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의 여러 기법 중 '서술트릭'이 구사된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었다. 당시는 '해문판' 여사의 전집을 잔뜩 사 놓고 집중적으로 파고들 때였는데, 사전지식 없이 단지 여사의 수많은 작품 중 Best 10에 꼽히는 걸작이라는 것만 알고 읽었다. 과연 名不虛傳이라는 말 그대로 상당히 흥미롭긴 했지만, 이런 식의 '기만'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었다. 후에 이런 저런 책들을 읽게 되면서, 이 작품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추리작가들 사이에서도 있었고, 이런 식의 기법을 '서술트릭'이라고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서술트릭'이란 서술에 의한 트릭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데, 트릭이 소설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향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작가가 '서술'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오해나 잘못된 인식을 유발하여 사건의 진상을 혼미에 빠뜨리고, 진실이 밝혀지는 대반전을 통해 독자의 머리 속을 확 뒤엎어 버린다. 추리소설을 '작가'와 '독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바라본다면 서술트릭이 구사된 작품이야말로 이러한 추리소설의 본령에 가장 충실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므로, "속았다!"는 느낌이 크면 클수록, "감쪽같이 몰랐다!"는 탄식이 높으면 높을수록 독자들이 받는 쾌감의 강도도 커지고 추리소설 자체의 작품성도 우수하다고 여겨진다.

스토리 라인은, 한 잡지의 추리소설 공모를 둘러싸고 '원작자'와 '도작자' 사이에 벌어지는 집착과 광기, 그리고 복수가 이리저리 얽힌 미스터리적인 장치 속에서 한 바탕 노닐다가 마지막에 놀라운 진상으로 치 닿는다. 추리작가를 지망하는 '야마모토 야스오'는 심혈을 기울여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는 당선을 확신하지만, 응모를 얼마 앞 두고 그만 원고를 잃어버리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원고를 찾아 가까스로 잡지사로 우송하지만, 결과는 자신의 원고와 동일한 내용의 작품으로 '시라토리 쇼'라는 인물이 당선의 영예를 차지한다. 그는 자신의 원고가 도둑 맞았다고 확신하여 '시라토리 쇼'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눈다.

이 소설은 실제로 작가 '오리하라 이치'가 1988년에 '에도가와 란포상'에 응모한 작품이었지만, 당선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종 후보에 오른 낙선작 중 상을 받았어야 마땅한 다섯 편의 하나로 꼽혔고, 단행본으로 출판되어서는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아, 198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랭킹에 10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위는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가 뽑혔다) 이 작품 이후 '오리하라 이치'는 '도착의 사각', '도착의 귀결'로 이어지는 이른바 도착(倒錯) 3부작을 내 놓으며 추리소설계의 기린아로 떠올랐으며 '서술트릭의 1인자'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작가는 노골적으로 '서술트릭'을 명시하고 독자들에게 이 소설의 트릭을 풀어 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도전장을 외면할 미스터리 매니아가 몇 이나 될까? 작가의 초대에 즐겁게 응하여 재기 발랄한 이 소설을 즐기기 바란다. 별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관의 피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한국어판 발행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으로 들어있는 지은이 '사사키 조'의 짧은 인사말이 반가웠다.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직접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익했지만, 무엇보다도 독자를 대하는 출판사나 작가의 성의가 느껴져서 좋았다. 지은이는 이 소설이 비록 가공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가상의 드라마이지만, 소설 속 경관 3대가 경험하는 상황들은 2차대전 이후 일본의 사회현실과 결코 유리되지 않는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는 일본 현대사의 격변 속을 살아 온 평범한 한 일가의 삶을 그리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경관의 피'라는 제목에서 여러 가지 연상이 가능하다. 단순하게,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경찰관을 직업으로 택한 '안조' 일가의 년대기를 의미할 수도 있고,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제복을 입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으며, 정의의 수호자로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희생'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과연 바람직한 '경찰상'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작가가 던지는 화두를 상징할 수도 있다.     

