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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작중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이 소설의 테마이다.
폭력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원초적인 야만행위이다.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에게 폭력은 일상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마음을 조려야 했고 대학시절에는 군사정권의 폭압에 진저리를 쳤다. 최근, 정치 참여를 두고 정치권을 한 바탕 휘저어 놓은 한 지식인의 여러 가지 말 중 가장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나는 70년대를 경험했다. 다시 그 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주인공이 어느 도시의 남쪽 역에 내린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아버지의 강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인 항구 도시를 떠나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것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이었다. 단지 낯설다는 이유 때문에 동네 토박이에게 당하는 집단 린치에서부터 학교 폭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이 힘의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 자행하는 폭력, 권위와 질서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교사들의 무자비한 체벌까지 주인공은 폭력으로 물든 일상 속에 그대로 노출된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적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인물은 별로 없다. 그 시대는 그러하였다.
"십대는 비극이다. …… 우리 나라 안에서는 비극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두 그렇다는 거다" 이처럼 폭력이 일상이 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하고 사회는 그럭저럭 굴러간다. 그런데, 학교와 자취집을 맴돌던 시선이 밖으로 돌려진다. 대학생들의 데모와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잦아지더니 갑자기 군인들이 도시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이 자행하는 엄청난 폭력 앞에 사람들은 당황과 놀람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길 가던 어린 처녀가 남쪽 역 광장에서 대검에 가슴이 찔렸다. 그녀는 병원에 실려 갔고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덤벼들었다. …… 비명과 고함과 쫓기는 소리가 끝이 없었다" 도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혼란에 빠진다. 압도적인 국가의 폭력 앞에 그 어떤 논리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저 폭력으로부터 도망 치거나, 아니면 그 폭력에 처참하게 포획될 뿐이다. 작가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국가폭력 앞에서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작가는 과연 어느 누가 이유없이 자행되는 국가의 폭력 앞에 떳떳할 수 있는지? 누가 그러한 폭력을 견디어 낼 수 있는가?를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세계관을 드러낸다. 내가 기억하는 팔십년대는 소설의 시대였다. 이 작품은 내게는 익숙한, 그 시절의 소설 스타일이 온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