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계속해서: 엥겔스의 보충 설명
마르크스는 코뮌의 경험이 갖는 의미에 관해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했다. 엥겔스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다루었는데 마르크스의 분석과 결론을 설명하면서 이따금 이 문제의 다른 측면을 아주 힘차고 뚜렷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설명을 특별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1. 『주택문제에 관하여』
엥겔스는 주택문제에 관한 자신의 논문(1872)에서 이미 코뮌의 경험을 고려하면서 국가와 관련해 혁명이 수행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여러 차례 언급한다. 흥미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국가와 현재의 국가 사이의 유사한 특징, 다시 말해 양자를 모두 국가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는 특징과 다른 한편으로는 둘 사이의 차이점이나 국가의 폐지로의 이행이 이와 같이 구체적인 논제하에서 명료하게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주택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현 사회에서 이 문제는 온갖 다른 사회문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해결된다. 즉 수요와 공급 간의 점진적인 경제적 균형에 의해 해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책은 그 문제 자체를 끊임없이 재생산할 뿐이며 따라서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사회혁명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각각의 개별적인 문제를 둘러싼 상황에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본질적인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도시와 농촌 간의 대립을 없애는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의 사회조직에 관한 공상적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 이 문제를 더 깊이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즉 현재 대도시에는 잘 이용하기만 하면 '주택난'을 즉시 해소하기에 충분한 수의 주택들이 있다. 물론 주택난 해소는 현재의 소유자들에게서 주택을 몰수해 그것을 집 없는 노동자들이나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입주한 주택에 사는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방법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쟁취하자마자 공공이익을 위해 요구되는 이러한 조치는 오늘날 국가에 의한 다른 수탈 및 점유만큼이나 쉽게 실현될 것이다. (1887년 독일어판, 22쪽)²⁹
여기서는 국가권력의 형태 변화는 고찰되지 않고 오직 그 활동 내용만이 다루어지고 있다. 주택의 몰수와 점유는 현재 국가의 명령으로도 실행된다.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국가도 주택의 점유와 몰수를 '명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낡은 행정기관, 즉 부르주아지와 연결된 관료제는 프롤레타리아국가의 명령을 수행해내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모든 노동도구와 전체 산업에 대한 근로인민의 '사실상의 점유'라는 것은 프루동주의자가 말하는 '배상'과는 정반대되는 것임을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후자의 경우에는 개개의 노동자가 주택, 농지, 노동도구의 소유자가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근로인민'이 주택, 공장 및 노동도구의 집단적 소유자가 되며, 적어도 과도기에는 이러한 주택, 공장 등의 이용권을 개인이나 조합에 무상으로 넘겨주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와 꼭 마찬가지로 토지 소유의 폐지가 곧 지대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비록 변형된 형태로나마 지대를 사회에 양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근로인민이 노동도구를 사실상 점유한다는 것이 결코 임대차 관계의 유지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68쪽)
이 인용문에서 언급된 문제, 즉 국가 사멸의 경제적 기초에 관한 문제는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엥겔스는 극히 신중한 어조로 프롤레타리아국가는 '적어도 과도기에는' 주택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민 전체에 속하는 주택들을 개별 가족에게 유상으로 임대한다는 것은 임대료의 징수와 일정한 통제와 주택 분배상의 기준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일정한 국가형태를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권적 지위에 있는 공직자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군사적·관료적 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주택을 무료로 공급할 수 있는 상태로의 이행은 국가의 완전한 '사멸'과 관련된다.
엥겔스는 블랑키주의자들이 코뮌 이후 코뮌 경험의 영향을 받아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으로 넘어온 것에 관해 말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행동의 필연성, 그리고 계급 폐지와 더불어 국가 폐지로의 이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필연성 (……). (55쪽)
문구 하나하나를 가지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자나 부르주아적 '마르크스주의 박멸자'들은 아마 이와 같이 '국가 폐지'를 인정하는 것과 앞서 인용한 『반뒤링론』의 한 문장에서 이러한 정식화를 무정부주의적이라 하여 거부한 것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기회주의자들이 엥겔스를 '무정부주의자'의 한 사람으로 포함시켰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사회배외주의자들이 국제주의자들에게 무정부주의의 누명을 씌우는 것이 점차 일반적인 경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항상 계급 폐지와 더불어 국가도 폐지된다고 가르쳐왔다. 엥겔스가 『반뒤링론』에 있는 '국가 사멸'에 관한 유명한 구절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국가 폐지를 옹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룻밤 사이에' 국가를 폐지할 수 있다고 외쳐댔기 때문이다.
현재 횡행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교리는 국가 폐지 문제와 관련해 마르크스주의가 무정부주의에 대해 취하는 입장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으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무정부주의자들과 벌인 논쟁 하나를 되새겨보는 것이 매우 유익할 것이다.
2. 무정부주의자들과의 논쟁
이 논쟁은 1873년에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루동주의자, '자치론자' 또는 '반권위론자'에 반대하는 글을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연보에 여러 편 기고하였는데 이 논문들은 1913년에 비로소 독일어로 번역되어 『신시대』지에 실렸다.30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정치를 거부하는 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썼다.
