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스트니코프 연구 목적
V.Y. 포스트니코프, 『남부 러시아 농민 농업』은 타우리다와 헤르손, 예카테리노프슬라프 주, 특히 타우리다 주에서 북부 군 농민 농업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기술한다. 해당 저작은 거론한 세 개 주에 따른 젬스트보(지방자치회) 통계 조사를 토대로 삼았고, 공무 일환으로, 1887-1890년까지 농민 농업을 연구할 특수한 목적을 갖고 주관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젬스트보 통계 연구를 크게 하나로 묶어 체계적인 형태로 제시하려는 시도는 자체로도 매우 흥미롭다. 젬스트보 통계는 농민들에 대한 당시에, 경제적 상태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많은 양으로,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젬스트보 통계 초록들을 모조리 개별적인 표로 만들고, 분명하고 포괄적인 제목 아래로부터 단순히 요약하는 형식만으로는, 그 자체로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었고, 해당 조사들도 대중들에게는 실질적인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젬스트보 통계를 요약하고, 분석할 필요는 오랫동안 제기됐다. 『젬스트보 통계 연구 결과』가 출판된 목적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출판 계획은 먼저 농민 농업과 관련된 특정 질문을 던지고, 특수 조사를 실시해서, 해당 질문에 관한 모든 통계를 취합해서, 젬스트보 통계에 담아냈다. 그런 다음 러시아 남부 흑토 지대, 북부 비흑토 지대, 오로지 농업에 의존하는 주들과 수공업이 병행되는 주들로 구분해서 통계를 종합했다. 계획에 따라, 두 권의 『결과』로 편찬됐다. 한 권은 『농민 공동체』에 집중했었던, V.V. 보론초프였고, 다른 한 권은, N. 카리셰프가 『미분여지 농민 임차』에 주목한 책이었다.
해당 요약 방식에 따른 정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건 타당했다. 먼저 경제 상태이 다른 개별적인 경제 지역들과 관련된 통계에서는 하나의 제목 아래에 배치하는 게 옳았다. 왜냐하면, 젬스트보 조사가 불충분했고, 상당수 군들이 군데군데 빠져 있기도 해서, 개별적인 지역에 따른 성격을 별도로 규정하기에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앞서 말한 2권에서도 명백해졌다. 젬스트보에 포함된 통계를 지역 별로 확실히 구분해서 배치하려던, 카리셰프 시도마저 실패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로는, 다른 측면들을 다뤄보지도 않은 채, 농민 농업에 따른 한 가지 측면만 따로 떼놓고 서술할 수도 없었다. 특정 질문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린다면,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고 만다. 미분여지에 따른 농민 임차는 분여지와 임차와 분리되며, 농민들에 대한 경제적 상태에 따른 분류와 작물 재배 면적에 대한 전체적인 통계와도 분리된다. 미분여지에 따른 농민 임차로는 농민 농업 일부로만 간주되지만, 실제로 가끔 개인 지주 농업에 따른 특수한 방식이 된다. 바로 경제적 상태가 동일한 특정 지역 대상에 따라 젬스트보 자료들을 요약하는 게 더 바람직했다.
젬스트보 통계 조사를 요약하기 보다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고자, 두 가지 '결과' 문헌들을 포스트니코프 책과도 비교해봤다. 같은 과정에서 포스트니코프에게 실은 자료들을 요약할 목적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게 아닌가 의구심을 품게 됐다. 관련 수치들은 정작 배경 정도로만 제쳐두고, 완벽하고 명확한 서술에만 온통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포스트니코프는 책을 기술하면서, 경제적, 행정적, 법률적인 토지 보유권에 따른 형식과 경계선, 농업 체계, 수확에 관한 기술적인 성격 문제들에 거의 균등한 관심을 할애했다. 더불어 경제적인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포스트니코프는 서문에서,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도, 농민 농업에 대한 기술적 측면에는 관심을 덜 기울였으며, 농민 농업에 있어 경제적 성격이라는 조건들은 기술보다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여기 때문에 같은 방식을 취했었다. 당시에 언론에서는 경제적 측면은 대체로 무시됐고, 농지와 경계선 문제에 있어 농민 농업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근본적인 경제 문제들을 조사하는 데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한 주된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에서 해당하는 문제들, 특히 농지 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에 있었다. 경제적, 기술적 문제에 대한 상대적인 중요도는 저자 견해를 전적으로 나누어, 포스트니코프에 따른 작업 가운데 정치경제적 연구 대상으로는 농민 농업 부분만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포스트니코프는 서문에서 연구 주안점에 대해 밝혔다.
'농민 농업에서 뚜렷해진 기계 사용에 따른 상당한 확대와 농민들 가운데 부유한 부류가 소유한 농장 규모가 현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에는 농업 생활에서 새로운 국면을 조상하며, 그러한 양상으로부터 올해에는 심각한 경제 상태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된다는 점에는 분명했다. 농민 노동 생산성과 농가 작업 능력 면에서는 농장 규모도 커지고, 기계 사용이 늘어나면서부터 상당 부분 증가하게 될 텐데, 하나의 농가에서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을 계산하는 데 있어서도, 여태껏 같은 점이 간과됐다.'
'농민 농업에서 기계 사용은 농민 생활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야기했다. 농업에서는 노동력 수요를 감소시켰고, 지금도 존재하는 농업 인구에 따른 초과 문제를 훨씬 더 시급한 문제로 만들었다. 땅 한 뙈기 없는 신세에다, 마을에서 남아도는 인력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농가 수도 늘어만 갔다. 동시에 농민 농업에서는 거대한 기계 도입으로부터 농민 생활 수준을 높은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농민 생활에 있어 새로운 경제적 양상들에 따른 동력을 보장해주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남부 러시아 농민들 사이에서도,
같은 양상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모으고, 해명하는 게 책의 목적이다.'고 기록했다.
포스트니코프 관점에서는 새로운 경제적 양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윤곽을 그려보기 전까지는 두 가지 유보 조항을 달아야만 했다.
1). 세 개 군에 대한 통계로만 논의를 국한한다.
포스트니코프가 헤르손, 예카테리노슬라프, 타우리다 주에 해당하는 통계를 제시했다는 점은 이미 밝혔지만, 정작 타우리다 주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통계를 제공할 뿐이고, 나머지 지역은 소홀했다. 경제적 상태가 다소 상이한 크림 반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통계를 제시하지도 않았고, 타우리다 주 북부에서 본토에 위치한 베르단스크, 메리토폴, 드네프르, 세 개 군들로만 통계를 한정시켰다.
2). 타우리다 주에서는 러시아인들 뿐만이 아니라, 독일인들과 불가리아인들도 거주했다.
그 수로는 러시아 인구에 비해 매우 적었고, 드네프르에서는 전체 19,586가구 가운데 독일 이민자 113가구, 곧 0.6%에 불과했으며, 메리토폴에서는 전체 34,978가구 가운데 독일과 불가리아인 가구로는 2,159가구로 6.1%에 불과했다. 베르단스크에서는 전체 28,794가구 가운데 25%인 7,224가구에 머물었다. 따라서 세 군들을 모두 묶어서 계산해보자면, 이민자 가구는 전체 83,358가구에서 약 1/9인 9,496가구였다. 따라서 이민자들 수는 전체적으로 매우 적었고, 특히 드네프르에서는 거의 의미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포스트니코프는 언제나 러시아인들과 별도로 이민자들에 대한 농업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해당 부분을 모두 생략해서, 국내 농민들에 따른 농업에만 논의를 국한한다. 물론 제시된 수치에서는, 러시아인들과 독일인들을 한데 묶어버렸다는 점과, 독일인 수가 정작 너무 적어서 빼든지, 추가하든지, 전체적인 그림으로는 크게 바뀌지도 않았기 때문에, 제시된 통계를 근거로부터 국내 농민 농업을 설명하는 데 있어 별로 지장이 없었다. 지난 30년 사이 동안에도 타우리다 주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매우 부유했다는 점 말고는 국내에서도 다른 지역 농민들과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해당 지역에서 공동체에 따른 토지 보유권은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전형적이고, 또 안정적'이었다. 다시 말해, 이민자들을 제외하더라도, 특히 타우리다 주 농민 농업은 국내 농민 농업에서도 일반적인 유형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2. 경작지 면적 비율
포스트니코프는,
'규모가 어떻든 간에 남부 러시아 마을들은 많은 주민 집단들에 따른 경제적 수준들이 천차만별이라서, 개별적인 마을들의 생활 수준을 하나로 묶어 말한다거나, 수치로부터 평균을 내서 설명하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평균적인 수치들은 농민들에 따른 경제 생활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조건들을 일부 나타내주기는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너무나도 많은 경제 현상들을 설명해주지는 않았다.'고 언급했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입장을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냈었다.
'많은 경제적 수준들은 주민들에 대한 전반적인 번영 정도를 가늠하는 데 있어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타우리다 주에서는 규모가 큰 마을들을 대충 다녀본 사람들도, 대부분 그 지역 농민들은 아주 유복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농민들 절반은 잘 살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영원히 빈곤의 늪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마을을 가리켜 과연 유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특정한 마을을 무슨 기준으로 더 유복하다거나, 덜 번창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었을까. 분명 마을이나 지역 전체 인구에 따른 상태를 특징짓는 평균적인 수치들은 농민들에 대한 번영 정도에 따라서도 결론을 이끌어내기에는 불충분했었다. 주민들을 여러 집단으로 나눠 많고, 다양한 점들을 종합해서만 판단할 수 있었다.'
