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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별을 스치는 바람]에는 선의의 일본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스기야마 도잔, 와타나베 유이치, 미도리, 연을 날리던 소녀 등등... 그 중 내가 꼽는 가장 강렬한 캐릭터는 검열관 스기야마이다. 그는 두 얼굴을 지닌 냉혈한이었다. 아니 따스한 온기로 충만한, 인간미 넘치는 글쟁이였다. 그는 동주를 단번에 알아보고 사숙한다. 그의 시를 한 편이라도 더 읽기 위해 애걸복걸한다. 그의 시, 일본어로 번역한 동주의 시를 얻을 수 있다면 조국이라도 팔 기세로...
그런데 그의 위악은 하늘을 찌른다. 억압된 선을 위악으로 가리려 했으니, 오버도 그런 오버가 없을 정도였다. 그의 글과 지식인에 대한 왜곡된 발언을 들어보자.
글은 병균이며 유독한 글은 인간을 망가뜨린다. 나약한 정신, 근거 없는 동정, 터무니 없는 낙관, 위선적인 화해, 세상을 바구겠다는 헛된 꿈이 글에 숨어 전파된다. 교묘한 시구에 현혹되어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무위도식하는 자들, 공산주의라는 이념에 끌려 사회를 엎으려는 터무니 없는 자들, 아나키즘이라는 괴물에 전염되어 허무의 늪에 빠진 자들. 시인이라는 자들은 활자라는 독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건 헛된 믿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을 이따위로 망가뜨린 건 무식한 날품팔이나 장사치가 아니라 배웠다는 자들이니까. 그들은 말과 글이라는 도구로 멀쩡했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169쪽)
이랬던 그가 돌변했는데, 아니 무의식에 잠재해 있던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는데 그게 결국 사달이 될 줄이야. 스기야마는 교도소장의 의도를 방해하는 잠재적 적대자가 된다. 이로 부터 사건은 벌어지고, 미궁에 빠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유이치가 등장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