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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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생 젊은 작가의 데뷰작이자 계간지 자음과 모음의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다. 국경도 인종도 성별도 모호하게 처리한 인물 묘사와 사건다운 사건은 없이 시종 인물의 내면을 쫓아가는 이야기 구조가 낯설어 초반부는 잘 읽히지 않았지만, 특유의 문체에 익숙해지니 200페이지 정도의 중편이라 금방 다 읽게 된다.

주요 등장인물들인 을, 민주, 씨안, 프래니, 주이는 사회적인 관계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을 접어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작은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원하는 소통만을 추구하고 있다. 어딘지 정확하게 모르는 이국의 어느 곳에서 장기 여행자를 위한 조그마한 호텔에서 지내는 이들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한 없이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한 없이 불안하기도 한 일상을 이어 가고 있다.

근처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을'은 대화보다는 침묵의 소통을 믿는다. 그녀는 침묵의 행간을 짚어 낸다고 생각하는 열 살 연하의 남자 '민주'를 자신의 곁으로 오게 한다. 을이 엘리트 교육을 받은 지식인 부류에 속한다면 민주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가진 돈도 별로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처지이다.

호텔의 투숙자이면서 하우스키퍼로도 일하고 있는 '씨안'은 어느 날 민주에게 마음이 빼앗긴다. 그녀는 민주 때문에 아무런 욕망도 없이 살아가려던 자신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또 다른 장기 투숙자인 '프래니'와 '주이'는 사촌 자매이자 연인 사이이다. 이 커플은 자신들의 사랑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모국을 떠나 이 곳에 머물고 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제3자의 존재가 출현하게 된다.

이 소설은 국경도 인종도 성별도 신경 쓰지 않고 경제 활동이나 가족 관계에 대한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는 노마드적인 인간을 그리고 있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노마드를 사전적 의미에서 도출되는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며 창조적인 행위에 바탕을 둔 삶을 사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지칭하는 말로 확장한 바있다.

작가는 인간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소통 중심주의 등 모든 지배적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풍속도를 그려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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