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냄새 / 박형준
동물들은 자기 냄새에 끌려
한생을 살다 가는지,
태풍이 지나간 뒤
담벼락 밑에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사라진 냄새를 찾아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 가엾다
도망가지 않을 정도로만 떨어져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그 속에서는 잃어버린 내 냄새도 있는 것 같다
생솔 타는 연기에
눈을 비비며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면
무쇠솥을 들썩들썩 들어 올리는
펄펄 끓는 밥물 냄새,
나는 고양이의 뻣뻣한 뒷덜리의 털을 따라 내려가다가
녀석의 턱 끝까지 만져 주고 싶다
고양이의 먼 냄새를 맡으며
저녘밥 짓는 연기가 공중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들판을 걸어 집에 돌아가고 싶다
비 그친 후
거짓말처럼 환한 대낮
부들부들 떨고 있는 냄새가
자기 한생을 찾고 있다
<불탄 집 / 박형주 시집, 천년의 시작> 중
새 / 이병률
새 한 마리 그려져 있다
마음 저 안이라서 지울 수 없다
며칠 되었으나 처음부터 오래였다
그런데 그다지
좁은 줄도 모르고 날개를 키우는 새
날려 보낼 방도를 모르니
새 한 마리 지울 길 없다
<눈사람 여관 / 이병률 시집, 문학과지성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