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라디오


밥벌이보다 잠깐의 음악을 듣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라디오를 가까이서 청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 음악도 출연진도 아닌, 마냥 음악만 듣고 싶었다. 라디오는 그것으로 인해 하나둘 청취자들이 떠나갔다. 제작년 대북 확성기의 소음으로 인해 인근 마을에 큰 피해를 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현재는 확성기를 거둔 상태이지만, 대북 확성기의 주된 삽입곡이란 언제나 군부대를 선전하기 위한 애국가나 가요를 튼다. 이는 결과적으로 장병과 인근 주민 모두에게 소음만 된다. 군 복무 시절을 몸소 겪은 이들조차 선전 가요는 가장 청취의 고역이다. 현대 음악의 종류도 다양하여 선별해서 듣는 것도 아니고, 군대는 음악마저 표준으로 맞춘다. 차라리, 대북 확성기는 날카로운 애국가 및 군가를 틀 것이 아니라, 엄선한 선곡을 선정하여 인근 동네의 의견까지 수용해야 했다. 분명 군 장관 및 장성들의 입김하에 독단적이고 막무가내인 내부 지시에 따랐을 것이다. 


대북 확성기의 노래가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 강산에 「라구요」, 윤미래 「시간이 흐른 뒤」 등과 같은 선곡 위주였다면 남북한의 정치적·이념적 관계를 막론하고 수많은 청취자의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차라리 이러한 선곡 위주로 선별하면 어땠을까. 물론 주민들과의 상의하에 음향 관계자까지 섭외했다면 관련 인근 동네도 낮이나 일부 새벽 시간대까지 군 가요보다 풍성한 곡을 들을 수도 있었다. 아마 인근 군 지역 및 동네 모두 복무 중인 군인들의 반응까지 확인했다면, 200-300(Hz), 70-75(db) (소음이 아닌 한) 많은 곡 제안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는 소음이 많다. 어느 지역에서나 사람들은 소음 측정기를 달고 산다. 세상에 태어나 온갖 소리를 듣게 되지만, 특히 일정 수준 이상의 공사 소리와 차량 경적 소리 등은 소음이 될 때 가장 큰 피해를 남기며, 상호 간의 법적인 문제까지 야기하게 된다. 반대의 사례로는, 한 초등학교의 운동회마저 시끄럽다고 항의한 아파트 거주민의 시민 의식이 이를 잘 대변한다.  


이처럼, 대북 확성기는 주위의 소음보다 더 큰 소음을 일으켰다. 60-80(db)보다 이상인 120-130(db)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인근 일대의 주민들은 거부권까지 행사했지만 정부는 방관했다. '주적은 북한이다.'가 우선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항 일대나 군대 밀집 지역에서는 특히 전투기 및 비행기 제트 소리로 인한 민간 피해 소음은 늘 생활이 된다. 평생을 도심에서 불가피하게 거주한 사람들이 어느덧 한가한 소리를 찾고자 지방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도심 지역과 비슷한 소리를 들으며 부르주아지가 생산한 자본의 상품 유행을 좇으며 소비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다면 예술가나 스포츠인은 왜 주류 정치나 언론 및 방송에 출현하여 활동할 수밖에 없을까. 분명 음악의 종류는 다양하다고 배웠지만, 그러한 소음은 음악마저 실험체로 바꾸고 말았다. 음악의 자유가 어느덧 특정 소비층을 위한 자유의 음악으로 바뀌었을 때조차 그것을 과연 음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는 현재 예술계 전반이 처한 문제 의식과도 같다. 이들은 막연하게 지금까지 산업성에는 반대하면서도, 정작 산업 구조 자체가 특정 자본과 어떠한 밀접한 관련이 형성되는지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비평계 역시 자본의 독식 구조로 인해 훼손된 상태를 초래했다.   


대중 가요가 모두 나쁘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음악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선입견 및 편견일 수 있으므로, 어떤 것은 시간이 흘러야 서서히 듣게 되는 음악이 있다. 음악도 몸과 비슷해서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라는 매체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광고가 슬며시 삽입되는 그 순간에도, 광고를 눌러야만 수익이 창출되는 '당연한' 자본의 수익 구조 속에서 현대 음악이란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된다. 물론 비단 음악만이 대중 산업이 된 것은 아니다. 어느덧 초심마저 잃은 자본가 기업의 '부가 가치' 창출을 위해 슬그머니 청구한 금액까지 더하여 음악의 매체마저 마땅히 방송 출연 및 광고를 삽입하게 되었다. 라디오는 그렇게 청취자를 떠나갔다. 음악이 아닌 자본을 위해, 그리고 넌지시 음악은 말을 건넨다. 


'자유의 음악이 아닌, 음악의 해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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