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남북 전쟁, 지배 계급의 공포
한국의 역사 역시 지배 계급의 역사이다. 이러한 피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조선 거대 군주제 붕괴와 미군정의 치하에서 일제로부터의 광복, 그리고 1950년대의 전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이념적 갈등의 시작이자 한반도의 평화를 훼손시킨 전쟁이라는 명분에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남북한은 모두 제각기 흩어져 이산 가족을 이루었고, 우리 조상들의 뿌리를 찾지도 못한 채 상봉의 기회에 겨우 기대어 분단선을 바라보며 이 전쟁이 남긴 상흔을 여전히 안고 있다. 제작년 독립 유공자 분들이 대다수 자신의 헌장을 반납한 일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들은 정부의 보조를 기대했지만, 정작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벅찬 상태에서 자신의 성과가 아닌, 마땅한 이유로 '대한민국'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다수가 평범한 노동자로 활동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막연한 평화'에 대해서는 함부로 논하지 않는다.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북측의 도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높은 긴장도를 적나라하게 보도했을 때조차, 전 세계의 일부 독립 유공자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릴 뿐만 아니라, 그것의 무의미함까지 언급한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명예가 아닌, 애틋한 전우를 기린다. 최근 해외에서는 한국인들의 생존력을 재평가하며 특히 군주도 아닌 장군이 막아낸 '임진왜란'에 대해 높은 역사적 평가를 내린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경제학적 기회 비용에 따른 수치화된 통계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의미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는 두 거대 진영 간의 논리에 맞추어 이들의 노고를 재단하고 정작 독립 유공자를 노골적인 정부 선동의 대상으로 선정한다. 이들을 기리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국수적인 지원 대상일 뿐이다. 국가는 언제나 그러한 식으로 군인을 인정하고 대우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여러 이유를 들어 후대에도 군대에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그 의무를 심경하고 걱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군인 역시 곧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는다. 이들이 일정한 보수를 받기 위해 참전을 결정해야 했을 때조차 깊은 긴장과 떨림은 배가 되는 공포일 것이다. 그러한 공포가 전쟁의 전반을 지배하게 될 때에는 군인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정부는 전쟁의 결정에 대한 지배력까지 행사할 수 있고, 이를 이용하여 또 다른 침략의 명분으로 삼아 우호하게 된다. 정부의 정책이 빚어진 갈등 속에서 같은 한반도를 이루는 땅임에도, 정부의 결정에 따라 늘 적국이라 간주하여 초조해 하고, 자신이 노동자임을 잊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의식 없는 선동은 결국 이들의 노고마저 희석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득표율에만 신경쓰는 그러한 기만이나 위선을 보게 될 때, 대중들은 실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겨우 일궈 낸 한 표의 투표권 역시 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일까.
지금 현대 사회는 적어도, 어느 정도 먹고 살 걱정은 없다. 정부 정책상 사회 복지가 뒷받침하여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관련 소득에 따른 지원 제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정부 보조를 위해 늘어나는 특수한 자격 및 수혜 조건과 차별 정책에 따른 대우라면 전우를 잃은 노병처럼, 그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음이 아니라, 그것이 의무일 수밖에 없었던 시장과 전장의 실상을 또다시 겪게 된다. 그것은 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기에 헌정을 하기 이전에 대우해야 할 본연의 책임인 것이다. 그것에 기대어 오늘날 정부가 지금까지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자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정부 처사가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소속된 지역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군주 행세나 다름없는 배부른 자본과 사람을 부리는 종들로만 여기는 힘을 가진 이 정치인이라는 작자들의 행보로 인해 소외된 이들을 향해 기만하는 텃세를 또다시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더군다나, 노동자들이 보내는 고통의 나날을 극치로 정당화하여 정작 국방의 의무를 아직도 짊어지는 세대에게는 더 큰 박탈감이 나타난다. 그들 역시 결국 사람보다는 지지율에 대한 욕심이 빚은 물질임을 자명하고 만 것이다. 이제는 배부른 정치인들이 서민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를 다시금 굶주리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배후에 있을 때조차도 유공자에 대해 단 한번도, 아니,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적어도, 우리는 이들의 가난에 대해서도 언제나 함께하고 싶다.
'그들만의 독단적인 형식에 거부하고, 우리만의 진정한 선택을 요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