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는 끝났다
이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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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 TV에서 방영되는 한 오락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개그맨으로 대표되는 "웃음"과 폐가로 설정된 가상의 "공포"가 불협화음을 일으키면서도 작가에게 색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상이 아닌 무시무시한 공포의 현실 속에 내던져진 한 개그맨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한 한 편의 심리 스릴러를 독자들에게 내 놓았다.

"메구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이진수"는 인기절정의 개그맨이다. 한동안 무명의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가 개발한 개그와 춤은 소위 엄청난 "대박"을 쳐서 시청자의 눈과 마음을 단번에 빼앗아 버린다. 치솟는 인기 덕에 하루 하루 꽉 짜여진 많은 일정들을 소화해야 하지만, 현재 그는 자신의 성공에 고무되어 있고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 그에게 "D"라는 정체불명의 인물로부터 "너는 열흘 후에 죽는다, 반드시"라는 죽음을 예고하는 불길한 문자 메시지가 날마다 그의 휴대폰에 찍힌다. 그리고, 바로 그 죽음의 예고일 날, 그는 죽는다.

소설은 죽음 예고일 다음날, 경찰서 취조실에서 담당 형사와 "범인"의 대화, 여운을 남기는 짧은 대화로 시작하지만, 곧 문자 메시지를 처음 받는 10일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 "죽음 예고"를 받았을 때 그는 "이젠 별의별......"하며 피식 웃어 넘기지만, 아흐레 후, 여드레 후, 이레 후... 날마다 불길한 문자는 계속됨에 따라 그는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원한이 있다고 생각되는 헤어진 애인과 무명시절 자신을 돌보아 주었으나 이제는 사이가 틀어져 버린 선배 개그맨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의심이 풀리면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차례로 의혹의 눈을 돌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레이저 킬러"라는 연쇄 살인범이 바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고, 한 밤의 악몽을 넘어서 이제 한 낮에도 갑자기 현실과 환상이 뒤 섞이는 환각증상까지 경험하게 된다.

개그맨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여 영화배우로까지 도약을 꿈꾸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한 자신 만만한 젊은이가 어쩌면 사소하다고 할 수있는 문자 메시지 하나에 연연하여 서서히 무너져 가는 과정을 심리미스터리 장르로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후기에서 심리 추리소설에서 추리적인 장치는 마라톤으로 치면 "Leading Runner"로써 소설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범인이 누구인지 보다는 주인공 이진수가 체험하는 공포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듯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 하나로 쉽게 무너지는 취약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 공감하느냐에 따라 또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얼마나 높은 완성도로 형상화되었는지에 따라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가 달라질 듯하다. 나 개인적인 평가는 초중반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힘이 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다. 다만, D-1 Day의 마지막 사건은 "현실"이라면 리얼리티 면에서 공감이 가지 않고 "환상"으로 처리한 것이라면 다소 메끄럽지가 않다고 느껴졌다. 이 소설은 작가의 3번째 장편 추리소설이다. 그는 척박한 한국 추리소설계에서 근근하게나마 추리소설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든든한 존재이다. 작가의 후속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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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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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작가 "타쿠미 츠카사"는 직업 요리사 출신으로 자신의 요리사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작품으로  2008년 제6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고 화려하게 데뷰한 신예 작가이다. 일본 미스터리 신인 등용문은 "에도가와 란포상",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등이 있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은 1988년에 미스터리 소설 랭킹 소개로 처음 시작되었다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인 발굴을 위한 문학상으로 변모하였다. 심사위원들의 1차 심사를 통과한 작품들의 전반 부분을 인터넷에 공개하여 독자들의 투표수를 바탕으로 최종 수상작을 결정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선정되어 갈수록 이 상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내에도 2006년 대상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2007년 대상작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 소개된 바 있다.

