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잉여 가치율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 공식

 

이미 본 바와 같이, 잉여 가치율은 다음과 같은 공식들로 표시된다.

 

. 잉여가치(s) / 가변 자본(v) = 잉여 가치 / 노동력의 가치 = 잉여 노동 / 필요 노동

잉여 가치율의 또 다른 파생 공식은 잉여 가치(s) / 노동력의 가치 총합으로 표시되는데, 이는 잉여 가치와 가변 자본(v)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관계는 잉여 노동 시간 / 필요 노동 시간이라는 시간의 비율로도 표현한다. , 가치 비율과 시간 비율은 동일한 실체를 상이한 측정 단위로 나타낼 뿐이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이 공식들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그 내용적 기반을 확립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공식들은 잉여 가치와 노동력의 본질적 관계를 밝히는 데 있어 가장 엄밀하고 전문적이다.

 

. 잉여 노동 / 노동일 = 잉여 가치 / 생산물의 가치 = 잉여 생산물 / 총 생산물

 

불변 부분의 제외는 이 공식들이 오직 노동력으로부터 새로이 생산된 가치 생산물(v+s)만을 전체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 비율은 노동일 전체에 대한 잉여 노동 시간의 비율이며, 동시에 새로운 가치 중 잉여 가치가 점유하는 비중을 나타낸다. 이 점은 오로지 가변 자본(v)에 대해서만 잉여 가치를 측정하여 착취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제1의 공식과 개념적으로 구별된다. 여기서는 잉여 가치와 생산된 가치 총량 사이의 관계가 시간, 가치, 생산물이라는 세 가지 모습으로 동일하게 표현된다.

 

2의 공식들에서 잉여 가치율이 잘못 표현되는 이유는 그 분모가 노동일 전체, 새로 생산된 가치 총합, 또는 총 생산물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 잉여 가치율을 6시간의 잉여 노동 / 12시간의 노동일을 표시하면 50%가 되며, 3원의 가치 / 6원의 생산물 가치로 표시해도 50%가 된다. 50%라는 수치는 자본가가 노동력에 지출한 가변 자본에 대비하여 잉여 가치를 얼마나 착취했는지, 다시 말해, 필요 노동 대비 잉여 노동의 비율을 100%로 보여주는 본래의 착취도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이 파생 공식들(.)은 착취도를 감추거나 축소하는 효과를 낳는다.

 

6시간의 잉여 노동 / 6시간의 필요 노동 = 3원의 잉여 가치 / 3원의 가변 자본 = 100%

 

그런데 공식 .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된다.

 

6시간의 잉여 노동 / 12시간의 노동일 = 3원의 잉여 가치 / 6원의 가치 생산물 = 50%

 

이러한 100% 상한이라는 그릇된 법칙은 자본의 착취도를 필연적으로 은폐한다. 잉여 가치(s)는 가변 자본(v)을 얼마든지 초과하여 증가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잉여 가치율(s/v)100% 이상으로 상승한다. 그러므로 노동일 또는 가치 생산물의 분할 비율(s / [v+s])을 자본의 자기 증식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윤 창출의 본질적 동력을 왜곡하는 행위이다. 오직 제1의 공식(s/v)만이 가변 자본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로부터 자본의 노동 지배 정도를 정확하고 엄밀하게 나타낸다.

 

그러므로 잉여 가치율(s/v)만이 자본의 착취율을 100%를 넘어 300%(3:1)까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이다. 잉여 노동/노동일 공식(s/[v+s])은 잉여 노동이 필연적으로 노동일 전체의 부분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한계에 갇히게 된다. 잉여 노동이 노동일과 같아지려면 필요 노동이 영(0)이 되어야 하지만, 잉여 노동 자체가 필요 노동을 전제로 성립하는 기능이기에 필요 노동의 소멸은 곧 잉여 노동의 소멸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2의 공식은 100%를 초과할 수 없으며, 자본의 자기 증식도를 은폐하는 분할 비율의 표현에 불과하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이 노동일을 불변의 크기로 전제하는 방법은 공식 .의 사용에서 비롯되었다. 이 공식은 잉여 노동을 언제나 고정된 길이의 노동일이라는 전체 크기에 대비시키기 때문이다. 가치 생산물의 분할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에도, 그 대상인 가치 생산물은 이미 일정한 길이를 가진 노동일의 대상화된 형태이므로, 착취도가 가변 자본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s/v)이 아닌, 노동일 총량에 대한 잉여 노동의 비율(s/[v+s]로 오인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이는 노동일을 분배해야 할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게 하여, 자본의 자기 증식이라는 본질적 성격을 은폐하고, 착취도를 축소하여 표현한다.

