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발소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안소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에 이어 2번째로 접한 '야마모토 코우시'의 소설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하나의 소재를 매개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연작소설이다.
 
전작은 1958년 4월에서부터 이듬해까지 도쿄를 배경으로 한 12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어려운 시절이지만 내일을 희망을 상징하는 '도쿄타워'가 모든 작품에 반드시 등장한다.
가령, 살짝 길을 잃은 소년이 공사 중인 도쿄타워를 표지판 삼아 집으로 향하고,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옛사랑 여인과 시간 떼우기의 의미없는 대화 속에서도 언급이 되고,
새 가족을 맞으려는 소녀가 어쩌면 자매가 될 지도 모를 다른 소녀와 유원지 놀이기구 안에서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따뜻함을 느낀다는 식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6편의 이야기에는 한 '이발소'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이 동네 이발소에는 어딘지 모르게 특이한 아줌마 이발사가 있다.

우연히 그 곳을 찾은 손님이 이발 의자에 앉아 그녀의 소소한 잡담 (전 남편이 운영하던 이발소를
물려 받은 사연, 남자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둥...)을 들으며,
기분 좋은 안마를 받다 보면 어느새 스르르 졸음이 찾아온다.

비몽사몽간에 그녀의 말에 맞장구 치다가 머리 손질이 끝났다는 말에 정신을 차려 보면,
거울 속에는 평소와는 180도 다른, 도저히 수습이 안 되는 헤어 스타일로 확 바뀐 자신의 모습이 있다.
그런데, 헤어 스타일만 확 바뀐 것이 아니라 어쩐지 이전의 '내'가 아닌 새로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마법에 걸린 6명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이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말단 회사원 (들개와 춤을)
집안에 든 도둑과 맞닥거린 후 두려움에 떠는 여자 회사원 (호신술 입문기)
산 속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깨어난 사나이 (암흑의 세계)
번번이 취직 시험에 떨어지고 있는 취업 재수 여대생 (마이 웨이)
타인의 잘못을 자신이 떠 안고도 혼자서 삭히기만 하는 사무직 여사원 (밀어버린 눈썹)
정년퇴직후 어쩐지 무기력해진 노인 (나팔꽃 골목)

누구나 헤어 스타일을 바꾼다거나, 평소와 다른 화장을 한다거나,
파격적인 의상을 입는다거나 하면, 웬지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된 듯한 환상에 빠질 수가 있으며,
이러한 작은 착각은 무미건조한 일상을 잠시라도 탈피하게 해주는 생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소설적 장치로 확대하여,
우연히 헤어 스타일이 바뀌어진 소시민이 이를 계기로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자신도 몰랐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며, 평소에는 상상도 못했던 생각과 행동으로
한 바탕 대형사고를 치고 마는 '소동'을 시종 경쾌하게 그려 내고 있다.

독자들은 과장된 설정임을 인식하면서도,
특별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 소망하는 '자기 변신'의 욕구에 공감하고
좌절이 일상화된 상처 입은 현대인의 내면에 대한 '자기 치유'의 과정을 따뜻한 웃음으로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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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불행하다
카리 호타카이넨 지음, 김인순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핀란드에서 가장 흔하다는 '마티'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평범한 중년의 가장이다.
스웨덴과의 아이스하키 중계방송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아내 '헬레나'가 딸 '시니'를 데리고 가출한다.
딱 한번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렀을 뿐인데 아내는 별거선언과 함께 이혼을 요구한다.

가족이 인생의 전부인 마티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다.
가족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오직 단 하나의 방법은 아내가 소망하였던 '단독주택'을 마련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은 그 순간부터 마티의 내 집 마련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그가 내 집 마련 후보로 찍은 집은 이른바 '참전용사의 집'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향을 잃은 난민들과 참전용사들에게 정부에서 부지와 융자금을
지원하여 기본 설계도에 따라 대거 지어진 집으로,
마티는 이 집이야말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꼭 필요한 것만 갖추어져 있는 집다운 집이고
스스로를 '가정 전선'과 '여성해방 전선'에서 분투한 참전용사로 여기는 자신에게 꼭 맞는 집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의 '내 집 마련'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의 원래 목적은 행복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점점 내 집 마련 자체가 하나의 강박관념, 집착, 절대 명제가 되어 그와 그 주변 인물들의 목을 조른다.

돈 마련을 위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온갖 눈물겨운 노력을 다하는 것은 차치하고,
단독주택 주인, 부동산 중개인, 단독주택을 찬미하기 바쁜 심리학자 등 내 집 마련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의 뒤를 캐고 괴롭히기 까지 한다.

그는 집을 사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는 신념 하에 부동산 중개인을 협박하고,
남의 집 정원에 오줌을 갈기고, 개를 죽이고 노인을 묶어 지하실에 가둔다.
내 집 마련은 마티에게 무한한 에너지원인 동시에, 그를 괴물로 만들어 가는 악몽이된 것이다.

지은이 '카리 호타카이넨'는 핀란드에서 독자와 비평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작가이고,
이 소설은 지은이가 실제로 집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이 살고 있는 헬싱키 북부 바그뵐레 근교에 있는 거리 이름 'Juoksuhaudantie(참호로)'를 따서
제목으로 붙였다고 한다.

2002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그에게 핀란드 최고의 문학상인 '핀란디아 문학상'과 '북유럽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선사하였고, 독일 등 13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고 한다.

