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이윤율

 

자본의 일반 공식 M-C-M´은 유통 과정에 투입된 일정한 가치액이 증식된 가치액을 흡수하여 회수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가치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창출된 가치를 화폐화여 실현하는 자본의 유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자본가가 상품 생산에 매진하는 목적은 상품 그 자체의 사용 가치나 개인적 소비에 있지 않다. 그가 추구하는 실질적인 생산물은 물질적 외피를 지닌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소모된 자본 가치를 초과하여 형성된 잉여 가치 (또는 화폐적 초과분) ΔM이다.

 

자본가는 잉여 가치 생산 과정에서 자본의 각 구성 부분이 수행하는 기능적 차이를 배제한 채 총자본을 투하한다. 자본가의 궁극적 목적은 투하 자본 총액을 재생산하여 단순하게 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구성 부분을 동원하여 그 이상의 가치 증식분인 잉여 가치 (또는 화폐적 초과분 ΔM)를 창출하는 데 있다. 투하 가치가 증식된 가치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아있는 노동력과의 교환으로부터 노동의 착취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력의 착취는 노동력의 실현 조건인 노동 수단과 노동 대상, 곧 기계와 원료에 대한 자본 투하가 이루어질 때만 비로소 성립한다. 결과적으로 자본가는 자신이 소유한 일정한 가치액을 생산 조건의 형태로 전환하면서만 가치 증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물론 개인이 자본가로 노동력 착취 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노동 조건의 소유자로 오직 자신의 노동력만을 보유한 노동자와 대면하기 때문이다 (CW 33: 78-79 참조). 이미 자본권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비노동자의 생산 수단 소유는 노동자를 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동시에 비노동자를 자본가로 규정하는 결정적 조건이 된다.

 

자본가에게 가변 자본으로부터의 이윤 창출과 불변 자본의 가치 증식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임금 (화폐)를 지불하든, 기계와 원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생산 수단에 자본을 투여하든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동일한 증식 행위로 귀결된다. 잉여 가치는 오직 자본의 가변 부분에서만 창출되지만, 이는 노동의 생산 조건인 불변 자본의 투하를 전제로만 성립한다. 자본가는 불변 자본을 투입하면서만 노동을 착취할 수 있고, 가변 자본을 투입하면서만 불변 자본을 가치 증식 과정에 동원 (또는 매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 두 자본의 기능적 차이는 동일하다. 이러한 관념은 이윤의 실제 크기가 가변 자본이 아닌 총자본에 비례하며, 잉여 가치율이 아닌 이윤율로 (잉여 가치율은 상이하더라도 이윤율은 동일할 수 있다) 규정된다는 실질적 조건으로부터 더욱 공고해진다 (CW 33: 79-80 참조).

 

생산물의 비용은 자본가가 생산물의 가치 중 생산 과정에 투입한 (또는 지불한) 모든 등가 요소, 곧 이 자본의 단순 유지와 최초 규모의 재생산을 위해 보전되어야 할 가치액을 의미한다.

 

상품에 포함된 가치는 상품 생산에 소요된 총 노동 시간과 일치하며, 이 노동은 유급 노동 (필요 노동)과 무급 노동 (잉여 노동)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자본가의 입장에서 상품의 비용은 상품에 체화되어 대상화된 노동 중 그가 실제로 대가를 지불한 부분에 국한된다. 상품에 포함된 잉여 노동 (무급 노동)은 유급 노동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는 동일한 노동의 투여 (지출)을 의미하며, 가치를 창출하여 가치 형성 요소로 상품 가치에 포함된다. 그러나 잉여 노동은 자본가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본가의 이윤은 자신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노동의 산물을 판매하면서 실현된다. 잉여 가치 또는 이윤은 상품 가치가 그 비용 가격을 초과하는 부분이며, 이는 상품에 투입된 총 노동량이 상품에 포함된 지불 노동량을 초과하는 분량과 동일하다. 따라서 잉여 가치는 그 발생 원천 (가변 자본)에 관계없이 자본가에게는 언제나 총 투하 자본에 대한 초과분으로 나타난다. 이 초과분을 총자본 C에 대비하면 s/C의 비율이 산출되며, 이는 잉여 가치율 s/v과 구별되는 이윤율 p = s/C = s/(c+v)로 도출된다.