따라서 농민층 분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전반적인 농민 농업을 다룬 모든 저술에서는 그러한 언급을 한다. 그러나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지도 않은 채로, 별로 중요시하지 않거나, 심지어 우연의 일치로만 여긴다는 점이다. 수치 상 평균만으로도 농민 농업 유형을 규정해서 말한다는 게 얼마든지 충분하게 여겨지고, 전체적으로 농민과 관련된 여러 실용적인 조치들에 대해서만 중요한 논의가 이뤄지고 만다. 반면에, 포스트니코프로부터는 그런 시각에 대한 반발을 목격했다. '마을 공동체 내 많은 가구들에 따른 경제적 지위에서도 큰 다양성'을 지적했으며, 여전히 도시 지식인들이 생각만 하는 농촌 공동체를 완전하고, 동질적인 무언가로만 간주하는 경향'에도 반기를 들었었다. '과거 십 년 동안 젬스트보 통계 조사는 마을 공동체가 더 이상 1870년대 평론가들이 생각했었던 동일적인 단위가 아니었고, 지난 수십 년 간, 그 안에서도 상이한 경제적 번영 수준을 가진 집단들로부터 인구 분화가 이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포스트니코프는 견해를 뒷받침하고자, 책 곳곳에다 많은 통계를 분산시켰고, 견해가 진실인지를 시험하고자, 농민층을 동질적인 무언가로 간주하는 '도시 지식인들'과도 크게 이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내세웠던 포스트니코프 사이에서 과연 누가 옳은지를 판가름하고자, 통계 모두 체계적으로 살펴봤다. 그런 다음에서야, 포스트니코프가 말했었던 이질적인 면이 얼마나 심도 깊었고, 정치경제학적으로도, 평균적인 통계에만 기초해서, 농민 농업마저 일반적으로 묘사하는 걸 방지해줄 수 있는지, 농민층에 따른 많은 범주들에 따라서도, 실용적인 조치들에 있어 작용과 영향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물음들을 해결하고자, 재료를 공급해주는 수치를 인용하기에 앞서, 포스트니코프는 타우리다 주를 대상으로 한 젬스트보 통계 초록들에서도 모든 통계들을 가져왔었다는 점이다. 원래 젬스트보 인구 통계는 마을 공동체 전체를 포괄했을 뿐, 개별 농가에 대한 통계를 수집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구들 간 재산 상태에서도 차이가 목격되자, 가구 별 인구 조사가 이뤄졌었다. 농민들에 따른 경제적 지위에 대한 보다 철저한 연구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다음 단계에서는 여러 가지 수치를 묶은 표를 도입했다. 마을 공동체 내 농민들 간 재산 차이가 농민들에 따른, 많은 법적인 범주에 따른 차이보다도, 훨씬 더 컸다는 점에서 확신한 통계학자들은 재산 상으로, 확실한 차이에 따라 농민들에서 경제적 지위에 대한 모든 지표들을 분류해갔다. 경작 면적(데샤티나), 농사에 활용된 가축 수, 가구 당 경작 분여지 양 등에 따라, 대표적으로 농민들을 집단으로 구분했다.
타우리다 젬스트보 통계에서는 경작 면적에 따라, 농민들을 분류했다. 포스티니코프는 '타우리다 농업 조건에서 경작 면적 크기로는, 농민 생활 수준으로부터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며, 분류가 적절하다고' 제안했었다. 더불어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러시아 초원(스텝) 지대에서도 많은 종류로 비농업 분야 산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미미했고, 농촌 인구 절대 다수는 곡물 경작에 기초한 농업에 주로 종사했다. 젬스트보 통계에 따르면, 타우리다 주 북부에 위치한 군들에서 농촌 토착 인구에 따른 7.6%가 농업이 아닌 산업들에서만 종사했었지만, 16.3%는 자신들의 토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부차적으로는 다른 직업에도 종사했다. 실제로 경작 면적에 따른 분류로는, 국내 여타 지역들에서조차도,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이 채택했었던 다른 분류법, 분여지 수, 가구당 경작 분여지 같은 것들보다도, 훨씬 더 정확했다. 분여지 크기는 가주 명부에 등록됐거나, 가족 내 실제 존재하는 남성들 수에 따라서만 결정됐기 때문에, 해당 가구에서도 잘 사는 정도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지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만 보여줬을 뿐이었다. 농민들이 분여지를 활용할 만한 농기구를 갖추지 못한 경우로는,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임대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주민들은 주업으로 농사를 짓고자 하면, 생산량을 기록했고, 자신들이 소비하거나, 구입해서, 시장에 내다 팔 곡물 양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경작할 면적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불확실했을 때는, 농사 성격이라든지, 다른 수입원과 비교했을 때 중요도와 같은 농민 경제에서도 매우 중요한 점 역시나, 불분명해질 수 있었다. 해당 가구에 따른 경제를 농민에 따른 토지 보유권 및 농사 기준들, 식량 기준, 노동 기준과도 비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작 면적이 분류 기준이어야만 했다. 경작 면적에 따른 분류는 적절했고, 최선이었고, 또 전적으로 필수적이었다.
타우리다 통계학자들은 경작 면적에 관해서 농민들을 구분했다.
1). 토지를 전혀 경작하지 않는 가구
2). 5데샤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가구,
3). 5-10데샤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4) 10-25데샤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5) 25-50데샤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6) 50데샤티나 이상을 경작하는 가구,
세 개 군들에서는 가구 수에 따른 집단 별 비율 관계도 있었다.
독일인들을 생략하더라도, 전체적인 비율은 큰 변화가 없었다. 포스트니코프는 타우리다 소재 군 가구들 가운데, 소규모 면적을 경작하는, 10데샤티나 미만 비율은 40%로, 중간인 10-25데샤티나는 40%, 대규모 면적을 경작하는 비율로는 20%라고 추산했다. 독일인들을 제외했을 때, 맨 마지막 비율로는 1/6로, 16.7%, 곧 3.3% 감소했고, 이에 상응해서 소규모 면적을 경작하는 가구 수는 증가했다. 집단들 간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토지 보유권과 토지 활용에서 짚어봤다.
포스트니코프는 표를 제시하면서, '해당 수치들은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농민 집단이, 가족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많은 분여지를 보유했었으며, 동시에 토지를 가장 많이 구입하고, 임차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하위에서 상위 집단으로 갈수록, 분여지 면적이 증가한다는 건, 전적으로 가족 규모 차이만으로는, 설명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포스트니코프는 세 개 군들에서, 집단 별 가족 구성을 보여주는 표도 제시했었다. 표는 하위에서 상위 집단으로 갈수록, 가구 당 분여지 양이 증가한 정도가, 남녀 및 가족 내 노동하는 구성원들 수에 따른 증가 추이보다 훨씬 더 가파랐다. 특히 드네프르 군에서는 최하위 집단 수치를 100으로 했을 때에 대한 표도 있었다.
가족 구성과는 별개로, 분여지 크기를 결정하는 건 가구가 잘사는 정도였다. 많은 집단 내에서도 구입한 토지에 따른 양에 대한 통계를 검토해보면, 토지 구매자들은 대부분 25데샤티나 이상, 경작 면적을 지닌 상위 집단이었고, 주로 경작 면적은 가구 당 75데샤티나인 대규모 경작자들이었다. 따라서 구입한 토지에 대한 통계로는 농민 집단들 간 차이에 대한 포스트니코프 견해를 전적으로 뒷받침해준다. 포스트니코프는 타우리다 소재 군 농민들은 96,146데샤티나 토지를 구입했다고 주장했지만, 제시한 유형에 따른 자료에서는 실제 현실, 곧 해당 토지 대부분은 이미 분여지를 충분히 제공받은 극소수 수중에 들어갔다는 실상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 포스트니코프가 부농이라 불렀던 사람들은 전체 인구에서 1/5에 지나지 않았다. 임차 토지에 대해서도, 표에서는 분여지와 미분여지, 임차된 토지에 따른 전체 수치를 제시했다. 임차된 토지는 농민들을 더욱 번영시켰고, 따라서 토지를 더 많이 제공받은 농민은 더 많은 토지를 임차하면서부터 가난한 집단들에게서 필요한 토지를 빼앗아가는 결과로 빚어졌다.
3. 농민 집단 간 분열과 농업 통계
서로 다른 농민 집단 간 재산 상태와 농사 규모를 보여주는 통계를 요약했다. 많은 농민 집단들로부터 농사 성격과 방식, 농사 체계를 나타내는 통계를 종합한다.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농민들에 따른 노동생산성, 농가 작업 능력은 농지 규모 증가와 기계 도입으로 상당 수준 올라갔다.' 포스트니코프는 서로 다른 경제 집단들에서, 경적 면적 당 노동자들과 농사에 동원된 가축 수를 계산해내면서 명제를 증명했었다. 그렇더라도, '가족 구성에 관한 통계를 이용해, 하위 집단 경제들은 가족 내 노동할 수 있는 구성원들 일부를 외부에서 농장 노동자로 노동하도록 내보내는 반면에, 상위 집단들은 노동자들을 고용으로 끌어들인다고' 결론내릴 수는 없었다. 타우리다 젬스트보 통계는 이미 고용됐고, 고용 시장에서 나온 노동자들 수를 제시하지 않았고, 포스트니코프는 사람들을 고용한 가구 수에 관한 젬스트보 통계를 가져와 정해진 경작 면적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 인력이 필요한지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수를 대략적으로 추산했다. 추산이 완벽히 정확할 수는 없었다고 인정했었지만, 다른 집단들에서는 고용된 노동자 수가 적었기 떄문에, 오직 상위 두 집단에서만 자신의 계산이 가족 구성에서는 상당한 오차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다.
포스트니코프는 최하층 집단에서는 노동자 수를 다소 낮게 잡았고, 최상위 집단에서는 높게 잡았다는 점이다. 농장 규모가 커질수록, 경작 면적 당 노동자 숫자가 감소하는 걸 입증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추산으로는 감소율을 과장되게 키우기보다는, 최소화하는 쪽을 택했다. 사전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포스트니코프는 서로 다른 농민 집단 별로 경작 면적과 노동 인력, 가축, 전체적인 인구 숫자 관계를 보여준 표를 제시하기도 했었다.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농장 규모와 경작 면적이 증가할수록, 농업에서 주요한 지출 내역인 노동력, 곧 인간과 동물 유지 비용은 점진적으로 감소해갔고, 넓은 면적을 경작하는 집단들에서는 비용이 소규모 경작 집단에 비하면 경작 면적 당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따라서 노동 인력과 가축을 유지하는 비용은 농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지출 내역이라는 명제는 이후 포스트니코프로부터 한 메노파 교도 농장에서 구체적인 경비를 인용하면서부터 확인됐다. 전체 지출 가운데 농장에 관한 일반 지출은 24.3%, 가축에 소요된 지출은 23.6%, 노동 인력에 소요된 지출은 52.1%였다.
포스트니코프는 농장 규모가 커지면서부터 노동생산성은 증가한다는 결론에 크게 주목했었다. 실제로 누구도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농민층에 따른 경제 생할과 많은 집단들에서 농사 성격을 연구했고, 소규모 농업과 대규모 농업 사이 관계라는 일반적 질문에 답했었다. 질문에서는 많은 학자들도 크게 혼동했었던 주제였고, 혼동에서 주된 원인으로는 서로 상이한 사회적 환경 속에 존재하면서부터 농사 유형도 각각 농장들을 비교했기 때문이었다. 농산물 생산으로 수입을 얻는 농가들과 다른 농가들이 필요로 하는 토지를 착취해, 수입을 얻는 농가들을 서로 비교했으며, 특히 1861년 개혁 직후 시기에서 농민과 지주 농장들을 비교하면서부터, 포스트니코프는 실수로부터 전적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모든 비교에서 첫 번째 규칙인, 비교 대상은 비슷한 체계에 속한다는 점을 잊지 않았었다.