[무정부주의자들은 — 옮긴이] 만일 노동계급의 정치투쟁이 혁명적 형태를 띤다면, 그리고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독재 대신 자신들의 혁명적 독재를 내세운다면, 그들은 원칙을 파괴하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국가를 폐지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하찮고 저속한 일상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국가에 혁명적이고 과도적인 형태를 부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시대』, 제32년, 제1권, 1913~14년, 40쪽)
마르크스가 무정부주의자들을 논박할 때 전적으로 반대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국가 '폐지'였던 것이다. 그는 결코 계급 소멸과 더불어 국가도 소멸될 것이라는 것, 즉 계급 폐지와 더불어 국가도 폐지될 것이라는 데 반대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무기 사용을 포기해야 한다는 데 그리고 조직적 폭력 즉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한다는 '목적에 봉사해야 할 국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데 반대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자신의 투쟁이 지닌 참된 의미가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필요한 국가의 '혁명적이고 과도적인 형태'를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오직 일시적으로만 국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목표로서의 국가 폐지의 문제에서는 결코 무정부주의자들과 의견이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계급을 폐지하는 데 피억압계급의 일시적 독재가 필요한 것과 같이 국가 폐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착취자들에게 반대해서 국가 권력의 도구와 수단 및 방법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통해 무정부주의자들과 자신의 입장을 극히 예리하고도 명확하게 대비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서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무기를 체계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바로 국가의 '과도기적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회민주주의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무정부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국가문제를 이렇게 설정했었는지, 또 제2인터내셔널의 공식적 사회주의당들 대부분이 이 문제를 이렇게 설정했었는지를 자문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엥겔스는 똑같은 생각을 훨씬 더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반권위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즉 온갖 권위와 복종과 권력을 거부하는 프루동주의자들의 사상의 혼란을 비웃고 있다. 엥겔스는 "공장과 철도와 대양의 선박을 생각해보라. 기계의 사용과 수많은 사람의 계획적 협력을 바탕으로 한 이런 복잡한 기술적 시설물들 중의 어느 하나도 어느 정도의 복종과 어느 정도의 권위나 권력 없이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가장 과격한 반권위주의자들에게 이러한 논증을 제시할 경우에 그들은 나에게 오직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들이 대표들에게 부여하는 권위가 아니라 일정한 위임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물의 이름만 바꿈으로써 사물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엥겔스는 이와 같이 권위와 자치는 상대적 개념이고 그 개념의 적용 범위는 사회 발전의 각 단계에 따라 변하며 이 개념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서 그에 덧붙여 기계 사용과 대량생산의 영역이 더욱더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권위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로부터 국가문제로 넘어간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자치론자들이 미래의 사회조직은 오직 생산조건들에 의해 불가피하게 규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권위를 허용할 것이라고 말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그들과 화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권위가 필요하도록 만드는 일체의 사실은 보지 못한 채 단지 그 말에 반대하여 격렬히 싸우고 있다.
어째서 반권위주의자들은 정치적 권위와 국가를 소리 높여 반대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 것일까? 사회주의자들은 누구나 다 국가와 정치적 권위가 미래의 사회혁명의 결과로 소멸될 것이라는 데, 다시 말하면 공적 기능이 정치적 성격을 잃고 사회적 이익을 감시하는 단순한 행정적 기능으로 전화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반권위주의자들은 정치적 국가를, 그것을 낳은 사회관계가 폐지되기 전에 일격에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권위의 폐지가 사회혁명의 첫 번째 행위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신사분들께서는 혁명을 본 적이 있는가? 의심할 나위 없이 혁명이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권위적인 것이다. 혁명이란 주민의 일부분이 소총과 총검과 대포 등 대단히 권위적인 수단을 가지고 주민 일부에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승리한 당은 무기를 가지고 반혁명 분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써서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파리코뮌이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무장한 인민의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과연 단 하루라도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우리는 코뮌이 그와 같은 권위를 너무나 적게 사용한 것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둘 중 하나이다. 반권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다. 전자의 경우 그들은 혼란만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며 후자의 경우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그들은 단지 반동에만 봉사하고 있을 뿐이다.(39쪽)
이 논의 속에는 국가 '사멸'에서 정치와 경제의 상호관계(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와 관련해 고찰해야 할 문제들이 언급되어 있다. 공적 기능이 정치적인 것에서 단순히 행정적인 것으로 전화하는 문제와 "정치적 국가"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정치적 국가"라는 표현은 국가의 사멸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사멸해가고 있는 국가는 사멸 과정의 일정한 단계에서는 비정치적 국가라고 불수도 있는 것이다.
엥겔스의 이 논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엥겔스가 또 다시 무정부주의자들에 반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방식이다. 엥겔스의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873년 이때 무정부주의자들과 수도 없이 논쟁을 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논쟁은 하지 않았다. 국가 폐지에 관한 무정부주의의 관념은 뒤죽박죽이고 비혁명적이다 — 엥겔스는 바로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혁명을 그 발생과 발전의 견지에서, 폭력·권위·권력·국가 등에 대한 혁명의 특수한 과제의 견지에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무정부주의에 대해 보통 가하는 비판을 한다면, 이는 "우리는 국가를 인정하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은 국가를 부정한다!"라는 식의 순전히 소시민적인 진부한 주장이다. 물론 이와 같이 진부한 주장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고 혁명적인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엥겔스는 그와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는 누구나 다 사회주의혁명의 결과로서 국가가 사멸되리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혁명의 문제, 즉 대개는 기회주의 진영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 '검토'를 전적으로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맡기면서 회피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엥겔스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코뮌은 국가의 혁명적 권력,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무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권력을 더 많이 이용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과감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식적 사회민주당은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체적 임무에 관한 문제를 단순히 속물적 조소로 처리해버리든가, 좀 나은 경우라 해도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하고 궤변적 회피의 말로 처리해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무정부주의자들은 당연히 이러한 사회민주당에 대해, 사회민주당은 노동자들을 혁명적으로 교육할 임무를 포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은행에 대해서나 국가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최근의 사회주의혁명 경험을 이용하고 있다.
