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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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의 선풍적 인기이후 추리소설은 양적 질적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내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시기는 훗날 추리소설사에서
추리소설의 황금기(the golden age)라고 불릴 정도로 거장들의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도로시 L. 세이어즈'는 '아가사 크리스티'와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여류작가이다.
1923년 이 작품 '시체는 누구?'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피터 윔지' 경을 추리문학사에 등장 시켜,
이후 이 명탐정이 활약하는 9편의 장편소설과 21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아쉽게도 2차 대전 이후에는 기독교 연구에 전념하여 추리소설을 더 이상 창작하지 않았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다소 정형적인 인물을 반복 등장시키는 대신에 다양한 트릭의 변주를 통해
미스터리 본연의 궁금증 유발과 수수께기 풀이에 능했다고 한다면
'도로시 L 세이어즈'는 인간 내면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통해 추리소설의 문학적 격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페르소나 윔지 경은 덴버 공작 가의 둘째 아들로, 서적 애호가이자 범죄 수사가 취미이다.
그는 온화하고 교양이 풍부하면서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전통적 영국신사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다.
피터 윔지 경에 대한 묘사는 다소 불우하였던 지은이의 애정관계로 미루어 볼 때 그녀의 이상적인
남성상이 담겨 있으며, 후속 시리즈에서는 윔지 경의 로맨스도 등장하는데 이 부분 역시 지은이의
열망이 어느 정도 작품 속에 투영되었다고 한다.

윔지 경의 첫 등장을 알리는 이 작품은 '팀스'라는 건축가의 집 욕조에서 벌거벗은 채 달랑
황금 코안경만을 걸친 정체불명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같은 날 '루벤 레빈'이라는
성공한 유태인 사업가가 저녁에 집을 나선 후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도 발생한다.
'팀스'와 그의 하녀가 체포되고, 윔지 경은 충실한 집사 '번터'와 유능한 경찰 친구 '파커'와 함께
이 사건을 파 헤친다. 

이 작품은 기이한 범죄, 논리적 추리, 뜻밖의 결론이라는 고전 추리소설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이미 현란한 트릭과 기발한 반전에 맛이 들여진 독자들의 입 맛을 이 소박한 고전작품이 얼마나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정말 만족한다. 책 만듦새도 마음에 들지만 번역도 좋다.
현학적인 윔지 경의 대화를 되풀이하여 읽을 필요 없이 눈에 쏙 들어오게 번역되어 있다.
윔지 경의 후속 시리즈를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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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후세의 연구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쓴 작품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고전으로 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죽었다고 전한다. 그저 자기의 연극이 관객의 인기를 누리기를 바라며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요즘말로 하면 흥행을 염두에 두고 창작을 하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는 단 한 번도 자기 손으로 작품을 출판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작품들은 대개 그의 연극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른 극단에 대사를
팔아먹는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알려진 내용이 극히 적기로는 셰익스피어 개인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에섹스 백작' 등 당대의 유명인사가 바로 셰익스피어로 알려진
사람의 실체라는 가설도 신빙성있게 제기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이러한 미스터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 팩션 스릴러이다.
발표되지 못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존재한다는 대담한 가설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둘러싼 음모와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것이 기둥 줄거리이다.

이야기 구성은 주요 등장인물인 두 남자의 이야기와 '편지'를 주요 축으로 전개되는데,
먼저 '제이크 미쉬킨'는 완벽하고 멋진 아내를 곁에 두고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와 부정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저작권 전문 변호사이다. 그런 그가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의 소재가 담긴 17세기 편지를
얼떨결에 떠맡게 되면서 위험천만한 음모와 추적에 휘말리게 된다.

'앨버트 크로세티'는 고서점에서 일하고 있지만 장래 영화감독을 꿈꾸는 청년으로
주변 상황과 인물들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영화화할 만큼 영화를 향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는 화재로 인해 훼손된 책들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고서적의 표지 속에 숨겨진 의문의 편지를
발견하고 이 편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문헌 전문가인 벌스트로드 교수를 찾는다.

