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내 시장에 따른 자본주의적 발전과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날이 갈수록 인민 대중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으며, 과연 자본주의가 싹을 틔우고 완전한 발전에 도달하는가.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분명 폭 넓은 국내 시장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농민층 붕괴는 국내 시장을 약화시키고, 철거하게끔 위협하면서도, 오히려 자본주의적 질서에 따른 구성을 모조리 파괴하도록 만든다. 자본주의가 직접 생산자에 따른 자연 경제를 상품 경제로 전환시키면서, 스스로 시장을 창출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핍한 농민들에 따른 자연 경제 가운데 남은 자투리가 한 국가에서도 서구와 같은 보다 강력한 자본주의적 생산 발전에 따른 토대를 이룰 거라고는 과연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대중들은 가난에 허덕인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미 한 국가에 따른 자본주의로부터 무력해지며, 토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국가 전체 생산을 아우르는 사회적 경제 근간을 더욱 확실히 무능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반대하는 국내 여러 문헌들에서도 같은 질문들이 꾸준하게 제기된다. 시장 부재는, 국내에서도 마르크스 이론을 접목시킬 수 없다고 내세우는 사람들이 주로 제기하는 논점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시장 문제」라는 문건 목적도 바로 마르크스 이론에 관한 접목을 반박하기 위함이다.
2. 시장 문제에서 사회적 총 자본에 따른 재생산 정리
G.B. 크라신,「시장 문제」에서 주된 전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따른 보편적이고, 배타적인 지배'라는 가정이다. 전제에서부터 『자본』Ⅱ, 21장-3편, 사회적 총자본에 따른 재생산과 유통에 대한 내용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이 어떻게 노동자와 자본가에 따른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산에 있어 일부를 대체해가고, 생산에 따른 일부가 생산 자본 요소들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그러므로 Ⅰ에서는 개별 자본에 따른 생산과 재생산에 대한 검토는 자본 구성 요소들과 가치에 따른 생산물 분석으로부터 『자본』Ⅰ에서 제시한,
- 생산물 가치
c(불변 자본) + v(가변 자본) + s(초과 가치)
로 구성된다고 드러나면서부터, 제한된다. 여기에서 생산물은 물질적 구성 요소들로도 분할되어야만 하며, 자본에 따른 성분들로 구성된 생산물 일부만으로는 개인적 소비를 위해 사용될 수는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사회적 총 생산을 따라 사회적 총 생산물을 구분하자면,
1). 생산적인 소비를 위한 기능 상품: 생산수단에 따른 생산 곧 생산적인 자본 요소
2). 노동 계급과 자본 계급에 따른 개인적인 소비를 위해 기능하는 상품: 소비 수단에 따른 생산
연구로부터 기초로 삼는 공식은, 아라비아 숫자는 가치 단위들을 가리키며,
로마 숫자들은 사회적 생산 부문을 가리킨다. 초과 가치율은 100%이다.
Ⅰ 4,000c + 1,000v + 1,000s = 6,000
Ⅱ 2,000c + 500v + 500s = 3,000
(자본 = 7,250, 생산물 = 9,000)
단순 재생산에서는 생산이 확대되지는 않고, 예전 규모를 여전히 영구한다고 가정했을 때, 자본가들은 초과 가치 전부를 비생산적으로 소비하며, 축적이 아닌 개인적 욕구를 위해 사용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Ⅱ(500v) 와 Ⅱ(500s)가 동일한 Ⅱ 부문 내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로부터 분명하게 소비된다. 생산품이 개인적 욕구 충족을 위한 소비 수단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Ⅰ부문 내에서 자연적 형태에 따른 4,000c는 자본가로부터 소비된다. 생산 규모가 불변하는 상태에서는 향후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을 위해 똑같은 자본 유지가 요구된다. 따라서 자본에서는 해당 부문을 대체하는 데 있어 아무런 제약이 없다. 석탄, 철, 기계 등과 같이 자연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생산물에 따른 해당 부문은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자본가들 사이에서 교환되고, 앞선 바와 같이 불변 자본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Ⅰ(v+s)와 Ⅱ(c)가 여전히 남으며, Ⅰ(1,000v) +Ⅰ(1,000s)는 생산 수단에 따른 형태로 존재하는 생산물이고, Ⅱ(2,000c)는 소비 수단에 따른 형태로 존재하는 생산물이다. Ⅰ부문은 단순재생산, 곧 전체 초과 가치에 따른 소비에서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은 2,000에 따른 가치에서 [1,000(v) + 1,000(s)]를 소비 수단으로 소비해야만 한다. 예전 규모대로 생산을 계속하려면, Ⅱ부문 자본가들은 자신들에게 있어 불변 자본(2,000Ⅱc)을 대체하고자, 2,000 정도까지 생산 수단을 획득해야만 한다. 따라서 Ⅰ(v) + Ⅰ(s) = Ⅱ(c) 와 교환된다. 그렇지 않다면, 예전 규모대로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 재생산 조건으로는, Ⅰ부문에서 가변 자본과 초과 가치에 따른 총합이 Ⅱ 부문에서 불변 자본과도 똑같아야만 한다.
Ⅰ(v+s) = Ⅱ(c)
1년 동안, 두 부문에서 생산된 모든 새로운 가치 총합은 소비 수단 형태로 존재하는 생산물에 따른 총 가치와 동일해야만 한다는 법칙을 이끌어낸다.
Ⅰ(v+s) = Ⅱ(v+s) = Ⅱ(c+v+s)
물론 실제로는 단순 재생산이란 존재할 수 없다. 사회 전체에 따른 생산은 매년 예전 규모로만 머물 수 없고, 축적은 자본주의 체제 법칙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생산이 어떻게 규모가 확대되고, 축적이 이뤄지는지 검토해보자면, 축적이 이뤄지는 상태에서 초과 가치에 따른 일부만 자본가들에게 개인적인 욕구를 위해 소비되며, 나머지 부분은 생산적으로 소비된다. 곧 생산 확대를 위한 생산적 자본 일부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축적이 이뤄지는 한, Ⅰ(v+s), Ⅱ(c)가 동일할 수는 없다. Ⅰ부문에 따른 초과 가치 일부가 소비 수단으로 교환되지는 않으며, 생산 확대를 위해 사용되려면,
A) 단순 재생산 공식
Ⅰ 4,000c + 1,000v + 1,000s = 6,000
Ⅱ 2,000c + 500v + 500s = 3,000
Ⅰ(v+s) = Ⅱ(c),
B) 확대 재생산 공식(초기 축적 공식)
Ⅰ 4,000c + 1,000v + 1,000s = 6,000
Ⅱ 1,500c + 750v + 750s = 3,000
Ⅰ(v+s) > Ⅱ(c),
축적이 이뤄지면, 사회적인 총 생산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 사회적인 총 생산물 가치
Ⅰ 4,000c + 1,000v + 1,000s = 6,000
Ⅱ 1,500c + 750v + 750s = 3,000
(자본 = 7,250, 생산물 = 9,000)
Ⅰ(1,000v + 500s)는 단순 재생산에서와 같이 Ⅱ(1,500c)와 교환된다.
Ⅰ(500s)는 축적이며, 생산을 확대하고자 투입되어 자본으로 전환된다. 방금 전 분할된 부분을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으로 나누면,
Ⅰ 500s = 400c + 100v,
추가 불변 자본인 (400c)는 생산물Ⅰ)에서 자연적 형태인 생산 수단으로, 포함되지만 추가 가변 자본인 (100v)는 Ⅱ부문에서 자본가들로부터 확보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축적한다. 자본가들은 초과 가치 일부인 Ⅱ) (100s)를 생산 수단인 Ⅰ) (100v)와 교환해서 생산 수단을 추가 불변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따라서 불변 자본은 (1,500c - 1,600c) 으로 증가한다. 추가 노동력 (50v)도 필요해지며, Ⅱ) 부문에서 자본가들에 따른 초과 가치로부터 가져온다. 최초 자본에다 Ⅰ부문과 Ⅱ부문으로부터 가져온 추가 자본을 보태면, 생산물 분배 공식을 얻을 수 있다.
Ⅰ 4,400c + 1,100v + (500s) = 6,000
Ⅱ 1,600c + 800v + (600s) = 3,000
괄호 안에 묶인 초과 가치는 자본가들에게는 소비 자금으로, 축적 목적이 아닌, 자본가들에게는 개인적 욕구를 위해 들어가는 초과 가치 일부이다. 생산이 예전 규모대로 진행된다면, 연말에 이르러서는,
Ⅰ 4,400c + 1,100v + 1,110s = 6,000
Ⅱ 1,600c + 800v + 800s = 3,200
(자본 = 7,900, 생산물 = 9,800),
Ⅰ(1,100v + 550s) = Ⅱ(1,650s),
(50c) = Ⅱ(800s)
(c)가 50만큼 증가하면서, (v)도 25만큼 증가한다. Ⅰ(550s)는 예전과 같이 축적된다.
Ⅰ 550s = 440c + 110v
Ⅱ 165s = 110c + 55v
Ⅰ(110v), 가변 자본은 Ⅱ(110c), 불변 자본으로 옮겨갔다.
