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을 증명하는 예들

 

. 1846-1866년의 잉글랜드

 

근대 자본주의적 축적 연구에서 이 20년간(1846-1866)만큼 유리한 시기는 없다. 이는 곧 포르투나투스의 보물 주머니 발견에 비견될 만하다 (‘인명해설참조). 그중 잉글랜드는 다시 고전적 사례를 제시한다. 잉글랜드는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이 온전히 발달한 유일한 곳이다.

 

더욱이, 1846년 곡물법 폐지로부터 자유 무역의 도래는 속류 경제학의 마지막 도피로를 차단했다 (속류 경제학은 자유 무역만으로 노동자 계급의 상태가 급격히 개선되리라 선전한 바 있다). 20년 중 후반 10년간의 생산 발전 속도가 전반 10년을 압도적으로 능가했음은 이미 제4편에서 충분히 논한 바 있다.

 

최근 반세기 동안, 잉글랜드 인구의 절대적 증가는 현저했지만, 그 상대적 증가, 곧 연평균 증가율은 공식 인구 조사의 다음 표에서 보듯, 지속적인 하락세를 나타낸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인구의 10년 단위 연평균 증가율

 

1811-1821: 1.533%

1821-1831: 1.446%

1831-1841: 1.326%

1841-1851: 1.216%

1851-1861: 1.141%

 

이와 대조적으로, 부의 증대를 고찰한다. 여기서 가장 신뢰할 만한 근거는 소득세 부과 대상인 이윤 및 지대의 변동이다. 1853-1864년 사이 영국의 과세 대상 이윤(차지 농업가와 일부 범주는 제외) 증가는 50.47%에 달했다 (연평균 4.58%). 이는 같은 기간 인구 증가율 약 12%와 크게 대비된다. 과세 대상 지대(가옥, 철도, 광산, 어장 등 포함)의 증가는 1853-1864년 사이 38%였으며 (연평균 3.45%), 특히 다음 항목들의 증가 폭이 두드러진다.

 

1853년에 대비한 1864년의 연간 지대 소득

 

· 가옥: 총증가율(%): 38.60, 연평균 증가율(%): 3.50

· 채석장: 총증가율: 84.76, 연평균 증가율: 7.70

· 광산: 총증가율: 68.85, 연평균 증가율: 6.26

· 제철소: 총증가율: 39.92, 연평균 증가율: 3.63

· 어장: 총증가율: 57.37, 연평균 증가율: 5.21

· 가스공장: 총증가율: 126.02, 연평균 증가율: 11.45

· 철도: 총증가율: 83.29, 연평균 증가율: 7.57

 

1853년부터 1864년까지의 기간을 4년 단위 세 구간으로 구분해 보면, 소득 증가율의 지속적인 증대가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이윤 발생 소득의 증가율은 1853-1857년 연 1.73%, 1857-1861년 연 2.74%, 그리고 1861-1864년 연 9.30%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잉글랜드의 소득세 부과 대상 총소득은 다음과 같다.

 

잉글랜드의 소득세 부과 대상 총소득

 

1856: 307,068,898파운드

1859: 328,127,416파운드

1862: 351,745,241파운드

1863: 359,142,897파운드

1864: 362,462,279파운드

1865: 385,530,020파운드

 

자본의 축적은 집적과 집중을 동시에 수반했다. 공식 농업 통계가 없는 잉글랜드와 달리 아일랜드에는 존재하지만, 잉글랜드의 10개 주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1851년에서 1861년 사이 100에이커 미만 차지 농장 수가 31,583개에서 26,567개로 감소했다. 이는 5,016개의 차지 농장이 대규모 농장으로 합병되었음을 의미한다.

 

상속세 부과 동산의 경우, 1815-1825년에는 100만 파운드 이상이 한 건도 없었으나, 1825-1855년에는 8, 1855년에서 18596월까지 4년 반 동안은 4건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자본의 집중 경향은 1864년과 1865년의 소득세표 D항 분석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D항은 차지 농업가 등을 제외한 이윤을 다룬다). 우선 D항 소득세는 해당 원천 소득 중 60파운드 이상인 모든 소득에 부과된다.

