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의 상상력을 이끌었던 사랑은, 허망하다
김영하 작가는 그 허망함까지도 의연히 받아들였기에 위대한 개츠비라고, 해설에서 말한다.
데이지의 사랑?은 현재의 결핍에 대한 소소한 욕망일뿐, 가볍고 비겁했다.
개츠비의 죽음을 데이지는 이어지는 삶속에서 어떻게 소화?시키며 살았을지, 궁금해진다.
모든 사람은 여러 주요한 미덕 중에서 최소한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내 경우에는 이것이다 :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정직한 사람들 중 하나다. 78
작지만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나는 이 경의의 원천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나의 불신은 매혹에 가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한 다스의 잡지를 대충 뒤적일 때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86
갑자기 데이지와 개츠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이 깨끗하고 강건하고 상상력이 결여돼 있고 세상 만사를 회의적으로 접근하는, 내 팔에 명랑하게 안겨 기대고 있는 이 보기 드문 여성에게로 온 정신이 쏠렸다. ... '세상에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바쁜 사람과 피곤한 사람뿐이다.' 101
오래도록 품어왔던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환상의 생생함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는 독보적인 열정을 가지고 그 환상 속에 뛰어들어, 하루하루 그것을 부풀리고 자신의 길에 날리는 온잦 밝은 깃털로 장식해왔던 것이다. 아무리 큰 불도, 그 어떤 생생함도, 한 남자가 자신의 고독한 영혼에 쌓아올린 것에 견줄 수 없다. 121
이는 현실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일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이 세계의 기반이라는 것이 요정의 날개 위에도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보증 같은 것이었다. 125
그 표적들을 향해 쏘아올린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242

<위대한 개츠비>홈페이지에서 데려온 사진
5월 26일 일요일 아침에 조조로 봄
개봉하기 전부터 조금은 설레임을 가지고 기다렸던 영화, 개츠비
예전에 민음사판으로 읽었던 적이 있었으나, 기억속에는 크게 자리하고 있지 않아
이번에는 김영하 작가 번역본으로 읽어보고, 영화를 보리라 생각했었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읽게 되었다.
얼마전에는, 김영하 작가와 함께 하는 <위대한 개츠비>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직접 번역한 작가로부터 생생한 번역기를 듣기도 하였다.
예전에 별 감동없이 읽었던 이야기가, 이번에는 과연 얼마나 새롭게 다가올까?
개츠비와 데이지를 이어주면서, 이 글을 이끌어가는 닉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닉은 문학적 감성과 재능을 겸비하고 있지만, 현실적 상황에 맞게 증권사 직원으로 취직하면서 고향을 떠나 웨스트에그, 위대한 개츠비의 대저택 옆으로 이사오게 온다.
이것도 개츠비의 상상력속에서 이루어진 일일까?
하나의 세상과 하나의 세상이 만나지려면 공유되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대한 상상력은 기적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것일까?
여기에서는 닉의 공간이 모든 이야기들이 펼쳐질 수 있게 만드는 마법적인 공간이기도 하면서, 마법이 사라진 후 씁쓸함까지도 견뎌내야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모르는듯한, 만개한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개츠비 대저택에서의 끊임없는 파티. 사람들은 취한 듯 몽롱함에 자신을 잃고 흔들어댄다. 몽롱함들이 만들어내는 무질서한 향락들은 나에게 매혹으로 다가오지 못했지만, 마음을 두드리는 듯한 음악소리는 마음 속 깊은 곳, 어딘 가을 건드리는 힘이 있었다.
이런 것이 '욕망의 소리'라는 건가. 그런가 보다.
이런 음악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속 욕망들에 잠식되어, 자신을 잊는다.
이런 음악만 끊임없이 듣는다면, 자꾸만 고양되는 감정에 정신이 휘둘릴수도 있겠다...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음악은 참 좋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엄청난 상상력을 통해 자신이 얻고자 했던 부를 이룩하고, 그 중심에 선 데이지와의 만남을 위해
닉의 집을 온통 꽃으로 장식하고, 흐르는 일초일초에 민감하게 깨어 있으면서,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어쩔줄 몰라하던, 개츠비의 모습은 강렬했다.
비가 내리는 오후에 못 올지도 모르는 데이지를 절망적으로 기다리다가, 데이지가 오는 소리를 듣고는 차마 정면으로 부딪힐 용기가 없어, 거실에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비에 흠뻑 젖은 꼴을 인식하지도 못한채, 우연히 들른 듯, 문을 두드리며 들어서는 개츠비의 모습은 정말 '위대'했다. 레오나르도의 연기는 완벽했다.
개츠비의 튀어나올 듯한 심장소리는 내 눈에 박히면서, 뜨거운 눈물로 흘러내렸다.
아... 이게 고전의 위대함인가? 한 장면만으로 나를 무너뜨리는 힘.
개츠비가 왜 위대했나는 물음이, 이 순간은 그냥 개츠비가 위대하게 다가왔다.
한 사람의 오랜 상상력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당황스러움이란 감정에 둘러쌓인 채, 지나가 버렸던 사랑을 한 순간에 다시 제자리에 불러낼 수 있을만큼 강렬했다.
사랑이란 아우라를 두른 두 사람을 보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레오나르도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영화가 떠오르면서 이제라도 봐 볼까...하는 기대감을 낳게 해 주었다.
레오나르도가 참 낭만적이란 생각을 이제서야 해 본다.
이제까지 미남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중년의 레오는 예전부터 연기력을 겸비했던 준수했던 남자였던 것이었다. 이 늦은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