이 소설에는 두 명의 요리사가 등장한다.
먼저, 레스토랑 "비스트로 고타"의 오너 셰프인 "시바야마 코타"이다. 그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수업을 거쳐 자신의 가게를 오픈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이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항상 싱싱한 제철 재료를 사용하여 재료의 맛을 살리면서도 야성적이고 강렬한 맛을 선보이는 솜씨 좋은 요리사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저명한 요리 평론가 "나카지마 히로미치"가 특별히 스카웃하여 자신의 최고급 레스토랑 "퀴진 드 듀"의 셰프를 맡긴 "이시구니 츠토무"이다. "신의 맛"이라는 레스토랑의 이름에 걸 맞게 누구든지 일단 그가 만든 요리를 맛보기만 하면 다른 음식은 모두 쓰레기같이 느낄 정도로 천재적인 요리 솜씨를 지니고 있지만, 요리 이외 일에는 일체의 관심이 없는 듯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코타"는 아내 "아야카"의 친구 "기노시타 미사"의 결혼식 피로연이 유명한 "퀴진 드 듀"에서 한다는 이야기에 솔깃하여 만삭의 아내와 함께 그 결혼식에 참석한다. 그런데, 신랑측 친척의 대거 불참으로 인해 피로연 좌석이 신랑의 부모 옆으로 바뀌어져 버려 우연히 신랑의 할아버지이자 "갓 니키미치"로 알려진 요리 평론계의 거물과 합석하게 된다. 그 날 "코타"는 "니키미치"의 섬세한 미각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요리의 새로운 경지를 느낀다.

그런데, 이 결혼식 이후부터 "기노시타 운수"를 경영하는 신랑의 아버지가 돌연 실종되고 "기노시타 운수"의 사업부장이 살해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다. 여기에서 "아오야마"와 "혼다"라는 유쾌한 형사 콤비가 등장한다. "아오야마"는 이 일련의 사건을 니키미치 히로미치의 재산을 둘러 가족들간의 분쟁으로 몰아가는 수사 방향에 대하여 의문을 느끼고 상사인 "혼다"를 설득하여 자기 나름의 수사를 독자적으로 진행해 나간다.

이 소설은 "코타" 주변을 통해 묘사되는 "요리"의 세계와 "아오야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범죄 수사의 세계가 병렬적으로 진행되지만 종국에는 동일한 결말을 향해 가파르게 달려간다. 본격 추리물의 요소가 다소 약한 편이고, "요코하마 히데오"와 비교하면 형사물로서의 밀도도 약한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을 상쇄할 만큼 작가가 현란하게 묘사하는 요리 또는 미식의 세계는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신인작가의 훌륭한 데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족 : 그런데, 마지막 마무리에서 독자에게 던지는 충격은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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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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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각기 다른 다섯 작가가 1873년부터 1932년에 발표한 5편의 중편 추리소설을 묶었다. 수록작품을 발표 순으로 보면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데드 얼라이브"(1873년)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의 "안개 속에서"(1901년)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버클 핸드백"(1914년)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의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1917년) "프랭크 보스퍼"의 "3층 살인사건"(1932년) 등이다. 이들 중 "윌리엄 윌키 콜린스"와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은 각각 "월장석" 과 "독화살의 집"으로 알고 있었으나 나머지 3명의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에 발표한 작품이라 현대의 스피디한 감각과는 약간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추리소설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수수께끼 풀이, 스릴과 서스펜스는 물론 풍자와 유머, 인간의 내면에 대한 통찰 등 작품 하나하나가 전통 추리소설의 고전다운 품격을 지니고 있다.

에드가 앨렌 포우가 1841년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발표하고 "마리 로제 사건의 수수께끼", "도둑맞은 편지" 후속작을 통해 현대 추리소설의 전범을 제시한 이후 많은 작가들이 추리소설에 뛰어들었으나,  포우의 작품과 견줄 정도의 걸작은 탄생하지 않았다. "콜린스"도 포우의 영향을 받아 추리소설의 꿈을 키웠고, 마침내 1860년 최초의 장편 추리소설 "흰 옷을 입은 여인"을 발표하고, 1868년에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월장석"을 발표하여 일부 비평가 사이에서는 포우의 후계자로 "코난 도일"이 아닌 "콜린스"를 꼽는 견해도 적지 않다고 한다. "데드 얼라이브"는 영어권 최초의 법정 스릴러물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콜린스의 치밀한 구성력과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안개 속에서"는 당대의 유명 저널리스트로도 맹활약을 펼쳤던 "데이비스"의 지적 매력이 돋보이고 막판의 반전이 훌륭한 작품으로 "엘러리 퀸"이 선정한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125편" 리스트에 포함된 작품이기도하다.

