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건강 보험료와 의료법 실태

 

한국에서는 노년의 인구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부양 인구 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총 인구 수를 고려한다면, 여성과 돌봄 연구로만 한정한 매우 미시적인 분석에만 열중한 결과는 아닐지 의문이 드는 통계이다. 노인 인구 대비 출생률로 파악한다면,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1990년대부터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한 세대가 끝나는 만큼 서막이라 믿었던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끝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의료에서도 민영화를 추진했고, 병원 수는 늘어났지만, 정작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의사는 턱 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렇게 입시 제도로부터 정당한 시험이라 여겼던 의대 시험들도, 문턱 높은 전공의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를 제대로 돌볼 여건마저 있었는지는 자문 해보게 된다.

 

한 의사는 환자 수는 늘어나지만, 감당할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의료 보험이라는 혜택을 받으면서도 환자는 늘 대기한다. 더욱 급한 의사들은 더 쉬운 전공을 택하고자 마음을 돌리고, 힘든 전공을 기피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후로도, 긴급 병원들에서는 의료법을 지키지도 않고, 불법 시술만 더 늘어나고 있다. 언젠가부터 건강이란 피부와 미용에만 해당하는 일이었고, 건강이란 신체 운동에만 해당하는 지키지도 못할 처방을 내려준다.

 

있는 사람들은 걱정 하나 없는 국민들이 납부할 세금만큼이나 부담해야 할 건강 보험료도 올랐다. 남들은 기나긴 토론을 해오는 국민 연금 제도를 보더라도, 앞으로는 연금 고갈을 먼저 우려하는 한국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먼저 재벌 자본가들의 배를 불러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초과 생산으로 쥐어 짜내고, 노동 임금을 착취하면서 고작 심심풀이에 불과한 자신들의 연금을 땅콩으로 늘려왔는지를 고려해보지도 않았다. 전공의들이 의사가 될 때도 같은 고민을 할까. 같은 연유로 한 대학에서는 교수가 강사들을 부려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반도체 노동자가 숨졌음에도, 기업들은 모두 노동 시간을 줄일 노력은 하나도 없고, 더 정치적으로 근무 제도에만 기댄다. 모두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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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제국주의로부터 소실된 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렸다. 반환되거나 환수하지 못한 문화재도 여러 점 있다. 무기 전시관은 따로 없어서 칼에 대한 유물들을 잘 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국궁이 유명하다. 그럼에도 옆 나라들에 비하면 무예 실력도 출중했다. 하지만 정작 문화재들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나 소실로 인해 훼손되거나 다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는 검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사무라이 정신이란 실제로는 약탈과 범죄로 무장한 침범을 일삼았고, 악랄했다. 물론 조선도 양반 정신이 그렇게 썩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왜냐하면 기생과 노비를 뒀기 때문에 신분만 세탁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 전에는 국내에서도 예술과 무기 문화를 전파했고, 바로 옆 나라와 교류하는 나라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문화재청>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못한 문화재들이 상당 수 있다고 들었다. 2023년에만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등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교류가 깊은 독일에서도 한국 칼에 대한 문화재가 여러 점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화재들은 왜 해외로 퍼질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조선 후기로 들어갈수록 일제에 대한 침략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폭 넓은 개방 정책이 오히려 독립 문화재마저 수출하고 수입하는 자본 거래의 대상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같은 문제를 식민주의로만 볼 수 있을까. 물론 일본 식민지를 전제한다. 그러나 조선 왕조도 근대화에 따른 개항을 추진하더라도 정작 봉건주의라는 잔재 속에서 제국 간 전쟁을 옹호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일본 식민주의에 따른 소실된 문화재만이 아니라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도 특히 아메리카와 유럽 등지에서도 국내 문화재를 여럿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도 존재한다는 점을 잊곤 한다. 그래서 각국에서도 문화재에 대한 노력을 서로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다.

