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의 문제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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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국내 작가의 본격추리 단편집이다. 지은이는 최근 2년 동안 이 단편집을 포함하여 다섯 편의 미스터리를 발표하였다. 가히 국내 미스터리계의 새로운 기대주라 할 만 하다. 먼저 나온 '어둠의 변호사'가 비교적 괜찮았기 때문에 이 단편집에 대해서도 약간은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이 작품에는 '진구'라는 이름의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진구'는 다니던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반 백수 처지이다. 여자친구 '해미'가 내리는 냉정한 평가처럼 남들이 보기에는 의지박약에 장래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놀라운 능력이 있었으니, 그것은 범죄의 냄새를 맡아 그것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천재적인 두뇌와 활동력, 그리고 열쇠 풀기와 같은 약간의 잔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명탐정으로서의 자질 뿐 아니라 주인공은 평범한 일반인의 정의감이나 도덕관념 따위는 아주 쉽게 초월해 버리는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일단 이 시리즈는 '진구'라는 반사회적인 인물이 흥미롭다. 추리 머신과 같은 명탐정 스타일은 정형적이지만, 범죄의 영역에까지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는 탐정은 그다지 흔하지 않다. 이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진구'라는 인물에 대한 뒷 이야기도 흥미로울 것 같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80년대 초반에 나온 대형 베스트셀러인 '김홍신'의 '장촌찬 시리즈'가 살짝 겹친다. '장촌찬'이 약간 돈키호테적인 정의감의 소유자인 반면에, '김진구'는 사회적 정의보다는 개인적인 욕망이 앞서는 요즘 표현으로 하면 쿨한 인간이다. 하지만, 둘 다 여자친구를 끔찍하게 위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또 하나, 이 단편집이 돋보이는 점은 트릭, 퍼즐, 알리바이, 반전 등 본격 미스터리의 지향점들이 고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본격 미스터리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거장들의 시도하였던 미스터리 기법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변주될 뿐인 것이다. 이 단편집에도 이러한 고전의 향기가 베어 있는 것 같다. 가령, 표제작인 '순서의 문제'는 일본 '사회파'의 그림자가 살짝 보이고, '대모산은 너무 멀다'는 '해리 케멜먼'의 '9마일은 너무 멀다'의 오마쥬 같은 작품이고, '뮤즈의 계시'에는 '엘러리 퀸'의 유명한 중편에 나오는 트릭이 연상된다.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나에게는 이 단편집에 대한 호감을 더해준다. 시리즈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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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것 - 인류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후베르트 필저 지음, 김인순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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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일구어 낸 크고 작은 것들,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변화들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직립보행'에서부터 '컴퓨터'까지 우리 인간의 삶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최초의 것 18가지를 연대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가 최초 중의 최초로 지목한 것은 '직립 보행'이다. 인간이 두 다리로 걷는 법을 배웠다는 것은 세계관을 바꾸는 법도 배운다는 의미로 지은이는 해석한다. 그래서, 직립 보행이야 말로 인류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 준 일대의 사건으로 평가한다. 최초의 도구는 짐승의 살코기를 자르기 위한 '돌'이었다. 먹잇감을 한 조각 잘라 내어 확보한 자는 스스로 먹잇감이 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에서부터 시작한 도구는 인류의 지식과 문화적 진보를 대변하였고, 결국 수백만년 후 자연과학의 탄생을 낳았다. 최초의 이주자는 약 6만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영역으로 밀고 들어간 호모 사피엔스였다. 그러므로, 인류는 모두 이주자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직립보행', '도구', '이주자'로 시작하여 이후 '불', '언어', '살인무기', '예술가', '옷', '음악', '가축', '수학자', '신전', '정착민', '관리', '푸른 눈', '맥주', '스포츠 대제전', '컴퓨터'로 이어진다. 이 중에는 이미 알고 있거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지은이에 따르면 푸른 눈의 소유자는 전부 약 6천년에서 1만년 전에 흑해 연안에서 살았던 단 한 명의 선조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맥주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지은이는 말한다. 인간은 선천적인 유희 충동에 힘입어 이런 저런 일들을 거듭해서 시험해 보았고, 그 아이디어가 과연 적합하고 장기적으로 실용 가치가 있는지는 나중에야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부분 주변 환경에 더욱 효율적으로 적응하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것이 바로 '진화의 원리'였다. 또한,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호기심과 열린 마음가짐이 필요했는데, 결국 그것이 인류의 진화를 장려했다고 결론을 짓는다.