3. 베벨에게 보낸 편지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 중 가장 훌륭한 논의는 아니라 해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1875년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엥겔스가 베벨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이 편지는 우리가 알기로는 그것이 쓰여 보내진 지 36년 뒤인 1911년에 출판된 베벨의 회고록『내 생애에서』aus meinem Leben 제2권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브라켄 Bracke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비판했던 바로 그 고타강령 초안을 비판하면서 특히 국가문제에 관해 베벨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강령 초안에서는 - 옮긴이) 자유인민국가가 자유국가로 바뀌어 있습니다. 문법적 의미에서 보자면 자유국가란 국가가 자기 공민에 대해 자유로운 국가, 따라서 전제정부를 가진 국가입니다. 국가에 관한 이러한 쓸데없는 말은 모두 그만두어야 합니다. 본래적 의미의 국가가 아니었던 코뮌 이후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이미 프루동을 논박한 마르크스의 저작과 그후 『공산당선언』에서 국가는 사회주의적 사회제도의 실시와 더불어 스스로 해체되고 소멸된다고 단언하고 있는데도, 무정부주의자들은 '인민국가'라는 말 때문에 넌덜머리가 나도록 우리를 공격하였습니다. 국가란 투쟁에서, 혁명에서 자기의 적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위해 이용하는 과도적 기구일 뿐이므로 자유인민국가니 뭐니 하는 것은 순전히 헛소리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여전히 국가를 필요로 하는 동안 그들은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적들을 진압하기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자유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되면 곧 국가로서의 국가는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곳에서 국가라는 말 대신 '코뮌'이라는 프랑스어에 해당하는, 옛날부터 써오던 좋은 독일어인 '공동체' Gemeinwesen라는 말을 쓸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독일어판, 322쪽)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이 편지가 불과 몇 주 후에 마르크스가 쓴 편지(1875년 5월 5일에 쓴 편지)에서 비판한 당강령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과 또 그 당시 엥겔스가 마르크스와 함께 런던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엥겔스가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라고 할 때 이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자기와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독일 노동당 지도자에게 '국가'라는 말을 강령에서 삭제하고 그 대신 '공동체'라는 말을 쓰라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들의 편의를 위해 위조된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의 우두머리들에게 이 같은 강령 수정을 제안한다면 그들은 이것을 두고 '무정부주의'라고 얼마나 아우성치겠는가!
아우성치려거든 쳐라! 그 때문에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당 강령을 재검토할 때 진리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을 쓸어버리고 마르크스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 노동계급 해방 투쟁을 더욱 확실하게 지도하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충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틀림없이 볼셰비키들 중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충고에 반대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난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용어 문제일 것이다. 독일어에는 '공동체'를 뜻하는 용어가 둘 있는데, 엥겔스는 그중 개개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게마인데 Gemeinde가 아니라 그것의 총체 또는 체계를 의미하는 게마인베젠 Gemeinwesen을 선택했다. 러시아어에는 이것에 해당하는 말이 없으므로 비록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어 '코뮌' Kommune을 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뮌은 이미 본래 의미의 국가가 아니었다." 이것이 엥겔스의 말 가운데 이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주장이다. 지금까지 서술된 내용에 의거하면 이 주장은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 코뮌은 주민의 다수가 아닌 소수의 "착취자들"을 억압했던 것이기 때문에 더는 국가가 아니었다. 코뮌은 부르주아지의 국가기구를 파괴했다. 그리고 특수한 억압세력 대신에 주민 자신이 전면에 나섰다. 이 모든 것은 본래 의미의 국가로부터의 이탈이다. 만일 코뮌이 굳건히 뿌리를 내렸더라면 거기서 국가의 흔적은 스스로 '사멸'했을 것이며 국가기구를 '폐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즉 이 기구들은 아무 할 일이 없게 됨에 따라 기능을 상실했을 것이다.