 

여태까지 국가적으로 문화재에 대한 제한된 관람을 보여주는 이유란 무엇일까. 바로 부단하게 정치적이고, 문화재는 자본 거래에 대한 대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궁만이 아니라 무예 실력도 출중했던 충무공의 칼만이 아니라 수 많은 전쟁에 참가했던 국내 검객들은 예전에는 무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 많은 문화재가 다시 국내로 반환하고, 환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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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여기서는 공공시설을 이용하면서 든 청결 문화를 제기한다. 청결이란 꼭 강박적이고, 강압적인 도덕에 기반해서 법과 규칙을 철저하게 엄수하자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결이란 매우 비상식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수준에서 또는 같은 범위로 적용해서 이해하는 게 더 알맞다. 이를테면 공공 문화에 있어서도 담뱃재와 꽁초를 아무대나 버린다고 해서 흡연은 나쁘다고 규정하는 초보적인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지물이 그릇됐다고 해서 자위를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충족할 욕구를 사전에 미리 차단하고, 또 다른 권위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문화를 조성하는데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꼭 그러한 행위를 불법이라고 쉽게 간주할 수는 없다. 또 다른 예시로는 한 음악이 외설적이라고 해서 그러한 음악을 듣지 말라고 하는 건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남한에서는 언론에서도 시위나 집회에 대한 선진 문화를 문명에 대한 진보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시위 문화로 보자면 과연 인민들에 대한 수준에서도 같은 이해를 전제하는가. 꼭 그렇지 않는다고 봐야만 옳다. 왜냐하면 외신 보도에 따른 선진 문화가 아무리 자리잡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부르주아지들로부터 집단적으로 린치를 가하고, 정치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형태란 오히려 자본주의로부터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때로 재벌과 자본가들은 철학을 건드린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는 선진적인 문화가 모든 사람들에도 이로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격한 진압 그리고 모든 시위와 집회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또 다른 무도덕하고, 파렴치한 일로 보더라도, 오히려 선진 문화라면 모두 진보적이라고 착각한다. 파시스트적인 강경 진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제국주의와 같은 학살 국가이자, 전범 국가들에서도, 과연 남한도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상식으로 말하는 선진 문화란 바로 청결 문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공공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는 왜 밑줄이 그어지는가. 그리고 수정하고, 찢고, 낙서를 하는가. 우리는 물건마저 의식 없는 상태에서도 자주 소유물로 간주하곤 한다. 그러나 모두가 빌려보는 책임에도, 그러한 청결에 대한 문제라면 지적할 수 있어야만 하고, 또 문제를 제기하는 게 혁명에 대한 사소한 임무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무관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또한 되묻고는 싶다. 자본주의에서 과연 문화는 청결한가. 그리고 주변 환경은 깨끗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리고 남한도 선진 국가라고 보지도 않는다. 떼를 지어 움직이거나, 무리 짓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왜 그러한 집단들은 더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일을 감수하도록 일거리를 던지는가라고 묻는다. 따라서 우리는 남한에 대한 선진 문화라고 불리는 정치적인 의식이 과연 계급 의식과도 무관한지를 더욱 따져 묻는다. 우리는 이번 집회와 시위에서 차기 정권을 둘러싼 탄압 고조와 탄핵에 대한 찬반 여부 따위가 아니라 우월한 인종 대청소와 같은 정작 무관하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싹 다 정리하는 계엄을 찬성하는가로 본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지지에 대해서는 모두 매우 반대한다. 부르주아지들이란 오히려 위선이라는 가면을 쓴 채로 지저분하고, 너저분하고, 쓰레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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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쓰레기는 누구인가

 