포스트니코프는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매우 구체적으로 증명했었다. 먼저 각 군 별로 통계를 인용한 뒤, 개별적인 러시아 인구, 더 정확하게는 매우 많은 수를 차지하는 집단인,과거 국유지 농민들에 관한 수치를 제시했었다. 다다른 결론을 동일했다. 소규모 농장에서 이용된 경작 면적 당 가축 수로는 최대 규모 농장에서 숫자보다 1.5-2배 더 많았다. 가구 별 인구조사에서 다른 모든 소규모 집단들, 예전에 지주에게 매여 있었던 농민 등의 경우에도 동일한 법칙이 통용됐고, 모든 지역, 심지어 하나의 읍이나 마을에 국한된 가장 작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경작 면적 크기와 농장 지출 사이에 관계로는 농기구와 생산에 활용된 가축 유지 같은 또 다른 유형에 따른 지출에서도 소규모 농장에게는 결코 유리한 환경이 아니었다.
최하위 집단에서 최상위 집단으로 올라갈수록, 항목 지출이 얼마나 급격히 증가했는지는 이미 살펴봤다. 그러나 경작 면적 당 농기구 수량을 계산해봤을 때, 최하위에서 최상위로 갈수록,
감소한다는 점이었다. 해당 표에서는 경작 면적이 증가할수록 경작과 운반에 사용되는 가장 큰 도구들은 경작 면적 당 수가 점진적으로 감소했고, 따라서 최상위 집단 소유에 따른 농장들에서 경작과 운반 도구들을 유지하는 비용은 면적 대비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구 당 10데샤티나 미만으로 경작한 집단은 예외였다. 바로 위 집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농기구가 적었기 때문에, 농민들 중 상당 수가 자기 소유 농기구가 아닌, 빌린 농기구로 노동했기 때문이었지만, 농기구에 지출하는 비용이 감소하지는 않았다. 포스트니코프는 '젬스트보 통계는 농장 규모가 클수록, 정해진 견작 면적에서 활용된 농기구와 노동자, 농사용 가축 수는 더 줄어든다는 점을 이론의 여지 없이 증명했다'고 말했으며,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 모든 지역과 농민 집단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을 살펴봤다. 젬스트보 통계에 따르면 농업이 농민 경제 중추를 이루는 다른 주들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었다. 같은 현상은 폭 넓게 퍼져 있어서 하나의 법칙 형태를 띠며, 소규모 작물 농업에 따른 경제적 인 의미를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강탈해간다는 점에서 볼 때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했다고 말했었다. 포스트니코프에게 있어서는 다소 섣부른 감이 있다.
소규모 농장들이 대규모 농장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입증하고자, 거대 농장이 지닌 커다란 이점으로 낮은 생산 가격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자연 경제에 비해 화폐에 따른 상품 경제가 우위에 있다는 점 또한 확립되어야만 한다. 생산품이 생산자 자신으로부터, 소비되고 시장으로 유통되지 않는 자연 경제에서는 값 싼 생산품이 시장에서 나온 더 비싼 생산품과 마주칠 일이 없고, 몰아낼 수가 없다. 확립된 법칙으로부터, 국내 전체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포스트니코프는 각 군 별로 인구를 경제적으로 세분화한 젬스트보 통계로부터 서로 다른 집다에서 농사용 가축과 노동 인력 당 경작 면적을 동일하게 계산해냈다. 작은 규모의 농장은 보다 큰 규모의 농장보다 1.5-2배 더 많은 노동력 유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페름과 보로네시, 사라토프, 체르니고프 같은 주들에서도 모두 사실이었고, 포스트니코프는 해당 법칙으로부터, 국내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었다.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농장들에 따른 '수입과 지출'과 시장 문제로 넘어가서.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독립적인 단위를 이루는 각 농장 영토는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1). 농장의 식량 구역: 농장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과 노동자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 구역.
2). 사료 구역: 농장에서 노동하는 가축의 여물을 제공하는 구역
3). 농장 용역(서비스) 구역: 농장 뜰, 도로, 저수지 등과 종자를 생산하는 면적으로, 용도를 구분하지 않고 농장 전체의 필요를 위해 기여함.
4). 시장 또는 상업 구역: 곡물과 식물을 생산해 가공하거나, 원료 그대로 시장에 내다팜.
영토를 이렇게 네 구역으로 구분해서, 재배하는 작물이 아닌 직접적인 경작 목적에 따라 개별적인 농장에서 결정할 부분이었다. 농장으로부터 현금 수입은 해당 농토에서는 상업 구역으로부터 결정됐고, 규모가 클수록 얻는 농산품은 상대적 가치가 더 커지며, 시장에 대한 농민 수요가 더 클수록 국가에서는 시장 주변, 농업 외곽에서 유지할 수 있는 노동력 양도 더 많아진다. 국가 재정과 문화적으로는, 농업에 따른 중요도가 커질수록, 경작자 자신에 따른 순수익과 농장 경비 및 개선 작업을 위해 처분할 수 있는 자원도 더욱 많아진다. 포스트니코프 주장은 완벽한 사실이다. 매우 중요한 부분 하나만 정정한다면, 포스트니코프는 국가 전반에 있어 농장에 따른 상업 구역에 대한 중요함을 말했었지만, 화폐 경제가 지배하고, 상품이라는 형식이 생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가에서만 해당됐다. 해당 조건을 잊어버리고는, 자명하다고 간주하고, 특정 국가에 따라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과정을 생략한다면, 속물 정치경제학 실수를 답습하는 꼴이다. 농장 전체에서 시장 구역을 선정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해진다. 내수 시장에서 중요한 점은 잘 사는 수준이 결정되는 생산자에 따른 전반적인 수입이 아니라, 현금 수입이 얼마인가 하는 부분이다. 생산자가 얼마만큼 화폐 자산을 소유하는가는 단지 잘 사는 정도에 따라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자연 경제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땅뙈기로부터, 요구 조건을 전적으로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농산물을 얻는 농민은 유복할지라도, 화폐 자산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는다. 자신의 땅뙈기로부터 필요로 하는 곡물에서 아주 일부만 얻고 나머지는 비정기적인 수입으로 충당하는 반쯤 몰락한 농민 형편은 어렵더라도, 화폐 자산을 소유한다. 따라서 수입 가운데 현금 부분을 계산하지 않은 채, 농가와 얻는 수입에 따른 시장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논한다는 건 전혀 무가치한 일이다.
서로 다른 농민 집단들에 따른 농장에서 경작 면적 가운데 네 구역 규모를 어떤 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포스트니코프는 먼저 1인당 어림잡아 2/3데샤티나에 해당하는 2체트베르티 곡물을 소비한다고 가정해, 연간 곡물 소비량을 추산했었다. 사료 구역을 가축(말) 한 마리 당 1.5데샤티나로 잡았고, 종자 구역을 전체 경작 면적에 따른 6%로 추정했었다.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많은 집단들로부터, 현금 수입에서 나타나는 차이로는 농장 규모에 따른 중요도를 입증했다. 그러나 많은 집단들이 경작으로부터 벌어들인 수입 차이는 실제로는 훨씬 더 컸으며, 상위 집단들이 단위 면적 당 얻는 수확량이 훨씬 더 크고, 시장에 내다 팔 때 더 좋은 가격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확보된 소득을 기록할 때 농장 전체 면적이 아닌 경작 중인 토지만을 포함시켰다. 타우리다 군 내 농가들에서는 많은 종류로 가축을 사육하고자, 다른 농지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엄밀한 통계가 없었다. 그러나 경작만을 고집하는 남부 러시아 농민 현급 소득에 관한 한 대부분 전적으로 경작 면적으로부터 결정됐다. 수치들에서도 많은 농민 집단들 간에 농사로 벌어들이는 현금 소득 상 차이를 매우 정확하게 드러내준다. 더불어 해당 수치들은 경작 면적 크기에 따라, 현금 소득이 얼마나 뚜렷하게 변화하는지도 잘 나타낸다. 75데샤티나, 경작 면적을 가진 가구로는 연간 1,500루블 현금 소득을 얻지만, 34와 1/2데샤티나 면적을 보유한 가구로는 574루블, 16과 1/3데샤티나 면적을 지닌 가구로는 불과 191루블만 벌어들인다. 8데샤티나를 경작하는 가구로는 수입이 30루블 밖에 안 돼, 부수 벌이가 없이는 농장에 필요한 현금 지출을 충당하기에도 부족했다. 인용된 수치들에서는 농가 순수입을 나타내주지는 않는다. 파악하려면 세금, 농기구, 건물, 의복과 신발 구입비 등 가계 지출을 제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출은 농장 규모가 증가할수록 비례하지는 않는다. 가족 생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가족 규모에 비례해서 증가하고, 가족 규모는 많은 집단들 간 경작 면적보다 훨씬 더 천천히 증가한다. 토지세, 임대로, 건물 수리, 농기구와 같은 농장 전체 지출에 관해서는, 비례하는 농장 규모 이상으로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농장으로부터 벌어들이는 현금 총 수입은 경작 면적 규모에 따라 정비례 이상으로 증가했다. 모든 비용들은 농장에 따른 주된 지출 항목인 노동력 유지 비용과 비교했을 때 매우 적었다. 따라서 농가 살림살이에서 경작으로부터 벌어들인 단위 면적 당 순수익은 농장 규모가 작을수록 점진적으로는 줄어든다는 법칙을 도출했다.
포스트니코프 통계치로부터, 서로 다른 집단들에서 농민 농업은 시장에 관한 한 상당히 많은 모습을 띠었다. 먼저 가구 당 경작 면적이 25데샤티나 이상인 최상위 집단들은 이미 상업적인 농업을 실시했고, 시장이 제공하는 수입으로부터 곡물을 재배했다. 반면에, 하위 집단들에서는 경작만으로 가족에 따른 필수적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었다. 농장에 따른 전체 지출을 보다 정확하게 계산한다면, 집단들에서는 농장이 적자로 운영된다는 점을 분명 알게 된다. 서로 다른 집단으로 쪼개진 농민층과 시장 수요도 사이에서 관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포스트니코프 통계를 활용해보는 작업은 흥미롭다.