 

잉글랜드, 웨일즈 및 스코틀랜드의 과세 대상 소득은 186495,844,222파운드에서 1865105,435,787파운드로 증가했다. 납세자 수는 1864년 총인구 23,891,009명 중 308,416명이었고, 1865년에는 총인구 24,127,003명 중 332,431명으로 늘었다. 다음 표는 이 2년간의 소득 분포 상태를 제시한다.

 

이윤 소득 분포

 

186445일 마감

 

· 납세자의 누적: 308,416, 이윤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95,844,222

· 납세자의 누적: 22,334, 이윤소득의 누적: 57,028,290

· 납세자의 누적: 3,619, 이윤소득의 누적: 36,415,225

· 납세자의 누적: 832, 이윤소득의 누적: 22,809,781

· 납세자의 누적: 91, 이윤소득의 누적: 8,744,762

 

186545일 마감

 

· 납세자의 누적: 332,431,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105,435,787

· 납세자의 누적: 24,075,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64,554,197

· 납세자의 누적: 4,021,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42,535,576

· 납세자의 누적: 973,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27,555,313

· 납세자의 누적: 107,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11,077,238

 

영국에서 생산된 석탄

 

1855: 61,453,079, 16,113,267파운드

1864: 92,787,873, 23,197,968파운드

 

선철 생산

 

1855: 3,218,154, 8,045,385파운드

1864: 4,767,951, 11,919,877파운드

 

철도

 

1854

 

· 연장(延長): 8,054마일

· 불입 자본: 286,068,794파운드

 

1864

 

· 연장 12,789마일

· 불입 자본: 425,719,613파운드

 

영국 수출입 총액

 

1854: 268,210,145파운드

1865: 489,923,285파운드

 

수출 증가 표

 

1847: 58,842,377파운드

1849: 63,596,052파운드

1856: 115,826,948파운드

1860: 135,842,817파운드

1865: 165,862,402파운드

1866: 188,917,536파운드

 

이상의 통계는 영국 호적청장의 다음 승리의 환호성을 납득하게 한다.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공업과 부의 발전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이 공업의 직접적인 담당자, 곧 이 부의 생산자인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고찰한다. 글래드스턴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현재 국민의 소비력은 줄고, (노동자 계급의) 궁핍과 빈곤은 커지고 있는데, 이와 동시에, 상층 계급의 부는 끊임없이 축적되고 그들의 사치 풍조와 향락 수단은 증가하고, (자본은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은 이 나라 사회 상태의 가장 암울한 현상들 중의 하나이다.’

 

감동한 듯한 이 장관은 1843213일 하원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20년 후인 1863416, 그는 예산안 제안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1842년부터 1852년까지 이 나라의 과세 대상 소득은 6% 증가했다. 1853년부터 1861년까지 8년간은 1853년 대비 20% 증가해 그 증가 폭은 놀라움을 넘어 거의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압도적인 부와 권력의 증대는 전적으로 재산 소유자 계급에 국한되지만, 일반 소비재 가격 하락으로부터 노동 인구에게 간접적 이익을 가져옴은 분명하다.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졌고, 가난한 자는 덜 가난해진 상태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빈곤이 실제로 감소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감히 단언하기 어렵다.’

 

이 결과는 용두사미격이다! 노동자 계급이 여전히 가난하며, 재산 소유자 계급을 위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를 생산해냈음에도, ‘덜 가난해진 데 불과하다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종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가난하다. 극단의 빈곤이 감소하지 않았다면, 극단의 부가 증대했으므로, 그것은 오히려 증대한 것이다.

 

(결국 이는 상대적 빈곤의 심화를 의미한다.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자본의 축적 증대가 노동자 계급의 실질적 해방이나 현저한 물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계급 간 부의 격차만을 더욱 벌려놓았다는 사실을 글래드스턴의 고백은 역설적으로 확증한다.)

