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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평점 :
삶과 죽음은 드라마틱하고 의미심장한 것이라 속단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 않은 듯하다. 인간의 일이기에 별 뜻 없이 벌어지고 때론 남루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조선 후기 최고의 석학으로 꼽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대해 떠올릴 때, 삶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이고 매순간 심사숙고 끝에 당대나 후세에 두루 영향을 미칠 유의미한 선택만 행했을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김훈은 [흑산]에서 그런 견해를 일거에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아무런 현실적 대책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민초들에 기생하는 어이없는 모습으로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지조도 없이 신념을 버리고 지인들을 발고하는 배반자의 무리로 매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김훈의 [흑산]은 또 다른 차원의 견해를 슬몃 보여주고 있다. 그게 인간의 일이라고, 그런 모습이 당연한 것이며 비난받을 게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노골적으로 대 놓고 두둔하거나 강력하게 부르짖지는 않지만 배반에 대한 질책이나 무능력에 대한 조소를 싹 거둔 건조한 문장을 통해 지나친 폄하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두 갈레 극명하게 나뉜 길이 있다. 정약종과 황사영이 걸어간 길, 천국으로 이어진 관념의 길과 약전과 약용이 택한 인간의 길이 그것이다. 약종과 사영은 이승의 고통과 인연을 초개같이 여기며 끝내 구원의 나라에 안기었다. 둘째 형과 막내는 삶의 구비에 몸을 맡긴 채 흘러 흘러 강을 지나 바다를 넘어 인간의 마을에 깃들었다. 신앙의 지조와 순결 면에서 보자면 배반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약종은 형제들이 그러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
형 정약전과 아우 정약용은 심지가 얕고 허약해서 신앙이 자리 잡을 만한 그릇이 못 된다. 천주학을 한바탕 신기한 이야깃거리로 알았을 뿐, 그 계명을 준행하지 않았고 타인을 교화시키지도 못했다. (16쪽)
이러한 인식 속에는 신앙 배교자에 대한 경멸이 들어 있다. 물론 형과 아우를 자신과 연루시키지 않음으로써 극형을 면하게 하려는 의도로 진술한 측면도 있겠지만 평소부터 지녀왔던 그의 생각의 결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조와 배반, 삶과 죽음의 의미나 무게가 그런 기준으로만 나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약전이나 약용의 삶이 오히려 더 지난하고 힘겨우며 인간적인 길이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부과된 고통이나 혼란스러움이 어쩜 더 무거운 짐이었으리라는 말이다.
죽음의 길로 나아간 이들은 이승에서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다른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오로지 마음의 나라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 물정과 절연하여 마음 문을 닫았기에, 마음의 나라를 인간의 마을에 세울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죽음의 길로 흔쾌하게 걸어간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오히려 더 쉽고 편한 길은 아니었을까. 일체 혼란스런 상념에 빠질 이유나 필요가 없이, 돌보고 보살필 인연들에 대한 연민도 접어두고 신념에만 충실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영은 본래 내면의 바탕이 저자 거리의 실상보다 고요한 마음의 세계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사영은 과거 답안에다가 “마음이 세상의 근본이며, 세상의 동력이어서 시간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 못하며, 마음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것”(60쪽)이라고 썼던 것이다. 셋째 처숙부 정약용은 황사영이 “경전이나 인륜으로 채울 수 없는 아득하고 넓은 땅이 그 소년의 마음에 날것으로 펼쳐져 있음을 알았지만” (69쪽) 정약용의 눈길은 늘 세상의 굴곡에 닿아 있어서, 이승의 아픔에 이어져 있어서 황사영과는 겹쳐지지 않았다. 사영은 천주학을 접하기 전부터 마음의 나라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멀고도 먼 곳을 향해 피흘리며 나아가는 길이 그에겐 현실과 육체의 인연과 고통보다 힘겹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반해 약전과 약용이 겪었던 고통과 슬픔의 무게, 인간의 길로의 나아감은 결코 가볍고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심사숙고 없이 당장의 힘겨움만 면하려 쉽고도 편한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에 아파하고 이웃의 가여움에 대해 연민을 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정서이다. 그들은 솔직하게 이를 드러냈다.
서울에서 의금부 형틀에 묶여서 심문을 받을 때 곤장 삼십대 중에서 마지막 몇 대가 엉치뼈를 때렸다. 그때, 캄캄하게 뒤집히는 고통이 척추를 따라서 뇌 속으로 치받쳤다. 고통은 벼락처럼 몸에 꽂혔고, 다시 벼락쳤다. 이 세상과 돌이킬 수 없는 작별로 돌아서는 고통이었다. 모든 말의 길과 생각의 길이 거기서 끊어졌다. 고통은 뒤집히면서 닥쳐왔다. 정약전은 육신으로 태어난 생명을 저주했지만 고통은 맹렬히도 생명을 증거하고 있었다.(10쪽)
그들은 또 늘 번민하였다. 인간이기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남을 끌어들여서 보존한 나의 목숨으로 이 세속의 땅 위에서 좀 더 머무는 것은 천주를 배반하는 것인가? 어째서 배반으로서만 삶은 가능한 것인가(18쪽)
그러기에 늘 자책하고 울부짖으며 스스로를 유폐시키려 했다. 그 길의 끝엔 빨갛고 하얀 바다가 이어져 있었고 까무라치며 그 사선을 넘어선 곳에 검은 섬 흑산, 절해고도가 펼쳐져 있었다. 약전은 비로소 구원을 받은 듯했다. 거기엔 세상의 고통과 슬픔, 아스라한 소망 따위와는 절연된 새 세상이 열려 있었다. 순매와 창대 같은 민초들의 순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어쩜 지상에 건설된 천국 같은 모습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약종과 사영이 하늘에서나 맛봤을 세상을 이곳 땅에서 이룬 것이다. 약전은 거기서 눌러 앉아 순매와 연을 맺고 창대와 교유하며 [자산어보]를 엮었다. 동생 약용이 강진에서 또 다른 유토피아를 건설했듯이.
하여 약전과 약용은 배반자요, 얕은 자가 결코 아니었다. 차마 버릴 수 없는 인간의 길, 오늘 여기의 삶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고 자신만 지고지선의 경지에 오를 수 없었던 이들이었다. 그 과정이 어찌 순탄할 수 있었겠는가? 그게 어찌 경박하기만 했겠는가? 오히려 더 힘겹고 무거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민초들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며 겨우겨우 살아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김훈의 [흑산]은 마음의 길로만 나아간 이들의 지적, 관념적 우월감에 대한 통렬한 지적으로 읽힌다. 그게 다가 아님을 약전의 삶을 통해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을 향해, 오늘 여기의 생생한 현실에 눈을 돌리는 일의 무게와 의미심장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약전, 약용이 택했던 삶이 약종, 사영이 나아간 지조와 죽음에 비해 결코 순도가 떨어지고 비중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