수요도가 상업 구역에 따른 크기로부터 좌우되고, 농장 규모가 클수록 상업 구역도 더 컸다. 그러나 최상우 집단들에서 농장 규모 증가와 나란히 최하위 집단들에서는 규모가 감소했다.
농장 숫자로는, 최하위 집단들은 최상위보다 두 배 더 많은 농장들을 포괄해갔다.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는 최하위 집단들에 속한 농장들은 40%를 차지했고, 최상위 집단에서는 20%만 차지했다.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경제적 분할이 시장 수요도를 감소시킨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는가. 순전히 선험적인 이유만으로도 부정적인 대답을 할 자격을 지닌다. 최하위 집단들은 농장 규모가 너무 작아서, 현실에서는 농업만으로는 가족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었다. 굶어죽는 신세를 면하고자, 최하위 집단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시장에다 내놓고, 그걸 팔아서 화폐 자원을 제공받았다. 따라서 농장 규모가 작은 탓에 더욱 줄어든 시장 수요를 일정 정도 상쇄했다. 그러나 포스트니코프가 제시한 통계로는 문제에 대한 보다 엄밀한 해답을 내놓았다.
일정한 경작 면적, 1,600데샤티나를 가지고, 먼저 경제적으로 동질적인 농민들 사이에 나누고, 다음에는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와 같이 서로 다른 집단으로 쪼개진 농민들 간에 나누는 두 가지 방식을 취한다고 가정해보자. 한 농가당 평균 16데샤티나 토지가 주어졌을 때, 농업으로부터 자신들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100개 농장을 갖는다. 시장에 대한 수요로는 191 X 100 = 19,100루블이다. 1,600데샤티나 경작 면적을 실제 타우리다 군 농민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100개 가구마다 각각 다르게 나눈다. 9가구는 아예 경작할 토지가 없고, 12가구는 각각 4데샤티나, 20가구는 각각 8데샤티나, 40가구는 각각 16데샤티나, 17가구는 34데샤티나, 3가구는 75데샤티나를 나눠 갖는다. 모두 합치면 1,583데샤티나로, 1600데샤티나를 조금 못 미친다. 분배했을 때, 농민들 가운데 40%는 자신들의 요구를 전부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수익을 토지에서 끌어낼 수 없다. 가구 당 5데샤티나가 넘는 경작 면적을 가진 농가들만 계산했을 때, 시장에서 화폐 수요도는 21,350루블이다. 따라서 20가구를 제외하고, 경작 면적이 1,535테샤티나로 줄어들었음에도, 시장에서 총 화폐 수요는 더 높아진다는 점이다.
최하위 경제 집단들에 속한 농민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내다 팔 수밖에는 없으며, 최상위 집단 구성원들은 자기네 가족 노동력만으로는 큰 규모 토지를 경작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력을 구매해야만 한다는 점을 앞서 언급했다. 중요한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고민해볼 필요는 있따. 포스트니코프는 '농민 생활의 새로운 경제적 양상'으로 명백하게 분류하지 않았으며, 부농들로부터 기계 도입이나, 경작 확대보다 훨씬 더 주목해볼 가치도 있었다.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 부농층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을 상당한 정도로 고용했고, 자기네 가족들의 작업 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면적을 경작했다. 수치들로부터 노동자들을 고용한 사람들은 대부분 넓은 경작 면적을 가진 부농들이었다는 점이다. 집단 별 가족 구성에 관한 통계를 노동자들을 고용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눠 비교했을 때, 가구 당 25-50데샤티나를 경작하는 농민들은 노동자를 고용하면서부터 농장 일손은 1/3 가량, 가구 당 1.8-19명에서 2.4명으로 증가시켰고, 가구 당 50데샤티나 이상을 경작하는 농민들은 노동자들의 수를 두 배 가량 늘려갔다. 포스트니코프 추산에 따르면, 자체 노동력은 7,129명에 불과했지만, 고용한 노동자들은 8,241명에 달했으며, 수는 두 배를 훨씬 더 초과했다. 최하위 집단들이 상당한 수의 노동력을 토해낸다는 점은 그들이 농사만으로는 자신들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생산량을 얻을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으로 인해 명확해진다. 그러나 외부 노동을 위해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숫자에 대한 엄밀한 통계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분여지를 임대하는 가구 숫자로부터, 간접적으로 그 수를 파악했다. 포스트니코프의 주장대로, 타우리다 소재 군 주민들 가운데 약 1/3 가량이 분여지를 최대치로 이용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4. 세 집단 별 차이점
포스트니코프는 제시한 통계로부터 여러 가구들로부터 경제 상태에 '큰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완벽하게 입증해갔다. 다양한 농민들의 재산 상태와 경작하는 토지 크기뿐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집단에서 농업 성격에도 적용됐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었다. '다양성'과 '차이'란 단어는 그러한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 농부가 한 마리의 가축을 소유했고, 또 다른 농부는 열 마리를 가졌을 때, 그걸 가리켜 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또 어떤 농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분여지 외에 오로지 이윤을 뽑아낼 목적을 가지고 수십 데샤티나 토지를 임차했을 때,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토지를 임차할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아갔을 때, 분명 훨씬 더 큰 무언가에 봉착했다. 따라서 '갈등' 또는 '경제적 이해 관계에 따른 충돌'이라고 부른다. 포스트니코프는 단어들을 사용했었지만, 정작 중요성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단어들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여기지도 않았었따. 가난의 늪에 빠진 주민들의 분여지를 빌리고는 더 이상 자신의 농장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된 농민을 노동자로 고용한다는 건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엄연한 착취였다. 농민층 사이에서 깊어진 경제적 갈등을 인식했을 때, 더 이상 소유한 재산에 따라 농민들을 몇 개의 '계층'으로만 나누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됐다. 언급한 다양성이 단순하게 양적인 차이로만 해당한다면, 그런 구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니었다. 어떤 농민 집단은 상업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농사를 지어 엄청난 현금 수입을 얻었지만, 또 다른 집단에서는 농업만으로는 가족의 기본적인 요구조차 충족시킬 수 없었고, 상위 농민 집단들이 하위 집단들의 몰락을 토대로 자신들의 농업을 개선시킨다면, 부농들은 상당한 규모의 노동력을 고용하는 데 비해 가난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갈 수밖에는 없고, 같은 현상은 분명 질적인 차이였다. 따라서 임무는 농사 자체 성격 상 차이에 따라, 기술이 아닌 경제 질서에서 비롯된 농사 특성에 따라서도, 농민층을 분류한다. 포스트니코프는 차이들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주민들을 집단 별로 더욱 일반화시켰고, 구분할 필요를 인정했었고, 실제로고 그런 구분을 시도했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었다. 포스트니코프는 주민들을 경제 집단 별로 더욱 일반화시켜 구분하고자, 모든 지역에서 단일한 경제적 의미를 지니지는 않았지만, 농민들 스스로가 그렇게 구분했고,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은 모든 군에서 목격했던 것과도 더욱 일치하는 다른 기준을 채택했다. 바로 농민들이 소유한 농사용 가축 수에 좌우된 농장 운영 자립도에 따른 구분법이었다.
남부 러시아 지역 농민들을 경제적 자립도와 농사 방식에 따라, 크게 세 집단으로 구분했다.
1). 자신이 소유한 가축들로 자신의 토지를 경작할 수 있는 농가와 성인 노동력과 시간제 노동자
2). 가축이 충분치 않은 농민
3). 가축이 전혀 없거나, 한 마리만 갖고 있는 '뚜벅이'
- 하위 집단
농사용 가축 수와 동원하는 방식 같이 농민 생활에 있어 기본적인 경제적 기준에 따라, 농민들을 분류한다는 건 대개 농민들 자신이었다. 앞서 나열한 분리된 집단에 따른 경계 내에서와 집단 별 구분에 있어서도, 상당히 많은 변형된 형태들이 존재했다. 전체 가구 수에서 집단들이 차지하는 비율과 각 군별로 가축 분포 현황을 보여주고자, 소유한 농사용 가축 수에 따른 가구 분류를 제시했다. 따라서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 농사용 가축들은 네 마리 이상 완전한 한 조를 이뤘다. 포스트니코프와 같은 분류법은 모두를 불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 개별적인 세 집단들 내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목격됐다.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남부 러시아에서는 한 조로 구성된 가축을 소유한 가구 집단 내 상당한 다양성이 뚜렷했다. 만흥ㄴ 수의 가축을 보유한 잘사는 농민들과 더불어 적은 수의 가축들을 가진 가난한 농민들도 존재했다. 부농으로는 다시 완전한 작업장을 이룬 6-8마리 이상을 보유한 사람들과 완전한 한 조보다 적은 수 4-6마리를 보유한 사람들로 나뉘었다. 뚜벅이 범주에 속한 가구들도 잘 사는 정도에 있어 상당한 편차가 나타났다. 포스트니코프가 채택한 분류법에서 또 다른 문제로는, 젬스트보 통계가 보유 가축 수가 아니라, 경작 면적에 따라 주민들을 분류했었다는 점이다. 많은 집단들에 따른 재산 상태를 정확하게 표기하려면, 경작 면적에 따른 분류법이 활용되어야만 했다. 포스트니코프는 주민듣을 세 집단, 경작 면적이 10데샤티나 미만이거나, 아예 없는 소규모 경작자들과 10-25데샤티나의 중간 규모 경작자, 가구 당 25데샤티나 이상인 대규모 경작자들로 나누었다. 첫 번째 집단은 가난한 집단, 두 번째는 중간층, 세 번째는 잘 사는 집단이다. 개별적인 규모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이주민들을 제외한 타우리다 농민들 가운데 대규모 경작자들은 전체 가구 숫자에서도, 약 1/6을 차지했고, 중간 규모 경작자들은 약 40%인 반면에, 소규모 또는 경작지가 전혀 없는 가구로는 40%를 약간 웃돌았다.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 따른 이민자들을 포함한 전체 인구를 놓고 봤을 때, 대규모 경작자들은 약 20%, 중간 규모 경작자들은 40%, 소규모 또는 경작지 미보유 가구 역시 약 40%를 차지했다. 그러므로 독일 이민자들을 포함시키더라도, 집단 별 분포 변화는 아주 미세하며, 군 전체 전반적인 통계를 사용하더라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집단에 따른 개별적인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해 농민층 사이에서 경제적 갈등에 따른 정도와 원인들을 확인했다. 그러나 포스트니코프는 이런 임무를 설정하지도 않았었다. 인용한 통계는 매우 넓게 분산됐고, 각 집단들도 전반적으로 충분히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우리다 소재 군 2/5가 속해진 가난한 농민들 집단을 먼저 살펴보자. 집단이 소유한 농업에 주요 생산 수단인 농사용 가축 수는 실제로 얼마나 가난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타우리다 주 세 개 군들에 있는 총 263,589마리 농사용 가축들 가운데 최하위 집단이 소유한 가축은 전체 17%인 43,625마리로, 평균보다 2와 1/3배 더 적었다. 