 

생활 수단 가격 하락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공식 통계, 예를 들어, 런던 고아원의 자료를 보면, 1860-18623년간의 평균 가격은 1851-18533년간 대비 20% 등귀했다. 그 다음 3(1863-1865) 동안에도 육류, 버터, 우유, 설탕, 소금, 석탄, 기타 다수의 생활 필수품 가격은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그럼에도, 186447일 글래드스턴의 예산안 제안 연설은 잉여 가치 착취의 진전과 빈곤으로부터 경감된국민의 행복에 대한 핀다로스풍의 열렬한 찬가였다. 그는 구호 대상 극빈자로 될 지경에 있는대중과, ‘임금이 오르지 않은생산 부문들을 언급하면서도, 결국 노동자 계급의 행복을, ‘인생이란 십중팔구는 생존 투쟁에 불과하다.’는 말로 요약했다.

 

글래드스턴과 달리 공적 입장에서 자유로운 포세트 교수는 노골적으로 실상을 토로한다.

 

나는 물론 자본의 증대, (최근 10년간)에 따라 화폐 임금도 올랐음을 부인하지 않으나, 이 외견상의 이득은 대부분 상실되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생활 필수품의 값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이는 귀금속의 가치 하락에 기인한다.) 부자들은 급속하게 더 부유해지는 반면, 근로 계급의 생활에는 눈에 띄는 개선이 조금도 없다.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소매상들의 노예에 가깝게 되고 있다.’

 

영국 노동자 계급이 재산 소유자 계급을 위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를 창출한 구체적인 조건은 이미 노동일기계장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그 논의는 주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노동자에 초점을 맞춘다. 자본주의적 축적 법칙을 완전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작업장 밖의 노동자의 실태, 곧 이들의 식생활과 주거 조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여기서는 노동자 계급의 대다수를 이루는 공업 프롤레타리아트와 최저 임금을 받는 농업 노동자에 한정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먼저, 공인된 극빈자, 곧 노동자 판매라는 생존 조건을 박탈당하고, 사회적 구호금에 의존하는 계급을 먼저 논의한다.

 

잉글랜드의 공인된 극빈자 수는 1855851,369, 1856877,767, 1865971,433명을 기록했다. 면화 기근의 여파로 이 수는 18631,079,382명과 18641,014,978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런던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준 1866년 공황은 (스코틀랜드보다 주민이 많고, 세계 시장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극빈자 수를 1866년에 1865년 대비 19.5%, 1864년 대비 24.4% 증가시켰으며, 1867년 첫 몇 개월 동안 그 증가세는 더욱 가속화했다. 이러한 극빈자 통계 분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핵심 사항이 부각된다.

 

, 한편으로, 극빈자 수의 증감은 산업 순환의 주기적 변동을 나타낸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 축적과 더불어 계급 투쟁 및 노동자 계급 의식이 발전하면서, 공식 통계는 극빈자의 실제 규모를 점차 왜곡한다. 가령, 최근 2년간 영국 신문들(더 타임즈,팔말 가제트)이 크게 떠들어댄 극빈자 처우의 야만성은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엥겔스는 1844년에도 동일한 잔혹 행위와 선동적인 출판물의 일시적이며 위선적인 비난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최근 10년간 런던에서 굶어 죽은 사람 수가 소름 끼치게 증가한 일은 노동자들이 구빈원, 빈민 형무소의 노예 상태를 극도로 공포하여 수용되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일을 택하는 현실을 명백히 증명한다.

 

. 저임금 공업 노동자 실태

 

이제 공업 노동자 계급 중 최저 임금층으로 논의를 전환한다. 1862-1863년 면화 기근 당시, 추밀원은 E. 스미스에게 랭커셔와 체셔의 궁핍한 면공업 노동자들의 영양 상태 조사를 위임했다.

 

스미스는 다년간의 관찰로부터, ‘굶주림으로 인한 질병 예방을 위한 최소 영양 기준을 이미 설정했다. 이 기준은 여성 노동자의 1일 식사에 최소 3,900그레인(253g)의 탄소와 180그레인(12g)의 질소를 요구하며, 남성 노동장에게는 최소 4,300그레인(279g)의 탄소와 200그레인(13g)의 질소를 필요로 한다. 이는 여성에게 질 좋은 밀가루 빵 2파운드(907g)에 해당하는 영양분과 같고, 남성은 그보다 1/9이 더 요구됨을 의미한다. 성인 남녀의 주당 평균 최소 필요량은 28,600그레인(1,853g)의 탄소와 1,330그레인(86g)의 질소이다.

