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학생 시위가 보여주는 시사점

 


총장 독단 결정으로부터 한 대학가에서도 남녀 공학에 반대하는 투표는 가결로 부쳐졌다. 이로부터 한 숨 돌렸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그리고 전원 반대를 표하기도 했다. 총장 독단 결정에 대한 반대이기 때문이고, 대학가 교수뿐만 아니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교육 전환에 대해서 논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성 운동으로는, 학생 운동으로부터 보여준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 시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관계인들과 지도 교직 안에서도 분열을 책동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시위에 대한 방향을 잡아준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단편적인 운동으로만 끝나고는 말았다. 대학교 특성 상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범죄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혐오에 대한 시각으로부터 성차별에 대해 맞서고자 여러 논쟁들도 개인적으로 벌여왔다고 한다. 같은 진술로는 동덕 여대로부터 보여준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훼손된 민주주의와 교내 평화를 헤쳤다는 지적들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 전체로 보자면, 폐쇄주의만 강화됐다. 대학교 교직원이나 학생들도 그러한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그리고 분란만 조장하고 책동하는 여러 여론들도 받아들이지만. 먼저 차분하게 제외하고자 한다.

 

이전 정부로는 다른 대학교에서는 경찰 투입에 반대하기도 했었고, 노래 시위를 하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입학을 둘러싼 부정 청탁과 교수진 특혜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리고 매우 일시적인 불안에 대한 평화로운 집단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다른 대학교로는 정작 이번 시위와는 거리를 두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대학생들이 보여주는 총학생회 집단 행동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오히려 대학 보호가 아니라 맹동으로 빠질 수 있는 행동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졌다. 일부 교수진들로는 낡은 시국 선언으로부터, 또한 대학가 운동으로부터 탄핵 쟁점을 부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들은 예전 양상과는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벌어진 대학교로는 곧바로 내부 투쟁을 감행하고 또한 개시할 수는 있었다. 우리는 같은 대학교 가운데에서도, 여러 활동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일부 학생들도 같은 표결을 부치더라도, 견해는 매우 다를 수 있었다. 연대를 표명하더라도, 제기된 쟁점에서는 극명하게 갈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러한 결정은 대학생들이 결정할 부분이다. 그리고 점차 교육이라는 기회는 소수로부터만 선택받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대학생들은 만약 학교가 소멸하더라도, 남녀 공학으로 전환하지는 않겠다는 일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잔존하는 한, 그러한 학교는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다. 지난 정부 때는 운동 양상에서 같은 부분들로는 잘 부각되지는 않았고, 민주주의 호소로만 그쳤다. 그러나 이번 양상에서 학생 시위는 대학가에 대한 그러한 냉소에만 도전했다는 점이겠다.

 

대학교 시위는 비록 학생 시위이지만, 오직 유치한 의식 재고 수준으로만 머물지도 않는다. 대학교 전체로 볼 때도, 이번 정부에 대한 문제가 이어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에서도 부각해서 조명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방향과는 다르게도, 학생 시위란 대학교로부터 보여주는 노동 투쟁으로 이끌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사태를 올바른 문제로 바라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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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난민에 대한 처우 개선안

 


