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교환: '선언'의 중요성
(이 논의는 주로 노동 대중에게 유익한 설명을 위함이다.)
19-20세기 전반은 지식인들이 중심으로 형성된 혁명적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중심에는 서한 교환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맑스와 엥겔스, 레닌, 심지어 스탈린까지 연락 체계에 있어 서신 교환 및 통신 체계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에 따라 각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빠르게 각국의 혁명가들은 자신의 고유한 증명을 검증하고, 독자의 질문에 추가로 답변할 수 있는 서신 방식을 많이 채택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그람시 등도 당대 지식 사회의 큰 의문을 던진 인물들이다. 자신의 선배들에게 많은 질문을 터울 없이 교환했으며, 이들과 빠르게 동지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레닌, 『의회 투쟁 및 선거 전략』에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면, 러시아 두마 회의가 소수 분파에서 시작한 볼셰비키와 다수 분파에서 시작한 멘셰비키 간 본격적인 투쟁이 개시되기 이전부터 이러한 각 진영 간 우편 및 서신 관계를 교류하여 이들의 저작을 충분히 보급하고 확대할 수 있었던 비결에도 있었다. 물론 더 조사할 수도 있지만, 미리 간략한 개괄을 설명하자면, 기본적으로 급격한 사회 변동이 개시되는 시점에서, 그리고 지금의 기술적 발달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점에서 자본주의적 발전과의 관계와 오히려 충돌하거나 반비례한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이는 지금도 참고할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21세기 초에 발생한 공황의 여파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금까지 장기적인 위협의 요소가 되는 중이다. 이는 여러 현상에 대한 기존의 경제학자들의 설명만으로도 해명될 수 없는 부분은 그들이 이전 사회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이유에도 존재할 것이다. 『자본』 이후로 전개된 자본주의 전개의 실상을 충분히 짚어내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로 레닌은 의회주의와 반의회주의의 간극을 짚는 과정에서 '새로운 전개'를 위한 단초까지 명시했다고 본다. 이러한 소수 분파에서 시작되어 전개된 공산당 건설에 있어 각국의 부르주아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목격한 다수 인민들 역시 존재함을 명시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스스로 붕괴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지금도 더 악랄한 방식으로 그것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추론에 의존하여 앞선 감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국내 공산당의 '새로운' 건설이 진행되려면 기존의 이론적 비판 역시 전제된다. 그것은 이러한 의회 내 투쟁 과정이 실질적으로 부르주아 사회의 일부 편에 가담하여 진행되는 선거 과정임을 드러내는 것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일부 세대 교체에 따른 다음 과정에 대한 관심사가 높아진 만큼, 정치적 기대에 대한 유효성이 과거 인물에 대한 영향력을 과소 평가한 지점 역시 존재하지만, 지금의 정책적 보완 방식으로 미루는 효과만으로는, 실제로 훨씬 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심화되는 대립 양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적어도, 우리의 선거 전략이 있다면, 결과적으로 소수 분파에서 시작되더라도 작은 운동이 모일 수 있도록 의견을 단합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이를테면 각국의 민주주의 가치가 실제로는 무효화되는 시점을 고려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창출에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사회 건설 실험이라는 붕괴된 시점에서 서술된 막연한 해석에는 반대하고, 이전부터 두마 의회에서 진행된 선구적인 투쟁으로 인한 선거 결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소 선구적인 저작의 인용을 시간상 생략하더라도, 오늘날 인민들은 그 진행에 대한 과정까지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 진입하게 된다면 우리의 역할 및 판도가 전환되기에, 부르주아 사회의 선거 전략을 의도적으로 차용하려는 '노골적인' 진보 정당과도 우선 '차별화'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
* 아마 국가 원수나 주석 등은 상부의 '일방적인' 지령을 내리지만, 우리라면 하부의 서기를 남겨 '체계적인' 지시를 내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