 

이 계산된 수치는 빈궁으로 인해 소비가 저하된 면공업 노동자들의 실제 식사량과 정확히 일치했다. 186212, 그들은 주당 29,211그레인(1,893g)의 탄소와 1,295그레인(84g)의 질소를 섭취하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계산을 사실로 확증한다.

 

1863, 추밀원은 영국 노동 계급 중 영양 상태가 가장 취약한 층의 비참한 실태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다. 추밀원 의무관 사이먼은 이 임무에, 앞서 언급된 E. 스미스를 선임했다. 스미스의 조사는, 한편으로는 농업 노동자를, 다른 한편으로는 견직공, 여성 재봉공, 가죽장갑공, 양말공, 장갑 편직공, 제화공을 포괄했다. 후자 집단은 양말공을 제외하면 전적으로 도시 거주자들이다. 이 조사의 기준으로 삼은 대상은 각 부류에서 가장 건강하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가족들이었다. 이 조사의 전체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조사된 도시 노동자 부류 중, 질소 섭취량이 굶주림으로 인한 질병 발생의 절대적 최저 한도를 다소 초과하는 집단은 단 한 부류에 불과했다. 또 다른 한 부류는 겨우 최저 한도에 도달했으며, 나머지 두 부류는 질소성 및 탄소성 식사 모두 부족했고, 그중 한 부류는 대단히 부족했다. 농업 인구의 경우, 1/5 이상이 필요량 이하의 탄소성 식사, 1/3 이상이 필요량 이하의 질소성 식사를 하고 있었다. 특히 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셋셔 세 개 주에서는 질소성 식사의 최저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일반적 현상이었다.’

 

농업 노동자 중 영국 내 가장 부유한 지역인 잉글랜드의 노동자 영양 상태가 가장 불량했다. 농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영양 부족은 주로 부인과 아이들에게 집중되었는데, 이는 성인 남자는 노동을 위해 반드시 섭취해야 했기때문이다. 조사 대상 도시 노동자 부류에서는 결핍의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그들의 영양은 대단히 불량하여 다수의 경우, 비참하고, 건강을 해치는 궁핍 상태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이 모든 것은 자본가의 절욕’, 곧 노동자들이 겨우 연명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활 수단 지급마저 회피하는 데서 기인한다.)

 

상기 표는 순수 도시 노동자 부류(남녀 모두)의 영양 상태를, 스미스가 인정한 최저 한도 및 면공업 노동자들의 최빈곤기 영양 상태와 대비해 제시한다.

 

주당 평균 탄소 섭취량(단위: 그레인)

 

· 5부문의 도시 노동자: 28,876

· 랭커셔의 실업 노동자: 29,211

· 랭커셔 노동자의 최저 필요량: 28,600

 

주당 평균 질소 섭취량(단위: 그레인)

 

· 5부문의 도시 노동자: 1,192

· 랭커셔의 실업 노동자: 1,295

· 랭커셔 노동자의 최저 필요량: 1,330

 

조사된 공업 노동자 부류의 절반, 60/125이 맥주를 전혀 섭취하지 않으며, 28%는 우유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 가족 단위 액체 영양물의 주당 평균 소비량은, 여성 재봉공의 7온스에서 양말공의 24.75온스에 이르기까지 편차를 보였다. 우유를 전혀 마시지 않는 다수는 런던의 여성 재봉공들이다. 매주 소비되는 빵의 양은 여성 재봉공의 7.75파운드부터 제화공의 11.25파운드까지 다양했으며, 성인의 총 평균 소비량은 주당 9.9파운드를 기록했다.

 

설탕(당밀 등) 소비량은 가죽 장갑공의 주당 4온스에서 양말공의 11온스까지 다양했으며, 모든 부류의 총 평균은 성인 1명당 매주 8온스를 기록했다. 버터류(지방 등)의 매주 총 평균량은 성인 1명당 5온스였다. 육류(베이컨 등)의 매주 평균량은 성인 1명당 견직공의 7.25온스부터 가죽 장갑공의 18.25온스까지 폭넓게 분포했으며, 각종 부류들의 총 평균량은 13.6온스였다.

