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다큐 여행 - 국어교사 한상우의
한상우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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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서른 즈음인 지은이는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이다. 스스로 "젊은 날은 자주 길 위에 있고 싶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그는 세상이 정해 놓은 단단한 규칙들이 도무지 손에 익지 않았다. 일상은 구석구석 아팠지만 일상 밖 몇 걸음에도 세상은 달라 보였다. 그를 일상에서 끌고 나온 것은 자전거였다. 자전거 위에서 그는 세상을 보았다.

풍경 속을 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그에게 말을 건넨다. 나직한 '길'의 목소리는 새벽녘처럼 희미하거나 저물녘처럼 어렴풋하였지만 문장은 언제나 더디게 왔다. 그래서,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리고 길 위에 펼쳐진 시간과 공간이 그 속에 붙들렸다. 사진 속에 담겨진 '길'의 이야기와 기억은 그에게 와서 문장이 되었다.

이 책은 지은이가 자전거 위에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과 교감을 담은 에세이이다. 자전거가 닿은 곳은 오대산 상원사, 부여 정림사지, 경주 고분군, 양산 통도사, 한라산 백록담 등과 같이 이름이 알려진 명소도 있고 안동 권정생 생가, 익산 고도리 마을, 통영 동피랑 마을과 같은 한적한 시골도 있으며, 황학동 벼룩시장, 부산 용호동과 같은 도시 변두리도 있다.

어느 곳이던 지은이가 보여 주는 풍경과 글 속에는 웬지 그리움의 냄새가 베어 있고 뒷모습이 쓸쓸한 남자가 짓는 미소가 담겨 있는 듯하다. 부산 용호동 산동네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 눈에 들어 온 어느 집 옥상에 널린 빨래에서 "젖은 빨래도 배추 우거지도 우리의 삶도 말라 간다. 너무 잘 말라서 눈물이 난다"고 한다. 바다를 향해 앉아 있는 어느 부자의 뒷모습에서 "화해가 더딜지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마침내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문장을 끌어내기도 한다. 남도 땅, 시골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꺼집어 올린 정서도 인상 깊었다.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들의 발목을 붙드는 건 돌아서면 달려드는 그리움이다. 유랑을 운명으로 짊어진 갈 곳 없는 이들에게 그리움은 무거운 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길 위에서는 그리움의 무게를 줄여야 쉽게 돌아서고 멀리 걸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 터미널에 모인 사람들은 쓸쓸하게 데워진 그리움에 조금씩 비슷한 표정으로 젖어가는 것이다."

이 책의 모든 문장은 지은이가 길 위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간 소중한 발견이라고 한다. 밖으로 표출되기 보다는 내면으로 침잠하는 글들이 많아 마음이 한가로울 때 또는 한가로워지고 싶을 때 읽으며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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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폐인 - 남자의 야생본능을 깨우는 캠핑 판타지
김산환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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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지금 현재를 그대로 접어둔 채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 한 자락을 가슴 한 구석에 담고 살아간다. 얼추 나이가 든 남자들의 경우 대개 그 떠남의 방향이 자연을 향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흘러간 유행가와 같던 캠핑이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다.

나 역시 여행, 특히 정처없이 떠도는 방랑 같은 여행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얽매인 몸이라 대형서점 여행 코너에서 다른 사람들의 여행담이나 뒤적이게 고작이다. 그러고 보니, 요 몇 년 사이 무수히 많은 여행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과 일러스트와 문자가 적당하게 섞인 천편일률적인 책 구성, 이국의 정경을 바라보는 비슷비슷한 감성, 동일하게 반복되는 예측가능한 에피소드들이 소개되는 그런 책들 말이다.

