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10월 혁명을 기념하며

 


혁명가에게 10월은 축제 기간이 아니라, 주로 혁명 기간으로 본다.

 

체제 연구자들은 시민 혁명이었던 프랑스 혁명을 주로 언급하지만,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한계를 분명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10월 혁명만 기념하겠다.

 

여기서 우리란 지난 소련이라는 거대한 탄생을 목격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저 혁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바라고, 또한 하고자 함을

 

준비하고, 늘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러시아에게 축하를 보내지는 않겠다.

 

그리고 우리는 성과마저 없다.

 

지난 북한 정부진, 심지어는 국내 노동 모임들도, 10월 혁명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한 달 동안이나 단 한 마디도, 단 한 차례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념한다.

 

10월 혁명이란, 뜻을 함께한 수 많은 인민, 노동가들로부터 모이고,

 

또한 모든 10월 혁명을 위해 조직한 투쟁을 기념해서도,

 

볼셰비키로부터 굳건한 기반 위로,

 

세워진 우리는 10월 혁명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욱 머무르지는 않겠다.

 

『국가와 혁명』을 읽고,

 

만국 프롤레타리아트들은 단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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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참사와 재난

 


일부 마르크스주의로는 국가로부터 발생한 여러 참사나 재난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못하고 별 일이 아니라고 우습게 여기기도 한다. 사고들에 대한 원인으로는 주로 구조나 체제로부터 기인하거나, 앞선 대책을 미리 수립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지배자 이전에 국가 지도자와 관료들에 대한 책임마저 묻는다. 마르크스주의 이전에 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지배자와 관료들은 보고를 누락하거나, 느슨한 고리를 형성하고, 방안 부재까지 참사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주로 처리해야 할 일을 정작 하지 않거나, 가볍게 생각하기만 하고는 미루고 쌓는다. 단지 우발적인 사건일 수는 없겠다. 노동 대중들도 지적했지만 안전 수칙은 괜히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직적인 계급 관계로는 사고를 더욱 빠르게 대처하기란 매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경찰 통제마저 불가피하지만, 국내로는 인력이 마약 단속으로 분산해버렸다고 한다. 과연 경찰 국가답다.

 

작은 사고부터 시작해서, 자본주의 체제로는 여러 범죄부터, 대형 사고까지, 축제가 끝나도 사람이 죽는 일은 매우 쉬워졌다. 개별적인 사람 한 명은 소중한 재산 따위가 아니다. 당시로는 언론도, 여론도 문제였다. 젊은이들이 축제를 가는 일만 문제 삼았고, 질서가 무너졌다고 하소연만 해댔다. 잘 놀지도 못하고, 놀 줄도 몰랐던 젊은이들은 저마다 사연들이 있음에도, 풀 수 있던 해방구마저 정작 사라지고 말았다.


과연 한국은 경찰 국가이자 자살 국가다. 보고를 받았음에도, 연락받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아는 한, 법적인 침묵 아래로 해명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부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국가 체제에 대한 부정 논리를 더욱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지도자가 있음에도, 무정부적인 성질도 보였다. 그리고 결국 같은 참사는 일어나고 말았다.

 

역사적인 참사나 재난들은 환경이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구분하거나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 모순으로는 상부로부터 계급적인 요인, 부패한 구조를 지적하지 않는 한, 모든 체제 안에서도 일어날, 수 많은 참사와 재난은 반복할 수밖에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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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중동에 대한 중대 발표

 


중동 문제는 확전했다. 복잡한 문제라고들 한다. 그러나 생사가 걸린 문제로는 복잡한 문제란 없다. 지금 중동은 가스와 배럴 석유 문제,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 비단 중동 문제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주로 기아 문제를 거론하지만, 장기적인 군부 독재 국가들로부터 전 세계가 파산 난지는 오래다. 새삼 뒤늦게 민주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지적으로는 경제 문제마저 선진적인 민주화 문제로 환원해서 돌려버린 시각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국가로 보자면, 정작 중동, 아프리카, 남미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도 공산당은 절실하다. 그러나 기반은 매우 취약하거나, 낮다. 소수 운동 단체들, 개인적인 성명으로만 유지해왔다. 매체로는, 국가들 간으로는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폭 넓은 토대를 갖추고 있음에도, 혁명에 대한 의식 부재와 단편적인 운동으로만 머물기 때문에 손 꼽는다.

 

전쟁 중단. 매우 중요한 말이다. 그러나 평화적인 호소로, 연대를 도모한다고 해서, 학살을 빙자한 속국 수용이라면 더욱 문제다. 과연 선진국의 위상이 아니라 위선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경제를 안정화하겠다는 전략이 언제까지나 먹힐 수 있을까. 쉽사리, 정작 군대를 복무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참 할 말도 많겠다. 누구도 그러한 전쟁에 대한 전말마저 숨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국내도 똑같다. 아직 통일도 안 됐다. 그리고 공산당에 대해서는 반감마저 갖췄기 때문에, 중동 문제라는 일부로 본다면, 자국 독립을 요구하는 시각마저 놓치기란 쉽다. 북한도 파견한 마당에, 누가 중동 문제를 다루고자 하겠는가. 누가 아프리카를 다루는가. 누가 남미를 다루던가. 그리고 아시아는 누구인가. 정작 적을 모르고는 모든 걸 부정하기만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남은 공산당은 그러한 부정에 대해 도전해야만 한다. 각국에도 공산당은 필요하다. 그리고 실권을 잡고 국가를 유지하는 권력이 아니라, 이전 혁명가들로부터 말해준 교훈으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들은 국가라는 질서를 지배하고, 또 파괴한다.