 

성인 1명당 매주 평균 식사비용

 

· 견직공: 2실링 2.5펜스

· 여성 재봉공: 2실링 7펜스

· 가죽 장갑공: 2실링 9.5펜스

· 제화공: 2실링 7.75펜스

· 양말공: 2실링 6.25펜스

 

매클즈필드의 견직공의 평균 비용은 주당 불과 1실링 8.5펜스에 그쳤다.

 

영양이 가장 불량했던 부류는 여성 재봉공, 견직공, 가죽 장갑공이었다. 사이먼은 이러한 영향 사태에 대해 그의보건에 관한 종합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영양 부족이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은 구빈법의 의료 사업이나 병원 환자의 사정(입원 환자든 외래 환자든)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요소인 위생의 관점이 추가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음식물 궁핍은 의복, 연료 부족과 같은 온갖 다른 궁핍이 먼저 나타난 뒤에야 뒤따른다. 그러므로 음식물 결핍을 감수하는 일은 최후의 궁핍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영양 부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훨씬 전, 그리고 생리학자가 삶과 굶어 죽음의 경계선이 되는 질소와 탄소의 소비량을 계산해야겠다고 생각하기 훨씬 전에 이미 살림살이의 모든 물질적 위안은 소멸한다. 의복과 연료는 음식물보다 더 부족하여 혹한을 충분히 막아낼 수 없다. 거주 면적은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정도로 협소하며, 가구는 거의 남지 않고, 청소하는 일조차 사치이거나 어려운 일이 된다. 비록 자존심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려 해도, 그 모든 시도는 굶주림의 고통만 더욱 심하게 할 뿐이다. 주택은 가장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한다. 이 구역들은 위생 단속이 거의 무력하며, 하수도가 불량하고, 교통이 불편하며, 오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급수 상태가 아주 나쁘거나 거의 급수되지 않는 곳이다. 도시 주택이라면 햇빛과 공기가 극히 부족한 구역에 위치한다. 음식물이 부족할 정도의 빈궁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위생상의 위험을 동반한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생명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지만, 영양 부족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빈궁이 게으름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모든 경우, 이는 노동 인구 전체의 빈궁이다. 사실, 도시 노동자들이 얼마 안 되는 음식물을 얻기 위해 하는 노동은 대체로 지나치게 장시간에 걸친다. 노동으로 자활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극히 제한된 의미에서만 성립한다. 대체로 이 명목상의 자활은 길든 짧든 구호 빈민 상태에 이르는 우회로일 따름이다.’

 

근면한 노동자층의 굶주림 고통과 자본주의적 축적에 토대를 둔 부자들의 조잡하거나 세련된 낭비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은 오직 경제 법칙으로부터만 해명된다. 빈민들의 주택 문제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공정한 관찰자라면 누구나 인정하듯, 생산 수단의 집중이 심화될수록, 노동자들은 일정한 공간에 더욱 밀집되고, 자본주의적 축적 속도가 빠를수록, 노동자들의 주택 사정은 그만큼 더 비참해진다.

 

부의 증대에 수반되는 도시의 개량’, 곧 불량 주택 지역 철거, 궁전 같은 은행과 백화점 건설, 영업용 운송 수단 및 사치 마차·전차 도입을 위한 도로 확장은 빈민들을 더욱 불결하고 비좁은 빈민굴로 내쫓는다. 다른 한편으로, 주택 투기꾼들은 집세를 그 질에 반비례해 비싸게 책정하며, 빈곤이라는 광산을 포토시의 은 광산 채굴보다 더 많은 이윤과 적은 비용으로 채굴한다. 자본주의적 축적, 나아가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일반의 적대적 성격은 이 문제에서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주택 사정에 관한 영국의 공식 보고서들조차 소유와 소유권에 대한 비판적 공격으로 가득 차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폐해는 공업 발전, 자본 축적, 도시의 발달 및 개량과 더불어 폭넓게 확산되었다. 그 결과, ‘상류 사회에까지 예외 없이 전파되는 전염병에 대한 단순한 공포심이 1847년에서 1864년 사이 10개 이상의 위생 법규를 의회에서 탄생시켰다.