그리고, '브레이스거들'의 편지, 그 속에는 그는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셰익스피어를
위기에 빠뜨리려다가 오히려 도와주게 되고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을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보관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렇게 두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고, 중간 중간에는 삽입된 '편지'의 내용 속 이야기까지
진행되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명색이 팩션 스릴러인데 스릴러 장르가 요구하는
스릴, 서스펜스, 반전 등은 약한 편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라는 인물 자체가 미스터리인 만큼
큰 실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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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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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암스테르담은 현대인이 추구하는 거의 모든 자유가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곳이다.
마약으로 자신을 파괴할 자유도 있고, 불치의 질병으로 선고받은 시한부의 삶을 극도의 통증을
인내하는 투병대신 우아하게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안락사를 선택할 수도 있는 곳이다.
천국 같기도 지옥 같기도 한 이중적인 이미지의 도시 암스테르담.
지은이가 이 소설의 제목을 암스테르담이라고 지은 의도는 무엇일까?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몰리', '재치있는 레스토랑 비평가이자 사진작가였고 대범한 정원사였으며
외무장관의 정부였었던' 무엇보다도 사랑스런 '여자'였던 그녀가 마흔여섯에 세상을 하직했다.

그녀의 장례식 날.
한결같이 그녀를 사랑했던 4명의 남자(옛 연인, 현재의 정부와 남편)가 한자리에 모인다.

'클라이브' 저명한 작곡가로 성공한 몰리의 옛 연인, 어쩌면 천재일지도 모를 예술가
'버넌' 현재 권위 있는 일간지의 편집국장인 몰리의 옛 연인
'조지' 우중충하나 돈 많은 출판재벌로 몰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현재의 남편
'가머니' 현직 외무장관에 차기 수상을 노리는 보수 정치가, 몰리의 정부

이 소설은 몰리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몰리와 각기 다른 사랑의 기억을 간직하였지만, 오랜 친구사이 이고
공통적으로 '조지'와 '가머니'의 인간성과 도덕성에 대해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장례식 후 몰리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가머니'의 은밀한 성적 취향이 담긴 사진이 발견된다.
이런 인간이 수상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공공선에 반한다는 대의와 그의 정치적 입장을
혐오하는 개인적인 이유로 '가머니'를 실각시킬 수 있는 도구로 사진을 사용하고자 하는 버넌에
대하여 클라이브는 비록 인종차별에 보수 꼴통이라 하더라도 그의 정치적 성향과 성적 취향은
무관하기 때문에 신문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즈음 클라이브는 진행하고 있는 교향곡 작곡이 벽에 부딪히자 홀로 산행을 떠난다.
인적이 없는 산 속에서 한 남자에게 위협을 당하는 듯한 여자를 먼 곳에서 목격하지만,
바로 그 순간 떠오른 예술적 영감을 방해받지 않으려고 이를 외면해 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버넌은 범죄 앞에서 구조를 외면해 버린 클라이브의 도덕성을 강하게 비난한다.

자신의 잣대로만 상대의 도덕성을 단죄하려는 두 사람의 외곬수에 그 동안의 그들이 쌓아 온 우정은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암스테르담'에서 조우한 두 사람의 운명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가는 도덕의 상대성이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품 속에서
남자의 편집증, 위선, 성적인 질투심과 강박적인 성취욕구과 이에 수반되는 냉혹한 경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길지 않는 분량이지만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작가는 상징과 은유로 작중 인물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이를 한올 한올 솜씨 좋게
직조하고 재단하여 잘 짜여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완성하였다. 
스토리텔링 위주는 아니더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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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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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카 고헤이는 게이오대학 재학 시절부터 언더그란운드 연극활동에 깊이 관여하였고
197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극단 '쓰카 고헤이 사무소'를 만들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갔다.
그는 작품 속에서 차별과 피차별의 문제를 일관되게 다루었으며, 70~80년대 일본 연극계에
'쓰카붐'이란 말을 회자시켰고, '쓰카 이전'과 '쓰카 이후'로 년대가 구분될 정도로 일본 연극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희곡작가와 연출가로서 그는 배우의 연기와 무대 분위기에 맞추어 대사를 끝없이 수정하는
독특한 연출 방식을 구사하여 그의 연극은 매회 조금씩 대사가 달라져 '쓰카' 매니아 중에는
반복 관람을 통해 작품마다의 차이점을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의 작업방식은 작품을 먼저 희곡으로 창작하여 무대에 올리고 이후에 이를 소설로 다시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가마타 행진곡' 역시 1980년에 연극무대에 처음 올리고 이듬해 소설로 발표했다.
소설 가마타 행진곡은 1982년 86회 나오키상을 수상작이기도 하다.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1980년대 일본 시대극 영화의 메카였던 교토의 영화 촬영소를 배경으로
거만하고 제멋대로인 톱스타 '긴짱'이라는 인물과 그에게 갖은 구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일편단심 정성으로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엑스트라 '야스'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동과 사건들은 스케치 하듯 가볍고 경쾌한 필치로 묘사하는 내용이다.