가축을 아예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가구 비율에 관한 통계로는, 최하위 집단을 셋으로 세분화했을 때, 80%, 40%, 12%였다. 통계를 기초로 포스트니코프는 가축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가구 비율은 경작지가 아예 없거나, 가구 당 10데샤티나 미만인 집단들 내에서만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집단에 따른 경작 면적은 가축 수에 상응했고, 3개 군에서는 전체 962,933데샤티나 경작지 가운데 146,114데샤티나로, 15%만을 경작했다. 물론 빌린 토지를 추가할 경우 경작 면적은 174,496데샤티나오 증가했었지만, 다른 집단들에 따른 경작 면적도 최하위 집단보다 더 큰 비율로 증가했기 때문에, 최하위 집단이 경작하는 면적은 전체 12%에 불과했다. 인구에서 3/8이 넘는 사람들이 경작하는 면적은 1/8밖에 안 됐다. 포스트니코프가 표준이라고 여기는, 가족 필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준이 중간 규모 경작자라는 점에서, 평균보다 3과 1/3배 더 적은 면적을 경작하는 집단이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얼마나 빼앗기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집단에 따른 농업이 매우 열악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타우리다 소재 군 인구 33-39%가 최하위 집단에서는 압도적인 다수로, 토지를 갈 만한 농기구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한 현실을 이미 들여다봤다. 농기구가 부족하다 보니,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토지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분여지를 임대했다. 포스트니코프는 그런 임대인들이 인구에서 약 1/3로, 가난한 집단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추산했다. 분여지들을 팔아치우는 행위는 젬스트보 통계 곳곳에서도 보여줬고, 대규모로 행해지고 있었다. 정기간행 학술지들은 이미 그에 대한 해결책을 어럽사리 내놓았는 데, 분여지를 양도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포스트니코프는 그런 조치에 대해 정부 당국의 결정이 지닌 힘을 관료적으로 맹신하고, 조치 효과에 대해 매우 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포스트니코프는,
'토지 임대를 금지로부터 농민 생활에서 경제 구조 상 매우 깊이 뿌리박힌 문제를 제거할 수 없을 거라는 점은 분명했다. 자신의 농장을 운영할 농기구, 수단이 전혀 없는 농민은 사실상 자신의 분여지를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다른 농민들에게 분여지를 임대해줄 수밖에는 없었다. 토지 임대를 직접적으로 금지한다면, 농민은 토지를 남몰래 임대해줄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통제할 수도 없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현재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 임대해줄 수 있었다. 게다가 밀린 세금을 대신해 압류된 분여지들이 마을 법원으로부터 더욱 더 임대되어서, 그런 상태는 가난한 농민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가난한 집단 구성원 전체로는 경제적인 수준이 절대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목격됐다. 포스트니코프는 최하위 집단에서는 가축을 빌려 얼마 되지 않은 토지를 경작하는 가구든, 무엇도 경작하지 못하는 가구든, 경제적 상태로는 그닥 큰 차이가 없었다. 무엇도 경작하지 못하는 가구에서는, 한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토지 전체를 임대했고, 가축을 빌려 토지를 경작하는 가구에서는, 일부만을 임대해준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둘 다 모두 고향에서 계속 살면서, 한 동네 사람들에게 고용돼 일꾼 역할을 한다거나, 주로 농사일을 거드는 외부 일자리에 종사했다는 점은 공통점이었다. 따라서 얼마 되지 않은 토지를 경작하는 가구든, 무엇도 경작하지 못하는 가구든, 두 범주 농민들은 하나로 묶어 검토해야만 한다. 농장 일에서 사용할 가축이나, 농기구가 없어 농장을 잃고 대부분 이미 몰락했거나, 몰락하기 직전인 농민 계급에 속하는 이들로 말이다.'
포스트니코프는 '농장도 없고, 토지를 경작하지도 않는 가구들은 대부분 이미 몰락한 이들이었고, 자신의 토지를 임대해주고 약간의 땅을 부쳐먹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렇게 될 후보군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주장을 이어갔었다. 심각한 흉년이 들거나, 화재가 난다거나, 가축을 잃어버리는 등, 예기치 못한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들 중 일부는 농장에서 날품을 파는 일꾼이나, 농사를 짓지 못하는 농민 부류로 내몰린다. 농사에 필요한 가축을 잃어버린 가구는 몰락을 향한 첫걸음을 뗀다. 빌릭 가축으로부터 토지를 일구는 경우에는 너무 불안정하고, 체계적이지도 못해서, 대개 농사 됨새가 떨어진다. 그런 농민은 마을 대부조합에서도 대출이 거부되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토지를 꿀 수 없었다.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는 국영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으로 운영된 대부조합들이 큰 마을마다 많이 들어섰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는 건 부유하고, 잘 사는 농가들 뿐이었다. 대출을 받으려면, 보통 번창한 농민들보다 더 나쁜 조건이 따라붙는다. 갚을 방법이 없는 데 뭘 믿고 돈을 빌려주겠어라는 식이다. 빚을 지면 불행은 바로 자신의 토지를 빼앗겼다. 특히 세금이 밀려 있다면 더욱 그러했다.'고 지적했다.
가난한 집단에 속한 농민들 농업이 어느 정도까지 몰락했는지는 어떻게 자신의 농장을 운영하는지 물음에 포스트니코프가 답변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잘 드러났고, 가구 당 10데샤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농장들의 경우에는 농사 환경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정해진 체계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최하위 집단 농업 특징에 관한 설명은 그 수가 상당함에도 여전히 허술했다. 긍정적인 특징이 있을 텐데도,오로지 부정적인 성격만 부각됐다. 집단 농민들을 독립적인 농사꾼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왔다. 그들의 농장이 완전히 쇠퇴해갔고, 경작 면적은 터무니 없이 부족했고, 마구잡이였다. 통계학자들은 바크무트 군을 설명하면서,작물 씨를 뿌릴 때 일정한 체계를 보여주는 건 종자가 궁하지 않은 번창하고, 잘 사는 농민들 밖에는 없었다. 가난한 농민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렇게나 뿌려 댔다. 최하위 집단을 아우르는 농민 대중 존재는 결코 우연일 수는 없었다. 자신의 농자에서 생산한 결과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삶을 영위할까. 자신의 노동력을 판다. 농민 집단이 농장 날품팔이와 외부 벌이로 살아가지만, 그러나 남부 러시아에서는 수공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수입은 대부분 농업, 곧 농장에 고용된 결과로부터 얻어진다. 밑바닥 농민들 살림살이에서 주요한 특징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점이라는 점보다 구체적으로 증명하고자, 젬스트보 통계에서 분류한 범주에 따라 집단을 면밀히 살펴보자. 먼저 농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가구들 경우에는 농장 노동자들 뿐이기 때문에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가구 당 5데샤티나 미만, 평균 3.5데샤티나 경작 면적을 가진 두 번째 범주 경작자들은, 앞서 경작지를 농장 용역, 사료, 식량, 상업 구역으로 나누었을 때, 그 정도 크기에 따른 경작 면적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포스트니코프는 가구 당 5데샤티나 미만 경작 면적을 보유한 첫 집단에서는 시장이나, 상업 구역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농장 노동자로 노동하거나, 다른 수단으로부터 얻는 외부 수입 도움으로 겨우 생존해갔다. 그렇다면 가구 당 5-10데샤티나 경작 면적을 보유한 농민들이 남았다. 이들에게 독립적인 농업과 이른바 '소득' 사이에서 관계는 어떠한가. 엄밀한 대답은 집단에 속한 농민들과 관련된 전형적인 농민 예산에서 볼 수 있다. 포스트니코프는 예산 통계에 따른 필요와 중요를 전적으로 인정했었지만,그런 자료를 모으기가 대단히 어렵고, 많은 경우 통계학자들 권한을 자주 벗어난다고도 지적했었다. 그러나 같은 견해에 동의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모스크바 통계학자들은 몇 가지 매우 흥미롭고도, 구체적인 예산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보로네시 주 몇 개 군들에서는 예산 자료를 가구 단위로 수집했었다.
포스트니코프가 제시한 예산 자료는 매우 불충분했다. 독일에서 이민 온 농민 7명과 러시아 농민 단 한 명의 예산만을 인용했다. 게다가 그들 모두 대규모 경작자들로, 집단 살림살이는 젬스토보 통계에 담긴 점들로부터도 충분히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포스트니코프는 수 많은 농민들의 예산을 수집하고자, 돌아다녔지만 구할 수는 없었다고 유감을 표했었고, 예산을 정확히 평가한다는 건 전체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고도 답했었다.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타우리다 사람들은 살림살이 자료를 제공하는 데 매우 협조적이었지만, 자신들의 수입과 지출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농민들은 전체 지출 금액이나, 큰 수입과 지출 항목들을 매우 정확하게 기억했으나, 세세한 금액들은 거의 기억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었다. 하지만 젬스트보 가구 별 인구 조사에서는 이미 충분히 명확하게 해명된 경제적 상태에 대한
약 90개의 서술과 하나의 평가를 수집할 게 아니라, 사소한 세부 내역들이 빠졌더라도, 몇 개나마 예산을 수집하는 쪽이 더 나아보였다. 예산이 빠진 상태에서 집단에 따른 경제적 성격을 판단하고자, 검토할 수 있는 통계로는단 두 종류 뿐이었다. 평균적으로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가구 당 경작 면적 추산과 경작 면적을 네 구역으로 나눈 통계와 지역 농민들의 가구 당 연간 평균 현금 지출에 관한 통계였다. 한 가족에 따른 식량과 종자, 사료를 충당하는 데 요구된 경작 면적에 관한 구체적인 추산을 토대로, 포스트니코프는 최종 결론에 다다랐다. 평균적인 가족 수를 거느린 농가에서 보통 복지 수준을 누리고, 농사로만 살아가면서도, 적자 없이 수입과 지출 균형을 맞추려면, 평균 수확량을 고려할 때 가구 당 6과 1/2명의 가족을 부양하고자, 4데샤티나, 3마리 농사용 말을 먹이고자, 4와 1/2데샤티나, 종자를 들여오고자, 1과 1/2데샤티나, 판매용 곡물 생산을 위해 6-8데샤티나를 모두 합쳐 16-18데샤티나가 필요하다. 타우리다 주민들은 평균적으로 가구 당 18데샤티나 경작 면적을 가졌고, 세 개 군 주민 40%는 가구 당 10데샤티냐 미만을 보유했다.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오로지 외부로부터 고용되고 자신의 토지 일부를 임대해주면서 수입 중 일부를 충당해갔다. 경제적 입지는 비정상적이었고, 또 불안정했다. 대다수는 힘든 시기가 찾아왔을 때 그걸 헤쳐나갈 만큼 예비 자금을 모아놓을 수도 없었다.