"버클 핸드백"는 "힐다 애덤스"시리즈 중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간호사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탐정이 등장하고 작가의 여성적인 유머와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록 한 작품 밖에 접해보지 않았지만 웬지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시리즈와 같은 느낌이 난다. 후속 시리즈가 소개되면 꼭 읽어야 겠다.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은 당대의 명탐정 "아노"와 그의 조수 역할을 하는 "리카르도"가 활약하는 정통 탐정소설이다.

"3층 살인사건"은 영국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프랭크 보스퍼"가 유일하게 남긴 추리소설로 일반적인 중편보다는 분량이 길어 장편으로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먼저 연극으로 먼저 공연되고 몇 년후에 소설로도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한정된 공간에서 밀도있게 진행되는 한 편의 추리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1부를 다 읽은 순간 웬지 작품의 Plot이 예상되었는데 과연 그대로여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이라면 이 작품집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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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타임
사토 다카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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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사토 다카코"의 1989년 데뷰작으로 "슌", "가나", "고이치" 3명의 10대 주인공들이 만들어 내는 예쁜 이야기 4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길지 않는 분량이기도 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청량하고 담백하여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정말 술술 읽힌다는 표현 그대로 단순에 끝을 보게 한다. 휴가 때 가져가서 부담없이 읽기에 적당한 소설이다.

첫 번째 단편 "서머타임"은 11세 소년 "슌"의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 해 여름의 추억이다.
신도시 대단지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가나"라는 한 살 위 누나랑 같이 살고 있는 "슌"은 평범한 소년이다. 어느 비오는 날 수영장에서 그는 "고이치"라는 소년을 우연히 알게 되어 친해진다. "고이치"는 자동차 사고로 아빠와 자신의 왼쪽 팔을 잃고 엄마랑 둘이서 살고 있는 13세 소년이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재즈 피아니스트인 엄마의 재능을 이어받아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고이치"는 "슌"에게 "서머타임"이라는 재즈곡을 연주해 주고 "슌"은 그 멜로디에 깊이 끌린다. 어느새 "가나"까지 "고이치"와 친해지게 된다. "가나"도 "고이치"의 독특한 매력에 빠지게 되고 "고이치"도 왈가닥스럽기도 하지만 숨이 막히게 예쁜 "가나"를 좋아한다. "가나"는 한 손으로 타다가 넘어져 다친 이후로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 없는 "고이치"에게 맹렬히 자전거 연습을 시키지만 이 때문에 둘은 싸우게 되고, 곧 "고이치"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서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훌쩍 흘러 이제 19세 대학생이 된 "고이치"가 "슌"과 "가나" 앞에 다시 나타난다.

"5월의 꽃길"은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가나"가 처음으로 피아노를 만나게 된 무렵의 이야기이다.
"가나"가 분홍빛 철쭉으로 곱게 만든 꽃 길을 누나의 뒷 모습을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 온 "슌"의 자전거가 짓밟아 버렸다. 아름답고 예쁜 것에 눈을 뜬 누나와 이를 알 수 없는 남동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이 예쁘게 묘사되어 있다.

"9월의 비"는 17세의 소년으로 성장한 "고이치"가 나온다.
겉으로는 엄마의 재혼을 반대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엄마를 빼앗기는 것이 정말 싫은 것이 고이치의 본 마음이다. 그런 그의 앞에 그 동안 등장했던 사라졌던 몇 명의 새아빠 후보자들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후보자가 나타났다. 복잡한 심경으로 갈등하지만, 그 "다네다"아저씨에게 자전거 뒤를 잡아 달라는 부탁을 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화이트 피아노"는 14살이 된 "가나"의 겨울 이야기이다.
친구 아버지의 피아노 전시장에서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센다"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쩌면 짧은 편지에 적힌 '다시 만나자'는 막연한 약속이 고이치의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 닿는다.

4편의 단편이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각 단편의 이야기들이 퍼즐처럼 연결되어 있다. 각 단편의 화자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사건에 주인공 각자의 심리가 투영되어 있어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가 있다. 4편의 이야기가 각각 여름 봄 가을 겨울 사계가 배경이지만 계절이 한결같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고, "피아노"와 "자전거"가 각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여, 주인공들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름다운 시절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묘사한 소설이다.
"상투적이야~"하면서도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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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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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생인 "오쿠다 히데오"는 마흔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로 소설가로 데뷰하였다. 대개 데뷰작은 작가가 가장 쓰고 싶었던 이야기일 경우가 많아, 대부분 작가는 자신의 데뷰작에 대해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잡지 편집자, 기획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오쿠다 히데오"에게도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나 보다.