 

리버풀, 글래스고 등 일부 도시의 공포에 질린 중간 계급은 시 당국에 강력한 조치를 촉구했다. 하지만 사이먼은 1865년 보고에서, ‘일반적으로 말해, 이 폐해는 영국에서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추밀원의 명령에 따라, 1864년에는 농촌 노동자, 1865년에는 도시 하층 빈민 계급의 주택 사정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공중 보건에 관한 제7(1865)와 제8차 보고(1866)에는 헌터의 탁월한 연구 성과가 담겨 있다. 농촌 노동자 문제는 후술하고, 도시의 주택 사정에 대해 필자는 사이먼의 다음 일반적 의견을 먼저 인용한다. 그의 발언은 이렇다.

 

본인의 공적 견해는 오로지 의사로서의 것이지만, 보통 사람으로서도 이 죄악의 다른 측면을 외면할 수 없다. 집이 사람으로 초만원이 되는 정도가 심화되면, 이는 거의 필연적으로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과 같은 상태를 초래한다. 예의범절은 무시되고, 육체와 육체적 기능은 불결하게 뒤섞이며, 발가벗겨져 치부(恥部)까지 드러난다. 이러한 영향 자체가 타락이며, 타락한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그 정도도 더욱 심화된다. 이 저주스러운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 타락은 곧 그릇된 행위를 위한 세례와 다름없다. 또한 이러한 환경에 처한 인간이 육체적·도덕적 순결을 본질로 하는 문명의 분위기를 다른 측면에서 열망하기란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이다.’

 

인간이 살아가기에 절대적으로 부적합한 초만원 상태의 주거라는 점에서 런던이 단연 제1위를 차지한다. 헌터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명확히 밝힌다.

 

첫째, 런던에는 각각 약 10,000여 명의 주민을 수용하는 약 20개의 대규모 주거 지역이 존재하며, 그 참담한 상태는 잉글랜드 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상태는 거의 전적으로 가옥 설비의 불량에서 기인한다. 둘째, 이 주거 지역들의 가옥이 초만원이 되고 낡아버린 상태는 20년 전보다도 훨씬 더 악화되었다. 런던과 뉴캐슬의 일부 지역 생활은 지옥과 같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런던에서는 개량이 진행되고, 낡은 거리와 가옥들이 철거됨에 따라, 그리고 공장들이 신설되고, 인구 유입이 증가함에 따라, 끝으로, 도시 지대 상승으로 집세가 인상됨에 따라, 노동자 계급 중 비교적 처지가 나은 부분조차 소매상과 하층 중간 계급과 함께 이 불결한 주택 사정의 재앙 속으로 점차 편입되고 있다.

 

집세는 엄청나게 비싸서, 방 한 칸 이상을 빌릴 수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런던에 있는 주택 중 다수의 중개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집은 거의 없다. 런던의 토지 가격은 언제나 그 연간 수입 대비 매우 높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토지 구매자들은 구입한 토지를 감정 가격’(토지 수용 시 감정관이 매기는 가격)으로 되팔기 위한 투기를 하거나, 또는 인근에 대기업이 들어설 때 발생하는 토지 가격의 투기적 상승을 노리고 투기를 감행한다. 그 결과,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임대 계약을 사들이는 일이 정규적인 거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거래에 종사하는 이들(투기꾼)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방식을 앞으로도 지속하리라는 것이다. , 집을 소유하는 동안, 세든 사람들에게서 최대한 많이 짜내고, 다음 세입자들을 위해서는 (가구 등을) 최대한 적게 남겨두는 형태가 반복된다.’

 

집세는 매주 지불되므로, 이들 신사들에게는 전혀 위험 부담이 없다. 런던의 시티(금융 중심지)에 철도가 부설한 결과, (다음과 같은 비참한 실상이 목격되었다.)