많이 접하기 힘든 북유럽의 현대소설을 읽을 수 있는 색다른 독서 경험이었고,
내 집 마련이라는 우리에게도 친근한 이야기 구조 속에(인간들의 삶이란 대동소이 하다)
현대인의 내면에 깊이 드리워진 '집착'과 '상실'이라는 명제에 대한 지은이의 날카로운 통찰이
뼈아픈 위트와 신랄한 독설 속에 숨어 있어 한 번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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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 - 황희경의 차이나 에세이
황희경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쉬운 글을 쓰기는 어렵다.
가벼운 신변잡기류의 내용이 아니라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을 쉽게 쓰기는 더욱 어렵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정말 잘 읽힌다는데 있다.

지은이는 대학에서 '유학'을 전공하였고 한자로 씌어진 중국고전을 오랫동안 공부해 온 학자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공부하던 '한문'을 매개로 고전 속의 중국을 처음 만났고,
한중수교 이후 중국과의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지자 고전 속에서 본 중국이 아니라,
자신의 눈 앞에 살아 있는 현대 중국을 보기 위해 수 차례 중국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축적된 지은이의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생각과 경험들을
마치 친구들이 모인 장소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하듯 나직한 목소리로
또는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키득키득 웃으며 큰 소리로 수다를 떨듯이 쏟아 내고 있다.

지은이의 맛깔스러운 글 쓰기는 가히 '강호'의 달인의 솜씨라 할 수 있다.
구수한 입담과 함께 진지한 성찰이 있어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고
과거와 현재의 중국, 중국인에 대한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만한 책이다.

지은이는 '루쉰'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글 곳곳에 '루쉰'에 대한 이야기가 불쑥 불쑥 나오는데, 아래의 글은 '루쉰'의 유명한 글 중 하나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정말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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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쟁이 로봇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0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가 벌써 10권째가 나왔다.
최근에 각광받는 인기 작가의 작품도 아니고, 이미 오래 전에 발표된 작품 모음집이
이렇게 계속 나오리라 생각 못했는데, 조금은 예상 밖이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호시 신이치는 일본 SF 장르의 선구자격인 인물로 1926년生 이고,
1957년 SF동인지 '우주진'에 발표한 '세키스토라'가 '보석'지에 연재되면서 작가로 데뷔하였다.
1961년 발표한 단편집 '인조미인'으로 나오키상을,
1968년 '망상은행'으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였고,
'Short-short Story'(초단편 소설)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 1,0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그의 Short-short Story는 '無섹스' '無폭력' '無시사'의 3無를 내세우고,
통속성을 일체 배제하여 세계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3,000만부 이상이라는 경이적인 판매부수가 말해주듯 꾸준하게 독자들의 사랑받고 있다.

이 작품집 '변덕쟁이 로봇'은 1972년에 처음 출간되었다고 한다.
총 42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아사이 신문' 일요판에 발표되었고,
그 중 31편은 삽화와 함께 '변덕쟁이 로봇'이란 제목으로 어린이용으로 발간되었는데,
책의 후기에서 지은이는 '익숙하지 않은 동화를 쓰다'라는 말로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집은 유난히 로봇, 신발명품, 외계인 등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고 Short-short Story다운 짤막한 이야기들이 많은 편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성인용, 어린이용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의 이야기는 독자를 계몽한다든지, 교훈을 주려고 한다든지 하는 것에서 자유롭다.
그에게 글은 재미있는 일체의 꾸밈이 없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듯,
담담하고도 명료하다. 그래서 국적에 관계없이 남녀노소 구별없이 쉽게 읽힌다.
그리고, 유연한 발상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로 인도한다.

그의 작품은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호흡이 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작품을 처음 대하면 대개, '뭐~ 이래'하고 느끼지만,
한편 한편 읽다 보면 별다른 이야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게 된다.
나 역시 '흰 옷의 남자'라는 시리즈 8권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나,
한 권쯤은 자기 전에 2~3편씩 읽기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 작품집까지 벌써 4권째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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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의 수수께끼 - 흥미진진한 15가지 쟁점으로 현대에 되살아난 중국 역사
김영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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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서에 쉽게 손이 가는 독서취향상 서점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인문서 코너를 빼 먹지 않는다.
이 책은 표지 디자인이 깔끔하고 책 만듦새가 맘에 들어 처음 집어 들었고,
방대한 중국의 역사를 년대기적 서술이 아니라,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중국사의 맥락을 짚어 본다는
책의 컨셉이 맘에 들어 읽기 시작했다.

지은이는 EBS TV 특별 기획물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 강의를 통해 일반에 알려진 역사학자라는데
나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중국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지은이는 10년이 넘게 무려 100차례 정도 중국을 다녀 왔다고 한다.
학문적 성취와는 무관하게 이러한 지은이의 열정이 놀라왔다.

그에게 따르면 향후 중국은 우리에게 富國富民을 실현하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인 동시에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 위협적인 존재일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에 대하여 무지한 경향이 있다.
특히 중국은 우리 역사상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이 어떤 민족인지?
그 들의 역사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교양적인 지식 보다는 얄팍하고 천박한 선입관과 무지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듯하다. 

이는 인문학 교양서를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생산하지 못하는
부실한 우리 역량의 현 주소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만의 언어로만 소통하는 학계의
논문 권위주의의 결과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훌륭하다.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잘 읽히는 문체로(한글을 읽으면서도 자꾸 첨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하는 대목들이 즐비한 여타 책들과 달리)
컬러판 사진, 지도, 도표 등을 적절히 첨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미 중국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독자라면 이 책에서 더 이상의 심화된 지식이나
새로운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중국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이 흥미롭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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