여러 난민들 가운데로도, 각종 전쟁으로부터 국가를 잃을 위기에 처하거나, 자연 재해로부터 심각한 재난을 겪으면서 자본주의로 편입된 국내 난민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도 말해보고자 한다. 최근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난민들에 대한 국경 폐쇄 조치를 취하거나, 극단적인 인종 차별에 대한 반발로부터도 난민 혐오나 차별로만 일축하고 만 수정주의 견해들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마저 저버렸다고 볼 수 있다. 계급에 대한 구도로부터, 국적을 취득하고자 투쟁을 벌이는 수 많은 난민들로는 단지 시민권 획득을 위한 단편적인 요구만으로도 머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공산당으로는 난민 취득에 대한 국적 구분을 무관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적인 망명으로부터 제약이나 제한될 수밖에는 없던 난민들에 대해서는 무조건으로 처우에 대한 보장까지도 제공하고자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혁명 정부로 적극 가담하고자 노력해왔고, 또 암묵적으로도 수 많은 전체 난민들에 대한 생계 처우에 대한 요구를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무산 난민이나 혁명 망명가들도 여러 회의로부터 안건들을 정해서 결정하고 있고, 정책에 대한 투표로 심사란 주로 무산 계급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심사로부터 혁명 정부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해왔다. 또한 당 차원으로도, 입헌 요구로만 머물고 마는 지배 정당들에 대한 요구와는 선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난민들에게도 먼저 마르크스주의를 무조건 보급할 생각이다. 그리고 혁명에 대한 시각을 확고하게 접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여러 물음들도 함께 제기해볼 작정이다. 그러므로 단지 평화 집회로 머물게 아니라. 필수 혁명을 요구할 수 있는 망명된 여러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들에 대해서는 압도적인 지지를 표하는 바이다. 또한 행정 정부들에 대한 국경 페쇄 조치, 단일한 민족 억압 조치로부터도, 그러한 폐쇄주의적인 반동에 대해서는 엄벌을 물어야만 한다고 오랫동안 끈질기게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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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법무부 보고

 


판사에 따른 여러 판결들을 따로 추심해봤다. 이번에도 검찰계 사법부에서도, 오판을 내렸다는 결론을 내린다. 쉬운 말로, 그들은 선을 넘었다고 정의내릴 수 있다. 국가법으로도 고발 조치는 상식이지만, 내부는 썩었으므로. 그래도 정부를 신고해본다. 법조계도 눈치만 봤지. 정작 한 마디도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부르주아 역대 정부는 또 실패했다.

 

여러 문헌들이나, 사전들에서도 서술이나 정의에 대해서는 정리해서 서술한다. 그러나 같은 의문을 품어볼 수는 있다. 더욱 개인적으로 명쾌하거나, 확정 서술에 대해서는 충분히 객관적이지도 못한 채로, 또는 깊게 알아보지 않은 채로 적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도 대체로 모든 주어진 사실들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그저 그대로 있는 정보만 받아들인다면, 글쓴이로는 계급으로 치중된 오류를 가진 채로 막연하게 또 다시 적을 수 있다. 작은 예시로는 필자는 <레닌은 회상하며>를 읽고, 더 알아보고자, 레닌 생애에 대한 백과사전을 참조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백화사전은 체계적이지도 못했고, 생략된 부분들도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여러 저작들이나, 자료를 세부적으로 더 조사할 필요를 있다고 봤다. 설령 인공 지능이 발달해서 자료에 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한다고 한다고 해서 꼭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 건 아니라고 본다. 여러 논쟁들도 있지만 인공 지능은 단지 지식을 넓혀나갈 뿐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스스로도 찾고자, 아는 정보를 잘 적용해서 내세울 줄 알 때 비로소 정보를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간과하고는 국내 언론 기자들은 주어진 정보로만 추론하는 법만 배웠다. 그러나 맨 먼저 훈련을 받는 의문을 품는 법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한 의문에서도 생겨난 질문이란 보다 참된 사실을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보도 전체로 보아도, 좋은 기사를 찾기란 더욱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해답을 고르는 추리만 해왔지. 정작 의문을 다룰 수 있는 올바른 추론마저 생략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같은 의문을 생략해버렸기 때문에. 정부와 사법부의 사례에서도 보이듯, 오판을 내리고는 말았다. 순서 상으로도 정의 내리지도 못했으므로. 많은 논쟁마저 불러왔다. 여러 정부에 대해서는 정작 풀지도 못하는 문제를 엉키도록 해놨기 때문에 따로 할 말마저 없어진다. 부르주아 권력으로는 법이라는 기득권에 대한 울타리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또 지겹도록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식한 정치인들은 어수선하게만 법망을 꾸리는 동안에도, 남 뒤처리를 하느라. 똥을 치우는 노동 사무관들에게도, 국내로는 같은 본보기는 하나 더 있다. 바로 그토록 피하고, 부정하고 싶어하던 군부 독재 시절 때다. 한국 정치인들에게 바치는 납세라는 품위 유지비마저 아까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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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첫 걸음이라는 반 걸음