조사 대상 집단에서는 가구 당 평균 견작 면적이 요구 면적 17데샤티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데샤티나에 불과했다. 집단에 속한 농민들은 자신들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을 '고용',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얻었다. 또 다른 계산에서, 경작지 분할에 관한 포스트니코프 통계에 따르면, 8데샤티나 경작 면적 가운데 0.48데샤티나는 종자를 위한 토지였고, 3데샤티나는 사료로, 3.576데샤티나는 가족이 먹을 식량을 위한 토지에만 해당됐다. 그래서 상업 구역으로 남는 면적은 1데샤티나 미만인 0.944데샤티나로, 벌어들인 수입을 30루블로 추정했다. 그러나 타우리다 주민 한 사람이 필수적으로 지출하는 현금은 훨신 더 많았다. 농민들은 이와 같은 식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예산보다는 현금 지출 금액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게 훨씬 더 쉬웠다. 계산법으로부터, 평균적인 규모에 따른 가족, 노동하는 남편과 아내, 4명의 어린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에서는,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고, 대략 20데샤티나 임차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필수적인 현금 지출은 타우리다 사람들이 추산하듯, 연간 200-250루블에 달한다. 아무리 모든 걸 아끼더라도, 소가족이 지출해야만 하는 최소한 현금은 150-180루블이다. 연 소득이 금액에 못 미치면 상당히 부족해지며, 노동하는 남편과 아내는 농장에서 먹고 자면서, 노동한 대가로 일 년에 120루블을 버는 대신, 가축이나 농기구 따위를 유지하는 비용, 아끼는 방법을 택한다. 더군다나 한 동네 사람들에게 토지를 임대해줘서 '추가 소득'도 얻을 수 있다. 검토 대상인 집단이 평균 이하이기 때문에, 평균이 아닌 최소 한도에 따른 현금 지출과 고용으로부터 얻어진 금액에 따른 최소치를 상정한다. 계산법에서는 검토 대상 집단 농민은 농사를 지어서 총 117.5루블을 얻었고, 노동력을 팔아서 120루블을 벌었다. 집단 농민들은 독자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최소 한도 지출 절반 미만을 충당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하위 집단에 따른 모든 세부 집단들에서 경제적 특징을 검토해봤을 때, 농민들 대다수는 작은 규모의 땅뙈기를 경작하더라도, 주된 생계 밑천은 노동력을 팔아서 나왔다. 집단 농민들은 모두 독립적인 농민이기 보다는 고용된 노동자들이었다. 포스트니코프는 하위 집단 농민들에 따른 경제적 특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었고,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외부 고용 관계 역시도 해명하지 않았었다. 따라서 연구에 따른 큰 결함이었다. 포스트니코프는 하위 집단에서 농민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자신의 토지를 포기한 채로 남에게 빌려주는 현상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못했다. 따라서 하위 집단 농민들이 소유한 토지와 농기구와 같은 생산 수단이 양적으로는 평균치에 훨씬 못 미쳤으며, 농업의 특징과도 연결되지 못했다. 생산 수단에 따른 평균적인 수량은 가족의 필수적인 요구를 겨우 충족시킬 정도에 불과했으며, 가난한 농민들은 정당한 몫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서부터 다른 사람 소유에 따른 생산 수단에다 자신들의 노동력을 적용해야만 하는, 스스로를 팔아야만 하는 상태로 내몰렸다.
- 중간 집단
두 번째 집단으로는, 인구 40%를 차지하는 중간 집단으로, 가구 당 10-25데샤티나 경작 면적을 가진 농민들이었다. '중간'이라는 단어는 집단 구성원들에게 전적으로 적용된 표기였지만, 생산 수단이 평균에 다소 못 미쳤다. 가구 당 경작 면적은 전체 농민 평균인 17데샤티나보다 약간 작은 16.4데샤티나였고, 가구 당 보유 가축 역시 전체 평균인 7.6마리에 못 미치는 7.3마리였고, 가구 당 총 경작지도 군 평균 20-21데샤티나 미달한 17-18데샤티나였다. 포스트니코프는 제시한 기준으로 가구 당 경작 면적을 비교해봤을 때, 중간 집단이 소유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 생산하는 양은 겨우 생계를 풀칠할 정도였다. 따라서 집단 농업이 가장 안정적일지도 모른다. 농사를 지어서 필요한 경비를 모두 충당하고,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노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반대였다. 농민 집단에 따른 농업은 상당히 불안정했다. 평균 16데샤티나 경작 면적은 겉보기로는 충분해보였지만, 10-16데샤티나를 경작하는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서 필요한 경비를 모두 충당할 수 없었으므로, 외부 고용에 의존했다. 농민 집단은 2,846명의 노동력을 고용했지만, 543명이 더 많은 3,389명의 노동력을 외부로 유출했다. 따라서 농민 집단에 속한 농가 약 절반은 결핍에 시달렸다. 게다가 집단 가구 당 농사용 가축 수는 3.2마리인 반면에, 가축들이 한 조를 이루려면, 모두 4마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집단 농가들 가운데 상당 수는 토지를 경작하기에는,보유한 가축이 부족해서, 다른 농민들과 협업에 의존했다. 농민 집단에 속한 협업 노동자들은 전체 절반 가까이에 이르렀다. 한 조를 이룬 가축을 보유한 가구 비율 약 40% 가운데 20%는 부유한 상위 집단에 속했고, 나머지 20%는 중간 집단에 속했으므로, 중간 집단에서는 절반 가량은 한 조를 이룬 가축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으로 이어졌다. 포스트니코프는 해당 집단에서 협업 농업 노동자들의 정확한 숫자가 얼마인지 제시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젬스트보 통계 초록에서 통계를 찾을 수 있었다.
두 개 군 중간 집단에서 자신의 가축을 동원해,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농가는 소수였다. 메리토폴 군에서는 가구의 1/3미만, 드네프르 군에서는 절반 미만이었다. 세 개 군을 다 합쳐서 추산한 협업 노동자들의 절반 가량의 숫자는 부풀리지 않은 수치로, 너무 낮은 쪽이었다. 농부가 자신의 가축으로 농사를 지울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로 농업에 따른 불안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협업 농업 체계에 대해서, 포스트니코프는 같은 현상에 주목하지도 않았으며, 경제적으로나, 생활 풍습 관점에서도 흥미로웠다. 말 세 마리를 한 번에 마구에다 채워 끄는 힘은 한 마리가 끄는 힘의 세 배가 되지 않는다는 역학 법칙에 따라, 협업 노동을 기반으로 삼는 농민들의 표준적인 작업 면적은 자신의 가축을 가지고 노동하는 농민들보다 더 낮았다. 협업 노동을 주선하는 사람들은 마을 건너편에서 살기도 했다. 게다가 두 가구에 속한 땅뙈기 수는 한 가구에 따른 땅뙈기의 두 배였다. 모두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증가시켰다. 토지가 분할되면, 각 농가는 자신의 구성원들 몫으로부터 특정 밭에서부터 서로 붙어 있는 토지를 받는다. 그러므로 소규모 농가는 그만큼 받는 토지가 적어진다. 타우리다 주에서 협업 노동 상태는 매우 다양했다. 협업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이 조파기를 갖고 있으면, 추가로 쟁기로 갈아진 토지를 얻었다. 조파기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 그걸 사용하는 동안에는 수리 비용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방식도 있다. 비슷하게, 협동 노동에 동원되는 가축 수가 같지 않은 경우, 추가로 쟁기질을 할 수 있는 방식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협동 노동 사이에서 다툼은 매우 빈번했으며, 합의가 이뤄지는 데도 얼마간 시간이 걸렸고,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협동 노동자들이 떨어져나가는 경우도 발생했다.
가축이 부족할 뿐만이 아니라, 농기구가 부족한 문제도 있었다. 모든 군 중간 집단에서는 가구 당 쟁기질에 쓸 농기구를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집단 내에서조차 농기구 분포는 전혀 균등하지 않았다. 젬스트보 초록을 참고했을 때, 드네프르 군에서는 농기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가구가 전체 21.9%에 달했고, 메리토폴 군에서는 21.4%였다. 쟁기질 도구를 전혀 보유하지 않은 농가들은 경제적 상태에 있어 하위 집단이었고, 하나 이상이라도 도구를 가진 농가들은 상위 집단에 더 가까웠다. 대표적으로 쟁기를 갖고 있지 않는 농가 수로는, 드네프르 군에서 32.5%, 메리토폴에서는 65.5%로 훨씬 더 높았다. 하위 집단 농민들은 보유한 수확 기계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포스트니코프네 따르면 하위 집단에 따른 전반적인 농업 체계는 농사용 가축을 네 마리 미만으로 보유한 가구들은 경작을 하고자 협동 노동을하며, 일하는 구성원도 적었다. 작업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작은 농장 규모로 농기구가 부족했고, 협동 노동 체계 때문이었다. 협동 노동자들은 작은 조파기를 쓰기 때문에, 작업 속도도 더 낮았다. 손으로 추수하는 방법도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날품팔이 인력을 고용해야하거나, 비용도 더 많이 들어갔다. 일손이 부족한 경우에는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지장을 받았다. 농민들은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마을에 자주 오다니다 보면 작업도 지체됐다.
타우리다 주 세 개 군 전체에서도 서로 다른 집단 별 가족 당 노동 구서우언들의 수를 표로 제시했었다. 가족 가운데 일손이 하나 밖에 없는 농민들은 검토 대상 집단에서도 다수를 차지했다. 따라서 중간 집단 농가들 3/5 가량은 가족 중 노동 구성원이 한 명이거나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중간 집단과 상위 집단 간 농장 관계에서 전체적인 안정도로는, 농민들로부터 처분에 맡겨진 모든 토지, 경작 면적이 집단들 사이에서 어떻게 분포되는지를 보여주는 『드네프르 군 통계 보고서』에서도 나타났다. 표에서는 중간 집단이 전체 가운데 46.5%였다. 다른 집단들보다 경작 할 수 있는 분여지를 더 많이 소유했고, 농민들은 임차에 의존할 수밖에는 없었다. 따라서 경작하는 면적은 50% 이상 증가했다. 중간 집단이 관리하는 토지 양도 절대적으로 증가했지만, 상대적으로는 전체 면적에서 41.2%와 경작 면적 43%로 감소했다. 상위 집단 차지였기 때문에, 하위 집단과 중간 집단 역시 상위 집단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아간다는 압박도 가졌다.