소설의 구성은 '세이지'에서 '다미오'와 '가즈야'에 이르는 인물의 연대기를 기본 바탕으로 '세이지'가 의문을 품고 해결하려고 하였던 두 건의 살인사건과 '세이지'와 '다미오'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미스터리적인 장치로 배치하고 있다. 1948년부터 60년에 이르는 '안조' 일가의 개인사와 그에 투영된 일본 경찰의 역사를 유장한 필치로 그려 내고 있다. 60년이란 긴 시간적 배경과 미스터리적 장치가 복잡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놀라울 정도의 흡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의미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별로 없을 정도로 '안조' 일가가 만나는 주변인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한 짜임새있는 구성력과 일체의 곁가지는 쳐 내고 꼭 필요한 부분만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에 힘 입은 바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작가에 의해 탄생된 '인간 드라마' 그 자체이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안조' 일가가 엮어 가는 인생 드라마는 격변의 시대상과 맞물려 유장하게 펼쳐진다. 

전후의 혼란이 극에 달한 1948년, 군대에서 복귀한 '세이지'는 생계를 위해 경찰에 입문한다. 비슷한 처지의 경찰학교 동기들과 우정을 나누며 경찰관으로서의 인생을 착실하게 살아가던 그는 소망하던 '주재경관'으로 임명되던 그 해,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남겨 놓은 채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근무 중에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직으로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자살로 처리된다.

'세이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던 장남 '다미오'는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고교 졸업후 경찰학교에 입교한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그런 경찰관을 꿈꾸지만, 경시청 공안부의 필요에 의해 '잠입요원'으로 선발된다. 그리하여, 경찰관이란 신분을 비밀로 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학내 운동권의 정보를 캐어 내는 임무를 수행하고 졸업 후에도 유사한 공안수사에 투입되어 공을 세우지만, 피 말리는 잠입요원으로서의 임무는 그에게 심각한 신경질환을 안기고 끝을 맺는다. 주위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근무했고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주재소로 부임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인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불행은 그를 피해가지 않는다.    

'가즈야'에게 경찰관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동료 경찰을 비밀리에 감찰하는 임무로 경찰관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가즈야는 자신과 관계를 맺은 인물을 배신하여야만 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결하지 못했던 두 건의 살인사건의 진상에 다가선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 앞에 서게 된다.

일본의 경찰 미스터리 중 기억에 남는 소설은 '오사와 아리마사'의 '신주쿠 상어'시리즈와 '요코야먀 히데오'의 소설들이다. 전자는 이른바 출세가 보장되는 '캐리어'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신주쿠'라는 정글을 무대로 홀로 고독하게 범죄와 대결하는 '사메지마'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인 시리즈이고, 후자는 경찰이라는 조직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갈등과 역학관계, 조직논리 등이 미스터리와 잘 조화된 수작들이 많다. 그리고, '다카무라 가오루'가 '마크스의 산'에서 보여준 바 있는 집요할 정도로 세밀한 디테일도 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경찰 미스터리의 최고봉으로 평가하는 것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분명 '사사키 조'의 작가적 역량이 충분히 발휘된 '인간 드라마'의 걸작임은 대부분이 수긍하리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 일상을 끝내고 퇴근을 위해 자동차로 갔더니, 자동차 와이퍼에 살인을 예고하는  메모지가 꽂혀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쪽지를 경찰에 가져가지 않아서 그자들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내퍼 군 어딘가에 있는 학교의 사랑스러운 금발머리 여선생을 살해하겠다. 이걸 경찰서에 가져간다면, 여선생 대신 자선 활동을 하는 할망구를 살해할 것이다. 결정할 수 있도록 여섯 시간을 주마. 선택은 네 몫이다"

월요일 밤, '빌리'라는 이름의 한 남자에게 이러한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그는 바텐더를 직업으로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이다. 장난처럼 보이는 메모지를 경찰서로 가져가는 대신에 그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란 '래니'라는 경찰관을 찾아가서 메모를 보여 주지만, 누군가의 장난으로 여기고 만다. 그런데, 이튿날 저녁, 빌리는 또 다시 어제와 같은 메모지를 발견한다. 이번에는 경찰에 전달하지 않으면 미혼의 남자를 죽이고, 전달하면 아이 둘이 잇는 젊은 엄마를 살해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를 찾아 온 래니에게서 금발머리의 한 여교사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공포와 당혹감에 휩싸인 빌리는 당장 메모지를 경찰서에 가져 갈려고 하지만, 어제 빌리가 가져 온 메모를 대수롭지 않게 처리한 래니는 이로 인해 자신이 곤란한 처지에 빠질지도 모르니 시간을 약간만 달라고 부탁한다. 친형과도 같은 관계인 래니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어 빌리는 래니가 먼저 그의 상관에게 잘 이야기할 수 있도록 경찰서로 가는 시간을 조금 늦추기로 한다. 그러나, 그 시간 이후 빌리에게 엄청난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고 그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게 된다.