작가의 이력과 오버랩되어 반쯤은 자전적 소설로 읽히는 "스무 살, 도쿄"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하면서도 보물과 같은 LP를 백여 장이나 챙겨 떠날 정도로 팝 음악에 심취한 세대이다. 그는 존 레넌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문득 생각이 났다. 오늘 존 레넌이 죽었구나......, 한참을 그대로 서있었다. 코를 한 번 훌쩍 들이켰다. 1980년 12월9일을 나는 아마 잊지 못하리라. '이메진'을 소리 내어 불렀다. 영어가사는 고등학교 때 외웠다. 하지만, 뭔가 같잖은 짓인 것 같아 중간에 관뒀다."

그룹 "비틀즈"는 1962년 정식으로 데뷔한 이후 "폴 메카트니"가 공식적인 비틀즈 탈퇴를 선언한 1970년까지 8년 가량 13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했다. 그들은 공식적인 활동기간 보다 훨씬 오랫동안 같이 지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존 레넌"은 두 살 어린 "폴 매카트니"와 연주했고 바로 1년 뒤에는 "조지 해리슨"이 밴드에 합류했다. 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비틀스는 음악가로서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성공, 돈, 명성, 여자까지 모든 것을 얻었다. 하지만, 이와 반비례하여, 그들은 점차 지쳐 갔다. 그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닌,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팬들과, 똑같은 히트곡들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힘겨워 하던 그들은 스스로 휴식기를 가졌고, 그 휴식기 후 녹음했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서 그들은 각자의 음악적 관심사가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고,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으로 팀내 균열은 더욱 심해졌다.

이와 함께, 존 레넌은 1966년 11월 영국의 한 갤러리에서 "오노 요코"라는 일본 출신의 행위예술가와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요코와 만날 당시 존 레넌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한다. 존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개척하는 예술가적 기질이 강했는데, 그 즈음 그는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졌음을 깨닫고 이를 매우 괴로워하여 새로운 예술의 길로 뛰어들고픈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존은 요코의 예술관에 매혹되어 부인과 이혼하고 1969년 여덟 살 연상의 요코와 결혼하여 그녀와 같이 전위예술가의 길로 나선다. 하지만, 그들의 결합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차가웠다. 비틀즈의 숭배자들은 팬들을 배신하고 해괴한 짓을 일삼는 요코를 선택한 존에 대한 분노를 몽땅 요코에게 투영하였고, 언론들도 비틀즈 해체의 주요원인을 모두 요코의 탓으로 돌렸다. 이후 요코는 "존 레넌을 유혹한 요부, 비틀즈를 망친 마녀, 존 레넌을 출세의 도구로 이용한 악녀"라는 평판이 따라 다녔다.

하지만, 존 레넌과 오노 요코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 소설은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는 듯하다. 창공에서 유유히 빛나는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어쩌면 나의 손이 닿을지도 모르는 가까운 곳에서 숨 쉬고있다는 상상이 이 소설의 주요한 창작동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존은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매년 여름을 일본에서 보내었다고 한다. "오쿠다 히데오"는 잘 알려지지 않는 일본에서의 존의 생활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 내었다.

이제 막 중년으로 접어들려는 한 남자에게 닥친 삶의 근원적인 슬픔과 고뇌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아이와 아내의 힘으로 함께 극복해가는 과정을 슈퍼스타가 "변비"에 걸렸다는 재미있는 설정으로 끌어가고 있고 "오봉" 등 일본의 전통적인 풍습과 일본식 생사관, 사고방식을 소설의 근저에 은근하게 깔아 놓고 있다.

후기에서 작가는 말한다.
"올해는 그의 탄생 60주년이다. 살아 있으면 그도 환갑이라 생각하니 다소 감개가 무량하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가 죽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애정이 듬뿍 담겨있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존 레논에 바치는 오쿠다 히데요식 헌정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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