 

최근 어느 토요일 저녁, 런던의 동부에서 여러 가족들이 자기들의 보잘것없는 세간살이들을 등에 짊어진 채, 구빈원 이외에는 아무데도 갈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는 일을 볼 수 있었다.’

 

구빈원들은 이미 만원 상태였으며, 의회가 승인한 개량작업은 겨우 착수 단계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은 거주하던 옛집이 철거되어 쫓겨나더라도 자신들의 교구를 포기하지 않거나, 멀리 이사하더라도, 그 가장 가까운 교구로 이동한다.

 

이들은 당연히 최대한 일터와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 노력한다. 그들은 두 칸짜리 셋방을 포기하고, 한 칸짜리 셋방에 들면서, 더욱 비좁게 살지라도, 같은 교구나 이웃 교구를 벗어나지 않는다. 더 많은 집세를 지불해도, 그전의 초라한 셋방만큼의 공간조차 얻을 수 없는 실정이다. 스트랜드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50%는 이제 작업장까지 2마일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외국인들에게 런던 부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주요 거리인 스트랜드는 런던의 인구 밀집 현상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공중 위생 관리의 계산에 따르면, 스트랜드의 한 교구 인구는 템즈 강폭의 절반이 교구에 포함됨에도, 에이커당 581명이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채택된 공중 위생 개선 조치들은 살기에 부적당한 집들을 철거하면서, 노동자들을 한 구역에서 쫓아내고, 그 결과, 다른 구역을 그만큼 더 조밀하게 했을 뿐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헌터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이 모든 조치는 불합리한 것이므로, 반드시 중지되어야 한다. 또는 이제 과장 없이 국민적 의무라고 부를 수 있는 의무, 곧 자금 부족으로 자기 힘으로 집을 살 수는 없으나 정기적으로 집세는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집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 사회적 동정심(!)이 반드시 환기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탄할 만한 자본주의적 정의이다! 토지 소유자, 집 주인, 사업가는 철도 부설, 도로 신설 등 개량으로 인해 수용될 때, 충분한 보상을 받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의무적인 절욕에 대해 신과 인간의 법으로부터 엄청난 이윤으로 위안받아야만 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처자와 소지품과 함께 거리로 내쫓기며, 그들이 (지방 자치 당국이 예의를 강조하는) 특정 지역으로 큰 무리를 지어 몰려 들어가면, 공중 위생의 이름 아래 기소당한다!

 

19세기 초, 잉글랜드에서 주민 100,000명 이상 도시는 런던 한 곳뿐이었고, 50,000명 이상 도시는 다섯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그 수가 28개에 달한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 도시 인구는 급증했을 뿐 아니라, 이전의 조밀했던 소도시들 역시 사방에 건물이 가득 들어차 신선한 공기가 통할 수 없는 중심지로 변모했다. 이 도시들은 이제 부유층에게 쾌적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며, 그들은 이곳을 버리고 더욱 상쾌한 교외로 이주한다. 부유층이 떠난 자리는 빈곤층이 차지하며, 그들은 크기는 하지만 자신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집에서 한 가족이 한 방씩 사용하고, 흔히 가족 외에 두세 명의 하숙인을 더 들인다. 그들을 위해 건축되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주택으로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그 환경은 성인에게는 타락으로, 아동에게는 파멸로 인도한다.’

 

어떤 공업 도시나 상업 도시에서 자본이 급속히 축적될수록, 착취할 인간 재료는 그만큼 더 빠르게 밀려들어오며, 갑자기 세워진 노동자들의 주택은 그만큼 더 비참해진다. 생산이 점진적으로 증대하는 석탄·제철 지방의 중심지인 뉴캐슬--타인은 주택 지옥이라는 점에서 런던 다음으로 제2위를 차지한다. 그곳에서는 단칸방 살림을 하는 사람이 34,000명 이상이다.