 

· 상품 가치 C = 불변 자본 c + 가변 자본 v + 잉여 가치 s

 

· 노동의 구성 = 과거 노동 c + 현재 노동 (v + s)

 

· 지불 여부에 따른 구성 = 과거 노동 + 유급 노동 (필요 노동) + 무급 노동 (잉여 노동)

 

· 비용 가격 k = (c + v) (자본가가 실제로 지출한 부분)

 

가변 자본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인 잉여 가치율과 총자본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인 이윤율은 동일한 대상의 크기를 서로 다른 척도로 측량한 것이며, 이는 곧 동일한 가치량이 맺고 있는 상이한 관계를 표명한다.

 

잉여 가치율이 이윤율로 전환됨에 따라 잉여 가치가 이윤의 형태로 변모하는 과정이 도출되어야 하며, 그 역은 성립할 수 없다. 물론 역사적 출발점은 이윤율일지라도, 잉여 가치와 잉여 가치율은 분석으로 규명해야 할 비가시적 본질에 해당한다. 반면, 이윤율과 그에 따른 잉여 가치의 이윤 형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시적 현상이다.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 유일한 관심사는 상품 생산에 투하된 총자본 대비 잉여 가치 (상품 판매로부터 실현되는 가치 초과분)의 비율에 집중된다. 자본가는 자본의 개별 구성 부분과 이 초과 가치분 사이의 특수한 비율 및 상관관계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내부적 관련을 은폐하는 것이 자신의 경제적 실익에 부합한다.

 

비용 가격을 상회하는 상품 가치의 초과분은 직접적 생산 과정에서 창출되나, 그 실현은 유통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현실의 경쟁 세계에서 초과 가치분의 실현 여부와 그 범위가 시장 상황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 가치가 마치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은 현상적 착시가 나타난다. 상품이 자신의 가치와 불일치하는 가격으로 거래될 경우 총 잉여 가치의 분배 구조에만 변화가 생길 뿐, 사회적 총 잉여 가치의 크기나 그 본질적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유통 과정은 제권에서 고찰한 자본의 형태 변화가 일어나는 공간인 동시에, 현실적 경쟁에 따른 상품 매매 과정에서 가치와 가격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현장이다. 따라서 개별 자본가에게 실현된 이윤 (또는 잉여 가치)은 직접적 노동 착취뿐만 아니라 자본가 상호 간의 유통상 거래 관계에도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만적 형식 (속임수)으로 결정된다.

 

자본의 순환에서 유통 과정은 노동 시간뿐 아니라 유통 시간의 제약을 받으며, 유통 시간은 일정한 기간 내에 실현되는 잉여 가치량을 한정한다.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료 가격 폭등과 같은 유통상의 외적 요인 역시 직접적 생산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직접적 생산 과정과 유통 과정이 끊임없이 서로 얽히고 결합하면서 진행됨에 따라, 각 구성 단계의 특징은 점차 모호해진다. 유통 과정에 진입한 잉여 가치와 가치 일반의 생산은 새로운 특징을 획득한다. 자본은 형태 변화의 순환을 거쳐 내부적인 생산 영역에서 외부적인 유통 관계로 이행하며, 이 과정에서 자본과 노동의 대립 구도는 자본과 자본의 관계, 또는 단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개인적 관계로 대체되어 나타난다.

