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19세기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미스터리 대작이 지은이로부터 세상에 나오기 까지는 18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하였다. '조엘 로스'는 뉴욕의 여러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뒷골목 고서점까지 샅샅이 뒤지며 자료 조사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실존인물, 가공인물을 가리지 않고, 19세기를 살았던 인물들이 활자 속에서 뛰쳐나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듯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고, 당시 뉴욕사회의 여러 단면들이 생생하고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에드거 포'의 단편 '마리 로제 미스터리'의 소재가 되었던, 당시 실재하였던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이 포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대담한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포의 마지막 생애 몇 년을 실재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보여 주고 있다.

'가장 검은 새'라는 소설의 제목은 포의 유명한 시 '갈가마귀'를 은유하는 동시에 '에드거 앨런 포'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는 듯하다. '갈가마귀'는 떠나간 연인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사랑과 추억으로 가득 차 있는 詩이다. 어느 폭풍우가 치는 밤에 쉴 곳을 찾아 갈가마귀 한 마리가 청년에게 날아오는 데, 갈가마귀는 청년의 어떠한 질문에도 'nevermore'라는 대답 밖에는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묻던 간에 같은 대답을 들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알면서도 계속하여 물을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매달림'이야말로 이 아름다운 시를 관통하는 정서이다.

"내 연인이 다시는 이 보랏빛 쿠션에 기대안지 못하겠지? -nevermore"
"슬픔을 고치는 향이란 게 있을까? 나에게 말해줘 - nevermore"


포의 생애도 마치 이 시와 같이 절망적인 매달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1809년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를 잃고 세살이 되어 숙부에게 입양되어 자라난다. 성장후에는 도박과 술에 빠지는 바람에 양아버지의 원조가 끊겨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단편소설, 시, 평론 등을 여러 잡지에 기고하며 문학의 길을 가지만, 그는 대부분의 문학 권력자와 갈등관계를 겪는다. 1935년에는 불과 열세살이던 사촌 여동생 '버지니아'와 결혼하지만, 버지니아는 극도의 가난과 결핵이라는 질병과 싸우며 1847년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포는 버지니아의 죽음이후 불과 2년 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 2년 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아편을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불우함으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다가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어 정신착란 상태에서 고통을 겪다가 1849년 10월 숨을 거둔다.

이 소설에는 3개의 범죄 사건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1941년 여름,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메리 로저스'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허드슨 강가에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요란하고도 선정적인 신문보도 속에서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든다. 두 번째 사건은 출항을 준비 중인 한 기선의 짐 칸에 실린 나무상자 안에서 '새무엘 아담스'라는 이름의 출판업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세 번째는 아일랜드계 갱단의 젊은 리더의 아내와 어린 딸이 라이벌 갱단 두목과 함께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이 세개의 각가 다른 사건이 뉴욕의 상급 치안관 '제이컵 헤이즈' 앞에 주어진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무법과 부정이 횡행하는 이 도시에서 존경받는 법의 집행자로 충실하게 일해왔고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은 쉽게 해결을 하지만, '메리 로저스' 사건만은 도무지 그 진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하는 그의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포라는 인물에게로 향한다.

이 소설은 '메리 로저스'의 시체가 발견되는 도입부는 피해자와 그 주변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설명되고, 사건을 추적하는 탐정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등 전형적인 미스터리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점점 사건 추적의 범위를 넓혀지고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는 등 충실하게 미스터리 장르의 공식을 따르고 있던 소설의 구성이 중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메리 로저스 사건보다는 포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탐구로 점점 바뀌어 간다. 그래서, 포라는 인물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점은 좋았으나,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은 약간 떨어진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접어들면, 이 소설이 미스터리 장르임을 독자들에게 일깨우기라도 하는듯 포의 죽음과 함께, 마침내 메리 로긴스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 뿐 아니라, 나머지 두 개의 사건과 메리 로긴스 사건과의 얼켜 있는 고리까지 남김없이 설명된다.

600페이지 정도되는 적지 않는 분량이지만, 지루하지 않는 책읽기였다. 미스터리 그 자체를 가지고 이 소설을 개인적으로 평가하면 적절한 복선과 반전이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이 너무 비약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19세기 뉴욕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실제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조화하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저력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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