'딘 쿤츠'는 평범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악몽과도 같은 현실에 부딪힌다는 설정으로 이른바 '평범한 남자 3부작'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2006년에 발표한 이 소설을 필두로 '남편'(모중석 스릴러클럽 6번으로 소개), 'The Good Guy'(국내 미출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은 'Velocity'라는 제목에 걸맞게 쉴새없이 몰아치는 속도감이 일품이다. 월요일 저녁부터 목요일 자정까지라는 길지 않는 시간 동안, 살인마의 희생자 후보를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는 딜레마에서 발생하는 갈등, 도저히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없지만 반대로 살인마는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데서 오는 공포, 살인마의 압도적인 폭력에 무너지고 어느새 그가 쳐 놓은 함정에도 빠져 버린 자신의 처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닥친 아찔한 위기 등 평범한 남자에게 닥친 악몽의 순간 순간을 작가는 시종 폭발적인 전개와 속도감으로 몰고 간다.

스릴러를 즐겨 보는 독자라면 초반부에서 '적'의 정체와 이야기의 흐름을 대략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이 소설이 정형적인 스릴러의 흐름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스릴러도 스릴러 나름이듯이 이 소설은 '딘 쿤츠'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수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무엇보다 끝까지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몰입감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등공부 불변의 법칙 - 아이 공부를 지배하는 21가지 숨은 원리
송재환 지음 / 아마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라면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여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가 남보다 공부를 잘하기를  바란다. 지금의 부모들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마치 눈 앞에 거대한 벽이 버티고 서 있는 듯한 '공부'라는 존재의 중압감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저 마다 자기식의 공부요령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자기만의 예습복습법, 공책 정리법, 시험공부 요령 등 공부를 잘 하는 방법은 스스로 찾을 수도 있고, 부모나 선생님에게 그 방법을 배울 수도 있고, 우등생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터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자기만의 공부법이 없는 법이 대부분이다. 공부의 요령을 모르기 때문에 우직하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는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차츰 공부에 흥미를 잃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부법은 터득해야 하는데, 공부를 많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부를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하고 터득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법이다. 마치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누군가가 이런저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지만, 결국은 본인이 몸으로 터득해야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넘어지고 부딪혀 보면서 혼자 힘으로 타 보지 않으면 그 원리를 터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시기까지는 자녀 공부에 대해 부모가 일정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결국 공부는 본인이 하는 법이다. 그러나, 효율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이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부모가 결코 방기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12년간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를 가르친 경험으로 매년 반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발견되는 우등생만의 특징을 분석하여 이를 통해 '공부법칙'을 수립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여 공부방법을 잘 알지 못하여 헤매던 아이들을 우등생으로 이끄는 성과를 이끌어 낸 지은이의 노하우를 정리한 것이다. 책에 소개된 21개 공부원리는 부모들이 한 번쯤 들어 본 것도 있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있으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도 있다. 자녀 공부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이 한 번쯤 읽어보고 자기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책이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공부원리는 아래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전의 법칙, 매트릭스의 법칙, 유레카의 법칙, 눈 덩어리의 법칙, 암기의 법칙, 파레토의 법칙, 오답반복의 법칙, 마라톤의 법칙, 놀이의 법칙, 조작체험의 법칙, 하늘천 따지의 법칙, 분절의 법칙, 저수지의 법칙, 한자학습 기적의 법칙, 글쓰기의 법칙, 5학년 필승 법칙, 삼박자의 법칙, 시험공부의 법칙, 아들딸 차별학습의 법칙, 선행필패의 법칙, 피그말리온의 법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19세기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미스터리 대작이 지은이로부터 세상에 나오기 까지는 18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하였다. '조엘 로스'는 뉴욕의 여러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뒷골목 고서점까지 샅샅이 뒤지며 자료 조사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실존인물, 가공인물을 가리지 않고, 19세기를 살았던 인물들이 활자 속에서 뛰쳐나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듯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고, 당시 뉴욕사회의 여러 단면들이 생생하고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에드거 포'의 단편 '마리 로제 미스터리'의 소재가 되었던, 당시 실재하였던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이 포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대담한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포의 마지막 생애 몇 년을 실재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보여 주고 있다.

