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고백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이 태어나면서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부모도 선택할 수 없으며 자신의 성(性)도 물론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게 대개의 사람들이다. 따라서 성(性)을, 변하지 않는 존재적 본질로서 깨닫는 것에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 정체성에 대해 극심한 혼란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그 혼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고 표현해야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통받는다.  그 중, 한 남자의 고백이다. 가면속에서나 고백해야하는,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구이도 레니 <성 세바스티아누스>

이 세바스티아누스 순교의 그림은 오히려 이교적인 향기를 짙게 풍기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안티노우스와도 견줄 만한 이 육체에는 다른 성자들에게서 보이는 포교의 쓰디쓴 고통이나 노후의 흔적은 전혀 없고, 오로지 청춘과 광채와 아름다움과 즐거움만이 있었기 때문이다....불룩 튀어나온 가슴에도, 팽팽한 복부에도, 약간 비틀린 허리 주위에도 감돌고 있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어딘가 음악과도 같은 나른한 일락(逸樂)의 술렁거림이었다. (47쪽)

'나'는 분뇨 수거인과 오를레앙의 소녀와 병사의 땀냄새로부터 "야만스러운 영혼"을 동경하고 덴카쓰와 클레오파트라 분장 놀이를 통해 "여성"을 분출한다. 전반부에 드러난 고백과 가벼운 일탈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의 짓궂은 운명에 끼어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개의 미성숙한 여자와 남자아이들은, 이성적 호기심 전에 자신이 갖고 있지 않는 극적이고 근원적인 성(性)적 매력을 동성에게서 발견하곤 하기 때문이다. '코짱'의 놀이는, 비단의 놀이처럼 가볍게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성정체성의 혼란이 시작되는 그 싯점과 본인 스스로 키우고 늘려가고 확장시키는 -내부로부터는 단절을 요구하지만- 그 고통의 과정, 그래서 끝도 알 수 없다. 그가 '오미'를 알고, 보고, 느끼는 시작에서 '나'의 잠재적 고통을 여실히 보게된다. 그리고 소노코, 즉 이성에게서는 "관념적 사랑" 이상을 가질 수 없으면서도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로밖에 머물수 없는 것들과 정상정이고자 하는 관습화되고 집요해지는 욕구.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 그는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수 없는 고통에 가담한다. "무감각이라는 것이 강렬한 아픔과 비슷하다는 것"을, 소노코에게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상상이나 느낌으로 얻을 수 없는 사랑을 시각으로 채워나간다. 아름다움과 힘, 피와 고통을... 시각으로 채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고백이다. 가면의 고백.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 자신안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질문을 더이상 회피할 수 없음을, 도망칠 수 없음을 '나'는 깨닫게 된걸까. 작가 자신의 일부이기도 한 이 고백은 논리적이고 관념적이고 사실적이며, 사상적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이유로 육체적 욕망에서 비롯한 것보다 더 비릿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육체적 사랑과 탐닉이 뚫지 못하는 고통의 냄새인 것이다. 관습과 허용할 수 있는 이해의 범위밖일 수 없기에, 고백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각각으로 도망가게 한다. 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 순교>에서 고통을 볼 수 없는 '나'의 시선에 동조한다. 저 표정 때문에...그 그림은 '나'에게 너무나 사실적이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을 발견한 게 틀림없다. 성 정체성의 혼란으로 찢기고 갈라진 속을, '세바스티아누스'화 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름답고 매혹적인 외적 실체로 가려진 자신의 고통과 죽음과 피를 '나'는 보았을 것이다.

아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곧 자신이다. 자신의 운명에 장난을 친 신을 향해 짐짓의 빼앗을 수 없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흘린다. 나...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리라. 당신을 향해 흘릴 피는 내게 남아있지 않다. 나를 위한 고통의 눈물도 말라버렸다. 당신에게...이렇게 나를 돌려보내리라...고 가면속에서 절규하는 듯하다. 

커밍아웃. 이 고백이 주는 충격은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 쉽게 흡수할 수 없다. 갑작스럽고 느닷없고 또 갑작스럽다. 그러나 본인이 겪었을 시간들을에 비하면, 앞으로의 시간들에 비하면 우리가 걱정하는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타인의 시선에 의한 단순한 고통인지 단번에 깨닫게된다. 성관념에 관한 고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철학적이고 사유적으로 광활하고 자유로워서일까. 인간이 지닌 원초적이며 원론적인 고통을 체감했다. 이해와 허락, 요구들에게 거절당한 절망의 근거들... 다소의 불편한 동성애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의 관점으로 끌어들이며 철학적 사색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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