 


당이라는 '전체' 위기

 

자본가라는 부르주아지, 기회적인 수정주의, 너무나 애국적인 민족주의, 반동적인 파시스트들이 모두 한 자리로 모였다. 정작 수마저 적은 우리를 두고는 없는 적으로 몰고는, 언어로까지 분탕질을 해댄다. 오랫동안 우리들에게는 힘마저 잃었다. 물가는 치솟았고, 이제는 노동가들마저 서로를 기만한다. 등 따숩고, 밥맛도 좋은 곳에서, 머리를 한대 모아서 한다는 소리란, 그저 임금을 줄이고, 고용 시장을 줄여서, 더 센 사람들에게 빌붙자고 말한다. 월 스트리트 때도 그랬다. 그들은 벽에다 머리를 맞대고는, 경제 사정을 쥐었고, 아파트와 주택을 소유하고자, 토지 쟁탈전을 벌이도록 뒤에서 부추겼다. 그리고는 서로를 싸우도록 무기를 들라고 강요했다. 다음으로 그들은 냉전을 끝냈고, 전쟁을 일으켰다. 제국주의 운동에도 앞장섰고, 그들은 늘 첫 걸음을 베껴서 숨기고는 내딛고자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늘 퇴각했고, 앞으로 걸을 수 있을지마저 장담할 수 없었다. 공산주의 운동가들에게는 죽음을 결단하는 첫 걸음이 올 때면, 신중해야만 했고, 그리고 반 걸음마저 내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걸음이란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인 셈이다. 우리는 늘 제국주의로부터 두 걸음 뒤에서, 첫 걸음을 걸어야만 했다.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정당 조직을 완수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조직들은 붕괴해가는 데 더욱 일조했고, 싸운 사람들은 더욱 퇴보해갔고, 단결하지 못한 채로 남아버렸다.

 

좋았던 시절

 

그런 적은 태어나서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목사는 말한다. '심판의 날'이 올테니, 기도를 하라고. 투쟁을 멈추지 않는 노동가들은 노동 시간을 빼앗기고, 피를 수혈해도 모자랄 만큼 노력을 했고, 헌신을 했다. 그리고 비록 혁명은 오더라도 한 시절로 짧게 끝나버렸다. 덕분에 그들이 첫 걸음을 내딛을 때면, 우리는 반 걸음도 걷지는 못했다. 이제는 너무나 멀어진 걸음을 세고 발돋움하려다, 누구는 흰 머리마저 새어버렸다. 그러한 시절이라면,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라는 반 걸음을 보낸다. 그리고 언젠가는 뛰고자, 아직까지도 우스운 실천이라는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 걸음

 

당신들에게 마지막 걸음은 때때로 우리들로는 첫 걸음이다. 그리고 뽑을 패가 더 이상 없으므로.

 

나머지는 여러분들이라는 몫으로 모두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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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종교 조직에 대한 폐지 요구안

 


지배 과학이라는 종교

 

