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의 독서 / 반칠환
꽃뱀이 풀밭에서 신간을 읽고 있다 며칠째 기다려
온 참개구리 자서전이다 평생 물잉크로 써 왔다는 얼
룩무늬 가죽 양장본이다 꽃뱀은 소문난 정독가다 어떤
서적도 한 번 손에 쥐면 머리말부터 꼬리말까지 한 글
자도 빠뜨리지 않는다 모르는 이들은 고작 꽃뱀이 걸
친 무지개빛 목도리를 탐내지만 아는 이들은 지성으로
갈무리된 뱀눈에 한껏 오금저리는 것으로 경의를 표한
다 꽃뱀의 꿈도 멋진 자서전을 하나 쓰는 것이다 비늘
한 칸 한 칸 또박또박 적어보다가 꽤나 구불구불한 제
팔자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더러 쓰다가 막혀 구깃구깃
벗어던진 원고가 돌 틈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꽃뱀은
한 권 다 읽을 때까지는 절대 다른 책을 사지 앟는다 올
봄 새로 펴 낸 신간들이 퐁당퐁당~ 숲 속 연못 도서관
에 안심하고 납본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마귀 / 반칠환
직업은 망나니지만
모태 신앙이다
방금 여치의 목을 딴
두 팔로 경건히
기도 올린다
외로움이 구원할 거야 / 반칠환
눈 속에 숨어 있던 매화처럼
불타는 가뭄을 삼킨 씨앗처럼
어둠 속에 오래 박혔던 별들처럼
멸종의 족보에서 달려나온 짐승처럼
외로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오래 사람을 잃은 자가 시를 얻듯
오래 쫓긴 산양이 절벽을 넘듯
가는 오솔길이 마침내 숲의 심장에 이르듯
누천 년 별들이 저 홀로 궤도를 걷듯
외로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여명의 새벽이 아름다운 것은
저마다 외로움에서 깨어나기 때문
황혼의 저녁이 아름다운 것은
저마다 돌아갈 사무침이 있기 때문
외로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오래도록 무리 속에 있다가
문득 자신이 보이지 않거든
가라, 너만의 오두막으로
가서, 외로워라
봄마저 잊고, 꽃마저 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