'가장 검은 새'라는 소설의 제목은 포의 유명한 시 '갈가마귀'를 은유하는 동시에 '에드거 앨런 포'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는 듯하다. '갈가마귀'는 떠나간 연인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사랑과 추억으로 가득 차 있는 詩이다. 어느 폭풍우가 치는 밤에 쉴 곳을 찾아 갈가마귀 한 마리가 청년에게 날아오는 데, 갈가마귀는 청년의 어떠한 질문에도 'nevermore'라는 대답 밖에는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묻던 간에 같은 대답을 들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알면서도 계속하여 물을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매달림'이야말로 이 아름다운 시를 관통하는 정서이다.

"내 연인이 다시는 이 보랏빛 쿠션에 기대안지 못하겠지? -nevermore"
"슬픔을 고치는 향이란 게 있을까? 나에게 말해줘 - nevermore"


포의 생애도 마치 이 시와 같이 절망적인 매달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1809년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를 잃고 세살이 되어 숙부에게 입양되어 자라난다. 성장후에는 도박과 술에 빠지는 바람에 양아버지의 원조가 끊겨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단편소설, 시, 평론 등을 여러 잡지에 기고하며 문학의 길을 가지만, 그는 대부분의 문학 권력자와 갈등관계를 겪는다. 1935년에는 불과 열세살이던 사촌 여동생 '버지니아'와 결혼하지만, 버지니아는 극도의 가난과 결핵이라는 질병과 싸우며 1847년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포는 버지니아의 죽음이후 불과 2년 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 2년 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아편을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불우함으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다가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어 정신착란 상태에서 고통을 겪다가 1849년 10월 숨을 거둔다.

이 소설에는 3개의 범죄 사건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1941년 여름,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메리 로저스'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허드슨 강가에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요란하고도 선정적인 신문보도 속에서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든다. 두 번째 사건은 출항을 준비 중인 한 기선의 짐 칸에 실린 나무상자 안에서 '새무엘 아담스'라는 이름의 출판업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세 번째는 아일랜드계 갱단의 젊은 리더의 아내와 어린 딸이 라이벌 갱단 두목과 함께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이 세개의 각가 다른 사건이 뉴욕의 상급 치안관 '제이컵 헤이즈' 앞에 주어진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무법과 부정이 횡행하는 이 도시에서 존경받는 법의 집행자로 충실하게 일해왔고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은 쉽게 해결을 하지만, '메리 로저스' 사건만은 도무지 그 진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하는 그의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포라는 인물에게로 향한다.

이 소설은 '메리 로저스'의 시체가 발견되는 도입부는 피해자와 그 주변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설명되고, 사건을 추적하는 탐정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등 전형적인 미스터리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점점 사건 추적의 범위를 넓혀지고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는 등 충실하게 미스터리 장르의 공식을 따르고 있던 소설의 구성이 중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메리 로저스 사건보다는 포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탐구로 점점 바뀌어 간다. 그래서, 포라는 인물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점은 좋았으나,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은 약간 떨어진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접어들면, 이 소설이 미스터리 장르임을 독자들에게 일깨우기라도 하는듯 포의 죽음과 함께, 마침내 메리 로긴스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 뿐 아니라, 나머지 두 개의 사건과 메리 로긴스 사건과의 얼켜 있는 고리까지 남김없이 설명된다.

600페이지 정도되는 적지 않는 분량이지만, 지루하지 않는 책읽기였다. 미스터리 그 자체를 가지고 이 소설을 개인적으로 평가하면 적절한 복선과 반전이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이 너무 비약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19세기 뉴욕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실제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조화하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저력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