이번 탄핵에 대한 직무정지도 보여주는 의회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처벌에 대한 수위를 한층 높이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늘었다는 점이다. 이전 정권들에 비하면 그러한 수위 높은 비난에 대한 차원도 올리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심에는 부르주아 정권 타도와 사형에 대한 필요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형제는 낙태죄와 마찬가지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부과했다는 점도 상기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리고 모든 헌법 심의란 어떤 판단과 결과를 내릴지는 함부로 장담하거나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형에 대한 도입으로부터, 무궁무진한 숙청이라는 벌로부터, 온갖 죄를 부과했던 지난 국가 정부들에 대한 형태들과 상습적인 고문과 협박까지 가했던 사형제가 아니고, 부르주아에 대해 선고하고 부과하는 사형이 아니라, 지난 정부도 무고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부과했던 형법 선고에 대한 처벌과 엄벌만 가하던 잔인무도한 자본주의 국가를 보더라도, 합법적인 범죄는 바로 부르주아 전쟁이라는 지배 계급 간 제국주의 경쟁이었음을 또 드러내고는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 프랑스에서는 로베스피에르도 교육받지 못한 무식한 시민과 국민 반동에 입 맞추어 결국 단두대라는 송장으로 끌려가지는 않았던가.

 

그러나 수정된 의회주의에만 기대지도 않는 소수 프롤레타리아트들에게도, 자주 드는 예시지만 시민 의식이란 가까운 집회 현장에서나, 노동 현장에서도 일해본 적도 있는 노동 국민들로부터는 무언가 도취되거나 취한 사람들도 전봇대에 소변을 눈다거나, 흡연을 하다 가래가 끼였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길목에다 침을 뱉는다거나, 할 수 없이 길바닥에다 쓰레기를 내버리거나, 공중 시설에 대한 도덕이란 과연 선진국이라는 수준에도 알맞은지는 잘 모르겠다. 한 청소부도 지적했지만 버리는 사람, 치우는 사람이 분리된 이중적인 사회가 바로 부르주아 시민에 대한 도덕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잣대란 바로 앞으로는 위생 교육도 받지도 못하고는, 정작 생활에 대한 자격마저 심사받지도 못한 채로 성장한 증거는 아닐지 심히 의문 삼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남을 비난하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비판이란 교육 받은 소수 계급들만이 내세우는 부르주아 폭력에 대한 윤리와 도덕에 대한 관념이 아니라, 그릇된 체제에 대한 부정만 깃든 시각에서도 같은 사람으로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지. 권위가 아닌 태도로부터 물을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종합해서 보아도 자본주의에서 경제적인 성과란 꼭 장기적으로는 밝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역대 부르주아 정부로부터 초래하거나, 처리하지도 못한 채로 정작 버려진 회의 안건들도 무참하다는 사실들도 모든 국제 사회로부터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각국 정부들도 과연 선진국에서 쌓아 올린 업적에 대해서 환호하고 축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전 세계에서도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무력한 패배를 오히려 보여주는가를 과연 몰라서 그랬을까. 그러한 경제적인 혼란이나, 결정된 공황과 예정된 불황에서도 자본주의가 가진 법적인 효력도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과연 성장했는지를 다시 묻는다면. 우리는 결국 한국에서도 파시스트 폭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회주의를 따라 미지수라고 치부하거나 섣부르게 환원해서 판단하거나, 상대적으로 유리한 정세 쪽으로만 기울이던 사실로 미뤄보아도 더 이로울 수는 있지만 옳지는 못 하다.

 

노동 국민마저 기만한 사형 계엄으로부터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기능적 존재로만 여겼던 지난 정부들에 대한 행태를 보아도, 형태마저 불확실한 상태로만 머물고 있고, 여전히 그러한 위생 관념마저 또는 정상화라는 범주로만 해석하고 청결 잃은 국가를 보더라도, 같은 관계란 바로 사람이야말로 쓰레기와 똑같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비겁한 죽음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보여 준 취한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조용하게 무산 혁명을 준비하는 사람을 지지하고 있고, 또한 관료 연대나 조직이 어떻게 부패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차분하게 다시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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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함부로 나대지 마라.’ 참 좋은 우리 말이다. 쿠데타로부터 내란 모의 뒤로는, 대체로 국민들은 자본 시장과 경제 사정에 따른 국가 원수에 대한 우려는 주로 전쟁에 대한 시행에 있다. 국내에서도 그러한 내란 모의 뿐만 아니라 전쟁법으로부터도 처벌될 수 있음은 물론, 민주주의 요구에 따라서도 헌법에 대한 해석을 이중적으로 바라 본 여당 의원들에게도 모순을 잘 보였고, 권리는 줄어들고 기회를 노리는 일부 과거 야당 의원들도 동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방으로 압박을 가하는 기존 야당 의원들에서도 그러한 양상들로 나타났다. 늘 혼란을 틈 타 쿠데타로부터 정권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아닌 일반적인 속성을 보더라도, 헌법을 위시한 전시 행정 돌입에 찬성할 국민들도 주동자들은 아니던가. 그들에게 국민이란 과도한 애국자들 뿐이었고, 또한 사회·민주로부터 요구할 수 있는 토론 요구 또한 배제한 채로 그리고 빼버린 채로, 국격 뿐만 아니라 태도 역시나 변함 없음을 잘 보여주고는 말았다.

