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쫓아 신화가 된 사나이 

 

 

나는 그려야만 하오

이 절박한 한마디로 세상에 신화가 된 한 사나이가 있다. 이 작품은 그림을 그릴때에만 존재할 수 있었던,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달을 쫓아 살다 간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 남자의 이름은 찰스 스트릭랜드. 능력있는 증권 브로커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이 남자는 하루아침에 가정을 버리고, 화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여 쫓기듯 가출하게 된다.

 

이 작품을 쓴 서머싯 몸은 우리에게 <인간의 굴레에서>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누구나 한번쯤은 <달과 6펜스>와 함께 이 작가의 책을 읽어봤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작가이다. <달과 6펜스> 속 화가 스트릭랜드는 후기인상파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고갱의 삶을 그대로 답습한 자서전이라기보다는, 굴곡이 많았던 고갱의 삶을 단순화하여 화가의 내적 예술 세계에 촛점을 맞춰 새롭게 구성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었던 평범한 남자가 언제 어떻게 변할 줄 모르는 열망에 휩싸여 세상 속 안락함을 버리고,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블랙홀같은 시간 속으로 황홀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는지 따라가 보자.

 

집을 나온 스트릭랜드는 파리의 허름한 호텔에 머물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만 집중하면서, 그 소리를 자신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화자(작품 속 ’)도 만나고, 사람좋은 화가 스트로브와 그 부인 블런치도 만나게 된다. 본의 아니게 블런치와 육체적인 스캔들을 일으키게 되면서 그 부부를 파멸에 빠뜨리게 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 일도 아니란 듯, 냉정함을 보인다. 그러나 블런치와의 관계는 스트릭랜드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일정한 수입 없이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마음 속 달을 놓지 않았던 스트릭랜드는 우연히 그렇게나 찾고 헤매던 무의식 속 영혼의 고향 타히티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내적 공간과 현실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봄에 꽃이 피듯, 스트릭랜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면서 드디어 세상의 신화가 된다.

 

어렸을 때 아무 감흥없이 교과서에서 만났던 고갱을, 이 작품을 통해, 스트릭랜드를 통해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천재의 삶이 주는 고뇌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었다.

 

지난여름, 시립미술관에서 만났던 고갱의 그림들 앞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을 거쳐 스트릭랜드의 그림들이, 아니 고갱의 그림들이 생생하게 살아 나와 내 심장 속으로 예술가의 정신을, 작품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다.

그 시간들이 이제는 나에게 신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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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갱, 타히티의 관능
    from 꽃별이네 2013-09-22 21:56 
    고갱의 새로운 발견...그 사람이 궁금해졌다 귀스타브 아로자는 자신의 개인적 취향을 통해서, 고갱으로 하여금 모든 예술가가거치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전에 관학파의 인습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힘겨운여행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한 셈이다. 119 그는 일찍부터 위대한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예술가의 차이는 반드시 재능이나 솜씨의 문제라기 보다는 괴팍함의 추구, 유일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전출처 : 꽃별이 > (2월 15일 두번째 시간, 첫번째 글입니다) 네루다의 바다

빨리 올리는게, 글 속에 묻힐 수 있을 것 같아서...올립니다...^^

 

 

 

네루다의 바다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민음사>를 읽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문학작품보다는 영화 ‘일 포스티노’로 먼저 다가온 작품이다.

 오래전, 시노래모임 ‘나팔꽃’ 공연 때 도종환 시인이 자신의 시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시와 사람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좋은 작품의 예로서 영화 ‘일 포스티노’를 추천해 주었다. 유명한 시인과 한 우편배달부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라고, 시인은 ‘네루다의 바다’ 앞에 서 있는 듯,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목소리는 투명하게 진동했다. 그런 시인의 모습은 그대로 내게 시가 되어 ‘일포스티노’는 언젠가 한 번은 꼭 보고 싶은 ‘시’를 품은 영화였다. 그런 ‘일 포스티노’를 우연히 서가를 정리하다가 한 권의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이름으로, 진한 바다내음을 뿜어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내 가슴은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이야기의 배경은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 시간이 멈춘 듯 나태함과 왁자지껄함이 가득한 바닷가의 작은 섬마을이다. 이런 작은 섬에 위대한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가 휴양차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리오는 어부를 아버지를 둔, 그러나 어부가 되고 싶지 않은 치기어린 젊은 청년이다. 이런 마리오가 수신인이 단 한 사람뿐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취직하게 되면서 ‘시’에 눈뜨게 된다. 단순한 우편배달부와 수취인의 관계에서, 순박한 마리오의 질문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메타포, 그게 뭐죠?”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파블로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마리오는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에 귀 기울이며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아름다운 영혼의 개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마리오에게 시가 선물처럼 찾아오게 된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처녀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날마다 그녀에 대해 시를 쓰고 들려준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마리오의 영혼을 시의 본질속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게 하는 마법의 열쇠로 작용한다. 흐르는 시간속에서 시인의 메타포는 그대로 마리오의 삶속으로 들어가 삶의 본질에 눈뜨고 영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슴으로 ‘메타포’를 인식하게 된 마리오가 자신이 살고 있는 칠레의 현 실상을 파악하게 되고, 민중의 언어로서 ‘시’를 표현해 낼 때의 그 감동이란, 시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순수한 본질로서 다가와 커다란 감동을 주게 된다.

