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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문인기행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구 지음 / 에르디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가 이문구의 소설 중 내가 읽은 것은 '관촌수필'과 '우리동네' 두 편 밖에 없는 것 같다. 그와 동시대 작가들의 그것들보다 유독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은 그가 구사한 특유한 문체가 나에게는 잘 읽히지 않았던 스타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대 어느 작가들보다 풍부한 토박이 어휘을 사용하고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한 작가였다.
그리고, 그는 '글쟁이'이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문예지 출판과 관계하면서 소설 뿐 아니라 흔히 '잡문'이라고 하는 글들도 무수히 생산하였다. 문인들이 잡문이라 칭하는 글들이 말 그대로의 '잡문'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잡문이야말로 글쓴이의 내면을 더 잘 들려다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지은이의 소설은 몇 편 읽지도 않았는데 정작 이 책은 벌써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난다. 책 속 어디에도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던 이력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지만 나는 분명히 이 책 속에 나오는 글들을 읽었다. 아마도 10년도 훨씬 전이고, 20년 전일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에 나는, 매혹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는 '작가'라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이 책은 그 당시의 내가 열광했던 여러 작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금은 탐색할 수 있게 해주었기에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21명의 작가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제1장은 김동리, 신경림, 고은, 한승원, 염재만에 대한 인물평이고, 제2장은 박용래, 송기숙, 조태일, 임강빈, 강순식 등이 낸 단행본에 발문으로 써준 글이다. 제3장은 문예지에 작가탐방의 형식으로 연재한 글인데 황석영, 박상륭, 김주영, 조선작, 박용수, 이정환 등이 등장한다. 제4장은 이호철, 윤흥길, 박태순, 성기조 등의 실명소설과 서정주 시인의 추도사로 되어있다. 70~80년대 문단의 마당발로 통하던 작가의 면모답게 다양한 부류의 작가들이 등장한다.
깔끔하게 단장이 되어 새로 나온 이 책을 다시 또 읽으니, 예전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인물이나 사건들이 이제는 가슴 속에 흥분을 앞세우지 않고 그냥 글로서 다가온다. 반대로 좋아했던 인물들에게 향했던 열광의 빛깔이 이제는 흐려진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작가 '이문구'은 어떠한가? 소설가 '이동하'가 책 표지 뒷면에 이런 글을 남겼다. "진실로 찬탄한 점은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성급한 소명의식 때문에 경직되고 어설픈 작품들을 마구잡이로 쏟아 내 놓고도 태연하던 때에 그는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으로 행동하면서도 결코 문학을 들어 도구로 삼지 않았을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 냉철한 장인의식을 가지고 의연히 고집스레 자기만의 세계를 꿋꿋이 가꾸어 왔다는 점이었다"
'경직되고 어설픈 작품들' 운운 부분은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작가 이문구가 '뜨거운 가슴으로 행동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꿋꿋이 가꾸어 왔다'는 점은 공감이 갔다. 하여 그가 남긴 소설들을 다시 찾아서 읽기로 했다. 분명히 예전과는 다른 무엇이 찾아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