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사전 -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인류 지식의 최신 보고서
카트린 파지크.알렉스 숄츠 지음, 태경섭 옮김 / 살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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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명확한 원인과 결과가 밝혀져 있는 것은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는 있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결과의 표면적인 부분을 묘사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설명조차도 어려워진다.
이는 빛마저 흡수되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블랙홀을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블랙홀에 흡수되지 않지만 그 영향을 받을 정도로 가까이 지나가는 빛이 블랙홀 근처에서 휘어지는 현상으로 블랙홀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처럼, 어쩌면 무지도 지식을 통해 규명할 수 있지 않을까?

<무지의 사전> (2008, 카트린 파지크, 알렉스 숄츠 지음, 살림 펴냄)은 아이러니한 제목과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인류 지식의 최신 보고서'라는 부제 하에 42가지의 무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크게 감각의 무지, 사물의 무지, 인간의 무지, 동물의 무지, 우주의 무지, 현상의 무지라는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서, 여러 가지의 하위 개념들을 포함한다.
이 무지들에는 우리가 익히 그 현상을 알고 있으나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고, 아예 처음 듣는 것들도 많았다. 알고 있던 것에 대한 설명을 읽을 때에는 지금껏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그 원리나 탄생 배경 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예를 들면 생명체나 물, 근시처럼 말이다. 이들은 현상보다는 그 근거와 원인에 대해 깊이 파고든 여러 가정들을 소개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다른 깊이로 사물을 보고 무지를 느끼기를 고무한다. 아예 처음 듣는 것은 후반부의 동물, 우주, 현상 쪽에 많았다.

저자들은 <무지의 사전>의 두 가지 오류로,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단순화하는 데에서 오는 오류, 가까운 장래나 먼 미래에 틀린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전제와 주장을 내포하고 있는 오류를 꼽았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 책에 실린 42가지 중에서 상당수는 아마 지식의 사전으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근본적인 지식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는 충분히 현상을 잘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물의 구조와 성질을 잘 알지 못해도 물을 얼리고 끓이는 등 잘 사용한다. 근시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몰라도 이를 상쇄하기 위하여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라식 등을 이용하고 있다.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기존의 지식을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무지의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은 새로운 충격이었고,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통해 무지의 바다는 넓고도 넓음을 깨닫게 되었다. 기존의 통념을 깨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드러나서 이 무지들이 해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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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글에 안 나오는 무지의 사전, 구글에 띄우다???
    from 당신은 '그 무엇'을 찾았나요? - 사용인 2008-10-28 17:14 
    도서관에서 무지의 사전이라는 책을 봤다. 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인류 지식의 최신 보고서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나온단다. 순간 유혹이 들었다. 책 내용을 스캔을 떠서 홈페이지 만든다음에 다 올려버리면... 그러면... 구글에 나오는 인류 지식 최신보고서로 고쳐야 되나? 그냥 생각해 봤다. ㅋㅋ 아니면, 한글로 다음이나 네이버에만 등록해 놓고 구글에 안 뜨게 하면, 구글에도 안 나오는 하지만 다음, 네이버에..
 
 
 
부동산 계급사회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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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100명이 사는 나라라면 27명이 사유지 기준으로 국토의 99%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소유하고 남은 1%의 땅에 33명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새통을 이루며 살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나머지 40명은 서 있을 자리도 없어 바다에 빠진 상황이다 - 55쪽

위의 세 줄의 설명만으로 지금껏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우리나라의 부동산 소유 실태가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저자인 손낙구 님은 19년간 노동운동을 하고 5년간은 민주노총의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4년간 심상정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부동산 계급사회> (2008, 손낙구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는 정부와 민간 기관의 통계들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설명한 것으로, 그간 노동운동과 진보 운동으로 다져진 저자의 시각과 함께 객관적이고 복합적으로 부동산을 보는 눈을 틔워주고 있다.