 

유통 시간과 노동 시간은 서로 교차하는 궤도를 형성하며, 이로 인해 두 시간이 마치 잉여 가치 결정에 동일하게 기여하는 것과 같은 현상적 착시를 일으킨다. 자본과 임금 노동이 대립하는 본연의 관계는, 이 관계와 무관해 보이는 독립적인 제반 관계들의 개입으로 인해 은폐된다. , 잉여 가치는 노동 시간의 사유화 (횡령)로부터 도출된 생산물로 파악되지 않고, 상품의 비용 가격을 상회하는 판매 가격의 초과분으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비용 가격은 상품의 진정한 가치로 오인되며, 이윤은 상품의 내재적 가치를 초과한 판매 가격의 초과분 (: 매매 차익, 초과 이득 등)으로 간주된다 (참조. CW 33: 72-73).

 

잉여 가치 분석 과정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타인의 노동 시간에 대한 자본가의 탐욕은 직접적 생산 과정에서 잉여 가치의 본질을 자본가의 의식 속에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요인들로 인해 그 본질은 왜곡되거나 은폐된다.

 

1) 직접적 생산 과정은 유통 과정과 상호 교차하며 진행되는 순간적인 계기에 불과하게 보이며, 이로 인해 생산 과정에서 형성된 이윤의 원천, 곧 잉여 가치의 본질에 관한 관념은 유통 영역의 운동 속으로 희석된다. 실현된 초과 가치 (초과분)는 생산 과정과는 무관한 운동, 곧 유통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오인되며, 노동에 대한 자본의 관계와 독립적으로 자본 그 자체에 귀속된다는 관념이 지배력을 얻게 된다. 람지, 맬서스, 시니어, 토렌즈 등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유통 현상을 근거로, 자본이 노동과의 사회적 관계와 무관하게 그 물질적 존재 자체로부터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독자적 원천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2) 임금, 원료 가격, 기계 마멸분 등으로 구성되는 비용 항목 내에서 무급 노동의 착취는 단순히 지불 비용의 절약, 곧 일정 노동량에 대한 과소 지불로 나타날 뿐이다. 이는 원료를 저렴하게 구입하거나 기계의 마멸을 최소화하여 비용을 절감하는 행위와 동일한 수준에서 취급된다. 결과적으로 잉여 노동 착취가 지닌 고유한 성격은 소멸하며, 잉여 가치와 잉여 노동 사이의 특수한 상관관계는 모호해진다. 권 제6편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전도된 현상은 노동력의 가치가 임금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더욱 공고해진다.

 

자본의 모든 구성 부분이 잉여 가치 창출(이윤)의 동등한 원천으로 간주됨에 따라,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본질적 자본 관계는 은폐된다.

 

잉여 가치가 이윤율에 근거하여 이윤의 형태로 전환되는 양상은, 생산 과정에 내재된 주체 (인간의 살아있는 노동)와 객체 (자본과 기계의 죽은 노동)의 전도 현상이 더욱 심화된 결과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의 모든 주체적 생산력은 자본 고유의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살아있는 노동을 지배하는 객체화된 가치 (또는 죽은 노동)는 자본가로 인격화되는 반면, 노동자는 단순한 객체적 노동력인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이와 같은 전도된 생산 관계는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전도된 관념, 곧 역전된 의식을 파생시키며, 이는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형태 변화와 운동을 거치며 더욱 공고하게 확립된다.

 

리카도 학파의 사례처럼 이윤율의 법칙을 잉여 가치율의 법칙으로부터 직접 도출하거나 그 반대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명백한 오류다 (CW 32: 60-72 참조). 물론 자본가의 관념 내에서는 이 두 법칙이 구별되지 않으나, 엄밀한 분석에서 이윤율 (잉여 가치)은 생산에 투입된 총자본 C의 가치와 대비되는 s/C의 비율로 나타난다. 여기서 총 투하 자본은 생산 과정에서 완전히 소비되어 소멸하는 부분과, 형태를 유지하며 기능하는 부분을 모두 포함한다. 실질적으로 s/C라는 비율은 총 투하 자본의 가치 증식 정도를 표상한다. 그러나 이를 잉여 가치의 개념적 내부 관련과 본질적 성격에서 고찰하면, 해당 비율은 가변 자본의 변동량 곧 가변 자본이 자기 자신의 가치 이상으로 창출한 잉여 가치 s와 총 투하 자본 C 사이의 상관관계를 드러낼 뿐이다.