 

1. 퇴장하는 여당 의원들을 보더라도, 그리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던 기존 야당 의원들을 보노라면, 개판이 된 정치 뿐만 아니라, 그러한 한국 정치가 가진 유치하고, 치사한 상대할 경제적 가치마저 없다고 본다. 해임된 국방부 장관은 원점 타격을 결정해서, 북측에다 선제 공격을 유발하려는 무모한 음모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들려오는 시끄러운 확성기를 비롯한 전시 행정 체제에 대한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날아오는 풍선에 대해서도 맞도발이자, 대응으로 풍선을 날리는 헛수고를 보더라도, 도발 수위를 높이고, 원색적인 공격을 가하고 단지 쿠데타 내란 모의를 결단한 성격을 보더라도, 따라서 전쟁 뿐만 아니라, 쿠데타를 막고자 하는 여야당 의원들에 대한 협조는 필요하다고 본다.

 

2. 쿠데타는 정권 유지라는 부르주아 독재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전쟁에 대한 전시 행정 체제 돌입으로부터 국정 마비 뿐만 아니라 복귀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끌어 놓는 퇴역한 군인들에 대한 언론 협박과 강제된 정치적 결단으로부터 수행된 내전까지 이끌고는 말았다. 그리고 탄핵 국면에서 자진 사퇴와 퇴진이라는 요구 속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도피하고, 침묵하고 숨기는 쿠데타 내란 모의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라는 다음 과제마저 배반하려고 했기 때문에 무엇도 양보하거나 약속을 이행하지도, 또 보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사로운 정치 복수여서가 아니라 무슨 처벌이든 받아야만 하고, 또한 여태까지도 국민들을 속인 밝혀진 몫에 대한 마땅한 도리라고 본다. 매우 원시적이고, 속물적인 정치적 집단 난교를 벌이고 있다.

 

3. 계엄 지도부를 비롯한 여야당에 대해서도 다음 대선만 치르고자 준비하는 현 시점을 보노라면, 사퇴와 탄핵에 대한 문제는 역시나 안중에도 또한 거론도 없다. 섣부른 판단이 때로는 과오를 부른다. DMZ도 아니고 NLL 군사 분계선까지 넘고자 한 정황에 대해서도 오히려 남한 쪽에서 군사 도발과 긴장을 감행하고 있다는 분위기도 같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다음 조기 대선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헌법이라는 도덕 질서와 정치법과 세금과 예산 절차까지 빼돌리고는 자의적으로 급하게 아니면 내용도 없이 형식적으로만 진단하거나 결단하고는 자기들끼리만 협의하고, 일제히 똑같이 모의하고야 마는 정당이라는 축도 아닌 이익 집단이자 부르주아 독재로 자명한 사실에 대한 거론으로 부르고자 한다. 그들에게 계급에 대한 의식과 계급 투쟁까지 무마하고는 대의 민주주의로부터 대체하고 바쁜 일터로만 만들어 먼저 모욕하고, 모든 언어까지 파괴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자축하는 낡아빠진 연대만 지속할 수도 없다. 우리는 불편한 상태에서도 더욱 침착하고 또 신중하게, 또 할 수 있는 한 직접 민주주의로부터 참가하는 국민이자 또한 인민이라는 이름으로는 바로 닿을 수 있다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부터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다.

 

부디 현실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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