기만 하던 둘의 만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반 리틀 피플 모멘트 마련을 위한 목적으로 예비된 일이기도 했다. 그 1Q84년은 빅브라더인 리더와 리틀 피플이 모든 걸 지배하여 다들 옴짝달싹도 못하고 고스란히 통제당하는 불가항력의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이들을 대적하여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새로운 전선의 구축이 필요했을 테니까. 그런 모멘트를 만들기 위한 전사로 덴고와 아오마메가 선택된 것이다. 어떤 섭리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니 덴고와 아오마메에게는 1984년보다 1Q84년이 더 적합하고 의미 있는 공간이 될밖에. 1984년 현실에서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겉돌다 의미 없이 스러질 우연이, 1Q84년에 와서 비로소 필연이 되는 인연의 결정적 끈을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의 연합으로 악의 세력을 견제하는 중차대한 역할도 맡게 되었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좀 더 일찍 용기를 내어 서로를 찾아야 했어요. 그랬다면 우리는 본래의 세계에서 하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가설로서는 그렇지.” 남자는 말했다. “하지만 1984년의 세계에서는 자네는 찾아 나서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을 게야. 그처럼 원인과 결과가 뒤틀린 형태로 이어져 있어, 그 뒤틀림은 아무리 세계가 거듭된다 해도 풀리지 않아.”(2권 341쪽)  

 

2. 그들은 왜 그토록 만나려고 했을까

그런데 그들은 왜 부지불식간 서로를 그토록 그리워했을까? 그리움의 정체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마 후카에리가 환영으로 보여준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벌어진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론 다시 만나지도 못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왔으니까 말이다. 따스하게 손을 잡던 그 때를 되짚어볼 때 서로에게 끌렸던 건 아마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결핍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 다 자의식이 강한 아이였는데 현실에선 그게 무참히도 짓밟히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덴고는 NHK 수금원인 아버지의 몰이해와 교묘한 방해 속에 힘겹고 막막한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고 아오마메는 증인회라는 신앙 공동체 소속 어머니 밑에서 다른 아이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의 삶을 영위하며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외면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속에 그들의 트라우마는 커져만 갔고 주눅이 든 채 외톨이로 겉돌기만 하던 차에 자신과 비슷한 결핍감을 서로에게서 읽었던 것이다. 자연스런 측은함에 다가가 마음을 달려주려 아니 오히려 위로받으려 그들은 마주보게 되었던 것이다. 어두운 구석을 메워주고 온기로 감싸줄 상대가 생긴 것이다. 특히 아오마메에겐 유난히도 살갑게 다가왔던 덴고, 그의 강하고 총명함과 다정함은 그녀에게 자연스런 따스함과 깊은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 아오마메 몸 심지에 박힌 한기를 없애줄 이, 덴고는 바로 그녀의 신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먼저 신호를 보냈던 것. 그런데 아오마메는 슬몃 마음을 내보이다 이사를 가는 바람에 제대로 뜻을 전하지 못했고 덴고는 의미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냥 흘려버렸던 것이다. 

그 이후 덴고는 더 이상 자라지 못했던 것 같다. 겉으론 성숙한 전문가로 보였다. 정확하고 열정적인 수학 강의로 명성이 높고, 후카에리의 난삽한 글을 원래 메시지와 감성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우아하고 논리정연한 문장으로 승화시킨 필력을 갖고 있으며 고마쓰의 천방지축 제안에도 묵묵히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소화해내는 노련미까지 갖춘 그였기에 말이다. 어디에도 저급하거나 유치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수시로 떠오르는 환영, 아버지가 아닌 남자에게 젖꼭지를 빨리는 어머니의 모습 때문에 까무룩 정신을 놓아버리기도 했고 후카에리가 입었던 파자마 냄새를 맡으며 그 어린 소녀에게 아련히 기대고픈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는 짙은 그늘도 있었다. 그는 모성 결핍 중증인 어른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니 아오마메의 신호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무의식에선 내심 모성이 깃들어있던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몸만 커버린 어른아이 덴고. 하여 덴고는 스스로 초등학교 시절과 마찬가지 처지라고 느낀다.

틀림없다. 달은 두 개다.