이 책도 일견 보기에는 여행을 담은 다른 책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깔끔한 표지와 알맞은 책 두께, 사진과 글의 비율도 어느 한 쪽으로 몰리지 않고 적당하다. 그런데, 이 책을 조금만 더 유심히 보면 다른 여행 에세이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지리산을 넘어온 하현달이 강물의 여윈 몸통을 비췄다. 강물이 몸을 뒤집을 때마다 허연 비늘이 번쩍거렸다. 물 속에서는 강물을 거슬러 온 황어가 느닷없이 펄쩍거리며 봄이 강의 깊은 곳으로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일러줬다"

어느 봄날 밤, 섬진강 이름 모를 강변 텐트 속에서 오랜 벗들과 같이 봄을 맞이하는 정경을 묘사한 부분이다. 지은이는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여러 신문, 잡지사에서 여행전문 기자로 일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글은 어설픈 아마추어의 솜씨가 아니다.

이 책은 지독하게 이곳저곳 세상을 두루 떠돌았던 지은이가 특히 캠핑에 초점을 맞추어 그 매력을 사진과 글로 풀어낸 포토 에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하나의 장으로 구분하고 강원도에서부터 제주도까지 종횡무진 아름다운 자연을 누비면서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와 함께 자기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풀어 놓는다. 참으로 즐거운 책 읽기 시간을 선사해준 책이다.

남자는 캠핑장에 도착한 순간 깨어나고 자신의 DNA에 숨겨져 있던 야생의 본능이 살아난다고 지은이는 말하지만, 캠핑을 마초의 문화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중년의 남자들이 캠핑에서 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모습의 생존투쟁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은 순수한 로망, 스스로 자연이 되고 싶은 열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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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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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호란'의 참담한 패전 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9년의 세월을 보내고 귀국하였으나, 불과 두 달 만에 사망한 비운의 인물인 소현 세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인조실록은 소현 세자를 두고 '자질이 영민하고 총명하였으나 기국과 도량은 넓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세자가 청에 있는 동안 모든 행동을 일체 청나라 사람이 하는 대로만 따라서 하고, 가깝게 지내는 자는 모두 무부와 노비들이었고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폐지하고 오로지 화리(貨利)만을 일삼았다'고 은근히 폄하하고 있다.

심양에 머물면서 세자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청나라의 국력을 확인하고 향후 청 중심으로 전개될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인식하여 청 조정의 주요 인물들과 교류를 통해 조선의 부흥에 필요한 외교 역량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세자는 당시 조선 지배층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고루한 습성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감행한다. 세자빈 강씨의 주도로 조선의 인삼과 약재를 거래하는 사무역에 손을 댄 것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청에 끌려 온 조선인들을 환국시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세자는 당시 청에서 활약한 제주이트 교단의 선교사인 '아담 샬'과 교류를 통해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서양의 과학문명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마침내 청이 환국을 허락하자 세자는 아담 샬이 지은 과학 서적과 '지구의' 등을 가지고 귀국한다. 그런데 9년만에 귀국한 세자를 바라보는 인조의 시선은 놀라울 만큼 싸늘했고, 불현듯 세자는 죽음을 맞는다. 그의 나이 불과 34세 때였고, 그 죽음 후 세자빈 강씨를 비롯한 그의 식솔들은 모조리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세자의 돌연한 죽음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인조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고, 만일 세자가 보위를 물려 받았으면 조선의 역사에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후대의 평가도 있지만 덧 없는 역사의 가정이다.

이렇듯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소현 세자는 역사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세자의 마지막 2년을 집중하여 그리고 있는데, 심석경을 비롯한 실존 인물들뿐 아니라 흔, 막금, 만상 등 작가가 손끝에서 탄생한 인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야기는 탄탄하지만 이 소설이 서사 위주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비중을 두고 소설을 끌고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술술 잘 읽히는 류의 소설은 아니다. 대신에 인물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치밀한 심리묘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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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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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생 젊은 작가의 데뷰작이자 계간지 자음과 모음의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다. 국경도 인종도 성별도 모호하게 처리한 인물 묘사와 사건다운 사건은 없이 시종 인물의 내면을 쫓아가는 이야기 구조가 낯설어 초반부는 잘 읽히지 않았지만, 특유의 문체에 익숙해지니 200페이지 정도의 중편이라 금방 다 읽게 된다.

