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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시
미사키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지니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작가 '미사키 아키'는 '이웃 마을 전쟁'이라는 데뷰작으로 제17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거머쥐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웃 마을과의 전쟁이 시작된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느닷없이 우리 동네와 이웃 동네가 말 그대로 '전쟁'을 한다는 엉뚱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말만 전쟁이지 사람들의 일상은 평상시 그대로이고 사방 어디에도 전투 분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전사자 12명' 등의 살벌한 공고가 붙는다. 주인공은 전쟁 동원령에 따라 동사무소 직원과 위장결혼 후 이웃 마을에 스파이로 잠입한다. 기발한 소재와 비현실적인 설정을 세밀한 일상 묘사로 잘 버무려 놓았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일본에서 신예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하니, 다른 작품이 소개되면 다시 한 번 더 읽을 생각을 하였다.
2006년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 소설은 '옮긴이의 말'에 보면 사정에 의해 출간이 미루어지다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다 읽고 나니 왜 이 작품의 출간이 늦어졌는지 느낌이 왔다. 이 소설도 전작이랑 분위기가 별로 다르지 않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기발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설정을 묵직하고 힘있는 문체로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한마디로 문장력이 있다는 얘기다. 개별적인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하나의 큰 이야기로 귀결되는 구성도 짜임새가 있다.
30년에 한 번씩 아무런 조짐도 이유도 없이 한 도시의 전체 시민들이 홀연히 사라진다. 도시는 의식을 지닌 일종의 유기물이다. 그것은 사라질 도시를 선택하여 사람들을 조종하고 소멸에 관련된 사람들을 '오염'시킨다. 왜 도시가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는가?에 대한 답은 없다. 단지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절대적인 불가피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소멸 관리국'의 임무는 사라진 도시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하여 더 이상의 오염을 방지하는 것이다. '국선 회수원'을 선발하여 사라진 도시에서 그 이름을 기억할만한 모든 것을 회수하여 소각시킨다. 국선 회수원의 자격은 사라진 도시에서 5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살았고, 이전에 그 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자격 요건은 최근에 가까운 사람을 잃은 사람이라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는 깊은 슬픔에 싸여 있으므로 '오염'이 접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 아래 이 소설은 '쓰키가세'라는 도시가 소멸하면서부터 다음 도시가 소멸하기까지 30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시의 소멸은 사라진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비극적인 불문율을 가져왔고, 소멸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만들었다. 이는 모두 '오염'과 관련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도 역시 모호하다. 하여간,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남겨진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다음 소멸을 막기 위해 투쟁한다.
이야기는 소멸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으로 흩어져 있던 등장인물들이 하나 하나 연결되어 가면서 점점 풍부해진다. 아무튼 여러가지 면에서 참 독특한 소설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문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