하나는 옛날부터 있던 원래의 달이고, 또 하나는 훨씬 자그마한 초록색 달이다. 그것은 원래의 달보다 모양이 삐뚜름하고 밝기도 덜했다. 얼결에 떠맡은,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가난하고 못생긴 먼 친척아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이 그곳에 분명히 존재했다. 환영도 아니고 착시도 아니다. 실체와 윤곽을 가진 천체로서 확실하게 그곳에 떠 있었다.(2권 503쪽) 

그 이지러진 초록색 달이 먼 친척아이의 모습이 아니고 바로 덴고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오마메도 자존감이 없이 자라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도 그 고무나무가 마음에 걸리는 걸까. 그걸 두고 방을 나설 때까지 아오마메는 고무나무 같은 건 별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건 정말로 추레한 고무나무였다. 색깔도 별로고 한눈에 보기에도 시들시들 생기가 없었다.(2권 513쪽)

그것은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로 밀려나 고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적어도 아오마메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색깔도 칙칙하고 전체적인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2권 516쪽)

그 고무나무에 왜 그리 유난히도 마음이 쓰였을까? 최후의 결전을 위해 떠나올 때 휑뎅그렁한 방에 유일하게 남기고온 그 화분, 바로 그게 아오마메 자신의 신세와 같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지러진 초록 달과 추레한 고무나무 신세인 자신에게 따뜻한 신호를 보내던 아이가 그리워 간절히 만나려 했던 것이다.  

 

3. 어떻게든 만나야 한다 

이지러진 초록 달과 추레한 고무나무로 기댈 곳 없이 헤매던 그들에게 목마름의 실체가 무엇인지 또렷이 드러나게 된다.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덴고, 공기 번데기 속 자신의 분신인 도터(daughter)가 아오마메란 걸 확인하곤 모든 패키지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된다. 아오마메는 그 온기를 전하러 1Q84년, 여기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어디든 기어이 그 사랑의 온기를 전해주기 위해 위험을 마다 않고 기어이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결핍과 트라우마로 얼룩진 어른 아이가 비로소 어른이 되어 아오마메의 마더(mother)가 되고자 나서게 된다. 모성결핍 덴고가 말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먼저 아오마메를 찾고 그게 실체든 분신이든 오롯이 돌봐 주리라 마음먹게 되는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거기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건 그는 달이 두 개 있는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찾아낼 것이다.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찾아낼 것이다. 이 온기를 잊지 않는다면, 이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2권 597쪽) 

아오마메을 찾자, 덴고는 새삼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2권 597쪽)

아오마메도 그리움의 정체를 기어이 알게 된다. 

덴고와 나는 어떤 사정으로 이 세계에 옮겨왔고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린 모양새로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아마도 그건 치명적인 소용돌이일 것이다. 하지만 리더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치명적이지 않고서는 우리의 해후는 불가능하다. 폭력성이 어떤 종류의 순수한 인연을 만들어내는 것과 똑같이.(2권 444쪽)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는 그의 몸 안에 있어. 그녀는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의 신전 안에 있는 것이다.(2권 501쪽) 

그런 둘이 드디어 만난다. 아니 같은 곳을 지향하게 된다. 그런데 한번 들어온 1Q84년의 세계에는 비상계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출구는 없는 것이다. 1Q84년은 둘의 의지와 염원이 교감되어, 간절한 바람이 사무쳐 닿은 곳이지만 1984년으로 되돌아갈 길이 없는 치명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퇴로가 없는 그곳에서 아오마메는 리더와의 약속을 실행에 옮긴다. 오로지 덴고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또 다시 엇갈리고 말았다. 이번엔 아오마메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서. 그건 어쩌면 아오마메 패키지의 최종 완성판이었을 것이다.  

 

4. 이지러진 초록 달과 추레한 고무나무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를 알아보았다. 다만 그 동안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잠재의식에 쌓아두고 있었을 뿐. 초등 시절부터 어른아이로, 냉혹한 살인청부업자로 결핍감을 지닌 채 공허하게 겉돌고 있는 지금까지 그들은 이지러진 초록 달과 추레한 고무나무 신세였고 그 결핍감을 메우기 위해선 서로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걸 현실 1984년에서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실체도 모를 막막함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진입한 1Q84년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고. 그러니 1Q84년은 출구도 없고 아오마메에게 비극적 결말이 예정되어 있는 안타까운 곳이지만 아오마메가 전하려던 패키지의 의미를 알게 되고 서로에게 이제 어떻게든 다가가야 하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 덴고와 아오마메에겐 그 곳이 구원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거기선 생사의 경계도 무의미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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