초기 자본에다 추가 자본을 더하면,
+ Ⅰ(4,400c) + (440c),
+ Ⅱ(1,100v) + (110v),
+ Ⅱ(1,600c) + (50c) + (110c),
+ Ⅱ(800v) + (25v) + (55v),
- 연간 총 생산물 가치
Ⅰ 4,840c + 1,210v + (550s) = 6,600
Ⅱ 1,760c + 880v + (560s) = 3,200
- 증가한 총 생산물 가치
Ⅰ 4,840c + 1,210v + 1,210s = 7,260
Ⅱ 1,760c + 880v + 880s = 3,520
(자본 = 8,690, 생산물 = 10,780)
본질적으로 사회적 총 자본에 따른 재생산에 대한 마르크스 연구는 이와 같다. 연구에 대해 반드시 충분한 의문을 가지고, 매우 간결한 형태로 제시됐다. 검토 대상인 질문과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화폐 유통, 고정 자본에 따른 대체와 같이, 마르크스에 따른 구체적인 분석도 생략됐다.
3. G.B. 크라시 주장 비판과 마르크스 연구 결론
마르크스로부터 행해진 연구들로부터 크라신은 어떤 결론을 끌어냈을까. 크라신은 결론을 분명하게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일치되지 않는 특정 진술로부터 판단할 수밖에는 없었다. 크라신은 Ⅰ부문에서 생산 수단으로부터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에서 어떻게 축적이 이뤄지는지를 살펴봤고, 축적은 소비품 생산에 따른 발달과 소비에 상관 없이, 개인적인 소비에 따른 발달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생산에 따른 확대가 가변 자본을 요구하고, 따라서 소비품을 요구하기 때문에, 축적이 소비품 생산으로부터 '독립적'이라고 이뤄진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크라신은 잘못된 표기를 사용했고, Ⅰ(c), 특히 Ⅰ부문 불변 자본에 따른 재생산이 Ⅱ부문과 교환 없이 발생한다는 점, 석탄 생산 목적인, 매년 특정한 양에 따른 석탄이, 사회에서 생산된다는 공식으로부터, 구체적인 특징을 단지 강조하고 싶어했었다. 생산에 있어 석탄에서도 일어나는 일련의 교환으로부터 소비품에 따른 생산과 연결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석탄 소유주든 노동자든, 생산과 연결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크라신은 자본 축적에 따른 주된 움직임은 어떤 직접 생산자, 인구층에 따른 개인적 소비와도 독립적으로 발생했다고 말했었다. 또한 자본주의에 따른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이 소비품에 따른 생산보다 우위를 점해왔다는 점만 언급됐다. 자본주의 사회에 따른 전형적인 특징은 축적으로부터, 개인적 소비가 아닌 생산적 소비라는 점과,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이라는 점이 전형적인 부분 전형적이라는 부분이라고 강조했었다. 크라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계 발달과 석탄, 철 등과 같은 요구되는 품목들로부터, 그 전에 다른 경제 체제와 정확히 구분된다는 한에서만 주장이 옳았다. 기술 수준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했고, 기술적 발전은 기계에 따른 역할이 인간 노동으로부터 더욱 뒷전으로 밀어냈다는 점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크라신의 불명확한 주장을 비판하기보다는, 마르크스 이론으로부터 Ⅰ부문이 Ⅱ부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거나, 우위에 있다는 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르스크 공식으로부터는 Ⅰ부문이 Ⅱ부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두 부문 모두 평행선 상에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식은 기술적인 발전을 고려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자본』Ⅰ에서도 증명했다. 기술적 발전은 불변 자본에 비해 가변 자본에 따른 비율이 점진적으로 줄어든다고 표기된 반면에, 공식에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간주됐다. 공식에서 이런 변화를 충분히 적용했더라면, 소비품보다 생산 수단에서 상대적으로 급격한 증가가 이뤄졌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명확하게 하고자 그런 전제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걸 계산해볼 가치는 있다. 공식에서도 축적률은 불변한다고 간주된다. 곧 초과 가치에서 절반이 축적되고, 절반이 개인적으로 소비된다는 가정이다. a)는 생산에 따른 확대를 위해 사용된 추가 자본, 축적된 초과 가치 일부를 뜻한다. 사회적 생산물에서 많은 부분들에 따른 발전에 관해서, 공식으로부터 도출해낸 결과를 비교해봤다.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이 가장 급격하게 증가하고, 소비 수단으로부터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이 뒤를 따랐고, 소비 수단에 따른 생산에서 가장 느린 증가율을 보였다는 점이다. 『자본』Ⅱ에서 마르크스로부터 제시한 연구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불변 자본은 가변 자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법칙에 근거해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생산 수단이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명제에는, 법칙을 사회적 생산 전반에 적용할 때도 그렇게 바꿔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c) + (v) 대비 (v) 에 비율이 부단히 감소한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v = 0 으로 감소하지 않을 이유, 곧 같은 수에 따른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양에 따른 생산 수단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축적된 초과 가치에서 일부는 Ⅰ부문에서 불변 자본에 곧장 추가되고, 사회적 생산은 생산 수단 때문에 전적으로 증가하며, Ⅱ부문에서는 완전한 불황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물론 결론이 일어나지 않을 가정에 기초했기도 하고, 잘못됐기 때문에 공식들을 오용해버렸다. (c) 대비 (v)에 따른 비율을 감소시키는 기술전 발전이 Ⅰ부문에서만 나타나고, Ⅱ부문을 완전한 불황 상태로 남겨놓는다고 가정할 수나 있을까. 모든 자본가에게 파산을 각오하고, 사업을 확대하기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Ⅱ부문에서는 어떠한 축적도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는 자본주의에 따른 지배적인 법칙들과도 일치하는가.
마르크스 연구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하게 올바른 결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은 소비 수단에 따른 생산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생산은 이전 시대 생산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인 수준에 도달한다는 알려진 명제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된다. 특히 마르크스는 『자본』Ⅱ에서도, 오직 자신의 글 한 단락에서만 아주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기했다. 단락에서는 주어진 공식이 옳았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자본주의 사회를 미개 사회와 구분해주는 건, 시니어(Senior)가 생각하듯 가끔 자신의 노동력을 쏟아붓고도 수익, 곧 소비품으로 용해되고, 교환할 수 있는 어떠한 생산물도 손에 쥐지 못하는 식으로, 미개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특권과 특징 때문이 아니라, 구별되는 지점으로는 a), 자본주의 사회는 연간 가용 노동력 가운데 생산 수단, 그러니까 불변 자본에 따른 생산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노동력을 고용하는데, 그런 노동력은 임금이나 초과 가치에 따른 형태로부터 수익으로 용해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본으로만 기능한다.'
4. G.B. 크라신 주장 비판과 인민주의 한계: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한 동력
앞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시장 문제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따른 보편적이고, 배타적인 지배라는 가정에 기초하지만, 시장 문제는 국내에서 자본주의에 따른 완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가에 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통상적인 개념을 수정하도록 해줬지만, 자본주의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해명은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가능성과 필요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크라신은 자본주의 노선을 따라 구조화된 사회적 총 생산에 따른 과정에 관한 마르크스 이론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데 국한시키지 않는다. 크라신은 자본 축적에서 나타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특징들로,
1). 자연 경제를 축출하고, 희생을 바탕으로 팽창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노동 분야를 꽉 틀어쥔 자본주의 생산 발전 폭
2).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따른 보편적이고, 배타적인 지배 아래에서 자연 경제와는 독립적으로 떨어져 확대되는 자본주의 생산 발전에 따른 깊이
크라신은 이 둘을 구별할 필요를 지적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보자. 자본주의 경제가 자연 경제를 대체하는 과정에 대한 해명은 국내 자본주의가 국가 전체를 어떻게 틀어쥐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본가와 직접 생산자들 사이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자본가에서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초과 가치를 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자본가들이기도 하지만,직접적인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초과 가치를 생산물에 따른 가치는 생산 수단과 필수적인 생계 수단에 따른 가치를 능가한다고 가정할 때, 비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직접 생산자들이라는 점이다. 자본가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어떻게 직접 생산자에서 소비를 희생시키고, 흡수하면서 발전하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기업인 a에 따른 제품은 소비품 형태로부터 직접 생산자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직접 생산자들은 그 대가로 불변 자본(c)를 생산 수단에 따른 형태로, 가변 자본(v)를 소비 수단에 따른 형태로, 초과 가치(s)를 추가 생산 자본 요소(c+v)에 따른 형태로 되돌려준다. 자본은 자본주의 기업 a, 토대로 기능하며, 기업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제품을 소비품 형태로 직접 생산자들에게 보내는 식이다. 자본주의 폭에 관해서, 전체 생산이 해외 시장에서도 소비와 대중 소비에 밀접하게 의존한다. 분명 자본가에서 생산 확대, 곧 같은 방향으로, 자본주의 발전은 모든 직접 생산자들이 상품 생산자로 전환할 때 멈춘다. 새롭거나, 기존 기업에서 확장된 기업들은 직접 생산자에 있는 새로운 소비자 집단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걸로 추산된다. 크라신에 따르면, 자본주의 축적 개념에서, 곧 확장된 규모에 따른 자본주의 재생산 개념은 같은 관점에서만 국한되며, 깊이에 있어서 자본주의 발전은 다른 국가로부터 생산 생산자들과 독립된, 이른바 해외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상태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설명에서 동의할 수 있는 건,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폭이라는 개념과 실증해주는 도형도, 인민주의자에 따른 견해들과 완전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민주의자들은 지닌 견해들에 따른 모순과 진부하다.