책은 부동산, 무엇이 왜 문제인가, 부동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위험하다, 부동산이 삶을 다르게 만든다, 부동산 격차가 빈곤문제의 주범이다, 대한민국 부동산 100대 부자, 대안을 찾아서의 여섯 부분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개인은 내 집 장만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느라 큰 틀을 보기가 어렵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언론에서 접하는 통계는 정부나 기관이 부동산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분석치이므로 그들만의 논리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는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국회도서관을 이용하고 정부 각 부처에 자료를 요구함으로써 복합적이고 객관적인 여러 통계를 확보했다. 통계치 확보는 시작일 뿐, 그 통계를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참 복잡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저자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통계치를 통해 겉으로 드러난 부동산 소유 현황 뒤에 있는 계급과 정치와 경제와 재벌의 권력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대안으로 책 뒷표지에 실린 주택 계급에 따라 맞춤형 주택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1가구 다주택인 1계급에 대해서는 택지 국유화와 임대 소득세, 보유세 강화로, 1가구 1주택인 2계급에 대해서는 보호와 주거 상향 지원으로, 집이 없는 이들은 보증금 수준에 따라 내 집 꿈 정책 또는 셋방 스트레스 푸는 정책으로, 주거 극빈층에게는 지하방을 탈출하는 '사다리' 정책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 자세한 배경과 설명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부동산 평등화의 여지가 남아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단독 주택에서 주인집과 셋집이 함께 사는 것이 흔했다. 좀 못된 주인집 아이들은 그 위치를 확실하게 사용해서 셋집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기도 했단다. 아파트가 많이 보급되고 절대적인 집의 수가 늘어나면서 그런 '한 지붕 세 가족'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택 보급율이 100%를 넘어선지 수 년이 지났음에도 세를 사는 가구는 전체의 40%가 넘고, 여전히 아파트가 수도 없이 지어지며 그린벨트마저 해제하여 주택을 보급하겠다고 말하는 우리나라. 근본적인 대책이 없이 널뛰는 집값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대조가 극명하게 드러나서 참 안타까웠다.
더구나 부동산 재벌이자 대형 건설사 CEO였던 대통령의 취임과 '강부자' 내각에 의해,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이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증액되고 집값을 세대 합산에서 세대원 개인으로의 분할이 추진 중이라고 하니 종합부동산세는 사실상 폐지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지금 자기 소유의 조그만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절대 안도해서는 안 된다. 상대적 빈곤도는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며, 내집 장만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달린 계급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로의 부동산 계급사회는 무한 엔진을 달고 나락으로 진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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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심리학 - 숨겨진 욕망을 자극하는 치명적인 유혹
크레이그 네켄 지음, 오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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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독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는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인터넷 중독은 이제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흔한 정도이고, TV 중독, 홈쇼핑 중독, 니코틴 중독, 알콜 중독, 마약 중독까지, 도처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중독의 심리학> (2008, 크레이그 네켄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숨겨진 욕망을 자극하는 치명적인 유혹'이라는 부제를 달고서 중독의 정의에서부터 중독에 빠져들어가는 단계, 중독에서의 회복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인 크레이그 네켄은 사회복지석사학위, 임상사회복지사, 결혼 및 가족치료사 자격을 소지한 중독치료 분야의 전문가로서, 중독과 회복 분야에서 20여 년간 일해온 경력이 있다고 한다. 1988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1996년에 발행된 2판이 이제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저자는 1부 치명적인 유혹, 중독에서 중독을 '인력으로 어쩔 수 없이 변화되는 행복감을 통제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한다. '행복에 대한 갈망을 통제하고 충족시키려는 노력'인 중독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과 관계를 맺으면서 온전한 행복, 평화를 무작정 추구한다는 특성'이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 음식, 도박, 절도, 섹스, 쇼핑, 일 등이 흔히 중독의 대상이 된다. 기분을 긍정적이고 즐겁게 변화시켜 주는 대상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깊이 빠져들수록 행복보다는 고통과 외로움과 불행의 원천이 된다. 이런 중독의 진행을 2부 중독의 3단계에서 설명한다.
중독의 1단계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가족이나 친구, 보다 높은 영적인 존재, 자아, 공동체 들로부터 지원, 보살핌, 안내, 사랑, 정서적, 영적인 성장을 구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신 물질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독의 시작이다. 중독을 유발하는 대상에서 도취를 처음 느낀 이후로, 그 도취를 다시 맛보기 위해 그 행동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중독자'라는 중독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2단계는 행동 통제력을 잃으면서 생활 방식이 변하는 단계이다. 내면에서는 자아와 중독 자아가 계속 투쟁을 벌이지만 중독 자아가 이기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인간 관계도 흔들리게 된다. 마지막 3단계는 실행과 중독 논리, 대응, 상호 작용이 무너지면서 삶이 무너진다. 이 때에는 자기 자신을 해칠 정도까지 중독에 매몰되어 스스로는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외부에서 이들 중독자들에게 체계적인 도움을 준다면 이들 내부의 자아가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이 과정을 3부 회복이 시작되다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회복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기 내면에 진실하기는 정말 쉽지 않지만 다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사람에게는 유대와 힘, 쾌락, 의미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중독자들은 일반적으로 힘과 쾌락의 욕구에 빠져서 의미를 포기하고 유대를 잃는다. 