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
스티븐 랜즈버그 지음, 김세진 옮김 / 부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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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괴짜는 괴짜다. 경제학의 본령을 한참이나 일탈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짚고 있는 것은 하나 같이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기본적 인식틀이다. 실재와 허구,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 믿음의 근거, 지식 논리의 법칙 등 경제학보다는 철학의 인식론이나 논리학에서 다루기에 적합한 것들을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화법으로 얘기하고 있다. 하여 얼핏 존 롤스나 마이클 샌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학자, 그것도 재기발랄한 발산적 사고의 대가답게 이러한 논의들을 경제학적 사고로 수렴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독자적인 논리인 EGR(Economist's Golden Rule)을 이용하여 민감한 주제들을 재단하고 있는 대목은 압권이다.

 

남의 것을 훔쳐도 되는가? 위조 행위는 괜찮은가? 자선 기부금은 얼마나 내야 하는가? 쓰레기 투기는 괜찮은가? 등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부딪히는 사회문제들에 대한 질의응답을 저자의 EGR 기준에 따라 응답하고 있다. 쓰레기 투기에 대한 응답은 이렇다.

 

“그렇게 버린 쓰레기를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악취를 맡거나 그 사이를 누비며 감당해야 하는 총비용이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 누릴 편익보다 적다면야 괜찮다. 십중팔구 그렇지 않을 것이 문제다.”

 

EGR에 입각한 편익-비용 분석에 따라 명확한 응답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민자를 받아야 하는가,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현재의 삶의 질을 포기해야 하는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EGR을 적용하여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EGR이 만능은 아니겠지만 나름의 판단 근거로 유효해 보인다. 일부 공감 못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하여 이 책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정치한 논리를 배울 수 있고 우리 사회의 민감한 이슈들을 해결하기에 적합한 나름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어 즐겁고 유익하게 읽힌다. 지적인 향연에 참여한 기분이 든다. 유일한 옥의 티라면 책 아래쪽에 있는 각주가 너무 작은 글씨에 옅은 청색으로 되어 있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용한 아이디어가 많이 담겨 있는 부분이 사장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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