 

부르주아 국가라면 조직 기구로부터 소멸만이 아니라 분쇄하는 건 옳다. 보다 중요한 건,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낡은 부르주아 조직 기구를 폐기하고, 오랜 부르주아 조직 국가를 더욱 폐지할 수 있는 힘도 남기 때문이다. 언젠가 각국 내외 지배자들이 품은 공상에도 맞설 혁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들에게 지배란 달콤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권력이란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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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제6차 인터내셔널 재수립 여부

 


여기서는 코민테른 이전, 인터내셔널(국제노동협회) 문제를 다뤄보고, 전 세계, 노동 안건들을 포함해서, 회담에 대한 내용들, 국제 공산당이라는 과업, 그리고 제6차 인터내셔널이라는 국면에서 재수립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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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이른바 반동 문제


 

북한에서 '김가' 일파(주사파)를 비롯한, 주체 사상에 대한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북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추종하거나, 비판한 지식인들에 대해서도, 종합해서 다뤄보겠다. 


어느 집단이든, 단체든 상대 국가를 규정하는 문제를 두고, 짐작해서 파악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부 사정, 속내를 살펴보자면, 주장한 사람들도 숱한 사견들에 기초한다. 체제주의로부터 국가를 규정하는 문제란, 이를테면 단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로부터 공산권 국가를 규정하면서 현 사회를 보지 못하고, 무척 이르게 본 탓에, 매우 모순된다는 지점에서도 따끔하게 비난받아야만 옳다. 주로 대표성을 띤 집단이나, 단체에서도, 지도자들이나, 사상가들은 체제를 지지하고자, 혹은 지적하고자, 정작 내부 문제를 보지는 못하고, 상대 국가를 규정하는 일을 서슴없이 일삼는다. 그러한 문제로는 노동조합주의로 빠진 부패자들과 관료주의에서도 여전함을 잘 보여준다.

 

대표격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국제주의 시각에서만 보는 문제점과 정돈되지 못한 입장들에 기반을 둔 난삽하다는 근거로, 각국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을 결전하고, 조치할 수 있도록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란 더욱 시급함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식인 운동가들에 대한 영향력과 한계를 짚어본다. 바로 '인텔리겐치아'라는 문제다. 국내로는, 마르크스도 지적했던 '룸펜' 문제도 끼여있기 때문이다.

 

김가와 주체 세습


북한은 무산 국가가 아니다.

 

신사 양반들! 계급 투쟁 없는 운동이란 얼마나 무식한가! 전도된 주객에다 번지르르 말만 앞서고 분별 할 줄도 모르는 꼴이란!

 

북한은 수정과 반동을 일삼아 온 무고한 숙청과 인민 착취로 완성한 국가의 겉모습일 뿐이다. 그래서 내부 모순이란 정작 자본가들에 대한 부패를 고스란히 안고 갈 수밖에는 없다. 마찬가지로 남북한에서도 재산의 상속과 세습은 부르주아지들에게는 제약 없이 자신들의 유산을 오랫동안 대물림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기능으로 작용해왔다. 특히 부르주아지들은 철학으로부터 자신들의 지배적인 속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보존하고자 더욱 강력하게 통제된 국가와 임금 노동을 지불하고, 또한 착취하면서 자신들의 시공간을 부르주아지들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그리고 부르주아지들을 위한 정당이자, 부르주아지들만의 국가로 투신해왔다는 점이다. 이제는 오히려 소부르주아지들도 자본이라는 기회의 씨를 뿌리고, 타락한 꽃으로 거두어 가고 있으니!

 

일반적으로 남한에서는 북한을 봉건적인 왕국이나, 파렴치한 독재 국가로 자주 여기곤 한다. 그러나 같은 지적들은 주로 반공주의자들도 내세우는 명분으로, 정작 자신들에 대한 국가와 지배 체제를 자주적으로 국방에 대한 안보로만 들먹이곤 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당이든. 대소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평화 통일이라는 민주적인 구호가 어느덧 계급 투쟁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이름도 없이 그저 부르주아지들을 위한 벌이에 불과한 좌우파 밥그릇 싸움으로 치달았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폭동을 정당화하게 됐을까. 바로 혁명에 대해 심사숙고 없이 조사해본 적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연구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혁명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도 학회는 부르주아를 위한 사적 소유물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고, 오히려 오래된 헌법을 훼손하거나, 뜯어고치는 지배 계급을 위한 전유물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치주의도 폭동으로 수용되거나, 매우 헛된 계급적인 중도로만 도망치고, 주관적인 인식으로 가로막혀, 사적 복수와 사사로운 판결만 이루는 도대체가 도무지도, 도저히도 용서할 수 없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그릇된 행위를 올바르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주 보여주는 정치적 모순이란 여기서도 계급적인 파악을 먼저 전제로 한다.

 

한국에서도 자본주의에서 주체는 세습된다. 주체란 씨족 사회만으로 이뤄졌던 매우 역사적인 본가를 따르거나, 또한 자본재 기업 운영이나, 생산 업체들에 있어서도 재산 축적을 위한 손 쉬운 발판을 법적으로 허가받을 수 있었다. 검토 과정도 없었고, 뒷돈으로 부패했고, 어느 곳에서든 국가란 잘 소멸하지도 않고는 오히려 부르주아지 국가로부터 꼭 폐지해야할 근거를 곳곳에서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 오히려 무단으로 폭력을 사용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제거하도록 해온 짐승들이나 다름 없는 폭압을 행사하기도 했던 사람들은 누구던가. 우리는 늘 수비해왔다. 그러나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다. 파시스트 폭동으로 휘말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왜 또 다시 전쟁을 부추기는지에 대해서는 지친 심정이자. 그리고 이제는 모두에게 꼭 묻고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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