개념에서도, 국내 자본주의를 인민 제도와 별개로 존재하는 무언가로만 간주하거나, 거리를 두었으며, 자본가 영역과 인민 영역이라는 두 영역들 사이에서는 어떤 연관도 찾아볼 수 없는 도형 묘사와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자본가가 보낸 상품들인데, 왜 직접 생산자에게서 시장을 찾을 수 있을까. 직접 생산자들에 따른 자연 경제를 상품 경제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교환을 우연적으로만 여길 뿐, 경제에 따른 특정한 제도로 바라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같은 물음들에 대한 답을 전혀 내놓지 못해왔었다. 더군다나 국내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도형에서도 설명한 이상으로 해명도 전혀 내놓지 않았었다. 자본가들이 바로 직접 생산자들 사이에서가 아닌, 외부 어딘가로부터만 생겨나도록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기업(a, a1) 등의 기업들을 위해 필요한 자유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어디서 구하는지도,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 노동자들도 정확히 직접 생산자들로부터 확보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도형에서는 상품 생산이 직접 생산자 영역을 포괄할 때, 다수 자유 노동자들도 창출해낸다는 점을 전혀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도형에서는 견해와 정확히 일치하는 국가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현상들에 대해 무엇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무런 쓸모조차 없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연 경제를 희생시켜 발전하고, 국가 전체를 포괄하는지를 충분히 해명하려는 목적도 전혀 이뤄지지는 않았으며, 크라신은 검토 중인 견해를 시종일관 고수하기만 하고,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따른 발전이 보편화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크라신과 인민주의자들은 태동기에 있는 자본주의가 실제로 수월한 방식으로부터, 기존 노동 분야들이 포함되어 매우 수월하게 발전했고, 자연 경제에 따른 잔여물들이 존재하고, 인구가 증가하는 같은 방향으로도, 일정 부분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비록 부분적이지만, 같은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매우 수월한 방식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이해하는 방식이 매우 수월했을 뿐이고, 차라리 이해는 거의 전무했다. 국내 인민주의자들은 바로 이 순간까지도, 매우 수월한 속임수들로부터 상태를 모면해갔다. 그들은 한 국가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해명하지도 못한 채, 국내 체제에서 '아픈 구석'인 자본주의를 '건강한 부분'인 직접 생산자들, 인민들과 비교에만 국한시킬 뿐이다. 자본주의를 왼쪽에 놓고, 인민들을 오른쪽에 놓은 다음, 인간 사회에서 무엇이 해롭고, 무엇이 유용한지에 대한 감상적인 문구들로부터, 모든 심오한 사고를 마무리 짓고 말았기 때문이다.
5. 자연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의 6가지 단계 별 변화 과정
상품 생산이란, 일정한 제품을 제조하는 데 있어, 전문도를 갖춘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분리된 생산자들로부터 물건은 생산되며,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시장에서 제품들을 사고파는 상품 과정에서도 필요한 사회적 경제가 형성된다. 자본주의란 인간 노동에 따른 산물만이 아니라, 인간에 따른 노동력 자체가 상품이 되는 상품 생산에 따른 발전 단계를 뜻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따른 역사적 발전은 두 가지 특징이 중요해진다.
1). 직접 생산자들에 따른 자연 경제가 상품 경제로 변화.
2). 상품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로 변화.
1) 에서는 사회적 분업 및 산업에 따른 오직 한 분야에 종사하던, 고립되고 분리된 생산자들로부터 상품 경제에 따른 본질적 조건에서 전문화로 출현되며, 2) 에서는 시장을 위해 개별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독립된 생산자들이 서로 경쟁에 진입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각자 가장 높은 가격에 물건을 팔고, 가장 낮은 가격에 물건을 구입하려 애쓰면,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파산하게 되며, 소수는 부유해지지만, 다수는 몰락한다는 건 필연적인 결과다. 독립적인 생산자들은 임금 노동자로 전환하면서, 다수 소기업들은 소수 대기업들로 전환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특징들과 발전이 시장의 차원에서, 상품으로 전환된 생산품에 따른 양에서 발생시키는 변화들을 보여주는 방향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유일한 특징은 시장에 끼친 영향력을 분석하고자, 외부로부터 발생한 상태들을 모두 인규 규모, 노동 생산성과 기타 등 상수로 간주해 걸러냈다.
6명의 생산자들로 구성된 공동체로부터 경제 제도에서 연속적인 변화들을 분석해보자. 자연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로 변화하는 6가지 시기 별 단계로 나타난다.
Ⅰ. 생산품이 시장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순수한 모습에서는 자연 경제이다.
6명의 생산자들이 있고, 각자는 모두 a, b, c 라는 산업 분야에서 자신의 노동을 쏟아붓는다. 생산품은 각 생산자 당 a + b + c = 9개로, 생산자마다 각자의 가족을 위해 소비된다.
Ⅱ. 분업은 필연적으로 상품 생산으로 귀결된다.
생산자 I는 자신의 노동생산성을 변화시킨다. b 산업을 떠나, 예전에 할애한 시간을 e 산업에 다시 할애한다. 한 생산자로부터 전문화에 따른 결과로, 다른 생산자들은 e 생산을 줄인다. 생산자 I가 자신의 소비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산자 I가 쓸 제품을 생산하고자, b의 생산을 늘린다. 생산자 Ⅰ는 Ic를 팔고, Ib를 사며, 다른 생산자들은 Ib를 팔고, Ic를 사들인다. 다섯 명이 각자 1/5b씩 팔고, 1/5c씩 사들이면서, 생산품 양은 6의 가치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시장 크기는 사회적 노동에 따른 전문화 정도에도 정확히 일치한다. 전체 사회적 생산에 따른 1/9, 18c(=a=b), c(1c=3), b(1b=3) 생산에서 전문화가 일어나고, 전체 사회적 생산물에 따른 1/9은 시장으로부터 나온다.
Ⅲ. 시장 크기는 사회적 노동에 따른 전문화, 곧 분업 정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분업이 더욱 진행되면서부터 b 산업과 c 산업을 완전히 포괄한다. 세 명의 생산자들은 전적으로 b 산업에만 종사하고, 다른 세 명의 생산자들은 e 산업에만 종사한다. 각각, Ic 또는 Ib로, 곧 3개의 가치를 판매하고, 3개의 Ib 또는 Ic를 구매한다. 분업 증가는 시장 확대로 이어지며, 18개 가치가 시장에서도 출현한다. 사회적 생산에 따른 1/3인 3b와 3c에 따른 생산에서도 전문화가 일어나고, 사회적 생산품에 따른 1/3은 시장으로부터 나온다.
Ⅳ. 자본주의 생산이 나타난다.
이전 시기에 개별적인 생산자는 유일한 b, c 영역에서는 이미 상품 생산자다. 개별적인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들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시장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며, 당연하게도 서로는 상대방의 생산 규모를 알지 못한다. 공동 시장을 위해 노동하는 고립된 생산자들 사이에서도 같은 관계는 경쟁이라고 불리우며, 같은 상태로는 오직 일련의 파동으로부터만 생산과 소비 또는 공급과 수요로부터 균형이 이뤄진다. 보다 숙련되고, 진취적인 강력한 생산자는 파동에 따른 결과로부터 더욱 더 강해지며, 약하고, 숙련되지 못한 생산자는 그들로부터 분쇄된다. 소수 개인들도 부유해지고, 다수가 가난해진다는 건 경쟁 법칙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몰락한 생산자들은 경제적 독립을 상실하며, 규모가 커진 운 좋은 경쟁자들만 사업체에 따른 임금 노동자가 된다. 이전에는 모두 6명의 생산자들 사이에서 나뉘었던 b와 c에 따른 산업 분야가 이제는 2명의 생산자들 손아귀에 집중된다. 나머지 생산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노동에 따른 결과물 전체를 받지 못하고, 고용주가 무단으로 가져가버린 초과 가치를 뺀 나머지를 받는 임금 노동자들이다. 여기서 초과 가치는 생산물에 따른 1/3에 해당하고, 2b(=6)에 따른 생산자는 고용주로부터 2/3, 곧 4를 받는다. 따라서 분업이 증가하고, 다수가 빈곤에 처했다는 점에서도 불구하고, 시장은 거듭 발달해서 22만큼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된다. 부분적으로 임금 노동자가 된 생산자들은 더 이상 9개 결과물 전체를 받지도 못하고, 독자적인 활동(농업-a 산업)으로 얻은 3과 임금 노동인, 2b 또는 2c에 따른 생산으로부터 얻은 4를 합쳐 7만큼만 받는다. 독립적인 주인에서 더욱 멀어진 임금 노동자에 가까워진 생산자들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생산한 결과물을 시장에 내다놓을 기회를 상실한다. 몰락했기 때문에,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산 수단을 빼앗겨버렸다. 그들은 '외부 고용'에 의존해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렸다. 곧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고, 새로운 상품에 따른 판매로부터 얻은 돈을 가지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사야만 한다.