엥겔스가 "인민국가'라는 말 때문에 무정부주의자들이 넌덜머리가 나도록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라고 말할 때, 그는 무엇보다도 바쿠닌파가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가한 공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엥겔스는 '인민국가'란 '자유인민국가'와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것이고 사회주의로부터의 이탈인 만큼 그런 한에서 이 공격이 정당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엥겔스는 무정부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투쟁을 바로잡아 이 투쟁이 원칙적으로 옳은 노선을 걷게 하며 이 투쟁에서 '국가'에 관한 기회주의적 편견을 제거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엥겔스의 이 편지는 36년 동안이나 책상 서랍 속에 처박혀 있었다. 우리는 이하에서 이 편지가 발표된 뒤에도 카우츠키가 본질적으로 엥겔스가 경고한 그 과오를 고집스럽게 되풀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베벨은 1875년 9월 21일 엥겔스에게 써 보낸 답장에서, 자신은 강령 초안에 대한 엥겔스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또 리프크네히트가 양보한 데 대해 자신은 그를 비난했다고 썼다(베벨의 『나의 생애 중에서』, 제2권, 334쪽). 그러나 『우리의 목표』 Unsere Ziele라는 베벨의 소책자를 보면, 우리는 거기서 국가에 관한 그의 완전히 잘못된 견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는 계급지배에 기초한 국가에서 인민국가로 전환되어야 한다.(『우리의 목표』, 1886년 독일어판, 14쪽)
베벨의 소책자 제9판(제9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처럼 고집스럽게 되풀이되는 국가에 대한 기회주의적 주장이, 특히 나 엥겔스의 혁명적 해설이 책상 서랍 속에 고이 처박히고 또 모든 생활환경이 오랫동안 혁명을 '잊어버리게 했던' 그 시기에, 독일 사회민주당에 의해 섭취·동화됐다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4. 에르푸르트 강령 초안에 대한 비판
엥겔스가 1891년 6월 29일에 카우츠키에게 보냈고 그후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신시대』지에 발표된 에르푸르트 강령 초안 비판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연구할 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로 국가구조의 문제에서 사회민주당이 취하는 기회주의적 견해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엥겔스는 경제문제에서도 대단히 가치 있는 관찰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온갖 변화를 그가 얼마나 주의 깊고도 신중하게 추적하였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현 시기, 즉 제국주의 시기의 과제를 일정한 정도로 예견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그 관찰이란 다음과 같다. 엥겔스는 강령 초안에서 자본주의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된 '무계획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만일 주식회사로부터 전체 공업 부문을 지배하며 독점하는 트러스트로 이행하게 된다면, 그때는 단지 사적 생산만이 아니라 무계획성도 없어지게 된다.(『신시대』, 제20년, 제1권, 1901~1902년, 8쪽)
여기서는 최신의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를 이론적으로 평가할 때 가장 기본적인 것, 즉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전화한다는 것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독점자본주의라는 말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이미 더는 자본주의가 결코 아니고 '국가사회주의' 등으로 불릴 수 있다는 부르주아 개량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대단히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러스트는 완벽한 계획성을 제공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제공할 수도 없다. 그러나 트러스트가 아무리 계획성을 제공하고 대자본가들이 아무리 국내적 또는 국제적 범위까지 생산규모를 미리 계산하고 생산을 계획적으로 조절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하에, 비록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일지라도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자본주의하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가깝다'라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대표자들에게는 사회주의혁명이 임박했다는 것, 용이하다는 것, 실현될 수 있다는 것,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할 논거가 되어야지 결코 모든 개량주의자가 일삼는 사회주의혁명 부정과 자본주의 미화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국가문제로 돌아가자. 엥겔스는 편지에서 특히 귀중한 언급을 세 가지 하고 있다. 첫째는 공화제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민족문제와 국가구조의 연관에 관한 것이며, 셋째는 지방자치에 관한 것이다.
공화제에 관해 말하자면, 엥겔스는 이것을 에르푸르트 강령 초안에 대한 비판의 중심으로 삼았다. 에르푸르트 강령이 전체 국제 사회민주주의에서 어떠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또 그것이 제2인터내셔널 전체의 전형이 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엥겔스가 여기에서 제2인터내셔널 전체의 기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다고 말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초안의 정치적 요구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다. 거기에는 당연히 이야기되었어야 할 것이 빠져 있다.(강조는 엥겔스)
계속해서 엥겔스는 독일 헌법은 기본적으로 1850년의 극단적인 반동적 헌법의 모방이고, 국회는 리프크네히트의 말처럼 단지 '전제정치의 은폐물'에 지나지 않으며, 군소국가들과 독일 군소국가들의 동맹을 합법화한 이러한 헌법의 토대 위에서 '모든 노동수단의 공동소유로의 전환'을 실현하려는 것은 '분명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공화제의 요구를 합법적으로 강령에 포함시킬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았던 엥겔스는 "하지만 이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엥겔스는 '누구나 다'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이 명백한 판단에 그저 단순히 만족하지는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 문제는 어쨌든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는 바로 지금 사회민주주의적 출판물의 많은 부분에서 만연하고 있는 기회주의가 입증해주고 있다. 그들(사회민주주의자 내의 기회주의자 — 옮긴이)은 사회주의자 탄압법이 부활할까봐 두려워서 그리고 그 법률이 시행되던 시기에 나온 온갖 성급한 성명이 생각나자, 지금 갑자기 당이 독일의 현행 법률질서가 당의 모든 요구를 평화적으로 실현하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인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엥겔스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행동이 사회주의자 탄압법 부활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기본적인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고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것을 기회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즉 독일에는 공화제와 자유가 없으므로 '평화적' 방법을 꿈꾸는 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생각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엥겔스는 스스로 제 손을 묶지는 않을 정도로 충분히 신중했다. 그는 공화제 국가나 아주 자유로운 국가에서는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발전을 '생각해볼 수 있다'(단지 '생각'일 뿐이다!)라고 인정하지만 "그러나 독일에서는"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되풀이한다.
정부가 거의 전능한 힘을 갖고 있고 국회와 그 밖의 모든 대의기구가 사실상의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독일에서, 바로 이러한 독일에서 그와 같은 것을 선포한다는 것, 더구나 전혀 필요도 없는데 선포한다는 것은 스스로 전제주의의 은폐물을 제거해버리고는 벌거벗은 전제주의의 옹호자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급을 "무시했던" 독일 사회민주당의 공식적 지도자들 대다수는 실제로 전제주의의 옹호자임이 밝혀졌다.