이 욕구들 각각을 살펴봄으로써 중독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회복의 전략을 짤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가정환경이 중독자를 만든다라는 챕터에서 유전적인 요인으로서의 가족, 환경으로서의 가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대물림되는 불행은 참으로 섬뜩하다. 그런 중독에 쉽게 빠지는 가정을 알아봄으로써 우리는 그렇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은 의지력이 박약하거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중독자를 대하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재활에 대한 포기는 중독자들의 재생 의지를 꺾고 더 깊은 외로움에 빠지게 만듦으로써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한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보다 초기에 개입하여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 것은, 중독자 자신 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사례보다는 이론 중심이고, 중독이라는 소용돌이로 더 깊이 들어가는 과정은 따라 들어가기 힘들었지만, 냉철한 중독의 심리학 덕분에 중독의 진행 과정과 더불어 중독이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는 것, 고통이 깊어지기 전에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욕망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삶, 멋지지 않은가~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 인도 불교학자 나가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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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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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를 처음 만난 것은 책이 아니라 영화였다. <철도원>에서 만난 그 조용함과 단정함. 그것은 아사다 지로의 책에서 항상 만날 수 있는 조금은 낮은 모습이라고 각인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끝없이 통통 튀는 가벼운 이야기들보다는, 그야말로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어오고 오래 남기 때문에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2008, 아사다 지로 지음, 북하우스 펴냄)은 내 마음에 들어오기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주 검은 배경에 희푸른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는지 곧바로 올라오던 연기는 주변으로 흩어지면서 아련하게 사라져 간다. 마치 신사의 신전에 피워놓은 향불처럼,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피워놓은 벌레잡이 화톳불처럼, 사랑하는 이의 시신이 화장되는 화장터의 연기처럼, 마중불의 연기처럼, 죽은 이들을 초대하는 길맞이 역할을 한다. 아사다 지로는 이처럼 향을 피워 놓고 죽은 자를 불러들여 산 자와 조우하게 만들어서 일곱 개의 기담을 엮어낸다.
첫번째 이야기와 일곱번째 이야기는 신사에 모인 아이들이 이모님에게서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설정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래된 신사에서, 마지막으로 영험한 힘을 가졌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이모님에게는 삶과 죽음, 원혼과 짐승의 화신 등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모님이 열 살 즈음해서 일어났던 신사에서의 정사情死는 그 목숨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 때문에 오랜 기억을 남겼고(인연의 붉은 끈), 여우신에 씌인 가나 아가씨의 이야기에서는 구신狗神과 여우의 대결이라는 지극히 일본스러운 신도神道 덕분에 아주 아련하면서 여우에게 먹혀버린 어린 아가씨의 삶이 참 슬프게 느껴졌다(여우님).
또한 일곱 편 중에서 세 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남방에 파견되어 굶고 다쳐 거의 죽어가는 상태에서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 영혼을 바꾸었다는 할아버지 (벌레잡이 화톳불), 지구보다 무거운 한 생명이라도 구하고자 군의관으로 자원하여 뉴기니로 송출되다가, 어뢰정에 맞아 배가 가라앉고 바다에서 숨진 군의관 (옛날 남자), 임신한 아내를 두고 징집되어 레이테 섬에서 몰살당한 야노 일등병 (원별리)은, 신념이나 조국이 아니라 일본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고 있다. 사실 전쟁의 시작과 전개를 계획한 이들이 아니라 군의관과 이등병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마는, 자신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낸 것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단지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배에 어뢰정을 쏜, 총탄이 떨어져서 칼로 돌격할 때 앞에서 전차로 밀고 들어오는 적들만이 있을 뿐이다. 당시의 어렵고 비관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그 아래에 군국주의가 들어있을까 하는 걱정은 요즘 우경화, 제국주의화되고 있는 일본을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넘겨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사다 지로의 이야기들 중에서 '벌레잡이 화톳불'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슬프고 무섭고 아련하게 읽었다. 거액의 부도를 내고 야반도주하여 보일러공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쓰야마 가족. 빚을 진 이들에게 미안하고 그럼에도 잘 참아주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그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기에는 결코 젊은 나이일 리 없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나이도 아닌' 마흔 살이라는 나이. 낼모레면 마흔이 될 내 입장과 너무도 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도플 갱어에게 가족을 잃었으나, 잘 부탁한다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그 슬픈 모습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컴컴한 여름 밤, 모깃불의 싸한 향기 아래에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고 나만 남아서 그 조용한 이야기를 듣는 소슬함이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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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건강한 밥상 만들기 행복 충전소 1
아베 아야코 지음, 김장호 옮김 / 비씨스쿨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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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식동원(藥食同原)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말로, 특정한 효과를 가진 약용 식물 외에도 다양한 식재료들이 약처럼 우리 몸에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밥이 보약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약이 되는 건강한 밥상 만들기> (2008, 아베 아야코 지음, 비씨스쿨 펴냄)에서 약식동원에 대해 조목조목 알아볼 수 있다. 약대를 졸업하고 식품, 요리, 가사 등 소비 생활 전반에 걸친 전문가라는 저자는, 약이 되는 야채, 약이 되는 과일, 약이 되는 먹을거리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재료와 약효를 이야기한다. 주로 맛과 영양, 색깔로 고르는 식재료들이 새로운 기능을 가진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은 참 새롭다. 

