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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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호란'의 참담한 패전 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9년의 세월을 보내고 귀국하였으나, 불과 두 달 만에 사망한 비운의 인물인 소현 세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인조실록은 소현 세자를 두고 '자질이 영민하고 총명하였으나 기국과 도량은 넓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세자가 청에 있는 동안 모든 행동을 일체 청나라 사람이 하는 대로만 따라서 하고, 가깝게 지내는 자는 모두 무부와 노비들이었고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폐지하고 오로지 화리(貨利)만을 일삼았다'고 은근히 폄하하고 있다.

심양에 머물면서 세자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청나라의 국력을 확인하고 향후 청 중심으로 전개될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인식하여 청 조정의 주요 인물들과 교류를 통해 조선의 부흥에 필요한 외교 역량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세자는 당시 조선 지배층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고루한 습성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감행한다. 세자빈 강씨의 주도로 조선의 인삼과 약재를 거래하는 사무역에 손을 댄 것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청에 끌려 온 조선인들을 환국시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세자는 당시 청에서 활약한 제주이트 교단의 선교사인 '아담 샬'과 교류를 통해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서양의 과학문명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마침내 청이 환국을 허락하자 세자는 아담 샬이 지은 과학 서적과 '지구의' 등을 가지고 귀국한다. 그런데 9년만에 귀국한 세자를 바라보는 인조의 시선은 놀라울 만큼 싸늘했고, 불현듯 세자는 죽음을 맞는다. 그의 나이 불과 34세 때였고, 그 죽음 후 세자빈 강씨를 비롯한 그의 식솔들은 모조리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세자의 돌연한 죽음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인조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고, 만일 세자가 보위를 물려 받았으면 조선의 역사에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후대의 평가도 있지만 덧 없는 역사의 가정이다.

이렇듯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소현 세자는 역사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세자의 마지막 2년을 집중하여 그리고 있는데, 심석경을 비롯한 실존 인물들뿐 아니라 흔, 막금, 만상 등 작가가 손끝에서 탄생한 인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야기는 탄탄하지만 이 소설이 서사 위주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비중을 두고 소설을 끌고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술술 잘 읽히는 류의 소설은 아니다. 대신에 인물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치밀한 심리묘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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