생산자 2번, 3번, 5번, 6번은 각각 4의 가치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팔아, 같은 양으로 소비품을 구매한다는 걸 보여준다. 자본주의 생산자들인 1번, 6번과 관련해서, 각각 21가치에 해당하는 제품을 생산해, 그 중에 10을 직접 소비하고, 3(=a) + 3(c 또는 b) + 4(2c 또는 2b로부터 얻은 초과 가치)인 11을 판매하며, 3(c 또는 b) + 8(노동력)만큼 상품을 사들인다. 사회적 노동에서 총 30에 달하는 5b와 5c에서 생산이 전문화 정도와 시장 규모 사이에서도 완전히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축적이 이뤄지지 않는 단순 재생산을 가정했기 때문에, 노동자들로부터 가져간 초과 가치가 자본가 한 명 당 4라면, 모두 현물로 소비된다는 점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축적이 없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적절한 수정이 이뤄진다.
Ⅴ. 자본주의 발전은 인민 빈곤화와 더불어 농산물 시장에 따른 농업 퇴조를 수축이 아니라, 확대시킨다.
상품 생산자들에 따른 분화가 농업(a)으로까지 확산된다. 임금 노동자들은 타인 사업체에서 주로 노동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농사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으며 몰락해간다. 자신의 농사 가운데 그나마 남은 약 절반 정도에 불과한 부분만을 유지하면서, 가족들에게 필요를 충당하고자 딱 적당하게 가정한다면, 막대한 수에 따른 한 국가에서 농업 종사자들은 현재 경작하고 있는 토지가 독립적인 농업에서 매우 쓸모 없는 일부 밖에는 안 된다는 점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a 산업에서는 극소수 대규모 사업체들로부터 집중된 현상에는 정확히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임금 노동자들이 재배하는 곡식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양을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자적으로 농사를 지어온 덕분에, 낮게 유지되던 임금은 올라가고, 노동자들에게는 비록 주인일 때 소비한 것보다 적은 양이지만, 곡식을 살 돈이 주어진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는 1과 1/2(=1/2a)을 생산하고, 1을 구매해, 예전 3(=a)이 아닌 2와 1/2을 기존의 사업체에다 확대된 농업까지 보탠 자본가 주인들은 각자 2a(=6)를 생산해서, 그 중 2를 임금 형태로 노동자에게 주고, 1(1/3a)를 초과 가치로 가져간다. 따라서 자본주의 발전은 인민들의 빈곤화와 26만큼 쏟아져나온 시장에 따른 발달을 동반한다.
Ⅵ. 직업에 따른 전문화, 곧 사회적 분업이 완성된다.
산업에서 모든 분야가 분리되고, 개별 생산자들로부터 전문화가 이뤄진다. 임금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농장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로, 전적으로 임금 노동에 의존해서 생계를 이어가게 된다. 자본주의 발전으로부터 독립적인 농업은 완전히 제거됐고, 다수 빈곤화로부터 노동자들 임금은 올라갔지만, 소비는 6A - 6으로 감소하며, 각자 9(3a, 3b, 3c)를 생산하면서 주인들에게 초과 가치로는 1/3을 넘겨준다. 그러므로 사회적 생산물에 따른 2/3가 쏟아져나오는 시장은 한층 더 발달하게 된다.
6.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경제에 따른 세 가지 결론
1. 시장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분업이라는 개념과 반드시 분리될 수 없다.
마르크스,『자본』Ⅰ에 따르면, 시장이라는 개념은 모든 상품 생산에 따른 보편적 기초인 사회적 분업이라는 개념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시장은 사회적 분업과 상품 생산이 출현하는 곳에서부터, 결과로 생겨난다. 시장 규모는 사회적 노동에 따른 전문화 정도와 불가분한 관계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상품은 화폐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보편적인 등가물 속성도 획득할 수 없다. 하지만 화폐는 누군가의 주머니에 있다. 화폐를 주머니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친구의 상품은 화폐 소유자에게는 사용 가치여야만 한다. 상품에 쏟아부은 노동력은 사회적으로도 유용한 종류의 것이며, 사회적 분업에 따른 한 부분을 구성하도록 필요해진다. 그러나 분업은 자연 발생적으로 자라난 생산 체계이고, 생산자들의 등 뒤에서도 계속해서 발달하고 있다. 교환된 상품은 새로이 생겨난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킨다거나, 새로운 요구 조건들을 스스로 발생시키는 척하는 어떤 새로운 부류의 노동에 따른 산물이다. 하나의 특정한 활동에는, 비록 어제까지는 어떤 특정한 상품을 생산하고자, 한 사람의 생산자가 행한 수 많은 활동 가운데 하나였지만, 오늘부터는 그런 관계로부터 스스로 분리되어, 독립적인 노동에 따른 한 부문으로, 자리 잡은 채로 자신의 불완전한 생산물을 하나의 독립적인 상품으로 시장에 내보내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발전에 따른 한계로는 사회적 노동에 따른 전문화 한계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전문화는 바로 본질 상 기술 발전만큼이나 그 한계가 영구하다. 전체 생산물에 따른 일정 부품을 제조하는 데 있어, 인간 노동에 따른 생산성을 끌어올릴려면, 부품에 따른 생산이 전문화되고, 대량 생산이 개입되어 기계 활용 등을 허용해서 발생되는 특수한 제품이어야만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 발전은 노동에 따른 사회화로 이뤄지고, 사회화는 반드시 생산 과정에 따른 다양한 기능들에서 전문화, 곧 같은 생산과 관련된 모든 시설에서 개별적으로 반복되는 분산적이고, 고립적인 기능들로부터, 사회 전체에 따른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계산된 하나의 새로운 시설에서 사회적 기능들이 집중되는 방향으로 전환을 요구한다.
미국에서는 목공 공장들이 더욱 더 전문화됐다. 도끼 자루, 빗자루, 펼침탁자 등만을 제조하는 신규 공장들이 발 빠르게 많이 생겨나고 있다. 기계 제작은 꾸준하게 발전을 거듭하고, 새로운 기계들이 계속 고안되어, 생산 일부를 단순화하고, 비용을 낮춘다. 가구 제작에 따른 전 분야는 특수 기계와 전문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 됐다. 특히 마차를 제작할 때, 바퀴 테두리는 미주리, 아칸소, 테네시 특수 공장들에서 생산되고, 바퀴살은 인디애나, 오하이오에서 제작되고, 중심축은 켄터키와 일리노이에 있는 특수 공장들에서 만들어진다. 개별적인 모든 부품들은 바퀴 전체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공장들이 구매한다. 따라서 탈 것을 만드는 데 수십 개 공장들이 참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노동에 따른 전문화가 불러온 시장에 따른 발달에는 모든 자연 생산자들이 상품 생산자가 되는 순간이 멈출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얼마나 허황됐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러시아에서도 마차 제작이 상품 생산이 된 건 오래전 일이지만, 바퀴 테두리는 여전히 개별적인 마차 제조업자 또는 수레바퀴 제조 목수 작업장에서 제작된다. 기술 수준은 낮고, 생산은 수 많은 생산자들 사이에서 분산됐다. 기술적 발전은 다른 생산 부품들에 따른 전문화와 사회화, 시장에 따른 확대를 수반시킨다.
자본주의 국가가 해외 시장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를 부정하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에서 생산과 소비 균형은 오로지 일련의 파동으로부터만 달성된다. 생산 규모가 더 크고, 기여하는 소비자 폭이 더 넓을수록, 파동은 더욱 격렬해진다. 부르주아 생산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민족 국가 경계 안에서 머무를 수는 없게 된다. 경쟁은 자본가들로부터, 계속해서 생산을 확대하고, 대량으로 생산품을 내다 팔 해외 시장을 찾도록 충동질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해외 시장을 보유해야만 한다는 점에는, 상품 경제 아래에서 시장은 사회적 분업에 따른 단순한 묘사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분업만큼 영구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는 법칙에도 거의 위배되지도 않는다. 위기가 가치 법칙에 거의 위배되지 않듯이, 한 국가 자본주의 생산에 따른 특정 부문들, 특히 면직업에서는 완전한 발전에 도달하고, 전체 국내 시장을 거의 포괄하며, 몇몇 거대 기업에만 집중될 때, 비로소 국내 문헌들에서도, 온갖 시장에 대한 비탄의 소리가 등장한다. 시장에 관한 부질 없는 이야기와 물음들로부터도, 물질적 토대가 한 국가에 따른 대규모 자본주의 산업에서 이해 관계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걸 가장 잘 증명해준다는 점은, 수공업 생산품들이 가치로 따지자면, 모두 합쳐 10억 루블이 넘고도, 가난한 인민들에게는 일용품을 제공해줌에도, 문헌에서는 누구도 시장에 따른 실종 때문에 한 국가 수공입이 몰락하게 될 거라는 예상마저 내놓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시장이 부족해서, 한 국가 산업이 몰락했다며, 통곡한다는 건, 자본가들에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술책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정책에 압력을 가하고, 자신들의 주머니 속 이익을 국가에 따른 이익과 동일시하고, 정부로 하여금 식민지 정복에 나서게끔 만들며, 심지어 국가 이익을 보호하고자 전쟁에 끼어든다. 바닥이 어딘지 모를 인민주의자들에 따른 공상적 이상주의와 단순함에는 구멍이 난 시장에 대한 통곡을 입지로부터 확고히 다진 채로 이미 자만에 빠진 부르주아들에게는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자본주의에 따른 '무능'의 증거라고 받아들이는 데도 요긴할 정도이다.