 

고고학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지은이는 이 책에서 고고학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일반인들이 읽기에 수월한 편은 아니지만,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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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비자 법法 술術로 세상을 논하다 만화로 재미있게 읽는 고전 지혜 시리즈 1
조득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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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비자는 중국 춘추(春秋)시대 말인 기원전 3세기 초에 한나라에서 태어났다. 후에 진나라의 재상이 되는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에게 학문을 배웠고 스승의 성악설(性惡說), 노장(老莊)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받아들여 법가사상을 완성하였다.

 

한비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단어는 법(法)과 술(術)이다. 본디 '상앙'이 설파한 '법'과 '신불해'의 '술'을 종합하여 법가의 이론을 완성하고 이것을 국가 통치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의 정치사상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약육강식의 혼란스러운 전란시대에 대한 치열한 현실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군주는 '법'을 세워 권력을 확립하고 신하를 법으로써 다스려야 하는데, 본래 군주와 신하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인의'니 '인정'이니 하는 것으로는 다스릴 수 없다. 군주는 '술'로서 신하를 조정하고 신하가 일을 제대로 잘하는 지를 늘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술'은 신하 조정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은 먼저 엄격한 근무 평가의 기준을 세우고 신하에게 계획을 제출하게 하고 일의 결과가 앞서 제출한 계획과 일치하면 상을 주고 일치하지 않으면 벌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기업에서 실시하는 근무평가제도와 놀랍게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은 한비자의 사상을 집대성한 저서 '한비자'의 주요 내용을 만화로 엮은 것이다. 중3이 된 아들에게 읽히려고 산 책을 먼저 읽었다. 그러고 보니 책 이름만 들었지 나도 그 내용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는데 '화씨지벽'(華氏之璧)의 고사나 '모순'이란 단어의 유래 등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

 

첫 번째로 나오는 십과편(十過篇)은 본격적으로 법과 술을 논하기 보다는 군주가 자신을 망치고 나라를 잃게 되는 열 가지 잘못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구성하여 교훈을 주고 있는 글이고, 고분(孤憤篇), 세난(說難篇), 화씨(華氏篇), 비내(費內篇), 설림(設林篇), 내저설(內儲設上下篇), 외저설(外儲說篇), 난(難篇), 오두(吳두篇) 등으로 이어진다.

 

한비자가 군주가 써야하는 7가지 '술'이 인상적이다. "신하들의 말을 사실과 맞추어 본다, 법을 어긴 자는 반드시 벌을 주어 위엄을 보여 준다, 공로자에게 상을 주어 있는 힘을 다 발휘하게 한다, 신하들의 말에 주의하고 말한 것에 대해 책임지게 한다, 속임수를 쓴다, 모른 체 하며 상대방을 시험해 본다, 헛 말과 거짓으로 상대방을 시험해 본다" 등이다. 이 것을 보면 한비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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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에버트 - 어둠 속에서 빛을 보다
로저 에버트 지음, 윤철희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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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거리가 말라 버려 시들해지던 막판 분위기가 누군가가 꺼낸 영화 이야기로 인해 다시 불타 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의 술자리였다. 영화판 언저리에서 일하던 녀석이 처음 '로저 에버트'라는 모르는 인물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코올과 함께 다 날아가 버렸지만, 꼭 읽어보라고 권한 책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이런 연유로 그가 쓴 '위대한 영화'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이 책은 그가 쓴 영화 리뷰 200편을 묶은 것이다)

 