일부 혁명가들은 줄곧 개인에 대한 신앙을 크게 가졌거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음에도,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일종의 거부하는 태도를 지녔다. 혁명 지도자로 한해서는 종교 당사자들과는 토론하기도 했었고, 주로 말 그대로, 믿음이나 신앙에 대한 교리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두고도 혁명 국가로부터 인민들로는 효과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신념을 전파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종교를 가진 일부 사람들로부터도 오랫동안 배척 당해 온 역사는 있었다. 바로 마르크스도 말했던 오래된 진리 때문이기도 하다. 민중들에게는 종교라는 아편으로부터도, 자신들이 가진 믿음을 행하고, 긍정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고도 봤던 순교자, 선교자들마저도, 오랫동안 종교는 지배 체제만이 아니라, 관념적인 사상으로도, 숭고하고 또 복잡하게 이뤄졌다. 아무리 종교를 계급적으로 나눈다고 할지라도, 끝으로는 종교는 다음 지배 체제로도,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제거하고는, 신화나, 전설로만 치부한다는 점에서도, 부르주아 역사관으로는 정치만큼 일부분으로 다뤄졌다. 그리고 아무리 세속주의만으로도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종교라는 특성이 남아 있는 한,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은 있어왔기 때문이다.

 

개인 숭배만큼이나, 지독한 혁명가들에 대한 숭배로도,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혁명가들은 죽어서도 초상화와 동상이라는 우상으로 남는다고 토로하고 지적했다. 무분별했던 부르주아 혁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부터 대중들은 우상에 대한 숭배를 벗 삼아, 프롤레타리아트를 기만하고는, 많은 오래된 사회주의 투쟁마저 종교화했다. 여기서 과학이란, 그들만의 사회주의를 전파하고자 만들어진 관념이었고, 또한 바로 지식인들의 머릿 속에서만 꾸며진 불합리한 이상향에 대한 믿음들로 모여진 색안경이자, 선입견들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은 종교적인 믿음으로는 투쟁도 강조해왔지만, 자본가들이 된 그들에게, 투쟁들에 대한 믿음마저, 혁명이라는 이상향으로만 색칠하고는 공상해왔고, 더불어 노동가들도 파괴해왔다.

 

프롤레타리아트 무신론

 

러시아는 정교회가 있어왔다. 그리고 소비에트 때는 종교적인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특히 교회로부터 부정된 권위에 대해서도 많이 부정해왔다. 덕분에 노동 계급들은 더욱이나, 사상에 대한 교육으로는 종교를 보다 비판할 수 있었고, 혁명으로도 지위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러시아를 보더라도, 현대 자본주의로는 러시아에서도 민족주의를 기반 삼거나 근거로 해서는 바로 정교회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혀나갔고, 지도자들도 해당 종교를 비단 교회만이 아니지만. 많은 대중 세력들로부터 지지 기반을 확보한 종교들은 정치에서도 진출하고, 가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욱 반동적이기만 한 비밀 교도나, 덕분에 이름도 듣지는 못했던 종교들도 많이 생겨날 수 있었다. 따라서 회의를 느낀 무신론에 비중들도 '반사적'으로는 늘어났다. 그러나 종교는 여전히 권위를 가지고 있고, 또한 프롤레타리아트들에게는 종교로부터 사유 재산에 대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는 착각도 같이 전파한다. 따라서 바로 그들로는 '민주적인' 선택일지라도, 종교적인 범죄들도 정당화한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다만 러시아 뿐 만은 아니겠다.

 

물론 억압하거나, 억지로 금지한다고 해서 막상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같은 상태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는, 도저히 중독된 말이기 때문에 설득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적어도 앞선 종교에 대한 부르주아들로부터 조직 기구에도 참가하고, 꿈마저 이룰 수 있다는 신성한 믿음과 교리들에 대한 각 신앙이라도,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활동에서도 소외하도록 만들고는, 제약을 걸도록 제동할 수는 있다. 이제는 부르주아지들에게도 '신성한' 마르크스에 대한 이론마저, '안전한' 지식인 종교가들로는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도 쓰였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들로는 과학이라 믿는 종교라면, 우리는 모두 함께할 수도 없고, 또한 해석만으로 이뤄진 복잡한 논의들로부터도 그들의 선에서도 아쉽더라도, 끝내야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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