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라는 대작을 하나 마쳤습니다. 번역이라기보다 검수에 가까운 또 다른 여정이었습니다. 문득 그대에게 별도로 이 지면의 자리를 빌려 짧은 문구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잠시 미쳐 있었습니다. 수많은 문자나 연락보다, 그대와 마주했던 찰나의 순간이 저를 버티게 한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지만,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그대 변화마저도 당신이라는 존재 일부는 아닐런지요.
가끔은 여성의 권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제가 무슨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일 써 내려가는 글은 결국 부재하는 편지로만 남고 맙니다. 기둥 하나 붙잡고 생사조차 모를 이에게 보내는 이 터무니없는 일에 한숨 짓기도 하지만, 불우하여 우울했던 제 시절은 그대와 인연으로 인해 비로소 의미가 생겼습니다. 예비군 시절에 가끔 힘들 때면 속으로 당신 이름을 크게 불러도 보았습니다. 이마저도 우스운 일입니다.
결국 그대가 남긴 말처럼, 제가 태어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서울 인파 속에 치이다 보면, 그대와 떨어져 있던 그 모든 시간이 가끔은 '잃어버린 시간'이 됩니다. 한때는 부담스러웠을 일들도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마도 그 잃어버린 시간들이 비로소 그대와 온전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세상에는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나 봅니다. 삶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듯이, 안주했더라면 당신과 보낸 시절은 진작 잊혔을지도 모릅니다. 바다를 보며 애태우던 날들과 기도가 부질없음을 깨닫던 그 순간에도, 문득 그대가 떠오르면 언제든 곁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그날을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기댈 곳 없는 나그네인 줄 알았으나, 가장 낮은 곳의 평민이겠지요. 농담입니다. 그대가 임금 노동이라는 사슬에서도 진정으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2026. 05.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