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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평점 :
유시민 님이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취임 선서를 하던 때가 문득 떠오릅니다. 막 단상에 오르려는데 한쪽에서 소리소리 지르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죠. 어떻게 신성한 의사당에 명색이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품위 없게 면바지에 자켓을 입고 나와 선서랍시고 하느냐고 호통을 쳐대며 말입니다. 그때 이미 유시민 님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거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철두철미 자유로운 영혼이 조직 속에, 그것도 낡아빠진 한조각 권위를 부여잡고 스스로 젠체하는 이들 틈바구니에 끼어 얼마나 몸과 마음이 상할까 우려가 되었고요. 이제 구비 구비 곡절 많은 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자연인으로 돌아온 지금의 유시민 님을 보니 제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몸에 꼭 맞는 옷을 다시 입은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유시민 님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아 의아했습니다. 이런 거창하고 당위적인 얘기는 골수 진보 진영, 혹은 세상물정 모르는 도덕군자들의 고담준론이기 십상이니까요. 그러나 곰곰 따져보니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비할 데 없는 슬픔,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었으니 세상이 달라 보였을 것이고 그런 마음을 이제 담담하게 얘기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을 듯했기 때문입니다. 다들 짐작하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담한 죽음과 그가 남긴 불가와 도가적 분위기의 유서를 접한 사건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상념이 교차되었을까요. 노대통령 서거 이후 유시민 님의 정치 행보도 지지부진 답보에 그치더니 그예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고 자연인으로 돌아오게 되고 말았네요.
이 책은 그런 큰 시련을 겪고 정치라는 직업을 접은 후 은거하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며 기록한 투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기름기가 쏙 빠져 있어 담백하달까요. 정치적 자기 검열과 미래를 대비한 책략이 싹 가셔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의 궤적을 성찰하고 앞날을 고민하는 실존적 물음과 그에 대한 스스로의 응답이 들어 있을 뿐입니다. 자연스레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런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에 대해 짚어나가고 있을 밖에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유시민 님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핵심적인 네 가지 요소를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일과 놀이, 사랑만큼이나 본질적인 삶의 요소로 연대(solidarity)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나와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들의 복지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자발성, 이 모두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재능이며 본능이다. 이런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의미 있고 존엄하고 품격 있게 만드는 제4원소이다.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연대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지금 이곳의 행복이 그들의 것이리라!”(p.263~264)
그러니 유시민 님은 천상 진보주의자라 하겠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맞겠지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보면 말입니다. 그런데 원래 자유주의와 진보주의는 어울리지 않고 상치되는 개념인데 유시민 님의 살아온 이력과 생각의 결을 꼽아보니 두 가지가 결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평범한 이들은 도저히 겸비할 수 없는 입장이 분명하고요.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자칭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데 과연 연대의식을 얼마나 머리로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우선 점검해보았습니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겠더군요.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차라리 자유주의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위안도 되더군요. 인간이란 결국은 자유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란 자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자신의 인생은 오롯이 스스로의 것이고 결국은 혼자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유시민 님은 담백하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하여 이 책은 [후불제 민주주의]나 [국가란 무엇인가]보다 오히려 더 진솔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거창한 정치체제나 시대 상황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한 나지막한 자기 성찰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먼저 알고 울렁거리고 있다 할까요. 바라기는 오래오래 이런 입장을 견지하셔서 더 깊고 넓은 인생의 지혜를 후학들에게 전해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