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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평점 :
중학교까지는 집에서 가까운 터라 걸어다녔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로 배정받고부터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나와도 타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정말 앞에서 표를 내고 뒤에서 문 양쪽을 잡고 매달리는 짓도 많이 했다. 버스가 커브를 돌 때는 사람들의 체중이 실려서 정말 위험하기도 했지만, 그렇게라도 타고 가는 것이 다행스러웠던 것이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하기 때문이다. 차를 한대 놓치고 나면 다음 차는 왜 그리 늦게 오는지… 고등학교 3년동안 버스에 시달린 이후에는 대학교 앞에서 하숙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차를 사는 바람에 버스를 멀리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항상 나는 버스의 승객이었을 뿐이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는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20년간 일해온 지은이가 버스 기사의 일상과 노동 환경, 사용자와의 갈등에 대해 풀어쓴 글들의 모음이다. 현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신문 기사에서는 다루지 않는 귀한 경험들이 속속들이 녹아 있다.
표지 그림에는 꼬불꼬불 좁은 길을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맞은편 기사와 서로 웃으며 손인사를 건네는 지은이의 모습이 있고, 룸미러로는 자고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이 보이고, 여지없이 돈통을 감시하는 카메라가 구석에 있다.
책 내용에서는 시내버스에 대해,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들에 대해, 권리를 찾기 위해 벌이는 사업주와의 투쟁에 대해, 지은이 자신의 생애에 대해 할 말이 참으로 많아 보인다.
어떤 직업이든 힘들고 어렵지 않은 것이 있으랴마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한다. 버스를 운행하면서 만나는 또라이 승객 때문일 수도 있고, 새로 들어와서도 인사 하나 건네지 않고 기사들을 무시하는 총무팀 과장 때문일 수도 있고, 법과 무관하게 기사에게 사고에 대한 부담을 지우는 사업주 때문일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버스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 책으로 인해 시내버스 사업주들이 확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회사가 영세할수록 사업주의 권한이 커지고 고용인들의 힘은 작아지며 서로 분열되는 것을 보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왜 그렇게 자기 밥그릇을 못 챙길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사회에서도 폐지된 연좌제처럼 이 회사에서 짤리면 다른 회사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옳은 행동이라도 할 수 없게 되는 동료들의 비겁함과 힘듦에 대해서도 지은이가 시종일관 동료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이해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은이의 말처럼 버스 현장보다 더 넓은 곳에서 올바른 언론 운동, 문화 운동을 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더 떳떳한 세상을 만드는 데에 많은 성과를 거두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