 

최근 뉴캐슬과 게이츠헤드에서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절대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많은 가옥이 당국으로부터 철거되었다. 가옥의 신축은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지만, 공업은 매우 빠르게 발전한다. 그 때문에, 이 도시는 1865년에 종전 어느 때보다 인구가 조밀해졌고, 방 한 칸조차 빌릴 수 없었다. 뉴캐슬 열병 병원의 의사인 엠블턴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티푸스가 지속적으로 만연하는 주된 원인은 사람들의 밀집과 주택의 불결함에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거주하는 가옥은 비좁고 불결한 뒷골목이나 울타리 안에 있으며, 햇빛, 공기, 청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불충분하고 비위생적인 것의 표본이며, 문명 사회의 치욕이다. 거기에서는 밤에 남녀와 아동 모두가 뒤섞여 잠을 잔다. 남자들의 경우, 주간 교대 근무자와 야간 교대 근무자가 끊임없이 서로 교대하기 때문에 침대가 식을 사이가 없다. 그 가옥은 급수가 잘 안 되며, 변소는 더욱 불결하고, 환기가 되지 않아 전염병이 발생하기 쉬운 상태이다.’

 

이처럼 열악한 주택의 집세는 주 8펜스에서 3실링에 달한다. 헌터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뉴캐슬 언 타인은 우리 동포 중 가장 우량한 종족의 하나가 주택이나 거리와 같은 외부적 사정으로 인해 거의 야만 상태에까지 타락하고 있는 하나의 실례를 보여준다.’

 

자본이 급속히 축적되는 공업·상업 도시에서는 착취할 인간 재료가 그만큼 빠르게 유입되며, 급조된 노동자 주택은 그만크 비참해진다. 자본과 노동의 유출입으로 인해 공업 도시의 주택 환경은, 오늘은 견딜 만해도 내일은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시 당국이 최악의 폐해를 제거하려 노력할지라도, 곧 누더기를 걸친 아일랜드인이나 몰락한 잉글랜드 농업 노동자들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든다. 이들은 지하실이나 다락으로 들어가거나, 기존 노동자 가옥을 여인숙으로 변질시키는데, 거주자 교체 속도는 30년 전쟁 당시 민간 막사의 병사 교대만큼이나 급속하다.

 

요크셔 브래드퍼드가 한 예이다. 시 당국의 속물들이 도시 개량에 몰두했음에도, 1861년에는 아직 1,751채의 빈집이 존재했다. 그러나 온건파 자유당원이자 흑인 노예의 벗인 포스터가 감격해 마지않던 호경기가 도래하자, 끊임없이 유입되는 예비군상대적 과잉 인구물결로 홍수를 맞았다. 헌터가 보험 회사 대리인으로부터 입수한 표에 등록된 소름 끼치는 지하실과 방들은 대개 고임금 노동자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더 나은 집이 있다면 기꺼이 빌리겠다고 했으나, 그 와중에 이 노동자들은 예외 없이 타락하고 병들어갔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회 의원인 온건파 자유당원 포스터가 자유 무역의 축복과 브래드퍼드 명사들이 양모업에서 얻는 이윤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86595일자 보고서에서 브래드퍼드의 구빈 의사인 벨은 담당 구역의 열병 환자 무서운 사망률이 주택 사정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1,500입방피트의 좁은 지하실에서 10명이 거주한다. 빈센트 스트리트, 그린 에어 프레이스, 리즈에는 1,450명의 주민이 435개의 침대와 36개의 변소를 가진 223채의 집에 밀집되어 있다. 침대 하나(더러운 누더기나 대패 밥 포함)에 평균 3.3, 때로는 5-6명이 잠을 자며, 심지어 침대가 없는 이들도 있다. 젊은 남녀들이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없이 옷을 입은 채 방바닥에 한데 겹쳐 잠자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주택들이 대개 컴컴하고, 습기 차고,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 살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누추한 구멍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가 있겠는가. 병과 죽음은 바로 이 집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훨씬 나은 환경의 부유층에게까지 전파되는데, 이는 부유층이 이런 폐해가 우리 도시 한가운데서 곪아 터지도록 방치했기 때문이다.’

 

주택 사정이 비참하다는 면에서, 런던 다음으로 제3위를 차지하는 곳은 브리스틀이다.

 

유럽의 가장 부유한 도시인 브리스틀에 극심한 빈곤과 비참한 주택 사정이 너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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