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후쿠오카 형무소 제3 수용동 조선인 감방엔 늘 추위와 굶주림, 고문과 박해, 질시와 모멸만 있을 뿐 어디에도 인간적인 면모는 깃들일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 살풍경한 곳에 동주가 등장하며 일순 풍향이 바뀌게 되었으니. 파괴와 음모가 난무하던 그곳을 그는 단번에 희망으로 술렁거리게 만든다. 세상은 패망을 앞둔 일제의 단말마 같은 탄압이 극에 달해 생지옥이 따로 없었지만 오히려 교도소 안에는 생명과 돌봄의 작은 공동체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그것은 국경을 초월한, 신분과 관계를 넘어선 아름다운 연대였다. 책과 글을 사랑하고 거기서 이상향을 발견한 이들의 우정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주어진 임무를 배반하는, 국가에 모반을 꾀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니. [별을 스치는 바람]은 이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꽃 같은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모반, 목숨을 건 지켜주기에 대한 기록이다.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읽곤 영적으로 교감하며 고난의 길로 함께 나아간 청년들의 숭고한 연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동주를 먼저 알아 본 것은 악명 높은 고문관이자 모든 읽을거리를 관장하고 통제하는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이었다. 여리디 여린 조선인 청년이 어느새 수용동 전체를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아우라를 뿜는 것을 그는 의아하게 여겼다. 그런 의문을 품고 동주가 대필한 재소자들의 엽서를 검열하다 그도 그만 동주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만다. 냉혹한 사실을 전하되 따뜻하게 포장하여 받는 이가 안심하도록 만들고 또 보내는 이의 마음마저 어루만지는 그의 글은 교도소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나아가 스기야마의 서슬 퍼런 눈도 너그럽게 녹여버린다. 진실을 말하면서도 검열 기준에 맞게 수위를 조절한 그의 글을 통해 스기야마는 잊고 있던 본연의 정서를 되찾게 된다. 나중에 동주가 기억이 흐려져 더 이상 편지를 대필할 수 없게 되자 교도소 전체가 우울에 빠질 정도로 그의 펜은 강했던 것이다.
동주의 아우라에 서서히 빨려든 스기야마는 그예 동주의 시를 접하게 된다. 시와 글과 지식인의 허위의식에 분개하여 백해무익하다고 매도하던 스기야마가 어느새 다른 차원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는 신선한 즐거움을 맛보며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아니 그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재능과 감성이 꽃을 피우게 된 것이리라. 동주 한 사람으로 인해서. 그는 동주의 시작(詩作) 재개를 조건으로 지하에 도서관을 만드는 것을 묵인한다. 아니 동역자가 된다. 그곳은 동주의 유토피아였다. 아니 동주뿐이 아니었다. 스기야마와 와타나베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동주는 그곳에서 세계 명작들을 조선어로 필사한 책을 만든다. 스기야마는 동주의 아성을 보호하고 그의 신변을 지켜주려 백방으로 나서게 되는데 영문을 알 길 없는 이들에겐 극악무도한 행패로 비칠 밖에. 다들 스기야마의 실체를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세상은 엄혹했지만 책의 성채는 고요했고, 시대는 전쟁 중이었지만 문장의 도시는 평화로웠다. 그들은 때론 빠른 걸음으로, 때론 절룩거리며 책의 도시와 거리를 여행했다.(171쪽)
와타나베 유이치는 스기야마 도잔 피살 사건을 수사하면서 알 수 없는 흡인력을 느낀다. 동주의 자장 안으로 빨려들고 있는 것을. 그리고 잔악무도한 간수인 줄 알았던 스기야마의 실체도 서서히 알아낸다. 헌책방 아들이었던 유이치는 천상 책과 글에 빠진 문사(文士)였다. 동주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둘은 서로의 영혼을 바라보며 진실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래서 죽음의 길로 접어든 동주를 지키려 온갖 머리를 짜내는데 여건은 녹록치 않았다. 그러면서 스기야마가 얼마나 동주를 지키려 애썼는지 뒤늦게 알게 된다.
이들은 왜 그토록 서로에게 끌렸을까? 아니 지켜주려 애썼을까? 그리고 기꺼이 도반이 되려 했을까? 그것은 서로에게서 잊고 있던 자신의 잠재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표정 없는 잿빛 얼굴들 속에서 동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얼굴을 보니 내가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의 거울이었으니까. 우리는 적막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82쪽)
스기야마 도잔이 겉으론 흉포해보여도 아름다움을 알고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인간미 넘치는 자였다. 유이치도 직책 상 동주를 심문하며 궁지로 몰고 가지만 책의 신비를 이미 맛본 자였다. 글의 힘과 인간의 내면의 향기를 느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은 엄혹한 세상에서 찾을 길 없는 유토피아를 교도소 내에서 찾았던 것이다. 정신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가상의 공간이건 지하 도서관 같이 실재하는 물리적 공간이건 그들의 유토피아는 교도소 안에 분명 존재했다.
국경을 넘은 시간적 제약을 극복한 세 젊은이의 우정 어린 교감은 동주의 시를 살려내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일제의 패망과 동주의 죽음을 앞두고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동주의 시가, 아니 정신세계가 종전 후에도 지속되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별이 되어 사라졌지만 그의 시는 저 별처럼 오래오래 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의 영혼이 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영혼은 나보다 오래 살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죽지 않을 테니까요. (291쪽)
그래서 [별을 스치는 바람]은 내게 단순한 추리물로 다가오지 않는다. 시와 글과 인간의 내면을 스피디하고 복잡한 플롯을 지닌 미스터리의 외형을 입혀 곳곳에 반전 장치를 두고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결말을 준비하여 몰입도를 높이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 전체에 녹아 있는 시의 아름다움, 글과 책의 감화력, 아니 모든 것을 초월하고 극복해내는 인간적인 교감이 더 두드러지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적 감수성이 잔잔히 배어 있는 행간에서는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다. 동주와 스기야마, 와타나베가 지적으로 교감하고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대목에선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유토피아를 발견하고 반짝거렸을 그들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나 또한 그들의 일원이 되고 말았으니. 하여 [별을 스치는 바람]은 암울한 죽음을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름다운 청년들의 유토피아를, 모든 것을 넘어선 생명력 넘치는 인간들의 연대를 그리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 유토피아로 나도 망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