 

 이 작품을 쓴 안토니오 스카르메타(1940년~ )는 위대한 시인인 네루다가 누구와도 편하게 이야기하는 친근한 성격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발표(1985년)하기 전에는 이 작품을 자신이 직접 감독하고 배우로도 출연해 영화로도 만들었다 하니, 작가의 이 작품에 대한 열정을 가히 짐작해 볼 만 하다.

 

 경계가 사라진 바닷가를 앞에 두고 소박한 시어를 건넬것만 같은 파블로의 사진이 담겨있는 책을 덮는 순간, 내 가슴은 갓 잡아올린 한 마리 물고기처럼 생생하게 파닥거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위대한 만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에게 ‘위대한 만남’이란 다름아닌, 자신안의 어두움을 스스로 밝힐 수 있도록 내적인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만남을 말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우연한 만남’이 ‘위대한 만남’으로 싹트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시노래모임 나팔꽃과의 만남이었다.  아주 오래전, ‘꽃피는 5월’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했던 어느 날 오후, 친구와 공원을 거닐다가 우연히 시노래모임 ‘나팔꽃’공연에 참가하게 되었다. 추운 날씨에 몇 되지 않은 관객으로서 덜덜 떨면서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시노래속에 담겨있는 근원적인 그리움의 감정들이 내 무의식을 건드렸던 것 같다.  그 때 이후로 ‘시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으며 주위의 사물에 대해서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도 ‘메타포’가 찾아들었던 것이다.

 사물의 본질에 대한 물음, ‘나를 나답게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함...’

 마리오처럼 삶이 시가 되진 못했지만, 오랜 시간동안 ‘나팔꽃’ 꽃그늘에 머물다 보니 내 마음에도 어느새 나팔꽃을 닮은 작은 시마음이 넝쿨지고 있었다. 가끔식 일상에 지쳐 피곤해 질 때면,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팔꽃’ 향기를 맡으며 힘을 얻는다.

 

 

 나팔꽃 / 김현성

 

아침에 나의 머리맡에
부지런한 나팔꽃 인사하지
나를 위해 그대 빵을 굽고
방안 가득 커피향이 좋아

사는 날 가끔 힘이 들 때
망설이던 눈물 흘려도 되
하늘 향해 뻗는 나팔꽃 봐
마음까지 하늘에 닿겠네

이른 아침 창밖을 봐
높이 나는 새들 얼마나 힘찬지
또 밤새 서 있는 푸른 나무들 좀 봐
이른 아침에

 <김현성 시집 '그대 어서 와 그리움 나누고 싶다'에서>

 

삶의 ‘메타포’에 한번이라도 물음표를 가져 본 사람이라면, ‘시’의 본질에 느낌표를 가져보았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보아도 좋을 문학작품이다. 그리고 한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말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 시노래모임 나팔꽃 : 작게, 낮게, 느리게

  '나팔꽃'은 1999년 봄, 시인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 유종화와 음악인 백창우 김원중 배경희 김현성 홍순관 류형선 이지상 안치환 이수진 등이 모여 만든 시노래 모임입니다. 시와 노래의 만남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변방으로 밀려나던 시가 새롭게 존재 의의를 찾으며 대중을 만나는 작업이며, 신세대 문화의 홍수 속에서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고 있는 노래가 새로운 시정신으로 무장하여 서정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시와 노래는 한 몸, 시는 시집 밖으로 걸어나와 자연과 인간의 친구가 되는 노래가 되어 우리 삶 속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나팔꽃 소개글-홈페이지에서 데려옴)

아쉽지만 현재는 '나팔꽃' 활동이 잠시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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