책을 쓰게 된 이유라거나 당부 사항 등의 서문은 일절 없이 책은 1부 약이 되는 야채의 '감자'로부터 시작된다. 제목 옆에는 그 재료의 별명이나 특징을 괄호 안에 작게 써서 병기하였다. 그 아래에는 좋은 상태의 재료 사진을 실어서 구매할 때 확인할 점들을 잘 보여 준다. 그 재료가 어느 질병이나 증상에 좋은지 적었고 제철이 언제인지, 좋은 것을 고르는 방법은 무엇인지, 약효를 나타내기 좋은 조리법은 무엇인지, 보존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진 옆에 두어 강조했다.
그 아래에는 그 재료의 특징과 간략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영양학적 요소를 설명한다. 그 다음에는 위에서 설명한 질병들을 완화하기 위한 조리법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는 생활의 지혜라고 볼 수 있는 팁들을 이야기한다.  

요즘 한창 제철인 포도 편을 보자. 유럽에서 '밭의 우유'라고 불리는 포도는 체력회복, 빈혈, 식욕 증진 등에 좋고, 냉동 보관을 추천한다. 포도는 동양에 12세기 무렵 전해졌으며, 포도당과 과당이 주성분인데 포도당은 섭취하자마자 에너지원으로 쓰이기 때문에 피로회복, 영양보급 등의 효과가 있다. 또 구연산, 주석산, 비타민 A, B, C, 철분, 칼륨, 칼슘이 있단다. 체력회복에는 포도주스, 빈혈에는 건포도, 식욕증진에는 와인, 몸조리에는 포도드링크가 좋다고 하니 몸 상태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겠다. 

야채는 항상 반찬의 일부로만 먹는 것, 과일은 항상 생으로 먹는 것, 양념은 맛을 내거나 장식을 하기 위한 보조로만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내게 이처럼 다양한 먹을거리의 활용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약식동원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은 '부엌에 두는 한 권의 책'이라는 책의 기획에 걸맞는 듯하다.
그런데 오탈자가 너무 많아서 책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앞으로 음식으로 먹거나 즙을 내어 습포를 하거나 구워서 붙이거나 설거지에 쓰는 등 다양한 활용법을 통해 먹을거리의 파워유저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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