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온 더 로드 - 사랑을 찾아 길 위에 서다
대니 쉐인먼 지음, 이미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혼자만 알아야 하는,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을 알게 된 이발사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오죽하면 대나무 숲에 숨어서 그걸 입밖에 내고야 말았겠는가. 들키면 죽을텐데도 말이다. 비밀 혹은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속에 품고 있어야 하는게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는 대충 알고 있다. 간혹 종교와 상관없이 성당옆을 지나다가 문득 고해성사란걸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카톨릭 신자만 하는건지, 어떤 절차나 형식을 따라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고해성사, 그걸 왜 하고 싶은가 하면, 아무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 놓을 수 없는 그런 것들 때문이다. 어떤 행위적인 것뿐 아니라, 죄의식에 관한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잠깐, 아주 잠깐 별것 아닌 수다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을 느꼈던 기억에 견주어 보자면 고해성사, 큰 힘이 되지 않을까?   


문득문득 후회되는 일들이 떠올려지곤 한다. 특히나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실수’에 대한 후회는 잦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하물며 자신의 한 마디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후회와 자책을 치유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레오가 그렇다. 그래서 레오의 절망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녀를 죽게 만든 건 자신이라고, 그래서 그녀를 잃은 슬픔보다 더한 분노와 실의가 레오를 덮친다. 사랑을 잃은, 그것도 이제 막 시작된 사랑을 잃은 슬픔은, 레오를 자꾸만 죽은 그녀 곁에 붙들어둔다. 엘레니로부터 용서받고 싶어한다. 엘레니가 이미 곁에 없는 걸 레오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레오를 완전히 믿어주고 이해했던  그 엘레니처럼의 누군가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순수하고도 열정적 숭배, 아..로맨틱하여라. 더구나 모리츠의 그 여인은 롯데. 숭배받아 마땅할 기운이 마구 솟는 그 이름. 그 이름을 모리츠는 사랑했다. 롯데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숭배로 죽음과도 같은 시간들을 견딘다. 그리고 매일 전하지 못할, 못한 편지들을 써내려간다. 거기까지는 숭배하는 여인을 위해 뭇 청년들이 해 왔던 것과 별 다름 없다. 하지만, 모리츠는 그 편지들을, 자신의 마음과 함께 전장에서 지니고 나온다. 도망길에 목숨을 연명할 물이나 음식보다, 그 어떤 것보다 소중했던 그 편지들. 전적인 공감은 안 되지만 감동스럽긴 하다.  사랑편지가 가득 담긴 가방을 질질 끌며 한 순간도 롯데를 놓치 못했던 모리츠. 정말이지 판에 박힌 말 같지만,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   


전쟁의 피난길에서 홀로 떨어진 프랭크는 엄마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어느 덧 원망이 되고, "허약함과 불안, 회피적인 태도와 침묵"으로 살아간다. 모든 것으로부터 두려웠던 아이는, 엄마가 오지 못했던 이유를 알게 된 순간부터 죄책감으로 자신을 가둔다. 그리고 유대인이 아닌것처럼 유대인으로 숨 죽여 살아야 했던 시간들은, 죄책감만큼이나 단단히 그를 가두었다. 짤막하게 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를 감싸 안을 만큼 충분히, 아프지만 따뜻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지만 아들은 그걸 원치 않는다. 그건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엄마를 기다려야 했던 어린 기억의 아픔과도 같은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는, 아들이어서 이해했던 엄마의 모든 것을, 이제는 아버지여서 다 이해한다. 아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전해야 좋을지를 고민하는 부정이, 따뜻함의 실체였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실수는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실수들은 절대 바로 잡을 수가 없어서 죄책감이 영혼을 갉아먹는다."
p.158


모리츠는 프랭크를 낳고, 프랭크는 레오를 낳고, 사랑은 이해를 낳고, 이해는 용서를 낳고.
이 책은 모리츠, 프랭크, 레오, 각각의 사랑과 슬픔을 묘사해나간다. 절망이 끝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시간의 터널을 지나 레오에게 놀라운 선물이 도착한다. 그 선물은 프랭크와 레오 안에 감추었던 죄책감과 절망을 송두리째 거둬들인다. 모리츠의 편지를 읽으면서 다시 사랑을 찾아 떠날 수 있게 된 레오를 보면서, 오우~ 감명을 받아야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부분이 감동을 끌어내렸다. 모리츠의 편지를 읽으면서 감명을 받을 수는 있었겠지만, 레오가 죄책감을 털어낼 수 있었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가 편지에 볼모로 잡힌 탓이지 소설이 가진 플롯의 문제는 아니다.  대신 프랭크의 절실한 고백이 내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들을 향한 이해와 사랑과 고백이 작은 감동을 전해준다. 나만이 아프고, 지독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위로가 될 수도 있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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