2. 인민 대중 빈곤화는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발전과 조건을 오히려 강화시킨다.
시장에 관한 모든 인민주의자들에 따른 주장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으로, '인민 대중 빈곤화'는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정반대로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표기이고, 자본주의에 따른 조건이자, 그것을 강화시킨다. 자본주의는 자유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빈곤화는 소생산자들이 임금 노동자로 전환됨을 뜻한다. 대중 빈곤화는 소수 착취자들로부터 부에 따른 축적을 동반하고, 소규모 사업체들에 따른 몰락과 쇠퇴는 대규모 사업체들에 따른 강화와 발전을 동반한다. 두 과정 모두 시장 발달을 촉진시키고, 이전에는 스스로 농사를 지어 생활했던 농민이 가난에 허덕이며, 이제는 소득, 곧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하게 된다. 가난한 농민은 아무리 양이 적고, 품질이 조악하더라도, 필수 소비품들을 직접 사서 써야만 한다. 반면에, 농민의 손을 떠난 생산 수단은 소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자본으로 전환되고, 생산품은 이제 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개혁 이후 시대에 사는 한 국가 농민들이 겪은 대규모 재산 강탈이 국내 총 생산력에 따른 감소가 아닌 증가와 국내 시장 발전을 동반해왔다는 점에 대한 유일한 해명이다. 큰 공장들로부터 생산량과 작업량은 크게 증가해왔고, 수공업은 상당 부분 확대되고, 둘 다 주로 국내 시장이 대상이다.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곡물 양도 비슷하게 증가해왔다는 국내 곡물 거래 발전도 이미 잘 알려졌다.
3. 기계 노동이 고도로 발전할수록 제조 인력을 대체해가며, 한 국가 총 생산량에서 큰 위치를 점해간다.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에서 중요도에 관해서는 정정이 요구된다. 자본주의에 따른 전 과정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자연 경제가 상품 경제로 대체되고, 상품 경제가 다시 자본주의 경제로 대체되는 과정이 시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자 목적으로 삼는다고 명시했었지만, 축적이 무시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는 축적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경쟁이 모든 자본가로 하여금 몰락을 각오하고서라도, 생산 확대를 강요하고, 묘사하기 때문이다. 5장에서, Ⅲ.시기와 Ⅳ.시기 사이 막간에, 생산자 I는 c에 따른 생산량을 2c-6c로 세 배 더 늘려버렸다. 예전에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홀로 노동했으나, 이제는 두 명의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분명 그러한 생산 확대는 축적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생산자 I는 여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특수한 작업장을 지어야만 하고, 생산 도구들을 대규모로 확보해야만 하며, 많은 양의 원자재를 구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b에 따른 생산을 확대한 생산자 IV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개별 사업체에 따른 확장과 생산에 따른 집중은 필연적으로, 자본가를 위한 기계, 철, 석탄 같은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을 필요로 한다. 생산에 따른 집중은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일정한 수의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또한 자본가들로부터 불변 자본으로 전환되어, 가변 자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한 기계와 여타 생산 수단들에 따른 생산에도 발전이 생긴다. Ⅳ.시기와 Ⅵ.시기를 비교해보자면,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이 50% 증가했다는 점이다. Ⅳ.시기에는 불변 자본에 따른 증가를 필요로 하는 자본가 기업이 2개였다면, Ⅵ.시기에는 3개였다. 같은 증가를 소비품 생산에 따른 증가와 비교해보면서,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이 보다 더 매우 빠르게 증가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이 보다 더 매우 빠르게 증가한다는 법칙에 대한 의미와 중요도에는, 인력을 기계 노동으로 대체하는 게, 생산 수단 가운데에서도 진정한 생산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석탄과 철 생산에 따른 급격한 발전을 요구한다는 한 가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인민주의자들이 같은 법칙에 따른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과정을 묘사해주는 공식들이 진정한 본질을 가리는 걸 허락했음은 다음 진술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옆에서 볼 때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은 너무나 터무니 없어 보이지만, 『죽은 혼』의 플류스킨이 돈 그 자체를 위해 돈을 축적하는 행위도 매우 터무니 없었다. 둘은 모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던 인민주의자들이 국내 자본주의가 인민들을 몰락시키면서도, 더 높은 생산 구조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단언하며, 부조리를 증명하려고, 전력을 다 쏟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물론 동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기계 노동이 인력을 대체한다는 건 전혀 터무니 없지도 않다. 정반대로, 인간 기술에 따른 혁신적인 역할을 바로 그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할수록, 인간에게 육체 노동은 점점 설 곳을 잃어 갈수록, 복잡해진 기계들에게 밀려난다. 한 국가 총 생산에서 기계와 그 제조를 위해 필요한 품목들이 훨씬 더 큰 위치를 점하게 된다.
4. 추가적인 설명
1).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따른 모순'을 부정하지 않는다.『자본』Ⅱ에서도, '상품에 따른 구매자로, 노동자들은 시장에서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이 지닌 상품 노동력에 따른 판매자로, 그들을 최소 가격에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품을 생산하는 사회적 생산에 따른 일부도 마찬가지로 발달해야만 한다는 점은 앞서 드러난 바 있다.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 발전은 모순을 단지 옆으로 밀어놓았을 뿐, 없애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 자체를 제거하면서부터 일소된다. 하지만 그러한 모순을 국내에서도 자본주의가 완전히 발전하는 데 있어 인민주의자들이 선호하듯이, 장애물로만 여긴다는 건 매우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2). 자본주의에 따른 발전과 시장 발달 사이에서 관계를 논할 때, 자본주의 발전이 필연적으로 산업 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한 전체 인구에 따른 요구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분명한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요구 수준에 따른 상승은 대체로 상품 교환이 더욱 빈번해지면서부터 생겨나며, 다시 지리적으로는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도시와 시골 주민들 사이에서 접촉이 보다 더 잦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그것은 산업 프롤레타리아가 떼 지어 모여드는 집중화 현상으로부터 초래되며, 그들의 계급 의식과 자존감을 강화해서, 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약탈적 경향에 맞서, 성공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도록 만든다. 요구 수준 상승에 따른 법칙은 유럽 역사에서도 전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왔다. 18세기 말-19세기 말, 프랑스 프롤레타리아나, 1840년대와 현재 영국 노동자들을 비교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같은 법칙은 러시아에서도 똑같이 작동된다.