그 같은 정책은 결국 자신의 당을 단지 잘못된 길로 끌고 갈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주 큰 사건이나 중대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자연히 등장하게 되는 시급한 구체적 문제들을 은폐한다. 이런 데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당이 결정적 순간에 갑자기 무력해지고 결정적 문제들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일치가 당을 지배하게 되는 것 — 왜냐하면 그 문제들은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기 때문에 —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
눈앞의 순간적 이익 때문에 중대한 원칙적 입장을 잊어버리고, 후일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순간의 성공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며, 현재의 운동을 위해 미래의 운동을 희생하는 이 모든 것을 "성실하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회주의이며 또 여전히 기회주의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성실한' 기회주의야말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다. (……)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당과 노동계급이 오직 민주공화제 형태하에서만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민주공화제는 프랑스대혁명이 이미 보여준 바와 같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특수한 형태이기도 하다.
여기서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모든 저작을 선명하게 관통하는 근본 사상, 즉 민주공화제야말로 프롤레타리아독재로의 직접적 통로라는 것을 매우 뚜렷한 형태로 되풀이하고 있다. 왜냐하면 민주공화제는 자본의 지배, 따라서 대중에 대한 억압과 계급투쟁을 전혀 폐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 투쟁을 확대·전개·노출·격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그러하여 일단 피억압대중의 근본적 이익을 만족시킬 가능성이 생기기만 하면 이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통해,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대중의 지도를 통해 실현되기 때문이다. 제2인터내셔널 전체에서는 이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잊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잊혀졌다는 것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첫 반년간의 멘세비키당의 역사에서 아주 확연히 드러났다.
엥겔스는 주민의 민족적 구성과 관련된 연방공화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반동적인 군주제 헌법과 또 그만큼 반동적인 군소국가 분립제 — '프러시아주의'의 여러 특성을 하나의 전일체로서의 독일 속에서 융해하지 않고 도리어 영구화하는 분립제 —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독일 —지은이] 대신에 무엇이 등장해야 할 것인가? 내가 볼 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하나의 통일적 공화제 형태만을 취할 수 있다. 연방공화제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미합중국에서는, 비록 그 동부에서 연방공화제가 이미 장애물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필요하다. 두 개의 섬에 네 민족이 살고 있고 의회는 하나인데도 세 개의 법률제도가 병존하는 영국에서는 연방공화제가 일보 전진할 것이다. 소국가인 스위스에서는 연방공화제가 장애물이 된 지 이미 오래이다. 스위스에서 연방공화제가 아직도 유지되는 것은 스위스가 단지 유럽 국가체계의 순전히 수동적인 일원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로서는 스위스식 연방화는 일대 퇴보일 것이다. 연방국가는 두 가지 점에서 통일국가와 다르다. 첫째, 연방에 가입한 국가들은 각기 자체의 민사·형사·입법제도와 사법제도를 갖고 있으며, 다음으로 국민의회와 아울러 연방의회가 있고 연방의회에서는 각 주 Kanton가 대소를 막론하고 한 개 주로서 투표한다는 점이다. 독일에서 연방국가는 통일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적 형태이며 따라서 1866년과 1870년의 '위로부터의 혁명'은 되돌려져야 할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보충되어야 하는 것이다.
엥겔스는 국가형태의 문제에 결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주어진 과도적 형태가 각각의 구체적인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 무엇에서 무엇으로 넘어가는 과도적 형태인가를 정립하기 위해 바로 이 과도적 형태들을 극히 면밀히 분석하고자 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와 사회주의혁명의 관점에서 민주적 중앙집권제, 통일적이고 불가분적인 공화제를 주장한다. 그는 연방공화제를 예외적 경우로, 발전의 장애물로 보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군주제로부터 중앙집권적 공화제로 가는 과도적 형태로, 일정한 특수조건하에서의 일보 '전진'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 특수한 조건 중 하나로 민족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고 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 모두 소국가들의 반동적 성격과 이러한 반동성을 개개의 구체적인 경우에 민족문제를 가지고 은폐하는 데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지만, 그들에게서 민족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는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즉 네덜란드와 폴란드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소국가의 소시민적인 협소한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지극히 정당한 투쟁에서 출발하면서도 번번이 그런 시도를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엥겔스는 심지어 지리적 조건, 공통된 언어, 수백 년의 역사 등 모든 것이 개개의 작은 지방들의 민족문제를 '종식시킨' 못 보이는 영국에서조차 민족문제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을 고려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연방공화제를 일보 '전진'이라 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연방공화제의 결함에 대한 비판을 포기한다든가, 통일된 중앙집권적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한 가장 단호한 선전과 투쟁을 포기한다든가 하는 기미는 털끝만치도 없다.
그러나 엥겔스는 민주적 중앙집권제라는 것을 부르주아이데올로그들과 무정부주의자도 포함한 프티부르주아이데올로그들이 사용하는 그런 관료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엥겔스가 말하는 중앙집권제란 코뮌들과 지방들이 국가의 통일을 자발적으로 보전하면서 모든 관료주의와 위로부터의 온갖 '명령'을 완전히 배제하는 광범한 지방자치를 배척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엥겔스는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강령적 견해를 개진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그리하여 통일공화국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1798년에 세워진 황제 없는 제국일 뿐인 현재의 프랑스공화국과 같은 의미의 공화국은 아니다. 1792년부터 1798년까지 프랑스의 각 지방과 촌락 Gemeinde들은 미국식의 완전한 자치를 향유했다. 우리도 이러한 자치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치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며, 어떻게 관료제 없이 운영해나갈 수 있는가는 미국과 프랑스 제1공화국이 보여준 바 있으며 오늘날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및 그 밖의 영국 식민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방 및 촌락의 자치는 예컨대 스위스 연방제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제도이다.
