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Ⅰ: 절취선 

 

대체로 유가족의 시간은 과거의 어느 지점에 멈추곤 한다세상의 시간은 무심히 흐르지만, 회상할 수 있는 전부가 재작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때로 아득하다.

 

문득 옛 지인과 단편 소극장에서 보았던 네 편의 영화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교수의 성희롱 문제를 다룬 영화, 사라져가는 옛 영화관과 관객들의 소회를 담은 다큐멘터리, 할머니에 대한 희미한 기억 담긴 작품, 그리고 지구의 마지막 날 계란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지구 최후의 계란>까지. 모두 10-15분 정도의 단편 영화였다. 첫 번째 영화가 가장 마음이 남았으나, 지인은 <지구 최후의 계란>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한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종말론의 기운처럼 한 세대가 끝난 듯한 예감이 먼저 찾아왔다. 수많은 영화가 종말을 말하면서도 결국 '생에 대한 찬가'로 결말을 맺곤 하지만, 사실 우리네 인간 군상의 모습이 언제나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후 홀로 그 소극장을 몇 번 더 찾았으나 그때만큼의 감흥은 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곳은 나름의 따스한 온기가 보존된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재작년의 흔적들은 조금씩 잊히고 있다. 타인의 상처는 함부로 보듬을 수 없는 것이기에, 결국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것 또한 오롯이 자신의 몫일 것이다. 어쩌면 '지구의 최후'란 생이 한 번 저물 뻔했던 그 기억 자체일지도 모른다. 잠들기 전, 새로운 기대보다 과거에 스쳐간 단편들을 고스란히 떠올린다. 탈출구 없는 비상구를 향해 걸어갈 때조차, 그나마 숨 쉬게 했던 것은 그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아마 마지막 순간에도 그 단편 소극장의 공간은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억 끝에는, 고요하고도 적막한 어둠이 내릴 것이기에, 그것이 가장 잊고 싶던 기억이었음에도, 까마득하게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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