개혁 이후 시대에서 상품 경제와 자본주의에 따른 급속한 발달은 농민층 요구 수준도 끌어올려서, 의복, 주택 등을 보다 깨끗한 삶에서 살기 시작했다. 명백히 발전적인 현상에는 다름 아닌 국내 자본주의에 공을 돌려야 한다는 점은 공업 소재지에 따른 농민들이 자본주의 손길이 거의 닿지도 않는 시골에서도 오로지 농업에만 종사하며 살아가는 농민들보다 훨신 더 '깨끗한' 생활을 한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점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물론 그러한 현상은 순전히 표면적이고, 과시적인 '문명화'를 받아들이는 데서 주로, 쉽사리 나타난다. 그러나 V.V. 보론초프 선생과 같은 극악한 반동들은 비통해하기까지 하며, 거기에서 '퇴보' 말고는 무엇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7. 시장 경제에 따른 농민층 분화 요인
실제로 시장 문제가 무엇으로 이뤄졌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A 영역에서 자본가들과 W 영역에서 직접 생산자들 사이에서 교환을 보여주는 도형과, 6명의 생산자들에 따른 자연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표에서 실증한 과정에 대한 인민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에 따른 개념들을 비교해보는 게 최선이다. 도형을 선택한다면, 아무런 해명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일종의 우연에 해당되고, 자본주의에 따른 출현은 잘못된 경로를 선택했다거나, 당국으로부터 이식됐기 때문이라고 판단해버린다. 무슨 이유로, '대중은 가난해지는가'에 대한 질문 역시 도형으로부터는 답을 얻을 수 없고, 인민주의자들은 대답 대신에, 문제를 '신성한 체제'나, '제대로 된 경로로부터 이탈' 같은 감상적이고, 식상한 문구로 처리해버린다거나,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같이 지어낼 수 있는 헛소리를 읊어댄다. 자본주의를 해명하는 능력 부족과, 현실을 연구하고, 해명하기보다는 유토피아 같은 이상향을 선호하는 자세는 자본주의에 따른 의의와 그 힘을 부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들은 성장할 기운마저 없는 구제불능 병약자 같다. 그리고 '생산 수단으로부터 생산 수단을 생산하면서부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상태가 무의미하고, 미미할 정도로만 개선됐다는 소식을 전할 뿐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따른 기술적 발전을 필요로 하는데도, 부족한 건 바로 그러한 발전이라는 점을 목격한다. 그 자본주의는 국가 전체를 포괄해야만 하지만, 자본주의에 따른 보편적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표를 택한다면, 자본주의에 따른 발전이나 인민들에 따른 빈곤화가 단순히 우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사회적 분업에 기초한 상품 생산에 따른 발달을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현상들이다. 여기서 시장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는데, 시장이 다름 아닌 분업과 상품 생산에 따른 발현일 따름이다. 자본주의 발전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뿐만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인식되며, 사회적 경제가 분업과 상품 형태에 따른 생산에 기초하는 순간, 기술적 발전은 필시 자본주의에 따른 강화와 심화로 귀결될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왜 두 번째 견해, 그러니까, 표에 따른 마르크스주의 견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무슨 기준으로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들에 대한 답으로는, 바로 같은 시대 국내 경제 현실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표에 따른 중심점은 상품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 상품 생산자들이 자본가와 무산자로 분화되는 데 있다. 같은 시대 국내에서 사회 · 경제 현상들로 눈을 돌려본다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바로 소생산자들에 따른 분화다. 특히 농민들은 한 쪽에서는 토지를 포기하고, 경제적 자립을 상실한 채, 무산자로 변해가는 다수 농민들이 있지만, 또 한 쪽에서는 지속적으로 작물 면적을 확대하고, 개량된 농업 방식을 받아들이는 농민들을 찾을 수 있다. 농민들은 한 쪽에서는 가축과 농기구와 같은 농장 재산을 잃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개량된 농기구를 확보하고, 기계 등을 조달한다. 한 쪽에서는 그들은 자신들의 분여지를 매각하거나, 임대해주면서, 토지를 포기해가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분여지를 임차하고, 개인 소유 토지를 탐욕스럽게 사들인다. 모두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이자, 아주 오래 전에 기정사실화된 부분이고, 설명은 공동체 농민들 역시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누고 있는 상품 경제에 따른 법칙에서만 할 수 있다. 마을에서 수공업자들은 개혁 이후 시기에 새로운 산업들이 생겨나고, 예전 산업들은 농민층 분화와 사회적 분업이 진전된 결과로부터, 급속도록 발전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에 더해 다수 수공업자들은 더욱 더 가난해지고 경제적 독립을 상실한 채로, 극심한 가난으로 침몰했지만, 얼마 안 되는 소수는 다수 희새을 토대로 부를 쌓아, 막대한 양에 따른 자본을 축적하고, 원청업자로 변모하면서 시장을 독점하게 됐고, 따라서 압도적 다수로부터 수공업 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인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완전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한 국가 소생산자들 사이에서 양극화 경향 존재는 자본주의와 대규모 빈곤화가 서로를 가로막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서로 조건 짓는다는 점이 분명하며, 자본주의가 이미 국내 경제 생활에 따른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을 틀림없이 입증해준다. 농민층에 따른 분리(해체)라는 점이 시장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준다고 말해도 전혀 모순되지 않는 건 그런 이유다. 또 시장 문제에 관한 설명 방식은, 불합리한 구석들을 감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거론된 공식은 가장 믿을 수 없는 가정들, 곧 사회에 따른 경제 제도는 일부 집단, 지식인들이나 정부로부터 의지에 따라 구축되거나, 파괴된다. 자본주의가 인민들의 빈곤화를 막아준다거나, 시장이 자본주의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이자, 그 발전을 위한 특수한 조건이라는 가정들을 토대로 한다. 따라서 불합리한 구석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인민 대중이 가난에 처해 있고, 더욱 더 가난해지고 있는 시점에서도, '국내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자본주의는 소비품 때문에 발전하는 게 아니라, 생산 수단에 때문에 발전하다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런 대답은 자본주의 국가에 따른 총 생산성이 주로 소비품 보다는 생산 수단 때문에 증가한다는 발상에 기초한다. 그러나 그런 대답은 질문에 대한 일말의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삼단논법에서는 소전제가 옳아도, 대전제가 터무니 없다면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런 대답에는 자본주의가 발전해서 국가 전체를 아우른 상태에서 보다 높은 기술적인 단계인 대규모 기계 공업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이미 전제로 두지만, 질문 자체에는 자본주의에 따른 발전과 소규모 생산이 대규모 생산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부정을 토대로 한다.
따라서 시장 문제를 할 수 있다거나, 필요한지에 대한, 알맹이 없는 추측 영역에서 굳걷한 현실 기반, 곧 국내 경제 질서가 어떠한 형태를 취하고, 다름 아닌 그러한 형태를 띠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해명하는 영역으로 넘어간다. 같은 명제가 구체적으로는 어떤 통계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갖고 있는 자료로부터 제시한다. 먼저 소생산자들에 따른 분화와 그들 사이에서 빈곤화 및 상대적으로는 대규모 부르주아 경제가 생겨나는 과정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실증하고자, 유럽·러시아에 따른 여러 주들에서 순전히 농업에만 의존하는 세 개 군들에 따른 통계를 인용해보자. 타우리다 주에서 드네프르 군, 사마라 주에서 노보젠스크 군, 사라토프 주에서 카미신 군이 대상이며, 통계는 젬스트보 통계 초록에서 가져왔다. 선택된 군들이 농노제를 경험하지 못했고, 개혁 이후에서야 주로 정주가 이뤄진 외딴 지역에서는 중심부에서보다 분화가 더 빨리 진행됐다는 점에서, 전형적이지 않다고 제기되는 주장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미리 일러두자면,
1). 전적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됐고, 이주민 농장은 0.6%로, 공동체 농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타우리다 주에 따른 주요 3개 군들 가운데 드네프르 군을 선택했다.
2). 노보젠스크 군에서는 통계가 오로지 러시아 공동체 인구만을 대상으로 하고, 이른바 농장 농민들, 곧 공동체를 떠나 구입 또는 임차 토지에 별도로 정착한 농민들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농업에 따른 직접적인 대표 격인 그들을 포함시킨다면, 분화를 훨신 더 잘 드러내 보여준다.
3). 카미신 군 통계에서는 오로지 대러시아 공동체 인구만을 대상으로 한다.
초록에 출현하는 분류는, 드네프르 군에서 가구 당 작물 면적에 따르고, 다른 군들에서는 농사용 가축 수에 따른다. 가난한 집단은 토지를 경작하지 않거나, 가구 당 10데샤티나 미만 작물 면적을 가진 드네프르 군 가구들이 포함되며, 노보젠스크와 카미신 군에서는 가축이 없거나, 한 마리뿐인 가구들이다. 드네프르 군에서 중간 집단은 10-25데샤티나에 따른 작물 면적을 가진 가구들이 포함되며, 노보젠스크 군에서는 2-4마리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 카미신 군에서는 2-3마리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들이 거기에 속한다. 부유한 집단은 25데샤티나 이상 드네프르 군에서 작물 면적을 보유한 가구들이나, 노보젠스크 군에서 네 마리 또는 카미신 군에서 세 마리 이상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를 말한다.
해당 통계들로부터 매우 명백한 사실은 한 국가 농업과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 진행된 과정이 전반적인 빈곤화와 몰락이 아니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상당 수 농민들인 가난한 집단은 평균적으로 약 절반 가량,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지역 농민 전체 농업 가운데 극히 미미한 일부로, 작물 면적에 따른 평균 약 13%만을 차지했으며, 가구 당 경작 면적은, 3-4데샤티나에 불과하다. 그 정도 면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타우리다 주에서 이른바 '외부 고용'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려면, 한 농가가 17-18데샤티나에 따른 경작 면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확실히 하위 집단에 따른 구성원들은 이미 농사보다는 외부 고용으로부터, 곧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측면이 훨씬 더 강하다. 하위 집단에 따른 농민들이 처한 상태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체적인 통계를 보자면, 정확히 해당 집단이 농업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분여지를 임대해주며, 작업에 쓸 농기구를 보유하고 있지 못해서,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최대 임시 고용층을 구성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하위 집단에 따른 농민들이 바로 농촌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한다.