중간 집단에서 경제적 상태는 경작하는 토지로부터 거둬들인 수익으로만 버티는 농민들로 구성됐다. 토지 면적은 지역 농민 전체가 경작하는 평균 면적과 동일했고, 가족에 따른 필수적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가축과 농기구가 부족해서, 분배도 불공평하기 때문에 농업은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다. 특히 하위 집단과 중간 집단을 착취하는 상위 집단에 따른 위협적인 경향도 나타났다. 부농층을 구성하는 상위 집단에서는 타우리다 군들에서는 인구 1/5를 차지했고, 가구 당 25데샤티나 이상 경작지 면적을 보유했다. 집단 간 농민들이 중간 집단 농민들보다 얼마나 더 잘사는지를 보여주려면, 작물 면적에 관한 통계를 살펴봐도 충분했다. 드네프르 군에서는 부유한 집단은 가구 당 41.3 데샤티나 경작 면적을 보유했지만, 군 평균은 17.8데샤티나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대규모 경작자들은 더욱 번창해지는 양상은 포스트니코프도 충분히 제기했었지만, 다른 문제들에서는 소홀했었다. 지역 전체 농업 생산에서 집단 농업의 역할과 상위 집단 번영을 위해 다른 집단들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하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실제로 상위 집단은 매우 적은 수였다. 러시아 남부에서 가장 잘사는 지역이었던, 타우리다 주에서는 인구가 단 20% 밖에 되지 않았다. 지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잘 사는 소수가 전체 농산물 생산에 있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타우리다 소재 4개 군에 있는 총 1,439,267데샤티나 경작 면적 가운데 724,678데샤티냐는 부농들 수중에 있었다. 상위 집단이 얼마나 득세하는지를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빈농들과 중농들보다 부농들이 훨씬 더 많은 수확량을 기록했다.
주된 곡물 생산자들은 상위 집단 농민들이었다. 농업 개선에 관한 담론은 주로 잘 사는 소수와 연관됐다. 개량된 농기구 분포도에서도 알 수 있었다. 포스트니코프는 타우리다 농민들에 따른 농기구에 대해 언급했었다.
'대부분 농기구들은 독일 이민자들과 동일했지만, 양도 적고, 질도 낮아서, 가격은 더 저렴했다. 드네프르 군에서는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남서부 지역에서는 원시적인 농기구들과 무거운 쟁기, 철 조파기가 여전히 널리 쓰였다.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는 농민들이 철제 개량형 쟁기, 조파기는 농민들이 사용한 쟁기 도구였다. 토지를 경작하는 데 있어 써레와 바퀴로 굴러가는 파종기도 있었고, 목재 굴림대도 있었다. 수확 기계는 10년 간 농민들 사이에서도 널리 보급된 농기구였다. 잘 사는 마을에서는 거의 절반에 이르는 농가들이 농기구를 소유했다. 잡초기, 써레, 탈고기는 드물었지만, 풍구 사용은 보편화됐다. 물건을 운반하고자, 독일식 사륜마차와 마자라가 사용됐으며, 탈곡 시에는 굴림대들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젬스트보 통계 초록에서는 농기구들의 분포도도 나와 있었다. 메리토폴과 드네프르 군 통계를 합쳤을 때, 총 46,522개 쟁기 가운데 상위 집단 경작자들이 소유한 개수로는 42.9%, 19,987개였다. 마차는 59,478 가운데 23,747대로 39.9%, 수확기는 3,061대 가운데 2,841대로 92.8%였다. 따라서 상위 집단 농민들에 따른 농민 생산성은 하위와 중간 집단보다 상당히 높았다. 대규모 경작자들의 구체적인 경제적 특징 및 기술적 특성으로는, 농업 체계의 성격에서는 주로 농민들의 토지 규모였다. 의존도에 대해서는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았으며, 농민 농업을 조사한 사람들은 시골 모든 집단 주민들이 똑같은 유형을 나타냈다는 생각을 자주 품었다. 포스트니코프는 타우리다 소재 군들을 방문하면서, 농민 집단 간 농사 기술 특성을 요약하고자 했다.
협동 노동에 의존하지 안혹, 가축을 작업하는 농가들은 네뎃 마리 이상 농사용 가축을 보유했다. 경제적 상태도 매우 다양했다. 조파기는 한 조 당 네 마리 가축을 요구했고, 다섯 개 달린 농기구는 다섯 마리를 요구했다. 쟁기질과 써레질에 따른 여분 말이 없는 농민은 써레질을 바로 할 수 없어, 쟁기질을 마친 뒤에 할 수 있었다. 이미 미세하게 마른 흙이 씨앗을 전부 덮어버려, 발아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쟁기질을 하면, 물과 사료를 실어 날랐고, 여분의 말이 없는 경우에도 작업은 지체됐다. 작업용 가축을 갖추지 못하면 시간을 손해 보고, 파종이 늦어졌다. 농사용 가축과 여러 날을 갖춘 파종기가 있다면, 농민들은 밭을 더 빠르게 갈 수 있어서 유리한 날씨를 활용했고, 씨앗이 촉촉한 흙으로 덮일 수 있었다. 봄 파종 시 기술상 이점을 가진 사람들은 예닐곱 마리 농사용 가축을 제대로 갖춘 농민들이었다. 일곱 마리 말이 있으면, 조파기와 써레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었으며, 쉬지 않고 작업할 수 있었다.
추수 직후에는 농민들 형편 차이도 중요해졌다. 풍년일수록 농장에서는 최대한도 노동력이 요구됐다. 여섯 마리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농민은 곡식을 쌓아둘 필요 없이 실어 나르는 대로 탈곡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과 인력도 절약했다. 대규모 경작자에 따른 살림살이에서, 경작자 집단 농업은 포스트니코프의 표기대로, 상업적인 사업이었다. 상업 부문 크기 통계에서는 그의 서술을 증명했었고, 경작 면적이 클수록, 시장에 내다팔 농산물을 생산하는 상업 부문 비중이 더 커졌다. 25-50데샤티나 경작 면적을 가진 농장에서는 전체 면적 가운데 52%가 상업 구역이었고, 50데샤티나가 넘는 부농들은 축산업 한 분야인 양의 번식조차도 시장 지향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포스트니코프는 설명했었다. 포스트니코프는 바로 소수 농민들에 따른 경제적 성과가 다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었다. 그 영향은 완전히 부정적이었다. 타우리다 주 세 개 군에서는 농민들은 미분여지와 분여지를 합쳐, 총 476,334데샤티나가 부유한 집단에게로 돌아갔다. 반면에, 가난한 집단 몫으로 돌아간 건 단 6%에 불과했고, 중간 집단 몫은 31%였다. 임대된 토지는 유일하지 않더라도, 하위 두 집단이라는 점을 명심했을 때, 부농들의 경작지가 상업적으로도 확대되면서, 토지 부족으로 얼마나 고통받는지도 명확해진다.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분여지에 따른 임대 분포에 관한 통계가 제시된 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자면, 서로 다른 농민 집단들에 있어서도, 분여지에 따른 임대차가 지니는 중요도를 설명하고자, 포스트니코프 책에서도 임대차 유형이 서술됐다. 분여지는 러시아 남부 농민들 사이에서도 폭 넓은 투기 대상이었다. 토지는 차용증에 대출을 위한 보증이었고, 타우리다 농민들 사이에서 차용증들도 매우 널리 돌아다녔다. 토지 수익금은 채무가 해결될 때까지 대출업자에게 돌아갔다. 그런 토지는 1-2년 또는 긴 8-10년 동안 임대되거나, 팔렸다. 분여지를 임대할 때, 읍이나 마을 관공서에 공식적으로 등록해야만 했다. 분여지들이 팔려가는 가운데, 매각 사실은 마을 당국 장부에 기록됐다. 분여지 매각은 각 가구마다 등재된 사람 수에 따라 토지가 분할됐고, 근본적인 토지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은 마을, 가구 당 실제 구성원 숫자에 따라서도 토지가 분할되고, 정기적인 토지 재분배가 이뤄지는 마을 모두에서 행해졌다. 가구당 실제 구성원들은 보통 거래가 다음 재분배 날짜 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이뤄졌고, 재분배 날짜는 대부분 지역 사회에 따른 토지 재분배 결정에 따라 미리 정해졌다. 러시아 남부 마을에서는 분여지 거래로는, 특히 타우리다 군들에서 수적으로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농들의 사활이 걸린 이해 관계와도 밀접했다. 특히 타우리다 부농들은 막대한 면적에 따른 토지를 경작하게 된 주된 배경이었고, 상당한 경제적 이점을 안겨줬다. 부농들은 대부분 저렴하고, 근처에 위치한 토지 임차를 가로막는 생활 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민감했다.'
'메리토폴 군 농정 위원회가 분여지를 임대하는 개별적인 사례마다 마을 의회 승인을 요구한 점과 농민들이 명령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점, 명령이 가져온 유일한 효과로는 토지 거래 내역들이 비공식적으로는 여전히 기록됐고, 마을 법원에서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을 꺼냈었다.' 한편 부농들은 막대한 규모에 따른 토지를 임차했고, 토지를 구매하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드네프르 군에서는 전체 매각 토지 78%를 사들였고, 총 48,099데샤티나 매각 토지 가운데, 88%에 해당하는 42,737데샤티냐를 구매했다. 신용을 활용하는 유일한 사람들도 상위 집단 농민들이었다. 남부 마을 대부 조합에 대해서는, 국가로부터 여러 개 세워진 타우리다 주 마을들에선 많은 마을 대부 조합들은 주로 부농들이 지원했고, 대부분 그러했다. 특히 대부분 조합들이 운영된 타우리다 주 마을에서는 농민들이 '유대인들을 몰아냈다고' 말했을 때는, 죄다 부농들이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농민들은 보증인을 구할 수 없어, 대출은 전혀 받지도 못했다. 신용 독점 현상에서 신용 거래는 구매할 때 대금 지불을 연기했다. 그래서 지불 수단을 가진 사람들만이 대금을 치르렀고, 남부 농민들 가운데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늘 잘 사는 소수들이었다.