사실 스위스에서 주는 연방에 대해(즉 전체로서의 연방국가에 대해 —지은이) 독립적이지만 또한 군 Bezirk과 촌락에 대해서도 독립적이다. 주정부는 군수 Bezirksstatthalter와 현의 지사 Präfektur를 임명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우리로서도 프로이센의 관구 지도관 Landrat 및 참사관 Regierungsrat(장관, 군수, 현의 지사 및 일반적으로 위에서 임명하는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장차 단연코 배제해야 할 현상이다.
그리하여 엥겔스는 강령에서 자치에 관한 항목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것을 제안한다.
보통선거권에 따라 선출된 관리에 의한 지방(현 혹은 주 —지은이), 군 및 촌의 완전한 자치. 국가에서 임명하는 모든 지방관청과 주관청의 폐지.
나는 케렌스키와 그 밖의 '사회주의적' 대신들의 정부에 의해 발행이 금지된 『프라우다』 Prawda 지(1917년 5월 28일자, 제68호)33에서 자칭 혁명적인, 자칭 민주주의의, 자칭 사회주의적 대표자들이 이 점에서 —물론 오직 이 점만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로부터 극도로 이탈해 있음을 지적하였다.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지와 '연합'함으로써 스스로를 결박하고 있던 자들이 이러한 지적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주목해야 할 극히 중요한 사실은 엥겔스가 특히 프티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 사이에 매우 널리 퍼져 있던 편견, 즉 연방공화제가 중앙집권적 공화제보다 필연적으로 더 많은 자유를 의미한다는 편견을, 사실에 따라 대단히 정확한 실례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편견은 옳지 않다. 엥겔스가 1792~1798년의 중앙집권적인 프랑스공화국과 스위스연방공화국에 관해 설명한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실제로는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 공화국이 연방제 공화국보다도 자유를 더 많이 주었다. 달리 말해 지방과 주 등등이 누린 역사상 최대의 자유는 중앙집권적 공화제가 준 것이지 연방공화제가 준 것이 아니었다.
연방공화제와 중앙집권적 공화제 및 지방자치에 관한 모든 문제 일반과 마찬가지로, 이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는 당의 선전과 선동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으며 또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5.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에 실린 엥겔스의 1891년 서문
『프랑스 내전』제3판 서문 — 이 서문은 1891년 3월 18일자로 되어 있으며 『신시대』지에 처음 발표되었다 — 에서 엥겔스는 국가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문제를 두고 몇 가지 흥미로운 언급을 부수적으로 덧붙이면서 코뮌의 교훈을 대단히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저자가 코뮌 이후 20년 동안의 모든 경험을 통해 깊이 고찰한 이 요약, 그리고 특히 독일에 만연해 있던 '국가에 대한 미신적 신앙'을 공격하는 이 요약이야말로 여기서 고찰하는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최후의 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엥겔스는 프랑스에서는 언제나 혁명이 있은 후에 노동자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부르주아로서는 노동자의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 첫 번째 계율이었다. 따라서 노동자가 쟁취한 모든 혁명 이후에는 노동자의 패배로 끝나는 새로운 투쟁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34
부르주아혁명 경험을 총괄하는 이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의미 심장하다. 여기에는 문제의 핵심이 — 특히 국가문제(즉 피억압 계급이 무기를 가질 것인지?)에서 — 놀라울 정도로 잘 파악되어 있다.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에 있는 교수들이나 프티부르주아적 민주주의자들은 대개 바로 이 핵심을 회피하는 것이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에서는 '멘세비키'이자 '가짜 마르크스주의자'인 체레텔리가 부르주아혁명이 지닌 이러한 비밀을 누설하는 영광(카베나크적 영광)을 누렸다. 그는 6월 11일에 행한 '역사적' 연설에서 부르주아지가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들을 무장해제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누설했다. 이때 그는 물론 그 결정이 자신의 결정이자 일반적으로 '국가'에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6월 11일에 행한 체레텔리의 역사적 연설은 1917년 혁명을 연구하는 모든 역사가에게는 체레텔리 씨의 지도하에 있던 사회혁명당원들과 멘세비키 진영이 어떻게 해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여 부르주아지 편으로 넘어갔는가에 대한 가장 명백한 예증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문제와 관련된 엥겔스의 또 다른 부수적 언급은 종교에 관한 것이다. 알다시피 독일 사회민주당은 부패하고 더욱더 기회주의적이 되어감에 따라 "종교는 사적인 문제다"라는 유명한 정식표시를 점점 더 속물적으로 왜곡하는 길로 빠져들었다. 즉 이 정식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에게도 종교문제는 사적인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강령에 대한 바로 이 같은 완전한 배신에 맞섰다. 그는 1891년에는 당내에서 기회주의의 가장 미약한 싹아만을 보았기 때문에 지극히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썼다.
코뮌에는 거의 전적으로 노동자들이나 공인된 노동자 대표들밖에 없었으므로 코뮌의 결정들은 명백하게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띠었다. 이 결정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예를 들면 국가에 관련해서 종교는 순전히 사적인 일이라는 원칙의 실현과 같이 노동계급의 자유로운 활동에 필요한 기초를 제공해주는 개혁이었는데, 단지 공화주의적 부르주아지들의 비겁함 때문에 결국에는 거부되고 말았다. 또한 코뮌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직접 관계되고 부분적으로는 낡은 사회제도의 폐부를 찌르는 결정들을 공포하기도 했다.