 

이처럼 잉여 가치(s)와 노동력의 가치(v)를 가치 생산물(v+s)의 부분들로 표현하는 방식은 가변 자본이 살아 있는 노동력과 교환되는 자본 관계의 본질적인 특성을 은폐한다. 이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생산물 형성에 기여한 몫을 상호 분배하는 협력적 연합인 것처럼 잘못된 외관을 씌운다. 결과적으로, 잉여 가치가 가변 자본의 착취로부터 생선된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대신, 생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단순한 분배 문제로 위장하며, 노동자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라는 독특한 자본 관계를 흐리게 한다.

 

이와 같이, 공식 (s/v) 또한 공식 (s/(v+s)로 다시 전환될 수 있다.

 

6시간의 잉여 노동 / 12시간의 노동일

 

필요 노동 시간은 12시간의 노동일에서 6시간의 잉여 노동을 뺀 것이므로,

 

6시간의 잉여 노동 / 6시간의 필요 노동 = 100 / 100

 

곧 잉여 가치 / 가변 자본이라는 비율은 분모에 잉여 가치를 더하여 잉여 가치 / 가치 생산물이라는 비율로 표현된다. 다만, 이러한 수학적 전환에도, 잉여 가치율의 개념적 엄밀성은 오직 가변 자본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로부터 노동력의 착취도를 직접 폭로하는 공식 (s/v)에 있다. 공식 (s/(v+s)는 단지 가치 생산물의 분할 비율을 나타낼 뿐이며, 착취율을 100% 미만으로 왜곡하여 자본의 자기 증식도를 은폐하는 한계를 지닌다.

 

세 번째의 공식들은 필자가 이미 보였듯이, 다음과 같이 표시된다.

 

. 잉여 가치(s) / 노동력 가치(v) = 잉여 노동 / 필요 노동 = 지불받지 않는 노동 / 지불받는 노동

 

세 번째 공식 지불받지 않는 노동 / 지불받는 노동은 잉여 노동 / 필요 노동의 일반적 표현임에도, 자본가가 노동력이 아닌 노동 자체에 대해 임금을 지불한다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 오해는 자본가가 노동력의 가치에 상응하는 가변 자본을 지불하면서 살아 있는 노동력에 대한 처분권을 획득한다는 사실로부터 제거된다. 자본가는 이 노동력을 필요 노동 시간에는 노동력의 등가 가치를 생산하는 데 사용하며, 이는 시장에서 상품을 제값 주고 구입하는 일에 다름없다. 반면, 잉여 노동 시간에는 대가 없이 노동력의 사용을 획득하여 자신을 위한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이처럼 잉여 노동은 무상으로 획득된 노동력의 지출이라는 점에서 지출받지 않는 노동(무산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러한 잉여 노동에 대한 처분권은 자본의 자기 증식을 하는 유일한 원천이다. 자본가가 노동력의 가치에 상응하는 가변 자본을 지불하는 행위는 살아 있는 노동력이라는 사용 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획득된 노동력은 필요 노동 시간을 넘어 잉여 노동 시간에까지 연장되어 자본가를 위해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잉여 가치는 시장에서 교환이나 단순한 분배 문제가 아니며, 생산 과정에서 타인의 노동 시간을 대가 없이 착취하는 본질적 원리로 귀결된다. 이로부터 자본과 노동 관계는 생산물을 분배하는 협력이 아닌, 지불받지 않는 노동을 둘러싼 근본적인 착취 관계로 명확히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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