 

총자본의 가치량은 그 자체는 잉여 가치량과 어떠한 직접적인 내부 관련을 지니지 않는다. 총자본 가변 자본 = 불변 자본은, 소재적 측면에서 노동을 대상화하는 데 필수적인 생산의 물질적 조건 (곧 원료와 노동 수단)으로 구성된다. 일정량의 노동이 상품으로 체화되어 가치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일정량의 원료와 노동 수단의 투입이 전제되어야 한다. 노동의 구체적 성격에 따라 투입 노동량과 살아있는 노동이 결합하는 생산 수단의 양 사이에는 일정한 기술적 비례 관계가 성립하며, 이러한 점에서 잉여 가치 또는 잉여 노동의 양과 생산 수단의 양 사이에도 일정한 비례적 상관관계가 형성된다.

 

가령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 가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이 하루 6시간일 때, 100%의 잉여 가치율을 달성하기 위해 12시간을 노동한다면 그는 6시간의 잉여 노동을 수행하게 된다. 이 경우 12시간의 노동 과정에서 소모되는 생산 수단의 양은 6시간 노동 시보다 두 배로 증가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창출 (첨가)하는 잉여 가치가 12시간 동안 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치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생산 수단의 화폐적 가치가 아니라, 노동을 흡수하는 데 기술적으로 요구되는 생산 수단의 물리적 물량이다. 원료나 노동 수단이 적절한 사용 가치를 구비하고 흡수될 노동량에 대응하는 기술적 규정량만큼 충족된다면, 해당 생산 요소 (원료나 노동 수단 등)들의 가격 수준은 잉여 가치 형성의 본질적 조건이 되지 않는다.

 

시간당 y원의 가치를 지닌 면화 x kg이 방적된다면, 12시간 동안에는 12x kg의 면화 = 12y원어치가 방적된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6시간과 12시간 각각의 방적 가치에 대비되는 잉여 가치의 비율을 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생산 수단의 가치에 대한 살아있는 노동의 비율이 유의미한 것은 y원이 x kg이라는 면화 물량의 가치 지표로 기능하는 범위 내에서다. 면화 가격이 일정하다면 특정 물량은 고정된 가격을 유지하며, 반대로, 일정한 가격은 면화 물량을 지시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6시간의 잉여 노동을 획득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12시간의 노동을 부과해야 한다면, 자본가는 그에 상응하는 12시간분의 면화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면화의 가격이 필요한 물량의 지표로 작용하면서 가격과 잉여 가치 사이에 일정한 외적이고 우회적인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반대로, 원료 가격만으로는 시간당 방적되는 원료의 물량을 추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변 자본의 가치와 잉여 가치 사이, 더 나아가, 총자본 (C=c+v)과 잉여 가치 사이에는 어떠한 내재적이고 필연적인 상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잉여 가치율과 잉여 가치량이 전제된 조건에서 이윤율은 잉여 가치를 측정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 이는 노동과의 교환으로부터 잉여 가치를 직접적으로 창출하는 가변 자본 부분이 아니라, 투입된 총자본의 가치에 대비하여 잉여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실의 현상 세계에서는 이 관계가 전도되어 나타난다.