생산 활동에 따른 과실에서도, 여타 모든 집단들을 전부 합쳐도, 더 많은 과실을 가져가는 상위 집단에 따른 경제적 상태을 마무리하자면, 임금 노동력에 상당한 수준으로 의존했고, 노동력을 공급해주는 건 필연적으로도, 하층 집단 구성원들이었다. 농업에 고용된 임금 노동자 수를 정확하게 계산한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다. 젬스트보 통계도 난제를 극복하지는 못 했었다. 농업에서는 일 년 내내 노동력이 늘 꾸준하게 필요한 게 아니었고,특정한 계절에서만 수요가 늘어났기에, 상시적으로 고용된 노동잗르을 신고받더라도, 임금 노동자들의 착취 수준을 확인할 수는 없엇고, 계절 노동자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의 숫자를 계산하기에도 어려웠다. 각 집단 별 임금 노동자들에 따른 수를 추산하고자, 포스트니코프는 부유한 집단에서 노동 기준을 노동력이 있는 가족 한 사람 당 15데샤티나로 설정했다. 경작 면적에 따른 실제 규모를 구체적으로도 검토한 저작에서는, 기계로부터 수확이 이뤄졌을 때, 기준이 달성됐다는 점이다. 수화 기계 수는 부유한 집단에서도 그닥 많지는 않았고, 드네프르 군에서 열 가구 당 하나 꼴이었다. 기계 소유주들이 자신의 수확 일을 끝낸 다음에 기계를 대여해준다는 포스트니코프의 주장대로라도, 농민들 대다수는 기계 없이 농사를 지어갔고,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해갔다. 그러므로 상위 집단에서 임금 노동자 고용은 추산보다 규모가 더 컸고, 집단 농민들이 벌어들이는 많은 화폐 수입은 주로 정치경제학에서 자본 소득이었다.
- 상위 집단 및 결론
세 번째 집단에서는, 평균적인 수량에 따른 생산 수단보다 상당한 수단을 더 보유했기 때문에, 그만큼 노동 생산성이 더 높은 부유층 농민들은 지역에서 농업 생산의 주축이 됐고, 나머지 집단들에 비해서도 우위를 점해갔다. 상위 집단에 따른 농업은 상업적인 성격을 띠었고, 대부분 임금 노동자 착취에 기반을 뒀다. 남부 농민 농업에 관한 포스트니코프 저작과 자료들을 체계화하면서부터, 지역 세 가지 주민 집단들에 따른 경제적 상태에 있어 정치경제학적인 차이를 살펴봤다. 농민들을 집단 별로도 구분하지 않고서는, 농민 농업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점을 증명했다. 포스트니코프도 인식했고,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을 책망했었다. 풍부한 통계들이 주어졌음에도, 개요들은 불명확했고,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포스트니코프는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농민들을 명확한 집단으로 체계적으로 분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스트니코프의 지적은 옳았다. 많은 농가들 사이에서도, 양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부유한 정도가 아닌, 농업에 따른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성격에 따라 농민들을 집단 별로 구분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에게도 정당하게 요구한다.
5. 포스트니코프에 따른 결론
포스트니코프는 농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갈등을 기록했고, 같은 과정에 따른 격화에도 주목했다.
'농민 집단들 간 많은 생활 수준은 어떤 국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존재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농민 인구 내에서 차이가 뚜렷해졌고, 꾸준하게 증대됐다.'
이와 같은 포스니코프의 견해는 1891년 어려운 경제 사정이라는 과정에서도 추진력을 제공했다. 그렇다면, 농민 인구 전체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의 원인들은 과연 무엇인가.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타우리다 주는 러시아 영토 내에서도 가장 토지가 풍부한 지역이었다. 농민들에 따른 분여지 면적이 가장 넓은 주이기도 했다. 타우리다 주는 공동체에 따른 집단적 토지 소유가 보편화됐고, 한 사람 당 토지도 어느 정도 공평하게 분배됐다. 시골 인구는 농사에만 의지했었지만, 가구 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 15%는 농사용 가축을 전혀 보유하지 않았고, 약 1/3 가량 분여지를 경작하기에는 농기구도 불충분했다. 당시에, 포스트니코프의 질문으로는 '농민들 사이에서 폭 넓은 다양성은 어디에서 비롯됐고, 특히 순수한 농업 경제에서 경작지, 농사용 가축을 갖지 못한 농가 비율은 왜 높은가'였다. 그러나 포스트니코프는 현상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았었고, 게으름, 술독, 방화, 절도 행위까지 거론했었다. 그리고는 문제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가족의 사별, 노동 성인 구성원들에 따른 부재만으로도 전혀 설명될 수 없는 성질은 아니었다.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 경작할 토지를 전혀 보유하지 않은 비농업 가구들 가운데서 가족과 사별한 가구는 18%에 불과했다. 포스트니코프에 따르면, 가구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주된 이유를 찾으려면, 농민들 경제 생활 가운데 다른 요인들을 들여다봐야만 한다고 결론 내렸었다. 특히 특정 농민들 사이에서 농사를 짓는 비율이 하락하는 나열된 이유들로도, 젬스트보 통계학자들도 가장 근본적이고, 거의 해명하지는 못했었다. 그들도 분여지에 따른 해체와 농민이 활용하는 토지에 따른 제한된 양, 농장에 따른 평균 규모 감소에 있다는 의견만을 제시했었다. 따라서 경제적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은 농민이 보유한 토지와 농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가족 내 노동력을 완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가족을 부양하라면, 평균 17-18데샤티나 규모가 충분했고, 농장 규모에 관해 전체 농민층을 일반화시켜 도매금으로 묘사할 수 없다는 포스트니코프에 따른 부정확한 명제에 대한 확인을 위해서도, 포스티코프는 이미 농민에 따른 노동생산성이 농장 규모가 커질수록 증가한다는 일반 법칙을 세웠다는 점이다. 추정에 따르면, 가족과 가축 노동력을 완전히 활용한다는 건, 오로지 상위 집단 뿐이었고,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도 부농들 밖에는 없었다. 인구 절대 다수는 막대한 노력을 쓸데 없이 낭비했고, 비생산적으로 토지를 깨지락거렸다. 그러나 포스트니코프는 노동생산성이 농장 규모에 달렸고, 하위 농민 집단들에서는 생산성이 극도로 낮다는 점을 충분히 임증했음에도, 농업 인구 초과(농업 노동력 포화) 법칙은 농민층 해체 원인이 아니었다. 농업 인구 초과는 이미 해체가 존재하는 걸 전제 삼았기 때문에, 문제는 농민층이 왜 다양한 집단으로 쪼개졌느냐는 점이었다.
포스트니코프는 소규모 및 대규모 농장들과 수익성을 비교하면서부터 인구 초과 개념에 도달했다. 따라서 '농민들 사이에서 폭 넓은 다양성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는 질문에는 단순히 농업 인구 초과를 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수는 없었다. 포스트니코프는 현상에 대한 원인을 조사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도 갖고 있지 않았고, 단편적이기만 했었지만, 간혹 올바른 사고도 있었다.
'토지 소유를 둘러싸고 농촌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투쟁에는 장차 주민들 사이에서도 공동체와 화합에 따른 원칙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는 기대할 수 없다. 같은 투쟁은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원인들에 따른 결과물도 아니다. 농촌에서 발달하는 개인주의와 공동체 전통 간 다툼이 아니라, 현존하는 토지 부족을 고려했을 때, 인구 특정 집단에게 필연적으로 유리한 경제적 이해 관계에 따른 순수한 충돌이었다.'
'토지 부족과 농장들에 따른 영세한 규모, 제대로 된 구실을 하는 산업 부재로 인해 농민층 사이에서는 번영조차 없었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조만간 농업으로부터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매우 분명했다.'
포스트니코프에 따른 평가는 질문에 대한 정답에 가까웠고, 더군다나 규명된 주민들에 따른 차이에서도 전적으로 들어맞았다. 정답은 대규모 비농업 가구들에 따른 등장과 수적인 증가는 농민층 사이에서 경제적 이해 관계에 따른 충돌로부터 결정됐다. 그렇다면, 일어나는 충돌은 무엇을 토대로부터 벌어졌고,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을까. 방식에 있어 토지 규모에 따른 증가가 낮은 생산 비용으로 이어졌고, 토지 확보를 추구하는 데 그치지는 않았다. 포스트니코프는 충돌이 무엇을 토대로 발생하는지 분명하게 지적했었다.
'한 농장 내에서 농장 용역 구역에는 분명한 최저선이 존재한다. 최저선 밑으로 떨어질 때, 이윤은 나지 않고, 심지어 운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 구역도 가족과 가축 유지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이 필요했다. 외부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없거나 적은 농장은 생산물을 팔아 세금을 냈고, 의류를 사며 농기구와 건물 등에 필요한 경비를 충둥할 돈을 벌어들이는 특정 수준에 따른 시장 구역을 이미 소유해야만 했다. 농장 규모가 최저선 이하로 떨어지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농민은 농사를 포기하고 노동자가 되면, 지출은 더 줄어들고, 더 적은 총 소득으로도 필요한 걸 충분히 채울 수 있어, 더 이득이라는 점이었다.'
'농민이 자신의 곡물 수요를 훨씬 뛰어 넘는 면적으로 경작을 확대하는 게 더 이득이라면, 자신의 농산물을 팔 수 있다. 다르게 농사를 포기하고, 노동자가 되는 게 더 이득이라면, 자신의 요구를 상당 부분 충족시키고자 현금 곧 매출을 요구하며, 자신의 농장 생산물을 팔려고 하면 시장에서는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상대와도 맞닥뜨려,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노동력으로 팔아버린다.'
다음과 같은 현상들로부터 자라난 토양은 곧 판매를 위한 생산이다. 농민층 사이에서도 불거지는 경제적 이해 관계 충돌에서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시장이 사회적 생산에 따른 조절 기관을 담당하는 제도에 따른 존재에 달려 있다.
'농민 생활의 새로운 경제적 양상'에서도, 포스트니코프는 '농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실실적인 방안들에 따른 윤곽을 그렸었다. 그러나 같은 지점으로까지 접어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계획했던 바가 아니었고, 포스트니코프 저술 가운데에서도,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포스트니코프 글 가운데에서도, 모순된 부분과 불완전한 주장들 대부분은 경제 과정을 설명하려는 순간에 생겨났고, 완전하고 정확하게 해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실질적인 방안도 제시될 여지가 없다는 점을 명심했을 때, 비로소 매우 명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