그러나 다른 한 쪽으로는 바로 그들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서 정반대 성격을 지닌 또 다른 집단이 생겨난다. 상위 집단 농민들은 하위 집단 농민들보다 7-10배나 더 큰 면적을 경작한다. 한 가족이 농사만으로 별 탈 없이 살아가고자 필요로 하는 '정상적인' 경작 면적과 비교해보면, 그들이 경작하는 면적이 가구 당 23-40데샤티나로, 2배-3배 더 넓다는 점을 찾을 수 있다. 상위 집단 농민들은 이미 곡물을 거래해서 소득을 얻고자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들은 상당한 저축을 해두고, 그 돈으로 농장과 농업 방식을 개선한다. 농기계와 개량된 농기루를 사들이는 데 사용한다. 노보젠스크 군 전체 가구 14%가 농기구를 개량했었는데, 상위 집단 농가에서는 42%가 농기구를 개량했으며, 상위 집단 농민들은 개량된 농기구를 소유한 군 내 전체 가구들 가운데 75%를 차지한다. 농민층이 소유한 전체 개량 농기구 가운데 82%가 그들 수중에 집중됐다. 상위 집단에 따른 농민들은 자신들의 노동력만으로는 더 이상 경작을 할 수 없어, 고용된 노동력에 의존한다. 노보젠스크 군에서 상위 농가, 35%는 고정적으로 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드네프르 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상위 집단에 따른 농민들은 틀림 없이 부유층이었다. 그들의 영향력은 고리대금업자들과 쿨라크와 같은, 다른 생산자들에 대한 약탈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생산 체계에 기초한다. 농민층에서 1/5밖에 차지하지 않는 해당 농민들 수중에서는 세 개 군 모두 전체적인 평균 면적을 따져봤을 때, 전체 경작 면적에 따라 절반 이상이 집중된다. 해당 농민에 따른 노동(수확) 생산성이 땅을 파서, 겨우 먹고 사는 하위 집단 프롤레타리아들에 따른 생산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곡물 생산에 따른 주된 원동력은 농촌 부르주아지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진 농민층 분화에 대해 정작 인민주의자들은 이 과정에서 '대중 빈곤화' 말고는 무엇도 보지 못하지만, 시장 규모, 곧 상품으로 전환된 곡물 비율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분명 그 비율은 상당한 폭으로 증가할 수밖에는 없으며, 상위 집단 농민들이 소유한 곡식 가운데 상당한 양은 그들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훨씬 뛰어넘고, 시장으로 흘러들어가지만, 하위 집단에 따른 구성원들은 외부에서 노동해서 벌어들인 돈으로부터 부족한 곡물을 구입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를 인용하자면, 젬스트보 통계 초록이 아닌, V.Y. 포스트니코프, 『남부 러시아 농민 농업』을 살표본다. 포스트니코프는 젬스트보 통계를 활용해서, 타우리다 주에서 주요 세 개 군, 베르단스크, 메리토폴, 드네프르에서 농민 농업을 설명했었고, 서로 다른 집단 별로, 작물 면적에 따라, 그들의 농업을 분석한다.
Ⅰ. 땅을 전혀 경작하지 않는 가구
Ⅱ. 5데샤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가구
Ⅲ. 5-10데샤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Ⅳ. 10-25데샤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Ⅴ. 25-50데샤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Ⅵ. 50데샤티나 이상을 경작하는 가구
포스트니코프는 집단 별로 시장과 관계를 연구하면서, 각 농장에 따른 경작 면적을 4개 구역으로 나누었다.
1. 파종을 위해 필요한 종자를 제공하는 농장 용역(서비스) 구역,
2. 가족과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한 곡물을 제공하는 식량 구역,
3. 농사용 가축을 위한 사료를 제공하는 사료 구역,
4. 상품으로 전환되어, 시장에서 처분된 생산물을 제공하는 상업 또는 시장 구역,
마지막 4. 구역만이 현금 수입을 제공하지만, 다른 부문들은 현물, 곧 농가에서 소비된 생산품만을 산출한다는 건 명백하다. 서로 다른 경작 면적을 보유한 농민 집단들에 따른 개별적인 토지 크기를 포스트니코프는 표와 주석도 제시했었다.
1). 끝에서 두 번째 세로줄은 포스트니코프가 제시한 게 아니라 직접 편집했다.
2). 포스티니코프는 상업 부문 전체에 밀을 심고, 평균적인 산출량을 거둬들이며, 평균가에 곡물을 내다 판다는 가정을 토대로 현금 수입을 계산한다.
해당 통계로부터 농장이 클수록, 상품 성격을 더 강하게 띠고 판매를 위해 재배하는 곡물 비율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주요한 곡물 재배자라 할 수 있는 상위 두 집단에 따른 농민들은 전체 작물 면적에서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전체 농업 생산물에 따른 절반 이상을 52%와 61%를 내다 판다. 농민층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지 않았더라면, 달리 말해, 경작 면적이 모든 농민들 사이에서 '균등하게' 분할됐다면, 그들 모두는 25데샤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가구들인 중간 집단에 속했을 거고, 전체 곡물에서 36%에 불과한 518,136데샤티나, 면적에서 생산된 생산품만 1,439,267에서 36%인, 518,136데샤티나가 시장에 나왔다. 전체 곡물에 따른 42%인, 608,869데샤티나에 따른 면적에서 생산된 생산품들이 시장으로 쏟아져나온다. 따라서 대중 빈곤화, 40%에 달하는 10데샤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가난한 집단 농가들의 완전한 퇴조, 농촌 프롤레타리아 형성은 90,000데샤티나에 따른 토지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추가로 시장에 쏟아져나온 결과로 이어졌다.
농민층 분화에 따라 시장 발전이 결과물에 국한된다는 말이 아니라, 훨씬 더 멀리까지 영향을 미친다. 농민들이 개량된 농기구를 확보하는 현상에서, 곧 자신의 저축을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으로 돌리는 현상을 충분히 지켜봤다. 곡물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상품인 인간 노동력도 시장으로 쏟아져나오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그걸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협소하고, 특정한 목적에서, 국내에서 대중 빈곤화가 실제로는 상품과 시장 경제에 따른 강화로 이어진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언제, 어디서나, 상품 유통으로부터 맨 마지막에 가장 천천히 끌려나오는 건, 곡물 같은 생산품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택했다. 오로지 농촌 지역만을 삼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순수하게 공업 지역인 모스크바 주와 관련되어, 수공업에 관한 수 많은 논문들이 담긴 「모스크바 주 통계 보고서」에서, 특히 Ⅵ, Ⅶ 에서는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이 서술한 농민 농업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망사 산업(레이스 산업)에 관한 논문에서 개혁 이후 시대에는 농민 수공업이 특히나 급속하게 발전한 과정과 이유가 설명된다.
'망사 산업은 1820년대, 포돌스크 군 보로노보 읍에 인접한 두 마을에서부터 생겨났다. 1840년대에 인근 마을들로 천천히 확산됐으나, 그다지 넓은 지역까지 퍼져나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186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특히 마지막 3, 4년 동안 인근 시골 지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됐다. 같은 현상의 원인들은 정확히 최근 몇 년 사이에 해당 산업이 급속히 확산된 원인들을 조사해보면, 한 쪽에서는 그 시기 농민들의 생활 조건이 지독하게 악화됐지만, 다른 쪽에서 주민들 일부는 전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었으며, 요구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계속해서, 해당 수치들은, 해당 읍에 따른 말, 소, 작은 가축에 따른 전체 개체 수가 늘어났지만, 부에 따른 증가가 특정 개인들, 두 세 마리 이상 말들을 소유한 가구들에게 몫으로 돌아갔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했었다. 따라서 소나 말 가운데 무엇도 보유하고 있지 못한 농민들 수가 증가하면서, 자신의 토지를 더 이상 경작하지 않는 농민들 수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가축도 없고, 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거름조차 충분하지가 않았다. 토지는 이미 지력을 다했고, 경작할 가치도 없어졌다. 굶주림을 피하고자,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식량을 얻고자, 남성들이 일부 공업에 종사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졌다. 예전에는 농장 일이 한가할 때 남성들이 그런 일을 하곤 했으나, 지금은 가족 중 다른 구성원들도 외부에서 일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해당 마을들에서는 두 세 마리 가축을 보유한 사람들의 숫자도 증가했다. 따라서 농민들의 부도 증가했으나, 이런 마을에서 모든 여성과 아이들이 공업에 종사한다고도 언급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같은 현상을 설명하고자, 그런 마을들에서 어떤 식의 생활이 이뤄지는지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가정 형편을 보다 자세하게 알아낸 다음에, 시장에 내다 팔 상품들을 생산하게 만드는 강력한 욕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물론 운 좋은 상태에서 농민 인구 가운데 보다 강력한 개인과 가족들이 점차적으로 생겨났는지, 어떠한 사회적 조건들이 그들의 부를 급속하게 늘리고, 마을에 따른 특정 부류로 하여금 다른 부류들과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성장하게 만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조사하는 작업을 여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같은 과정을 추적하고자, 농촌 마을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하나를 들여다봐도 충분하다. 한 마을에서 어떤 농민이 동료 주민들 사이에서 건강하고, 힘세고, 성실한 일꾼으로 평판이 자자하다면, 대부분 아들들로 구성된 대가족을 이끌고 있고, 자식들도 힘세고, 건실한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 모두는 따로 분가하지도 않고, 다같이 모여 살며, 네댓 명 당 하나의 분여지를 부여받는다. 물론 그걸 경작하려면, 가족 구성원 모두 노동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래서 아들 가운데 두셋은 정기적으로, 외부나 지역 공장에서 일하다가 건초를 만드는 철에만 잠시 공장 일을 접고 밭에서 가족을 돕는다. 가족에 따른 개별 구성원들은 자신의 소득을 따로 챙기지 않고, 공동으로 모은다. 다른 상황이 뒷받침해준다면, 하나로 합친 수입이 가족이 필요로 하는 지출을 훨신 초과한다. 따라서 돈이 모이고, 가족은 더 나은 조건에서 공업에 종사한다. 곧 원자재를 직접 현금으로 구매하고, 생산한 제품들을 값나갈 때 판매하며, 남녀 중개인들 같이 '노동 이외에 고용해야 하는 사람들'의 도움도 전부 건너뛸 수 있다.'