 

잉여 가치는 단지 상품 비용 가격을 상회하는 판매 가격의 초과분으로만 주어지며, 이 초과분의 원천이 생산 과정의 노동 착취인지, 유통 과정의 거래상 기만인지, 또는 두 요인의 결합인지는 불분명한 상태로 남는다. 또한 외연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총자본 가치 대비 초과분의 비율인 이윤율이다. 비용 가격에 대한 판매 가격의 초과분을 총 투하 자본 가치에 대비하여 산정하는 것은 총자본의 가치 증식 정도를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윤율로부터 출발할 경우, 가치 초과분과 임금으로 지출된 자본 부분 사이의 고유한 상관관계를 추론할 수 없게 된다.

 

맬서스가 이러한 경로로 잉여 가치의 은폐된 비밀과 자본의 가변 부분이 잉여 가치와 맺는 고유한 상관관계를 해명하려 시도하며 범하게 되는 논리적 오류는 (잉여 가치 학설사197; CW 32: 209-258) 상세히 규명된다.

 

이윤율은 본질적으로 가치 초과분인 잉여 가치가 총자본의 모든 구성 부분에 대하여 동등한 관계를 점하고 있음을 표상한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총자본은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이라는 범주적 차이 외에는 어떠한 내재적 구별도 드러내지 않는 동질적인 가치 총량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마저도 이 초과분이 산출되는 두 가지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첫째, 비용 가격을 상회하는 초과분이라는 단순한 가치량으로 파악될 경우, 유동 자본은 그 전액이 비용 가격에 산입되지만 고정 자본은 오직 마멸분만이 포함된다. 둘째, 투하 자본의 총가치에 대한 이 초과분의 비율로 파악될 경우, 고정 자본 전체의 가치는 유동 자본의 가치와 대등하게 계산에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유동 자본은 두 방식 모두에서 동일한 절차로 취급되지만, 고정 자본은 첫 번째 방식에서는 유동 자본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두 번째 방식에서는 유동 자본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에 따라 자본의 내부 구성에서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 사이의 구별만이 유일하게 유의미한 차이로 부각된다.

 

따라서 헤겔적 의미에서, 이 초과분이 이윤율로부터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반성하거나 또는 이 초과분이 이윤율로부터 그 특성이 더욱 구체화되는 경우, 이 초과분은 자본이 1년 또는 일정한 회전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의 본래 가치를 초과하여 생산한 가치 증식분으로 나타난다.

 

이윤율은 잉여 가치율과 수치상으로 상이하지만, 잉여 가치와 이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그 양적 크기 또한 일치한다. 그럼에도 이윤은 잉여 가치가 전환된 형태로, 잉여 가치의 원천과 그 존재를 둘러싼 비밀이 은폐되고 모호해진 형태 (형상)이다. 사실상 이윤은 잉여 가치의 현상 형태이며, 잉여 가치는 이윤에 대한 분석적 추적으로만 규명될 수 있다.

 

잉여 가치의 범주에서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만, 자본과 이윤 사이의 관계에서는 자본이 자기 자신 (총자본 및 그 증식분으로의 잉여 가치)과 관계 맺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때 잉여 가치는 유통 과정에서 상품의 비용 가격을 상회하여 실현되는 초과분이자, 총자본의 상관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가치 증식분으로 파악된다. 이로부터 자본은 최초의 가치액과 구별되는 새로운 가치를 생산과 유통이라는 자기 운동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창출하는 것처럼 오인되며, 그 발생 원천은 신비화되어 자본 고유의 숨은 내재적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의식으로 관념화된다 (참조. CW 33: 70-71).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을 추적할수록, 자본 관계는 더욱 신비화되며, 자본 관계의 내부 유기체에 갈무리된 본질적 비밀은 더욱 은폐된다.

 

본 장에서는 이윤율이 잉여 가치율과 수치상으로 상이하게 나타나는 반면, 이윤과 잉여 가치는 그 형태만이 다를 뿐 수치상으로는 동등하다고 간주한다. 다음 편에서는 자본 관계의 물신화가 더욱 심화됨에 따라, 이윤이 수치상으로도 잉여 가치와 불일치되는 국면을 고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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