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 오웰은 소설,르포, 에세이집 이외에도 수백 편의 길고 짦은 에세이를 47년의 생애중에 남겼다. 실제로 글을 쓴 기간을 감안한다면 그의 생애는 ’쓰는 일’에 모두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풍부한 글감의 근원은 그의 다양한 삶의 체험에서 비롯한 것이 대부분이기에 상당히 현실적이고 정당한 비판이고, 가감없는 감성이다. 그의 수많은 에세이중에서 빼어난 작품 29편을 모아놓은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그의, 충만하고도 단련된 사유思惟를 가늠할 수 있다.
그의 대표소설 <1984>와 <동물농장> 은 인생 후반기에 집필된 것이다. 하여,
그의 인생 전반에 축적된 사유의 개괄이 이 두 작품에 농축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작가들의 에세이집을 접하다보면 서 너편의 이야기 이후로는 거의 변함없는 일률적 감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유쾌하면 유쾌한대로, 서정적이면 서정적인대로 한 길로 향한 글들이 가지런하기 일쑤다. 그런데 오웰은 이 한권의 책속에 그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아마도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생각이 전적으로 글에 투영된 때문이리라. 나는 ’서점의 추억’에서 그 생각의 일단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전반에 걸쳐 가지고 있는 제도에 관한 사상적 고충이 녹아있는가 하면,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해 통렬하고 체계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통쾌한 독설과 유머도 있고, 식민지 사회에 대한 영국인의 관점도 놓치지 않고 있다. 더우기 이 책은 그의 작업들을 시간의 흐름 방향으로 정리해 놓고 있으며 그의 다양한 경험들과 그 시기에 집필된 작품, 성향과 에피소드까지 사진자료와 함께 상세한 주석을 달아놓고 있어 오웰과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정치가 문학을 침범하는 현상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전체주의라는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도 분명히 발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조부모들이 느끼지 않았던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세상의 엄청난 불의와 비참에 대한 자각을, 그런 세상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죄책감을 키우게 되었으며 그런 죄책감깨문에 삶에 대해 순전히 미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 (P,439)
오웰의 ’정치적 목적’에 관한 신념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 4가지 동기로 글쓰는 이유를 피력하고 있다. 순전한 이기심과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이다. 그리고 작가들이 스스로 동기로 삼고 있으면서도 밝히기를 꺼리는 ’정치적 목적’을 빼놓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그의 글이 힘을 잃게 되는 이유가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는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동조하지 않으며 이념에 지배되지도 않는다. 하물며 문학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에는, 그 이전부터의 강한 반박의 명백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오웰이 말하는 ’정치적 목적’이 무엇인지 지나칠 수 없다.
그의 에세이를 통해 충분히 그를 읽지 않았다면 자칫, 그의 ’정치적 목적’을 오해할 수도 있다. 그가 말하는 문학에서의 ’정치적 목적’은,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문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확장된 사유와 작가 자신, 곧 인간에 대한 고찰 기록으로서의 목적이 녹아있는 문학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으며 세계 제2차대전을 겪는다. 삶과 사상이 전쟁의 가운데서 근근하는데도 그가 만약, 정치적 목적에 기인하지 않은 순수문학을 썼다면 그것은 알량한 껍데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정치적 수단이 아닌 목적이었으므로, 그의 작품들이 이념이나 주의主義가 아닌 인간 본성과 본질에 관한 진지한 물음으로 읽혀지는 게 아닐까.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일 것이며"( p.287) 라고 그가 말하듯, 서평은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나는 서평이란 말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 글을 평하기에 나의 지식적 바탕은 단일하며, 표현력은 편협하고, 작가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그래서 그냥 독후감이나 단순히 리뷰, 혹은 느낌으로 작품을 읽거나 쓴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서평가를 향한 오웰의 독설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서평가적 관점을 끌어다 붙인 이유는,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속에서도 쓸모 있는, 열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이란 걸 말하고 싶은거다. 어쩌면 일부는 오웰이 말하는 "정치적 목적이 결여"된 작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끊임없이 연마하는 인간본성을 향한 글쓰기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추호의 여지도 없는 책이다. 왜냐하면,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라고 그는 말했고 이 책은 오웰의 사유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오웰이 왜 쓰는지와 독자로서 그의 글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됨을 물론,
그의 사색적 사유를 내 안에 확장시킬 수 있게 됨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