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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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그리스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의 어느 카페에서 시작한다. 동 트기 직전이고, 카페 밖은 비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전형적인 책상물림형 인간인 '나'(화자)는 얼마만이라도 눈 앞에서 책들은 치워 버리자고 마음먹은 30대 사내이다. 나는 한 친구가 박해받는 그리스인들을 돕기 위해 '카프카스'를 떠나면서 남긴 따끔한 충고로 인해 농민, 노동자 계급과 어울려 보고자 결심한 상태이다. 그래서, 갈탄광산 채굴을 위해 크레타 섬으로 출발할 요량으로 배를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문득 누군가가 자기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보니 60대로 보이는 중늙은이 남자가 유리 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온 남자는 자기를 크레타 섬에 데려가 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꽤 괜찮은 광부이고, 아무도 생각지도 못할 수프를 만들 줄 아는 요리사이자, '산투르'라는 악기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소개한다. 나는 도발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말투와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그를 광산의 채굴 감독으로 고용한다. 그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갑작스럽게 인연을 맺게 된 나와 '조르바'는 크레타 섬에서 갈탄 채굴을 시작한다.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르바'의 애정행각을 목격하기도 하고, 좌충우돌 몇 가지 사건을 함께 겪으며 '조르바'라는 문제적 인물을 관찰하고 그의 면모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전달하고 있다.

 

'조르바'는 현대문학이 창조해 낸 가장 분방하고 원기 왕성한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생생하게 살아 날뛰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내이다. 처음 만나 같이 일하기로 한 고용주에게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요구하는 인물이다. '조르바'는 평생 자유를 추구하였기에 그가 말하는 인간의 의미는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자유는 어떤 논리나 사고가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는 그로 하여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문화가 세련될수록 남자들은 스스로 왜소함을 느낄지 모른다. '조르바'가 살아가는 방식은 어쩌면 '꼴리는 대로 산다'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상식적인 일반인들이 감당해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바다 만큼 깊고도 넓어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유'라는 불가해한 놈을 버리고, 대신에 일상의 평온함을 선택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르바'식 삶의 방식에 대한 로망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이것이 '조르바'라는 20세기 초 인물이 아직까지도 캐릭터로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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