주요 등장인물들인 을, 민주, 씨안, 프래니, 주이는 사회적인 관계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을 접어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작은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원하는 소통만을 추구하고 있다. 어딘지 정확하게 모르는 이국의 어느 곳에서 장기 여행자를 위한 조그마한 호텔에서 지내는 이들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한 없이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한 없이 불안하기도 한 일상을 이어 가고 있다.

근처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을'은 대화보다는 침묵의 소통을 믿는다. 그녀는 침묵의 행간을 짚어 낸다고 생각하는 열 살 연하의 남자 '민주'를 자신의 곁으로 오게 한다. 을이 엘리트 교육을 받은 지식인 부류에 속한다면 민주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가진 돈도 별로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처지이다.

호텔의 투숙자이면서 하우스키퍼로도 일하고 있는 '씨안'은 어느 날 민주에게 마음이 빼앗긴다. 그녀는 민주 때문에 아무런 욕망도 없이 살아가려던 자신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또 다른 장기 투숙자인 '프래니'와 '주이'는 사촌 자매이자 연인 사이이다. 이 커플은 자신들의 사랑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모국을 떠나 이 곳에 머물고 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제3자의 존재가 출현하게 된다.

이 소설은 국경도 인종도 성별도 신경 쓰지 않고 경제 활동이나 가족 관계에 대한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는 노마드적인 인간을 그리고 있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노마드를 사전적 의미에서 도출되는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며 창조적인 행위에 바탕을 둔 삶을 사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지칭하는 말로 확장한 바있다.

작가는 인간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소통 중심주의 등 모든 지배적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풍속도를 그려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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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후 - 10년간 1,300명의 죽음체험자를 연구한 최초의 死後生 보고서
제프리 롱 지음, 한상석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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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과학자이자 의사인 지은이는 오랜 연구를 통해 명확한 결론을 내린다. 죽음에 근접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임사체험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이다. 지은이는 10년 동안 1,3000명이 넘는 임사체험자를 대상으로 100개가 넘는 상세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행하였고 이렇게 수집된 1,000건 이상의 사례를 연구하여 임사체험 사례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핵심요소를 추출하였고 그 결과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임사체험자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경험하였다고 하는 죽음의 단계는 가장 먼저 의식이 몸에서 분리되는 '유체이탈'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때, 모든 감각은 매우 예민하게 고조되고 감정이나 느낌이 격렬하고 대체로 긍정적이 된다. 다음은 터널로 들어가거나 터널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고 눈부신 빛과 마주치게 된다고 한다. 신비로운 존재나 이미 죽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재회하고, 자기의 지나간 인생이 주마등처럼 펼치지는 것도 보게 된다. 또한, 비현실적인 영역에 접하거나 특별한 지식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러다가, 경계나 장벽을 만나게 되면서 자의나 타의에 의해 도로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임사체험은 대개 의식이 없거나 의학적인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사체험자들은 유체이탈 상태에서 보고 들을 수가 있으며, 나중에 그 중 대부분은 사실로 판명이 된다. 또한,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임사체험 중에는 정상적인 시각적 지각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신의 지나간 삶이 펼쳐지는 체험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몰랐던 사건까지도 포함이 된다고 한다. 죽음의 개념조차 정확히 모르는 어린 아이들의 체험도 어른의 경우와 다르지 않고, 전 세계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임사체험의 구성요소와 단계는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이러한 임사체험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식과 마음의 활동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뇌의 활동이 멈추어도 의식이 지속된다는 지은이의 생각은 우리의 정신은 전적으로 뇌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일반적인 주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임사체험은 허구하는 비판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 여부에 관계없이 이 책은 임사체험 사례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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