'그들은 한 두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다거나, 독자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상실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집안일을 맡길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이나, 비슷한 상태로부터, 능력 있는 가족은 자신들의 노동력 말고도, 또 다른 이윤을 얻는다. 쿨라크와 같은 부농이나, 고리대금업자로 알려진 개인들이 그런 가족들 가운데 생겨나는 경우는, 따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농촌 인구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검토했다. 대부분 농민들 가운데, 어떤 한 부류에 따른 상황들이 악화되면서부터, 다른 소수 부류나 개인들의 부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장 일자리가 확산되고, 외부 세계와 도시, 모스크바 교류가 더욱 잦아질수록, 모스크바 풍습 가운데 일부가 점차 마을에도 침투해 더욱 더 부유해진 가족과 맨 먼저 맞닥뜨린다. 그들은 사모바르 주전자와 식탁 그릇, 컵을 사들이고, 말쑥한 옷을 입는다. 남성들이 천으로 된 신발 대신에 긴 장화 신발(부츠)를 신고, 여성들이 가죽 신발과 긴 장화 신발을 신는 걸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면서부터, 이른바 말쑥한 옷차림 형태를 갖춰가고, 밝고, 여러 가지가 섞인 면직물과 목도리, 무늬가 많이 들어간 모직 천(숄)과 장신구들을 선호한다.'
'농가에서 아내가 남편과 자신, 아이들이 입을 옷을 만드는 건, 매우 오래된 풍습이었다. 직접 아마를 키우는 한,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천과 기타 재료를 구입하는 데 돈이 덜 들어가고, 그 돈은 닭과 달걀, 버섯, 산딸기, 남는 실타래, 천 조작을 팔아서 마련된다. 나머지는 모두 집에서 손수 만든다. 모든 품목들을 집에서 농가 여성들이 모두 만드는 상황과 밭일에서도 자유로운 시간을 모두 그런 일에 쏟아붓는다는 점은 보로노보 읍내 마을들에서 망사 산업이 왜 그렇게 천천히 발전했는지를 설명해준다. 망사는 집안 모든 여성들이 아마포를 잣거나, 천을 짤 필요 없는 대가족이나, 잘 사는 집안에서 젊은 여성들이 주로 만든다. 그러나 값싼 옥양목이 점차 아마 섬유 제품을 몰아내면서, 또 다른 상황이 조성됐다. 아마 됨새가 떨어지거나, 아내가 남편과 자신을 위해 붉은 옥양목 셔츠나 맵시 좋은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하면서, 집에서 농민 의복으로 쓸 다양한 종류로, 아마포 천과 목도리를 짜던 풍습이 점차 사라지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뤄졌다. 의복 자체도 변화를 겪었는데, 거기엔 공장에서 제작한 옷이 집에서 짠 옷을 대신하게 되면서 부분적으로 한 몫을 차지해갔다. 따라서 인구 다수가 판매용 제품을 생산하고자 갖은 노력을 다 쏟고, 심지어 아이들에게조차 그런 일을 시키는 이유가 거기에서 설명된다.'
주의 깊은 사람들이라면, 소박한 설명에는 사회적 분업이라는 과정이 농민 대중 사이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토지에 따른 상품 생산 강화 및 결과적으로는 시장에 따른 강화로 이어졌고, 생산자를 시장으로 이끌어낸 관계 덕분에, 상품 생산 자체가 노동력에 따른 구매와 판매로 귀결되어,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상태로까지 이어졌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8. 니콜라이 온 비판과 결론
추상적 개념과 도형, 공식에 너무 지나치게 비중이 실려 있는 논란에 대한 쟁점을 명확히 하고자, 견해들 가운데 두드러진 대표적 견해 가운데 하나를 검토해보자. 바로 니콜라이 온이다. 니콜라이 온은 국내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 국내 시장 축소와 농민들에 따른 구매력 감소라 여긴다. 수공업에 따른 자본주의화가 가정에서 제품 생산을 몰아내 농민들이 자신의 의복을 사 입도록 하게 만들었다고 말했었다. 의복 살 돈을 마련하고자, 농민은 자신의 경작 면적 확대에 나서고, 분여지로는 충분치 않게 되자, 합리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농사를 확대시켰다. 농민은 토지를 빌린 대가로부터 말도 안 되는 돈을 지불했고, 결국 몰락해갔다.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 자본주의는 인민경제를 1891년, 위기로 이끌었고, 발 디딜 토대가 사라지고, 똑같은 경로를 따라 계속해서 걸아갈 수 없자, 그대로 멈춰서버렸다. 니콜라이 온은 말했었다.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인민들의 체계에서 멀어졌다는 점을 깨달으면서부터, 러시아도 이제는 당국이 마을 공동체에 대규모 생산을 주입시키라는 명령을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새롭기 그지 없는 이론은 어디에서부터 모순이 있었을까.
니콜라이 온은 '생산 수단으로부터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이라는 중요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 법칙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그 법칙이 한 국가에서도 잘 작동된다고 언급까지 했었다. 스스로에게 갇힌 모순에 대해 자신을 꾸짖을 줄 아는 그의 능력에 비춰볼 때도, 그 법칙을 잊은 탓이 더 크겠지만, 그 모순을 바로잡는다고 하더라도, 핵심적인 주장은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무엇보다 니콜라이 온 이론에서 불합리성은 한 국가에서 자본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부족과 순전히 허구에 기초해 주장을 편다는 점이다. 니콜라이 온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집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을 몰아내면서부터, 몰락하게 된 농민층을, 내부적으로 결합되고,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마치 한 사람같이 반응하는 동질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농가들에서 생산 단위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내에서는 상품 생산이 생겨날 수 없었고, 실제로 각각 농민들이 이웃들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농업을 수행한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농민은 자신만이 짊어질 위험을 무릅쓴 채로, 생산물에 따른 생산을 담당하고, 그것을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만든다. 농민은 자기 책임 아래 시장 관계로부터 진입한다. 그렇다면, 농민층 사이에서는 어떤 문제들이 놓여 있는가.
니콜라이 온은 '돈인 절실해진 농민은 자신의 경작 면적을 과도하게 늘리면서부터 몰락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경작 면적을 늘리는 건, 오로지 잘 사는 농민들 뿐이다. 뿌릴 종자와 충분한 가축과 농기구를 가진 사람들 말이다. 그런 소수 농민들은 실제로 자신의 경작 면적을 늘리고, 고용된 노동자들에 따른 도움 없이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농사를 확대시킨다. 하지만 다수 농민들은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자, 자신들의 농사를 확대시킬 수도 없다. 가축도, 충분한 생산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마련하고자, 그런 농민들은 '외부 고용'으로부터, 곧 생산물이 아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으로 가져간다. 당연히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노동하다 보니, 농사는 더욱 쇠락하고, 농민은 자신의 분여지를 지역 사회에 따른, 부유한 이웃 농민에게 임대해준다. 물론 이웃 농민은 자신이 빌린 분여지에 따른 생산물을 직접 소비하지도 않고, 시장에다 내다판다. 따라서 인민 빈곤화와 자본주의 발전, 그리고 시장 확대를 목격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늘어난 농사에 바빠진 부농들은 그전에와 같이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 생산에 임하지 않는다. 농민은 신발을 구입하는 게 더 유리하다. 가난해진 농민 역시 신발을 사 신어야 하지만, 농민은 신발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농장에서 그 신발을 생산할 수는 없다. 그렇게 신발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고, 혁신적인 경향에 따른 농업으로부터, V.V. 보론초프 선생에게도 감명을 안겨준 진취적인 농민은 다량으로 생산한 곡물도 시장에다 공급된다. 인근 수제 신발 제조업자들은 농업 종사자들과 똑같은 입장으로, 곧 쇠락해진 농장에서 생산된 곡물이 너무 적어, 그걸 구입하려면 생산을 확대해야만 하는 똑같은 상태에 처해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여기서도 저축을 보유한 수공업자, 곧 소수를 대표하는 사람들만 생산을 확대시킬 수 있다. 수공업자는 노동자들을 고용하거나, 집안일을 가난한 농민에게도 맡길 수 있다. 하지만 다수 수공업자들은 자신의 작업장을 늘릴 생각조차 품을 수 없다. 돈을 가진 원청업자로부터 일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 곧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을 구매할 사람을 찾았다는 점에 안도한다. 다시 인민 빈곤화, 자본주의 발전, 시장 확대를 목격하며, 사회적 분업은 새롭게 탄력을 받아 한층 더 발전하고 강화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움직임에서 끝은 어디일까. 누구도 거기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아무도 말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상품 경제에 따른 발달과 자본주의에 따른 발전이라는 단일하고, 살아있는 유기적 과정이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시골 지역에서 '탈농민화'는 같은 과정의 시작과 기원, 초기 단계들을 보여준다. 도시에 따른 대규모 자본주의는 과정에서 끝과 경향을 보여준다. 같은 현상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로, 그것들을 개별적이고, 서로 독립적으로만 검토하려고 시도해보라. 주장은 전혀 들어맞지도 않으며, 인민 빈곤화든, 자본주의 발전이든, 둘 중 어떤 현상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대개 밑도 끝도 없는 주장들을 내놓으면서, 그 과정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비판적 사고를 가진 개인으로부터 발달된 도덕적 감각과 모순된 현상들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된다거나, 우연일 뿐이다, 또는 미해결 상태에 있다는 말만 남긴 채로 연구를 멈춰버렸다. 따라서 미해결 상태란 그들 자신의 주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