엥겔스는 '국가에 관련해서'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강조했는데, 그것은 종교를 국가와 관련해서 사적인 일이라고 선언함으로써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을 무종파적 상태는 용인하되 인민을 마비시키는 종교라는 아편에 대한 당의 투쟁은 포기하는 가장 비속한 '자유사상적' 속물주의의 수준으로까지 타락시킨 독일 기회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미래 역사가는 자기 당의 1914년의 치욕적 파열의 뿌리를 파헤치다가 당의 이데올로기적 지도자인 카우츠키의 글 속에 담긴 기회주의에 문호를 개방하는 모호한 선언을 비롯하여 1913년 '교회로부터의 분리운동' Los-von-Kirche-Bewegung35에 대한 당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에 대한 흥미 있는 자료들을 적절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코뮌이 있고 나서 20년 후에 엥겔스가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코뮌의 교훈을 어떻게 총괄했는지 보자.
엥겔스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전면에 내세웠다.
나폴레옹이 1798년에 만들었고 그 이후 등장하는 모든 새로운 정부마다 유용한 도구로 물려받아 자신의 적을 반대하는 데 이용했던 종전의 중앙집권화된 정부, 군대, 정치경찰, 관료의 억압적 권력 — 다름 아닌 바로 이 권력은 파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의 모든 곳에서 전복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 계급이 일단 지배권을 획득하면 낡은 국가기구를 가지고는 해나갈 수 없다는 것, 이제 막 쟁취한 지배권을 또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자신들을 억압하는 데 이용되어 온 모든 낡은 억압기구를 폐지하여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대의원들과 공직자들을 누구나 예외 없이 어느 때라도 소환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해야만 한다는 것을 코뮌은 처음부터 인정해야만 했다.
엥겔스는 군주제에서만 아니라 민주공화제에서도 국가는 여전히 국가라는 것, 즉 '사회의 공복'인 공무원과 그 기관들을 사회 위에 있는 주인으로 만든다는 국가의 기본 특징을 여전히 갖는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국가에서 불가피했던 현상, 즉 국가와 국가기관이 사회의 공복에서 사회의 주인으로 전화하는 이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 코뮌은 두 가지 확실한 수단을 사용했다. 첫째로 코뮌은 행정, 입법, 교육의 모든 직위에 보통선거권 원칙에 따른 선거로 뽑힌 사람들을 임명했으며 나아가 이들이 선거인들에 의해 언제라도 소환될 수 있도록 했다. 둘째로 코뮌은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공무원에게 다른 노동자들이 받는 정도의 급료만을 지불했다. 일반적으로 코뮌이 지불한 최고 급료는 6,000프랑³⁶이었다. 이렇게 해서 — 이 밖에도 코뮌은 대표기관에 출석하는 대표들에게 구속력을 갖는 위임장을 제정·실시하였다 — 지위와 출세를 추구하는 풍조에 대한 확실한 방지책이 마련되었다.
여기서 엥겔스는 철저한 민주주의가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로 전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흥미로운 경계선에 접근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직무의 여러 기능이 주민 대다수에 의해, 나중에는 주민 모두에 의해 이해되고 수행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통제와 회계사무로 전화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세주의를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가장 자유로운 국가까지 포함해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항상 볼 수 있듯 수입은 없지만 국가적 직무의 "명예로운 직위"가 은행이나 주식회사의 높은 보수를 받는 직위로 뛰어오르는 발판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엥겔스는 적지 않은 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민족자결권에 관한 문제에서 범하는 오류, 즉 자본주의하에서는 민족자결권이 불가능하고 사회주의하에서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식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엥겔스는 영리해 보이지만 사실은 잘못된 그 같은 주장은 어떠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서건, 심지어는 공무원의 얼마 안 되는 급료에 대해서도 되풀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철두철미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며 또한 사회주의에서는 모든 민주주의가 다 사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이 어느 시점에서 한 올 더 빠지면 그 사람을 대머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오래된 우스갯소리와 비슷한 궤변이다.
민주주의를 철저히 발전시키고 이러한 발전형태를 탐구하며 이러한 형태를 실천함으로써 시험하는 것 등 — 이 모든 것은 사회혁명을 위한 투쟁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어떠한 민주주의든 그 자체만으로는 사회주의를 가져오지 못한다. 실생활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들과 '함께 존재' 한다. 그것은 경제에도 영향을 주어 경제의 변혁을 촉진하는 동시에 그 자체가 다시 경제발전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살아 있는 역사의 변증법이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이어나간다.