이 소설과 같이 뚜렷한 이야기 구조없이 캐릭터 중심의 소설은
작품 속의 인물이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지와 등장 인물들의 어처구니 없는 소동 속에
감추어진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의 힘에 작품의 성패가 달려 있다.

폭력과 갖은 구박에도 불구하고 '긴짱'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사모하는 엑스트라 '야스'
근본 없고 천하고 막무가내에 변덕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을 가진 톱스타 '긴장'
'긴짱'의 아이를 배에 넣은 채 '야스'에게 떠 맡겨진 왕년의 잘 나갔던 주연배우 '고나쓰'

전반부는 '야스'의 시각에서, 후반부는 '고나쓰'의 시각에서 작가는 권력을 가진 자가 약자에게
어떻게 군림하는지를 보여 주고, 절대적 권위에 비판의식 없이 순응해가는 대중들을 시니컬하게
풍자하고 있다.
또한, 긴짱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결국 긴짱의 행동을 닮아 가는 야쓰의 모습에서
폭력적 권위에 눌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권위주의에 길들려 지고 마는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도 느껴진다.

작가는 한 신문사와 인터뷰에서
나오키상 심사위원 한명이 이 작품을 일러 천황제를 비유한 작품이라고 말 한바 있는데,
딱히 그것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지만 아주 근접한 해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마타 행진곡'에서 엑스트라 배우 '야스'의 아픔을 주목하는데,
사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 여자를 남에게 떠맡길 수 밖에 없는 남자의 비애였다고
했는데, 이 점이 무척 흥미롭게 생각되어 다시 한번 찬찬히 작품을 되짚어 보았다.

자신의 명예, 욕망, 카리스마 때문에 스타로 연기할 수 밖에 없는 '긴짱'의 비애는 과연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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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1 - 짧은 제국의 황혼, 이문열의 史記 이야기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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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느 면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점철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극한 투쟁 속에서 인간성의 본질과 삷과 죽음을 가르는 처세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초한지는 중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초나라의 '항우(項羽)'와 한나라의 '유방(劉邦)'
두 영웅이 천하를 두고 쟁패하는 투쟁기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초한지'는 '삼국지'나 '수호지'와는 달리 원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명나라 시대의 종산거사(終山居士)라는 이가 쓴 '서한연의'가 원전격이지만,
'서한연의'는 사실(史實)을 지나치게 뒤틀고 엇바꾸어 원전으로 삼을 수 없어
'사마천'의 사서 '사기'를 원전으로 하고 '자치통감'과 '한서(漢書)'를 보조 자료로 삼아
'초한지'를 완전히 새로 썼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초한지'에는 천하쟁패를 꿈꾸는 수많은 영웅 호걸들이 등장한다.
영웅의 삶을 꿈꾸며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간 수많은 풍운아들 중에서
'초한지'는 '유방'과 '항우'의 일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영웅호걸의 기질이 농후한 명문가의 2세와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천하를 건 두 영웅의 싸움은 결국 '유방'의 승리로 끝이 난다.
'한신' '장량' '소하' 등과 같은 인물이 유방의 승리와 함께한다.

'초한지'를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유방'과 '항우'는 중국 정치 문화사에서 대비되는 인물의 전형으로 그려져 왔기 때문에
중국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인 '유방'과 '항우'의 일생을 살펴 보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고, 두 영웅의 파란 만장하고 흥망 성쇠가 교차하는 천하 쟁패기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처세의 이치를 귀동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삼국지'나 '도쿠가와 이에야쓰' 등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10권으로 완간 예정이라는 이 책이 분명 새로운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작가는 글머리의 처음과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다.

 "5년이 넘는 중국사 長征이 드디어 끝났다.
 돌이켜 보면,
 이 長征은 내 문학의 어둡고 쓸쓸했던 한 계절을 어렵게 헤쳐 나온 궤적이기도 하다"

"한잎 가득 불평을 물고 怏怏不樂 지내는 사이에 한 시대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바라노니,
 이제 더는 시대의 아이들과 不和하고 싶지 않구나"


과연 이문열은 이문열이다.
이제부터 당신의 시대를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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