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아침처럼 흉흉한 꿈을 꾸고 일어나

반투명 유리창을 열어 놓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꿈은 늘 언덕 위로 올라가다 끊긴다

어제는 종일 꽃구경을 한 탓인지

언덕 너머에서 꽃 내음이 실려 오기까지 했지만

 

여느 아침처럼 햇살을 등지고 거실로 향하는 사이

왜 언덕이 서 있어야 했는지는 다 잊어진다

 

오전 일곱 시 베란다 커튼을 젖히고 하늘을 내다본다

엊저녁 먼 산에 걸려 있던 구름 덩어리가 무슨 계시인

듯 코앞에  떠 있다

 

묵묵히 서재로 돌아선다

잠을 설쳐 허리가 결렸지만 돌이킬 순 없다

발길을 멈추고 체중계에 올라간다 눈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꽃무늬 벽지에 그림자가 서 있다

가늘고 구부정한 줄기에 커다란 꽃송이가 무겁게 얹혀

있다

 

하루 종일 꽃은 집 안을 배회한다

꽃은 두어 덩이 밥을 먹고 쓸쓸히 설거지를 한다

소파에 앉아 잠깐 졸다

눈가에 맺힌 이슬을 슬쩍 훔친다

 

여느 밤처럼 누워 꽃은 잠을 청한다

언덕이 나타난다

 

 

 

 

 오랜 시간 동면중에도 제 향기를 잃지 않고, 화사하게 살아나는 꽃들의 마음이 참 곱구나...

먼 시간속을 뚫고 나에게 달려오는 내 마음냄새

이 꽃송이 하나하나에 피어나는 얼굴들. 꽃은 기억이구나

(오래 전 찍은 사진들을 둘러보다, 퇴색되지 않은 선명함에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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