종전의 국가권력이 이와 같이 파괴되고 그것이 새롭고 진정으로 민주주의적 국가권력으로 교체되는 것에 관해서는 『프랑스 내전』 제3장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이 교체의 몇 가지 특징을 간략히 언급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독일에서는 국가에 대한 미신이 철학으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일반적 의식, 나아가 심지어는 다수 노동자의 일반적 의식에까지 옮아갔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생각에 따르면, 국가는 '이념의 실현' 혹은 철학적 용어로 번역된, 지상에 세워진 신의 왕국이며 영원한 진리와 정의가 실현되고 또 실현되어야 할 영역이다. 바로 여기서 국가에 대한, 국가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미신적 숭배가 생긴다. 그리고 이 미신적 숭배는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사회 전체의 공공사업과 공공이익은 종래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즉 국가와 많은 봉급을 받는 국가 관리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더욱 손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사람들은 만일 자신들이 세습군주제에 대한 신앙에서 벗어나 민주공화제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 놀랄 만큼 과감한 전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일 뿐이며 이 점은 민주공화제도 군주제와 전혀 다를 바 없다. 결국 국가는 기껏해야 계급지배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물려받은 하나의 악일 뿐이며,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코뮌이 그랬듯 이 악의 최악의 측면을 가능한 한 즉시 제거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조건에서 자라난 세대가 국가라는 이 쓰레기 전체를 치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엥겔스는 독일인들에게 군주제가 공화제로 교체될 때 국가문제 일반에 관한 사회주의의 원칙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지금 '연립'정부의 실천에서 국가에 대한 미신적 신앙과 미신적 숭배를 드러내고 있는 체레텔리 씨와 체르노프 씨에 대한 직접적 훈계처럼 들린다!
주의해야 할 것이 두 가지 더 있다. 첫째, 엥겔스가 국가란 민주공화제에서도 군주제에서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여전히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결코 몇몇 무정부주의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억압의 형태는 아무래도 좋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계급투쟁과 계급적 억압의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자유롭고 보다 공개적인 형태는 계급 일반의 폐지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대단히 수월하게 한다.
둘째, 어째서 오직 새로운 세대만이 국가라는 쓰레기 전체를 치워버릴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우리가 다음에 취급할 민주주의의 극복 문제와 관련된다.
6. 민주주의의 극복에 관한 엥겔스의 견해
엥겔스는 '사회민주주의자'라는 명칭이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는 문제를 두고 민주주의 극복에 관한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엥겔스는 1894년 1월 3일, 즉 그가 죽기 1년 반 전에 쓴 논문집 서문 — 이 논문들은 1870년대에 쓴 것들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주로 '국제적' 문제('인민국가'에서 비롯된 국제적 문제들)와 관련된다 — 에서, 자신은 모든 논문에서 '사회민주주의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의 프루동주의자와 독일의 라살레주의자가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칭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엥겔스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와 나로서는 우리의 특별한 입장을 나타내는 데 결코 그처럼 막연한 말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다르고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용어가 — 단순히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히 공산주의적인 경제적 강령을 채택하고 있는 당, 모든 국가의 극복, 따라서 민주주의의 극복도 정치적 최후 목표로 삼고 있는 당으로서는 이 용어가 여전히 부적당하기는 하지만 — 그대로 통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의 정당들의 명칭은 결코 그 당들과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은 발전하지만 명칭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강조는 엥겔스)37
변증법론자 엥겔스는 마지막 날까지 변증법에 충실했다. 엥겔스는 당시 마르크스와 자신이 훌륭하고 과학적으로 정확한 당의 명칭은 갖고 있었으나 실제적인 당, 즉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당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19세기 말)는 실제적 당은 있지만 그 명칭이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것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오직 당이 발전하기만 하면, 그리고 그 명칭이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이 당에서 은폐되지 않고 당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방해되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농담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에게는 실제적인 당이 있으며, 그것은 훌륭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1903년의 브뤼셀·런던 당대회에서 우리가 다수를 차지했다는 순전히 우연한 사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하고 있지 않은 '볼셰비키' 같은 무의미하고 기형적인 용어도 '통용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우리 볼셰비키들도 엥겔스식으로 위로하려 들지 모른다.
공화주의자들과 '혁명적인' 소시민적 민주주의자들이 우리 당에 가한 7월과 8월의 박해 때문에 '볼셰비키'란 말이 그처럼 전 인민적으로 명예로운 말이 된 지금, 게다가 그 박해가 우리 당의 실제적 발전에서 이룩한 거대한 역사적 전진을 말해 주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나도 우리 당의 명칭을 변경하자는 나의 4월 제안을 재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동지들에게 우리 당의 명칭을 공산당으로 바꾸고 '볼셰비키'란 말은 괄호 안에 남겨두자는 '타협안'을 제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의 명칭 문제는 국가에 대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태도 문제에 비하면 훨씬 덜 중요한 문제이다.
국가에 관한 통상적인 논의에서는 엥겔스가 여기서 경고하고 있고 또 우리가 앞서 이미 지적했던 오류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 즉 사람들은 국가의 폐지는 민주주의의 폐지이기도 하며, 국가의 사멸은 곧 민주주의의 사멸이라는 것을 항상 망각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언뜻 극히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아마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가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제도가 오기를 기대하는 건 아닌가?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바로 이 같은 원칙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인정하는 국가, 즉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주민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 대해 체계적 폭력을 사용하기 위한 조직이다.
우리는 국가의 폐지를, 즉 모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의 폐지를, 인간 일반에 대한 모든 폭력 사용의 폐지를 궁극 목표로 삼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제도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면서,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 발전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인간에 대한 폭력 일반의 필요성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주민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게 복종할 필요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인류는 폭력 없이, 복종 없이 사회적 공동생활의 기본 조건들을 준수하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습관이라는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엥겔스는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조건에서 자라난, 그리고 국가(민주공화제 국가도 포함한 모든 국가)라는 쓰레기 전체를 일소해버릴 수 있는" 새로운 세대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국가 사멸의 경제적 기초 문제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