가령,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 대해 평하기를 "스타워즈는 어린애들 얘기처럼 멍청하고, 일요일 오후 동시상영 영화처럼 깊이가 없으며, 8월의 캔자스 벌판처럼 식상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는 걸작이다. 내 생각에 스타워즈에 담긴 철학을 분석하느라 열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에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이다. 포스가 그들과 함께 하기를" 라고 하였다. 일반인의 눈 높이에서 쉽게 쓰여진, 하지만 영화를 보는 그의 독특한 시각과 촌철살인의 유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지은이는 1967년부터 '시카고 선 타임스'에서 영화 평론을 시작하였고, 1975년에는 영화 저널리즘 부문으로는 최초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영화 리뷰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그의 책 '위대한 영화'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대개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로저 에버트, 어둠 속에서 빛을 보다'는 읽기가 다소 버거웠다. 만만치 않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내용 자체가 영화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로저 에버트'라는 비평가에게 포커싱된, 올해 일흔이 된 그의 회고록이기 때문이다. 

 

총 55개 소제목으로 구성된 회고록은 어린 시절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부터 시작되어 부모, 가족, 친구 등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인물은 물론 '로버트 미첨', '리 마빈', '존 웨인' 등 영화를 통해 알게된 영화계 인사들도 많이 등장한다. 책의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그의 놀라운 인지력, 기억력, 묘사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묘사하는 세부적인 기억의 자취들을 공감하면서 따라 가기가 벅차 끝까지 읽어 내기가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지은이의 방대한 사고의 넓이와 깊이를 내가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를 온통 차지하는 그의 얼굴이 웬지 불균형해 보인다. 그는 6년 전 갑상샘암 수술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먹지도 마시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되었고 얼굴 윤곽도 일부 잃어버렸다. 자신을 대해 그는 스스로 자각하기 오래 전부터 언어의 세계에서 살았다고 고백한다. 글을 배우자마자 책에 빠져 들었고, 글을 쓰려는 집요한 욕구뿐 아니라 출판하려는 고집스런 욕구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런 그가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언어는 잃어버리지 않았다. 일그러진 얼굴이지만 미소를 머금은 듯한 사진은 바로 이 점을 말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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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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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그리스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의 어느 카페에서 시작한다. 동 트기 직전이고, 카페 밖은 비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전형적인 책상물림형 인간인 '나'(화자)는 얼마만이라도 눈 앞에서 책들은 치워 버리자고 마음먹은 30대 사내이다. 나는 한 친구가 박해받는 그리스인들을 돕기 위해 '카프카스'를 떠나면서 남긴 따끔한 충고로 인해 농민, 노동자 계급과 어울려 보고자 결심한 상태이다. 그래서, 갈탄광산 채굴을 위해 크레타 섬으로 출발할 요량으로 배를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문득 누군가가 자기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보니 60대로 보이는 중늙은이 남자가 유리 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온 남자는 자기를 크레타 섬에 데려가 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꽤 괜찮은 광부이고, 아무도 생각지도 못할 수프를 만들 줄 아는 요리사이자, '산투르'라는 악기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소개한다. 나는 도발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말투와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그를 광산의 채굴 감독으로 고용한다. 그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갑작스럽게 인연을 맺게 된 나와 '조르바'는 크레타 섬에서 갈탄 채굴을 시작한다.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르바'의 애정행각을 목격하기도 하고, 좌충우돌 몇 가지 사건을 함께 겪으며 '조르바'라는 문제적 인물을 관찰하고 그의 면모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전달하고 있다.

 

'조르바'는 현대문학이 창조해 낸 가장 분방하고 원기 왕성한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생생하게 살아 날뛰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내이다. 처음 만나 같이 일하기로 한 고용주에게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요구하는 인물이다. '조르바'는 평생 자유를 추구하였기에 그가 말하는 인간의 의미는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자유는 어떤 논리나 사고가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는 그로 하여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문화가 세련될수록 남자들은 스스로 왜소함을 느낄지 모른다. '조르바'가 살아가는 방식은 어쩌면 '꼴리는 대로 산다'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상식적인 일반인들이 감당해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바다 만큼 깊고도 넓어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유'라는 불가해한 놈을 버리고, 대신에 일상의 평온함을 선택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르바'식 삶의 방식에 대한 로망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이것이 '조르바'라는 20세기 초 인물이 아직까지도 캐릭터로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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