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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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빵맛을 제대로 알고 표현한 작품, 이라고 단정짓는다. 그 빵은, 이를테면, 무능해 보이는 아버지와 나의 찬란했던 알바 일대기와 어려운 경제상황,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등을 시시콜콜하게 버무린 그렇고 그런 빵이 아니다. 아주 기발하고 독특한 문장이 도발적이면서도 당돌하다. 냉장고속에 밀어넣은 세계에서 빚어낸 <카스테라>의 맛은 내가 알고 있던,입안에서 살살녹는 카라멜색깔의 부드러운 맛이 아니었다. 쌀가루 설설 넣어 만든 시루떡같은, 배고픔을 연속시키는 맛이다.  

 

작가의 단편들은, 동물들로 현상을 흡입하고, 그들로 이해한다. 그리고 대변한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 웬종일 너구리 오락에 빠져 살았던 손팀장의 너구리화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조직에 순응하며 밥벌이에 평생을 바쳤지만 밀고 올라오는 새로운 신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락하는, 직장 말년의 우리다.    

 

"결국 모든 인간은 상습범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상습적이란 단어에서 연민을 느낀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를 읽지 않았다면 좀처럼 갖다 붙일 수 없는 생경함이다. 거대한 몸집으로 달려와 사람들을 토해내는 전철, 그리고 그 안의, 혹은 그 자체였던 아버지. 전철 안으로 밀어넣었던 나의 무수한 욕심들이 떠오른다. 더이상은 안돼. 아뇨 더 할 수 있어요. 이제 그만. 지쳐가는 인류의 고민이 엿보인다. 아버지도, 나도 인류다. 울컥하게 만든다.   

변비의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는데는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먹으면 응당 싸야하는 생물학적 기본 이념에도 어긋날 뿐더러 그 자체가 고통인데 여기서 뭘 더 고민해야하는가, 싶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인류의 오랜 고민을 과연 해결할 수 있는가. 아무도 모른다. 경험자는 말하지 않고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순환되지 못하는 인류 본질의 문제를 떠올려본다.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대한 해답을 야쿠르트 아줌마는 알고 있을 것같다.  

<아, 하세요 펠리컨>이라고 말할 때, 순순히 입을 벌리는 펠리컨을 만나게 된다면, 인류의 문제는 조금 더 빨리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는거 투성이고, 물음만 가득하게 하는 책이다. 킬킬 웃어도 보고, 꺼이 나오는 울음을 참게도 만드는 이 책은 대략적으로 난감하다, 하겠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거북이가 된 느낌이랄까.    

 

좋은 글이란게 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다. 고전이 주는 획일적 고단함, 명작이 주는, 또 획일적 익숙함, 소설에 담겨진 획일적 감동과 서사들에 느꼈던 좋은 글들, 오늘의 <카스테라>와는 분명 종류가 다른 좋음이었다는 걸 알게된다. 상투적이지 않고 상습적이지 않은 박민규 작가. 도대체 박민규란 작가, 뭘 먹고 사는 사람일까? 기성문단에 독설도 서슴치 않는 젊은 작가의 얼굴은 궁금하지 않다. 뭘 먹고 사는 사람일까?, 가 궁금하다. 냉장고에서 꺼낸 카스테라때문인가보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냔말이지. 상습적인것과 유사한 익숙한 것에 반하는 이런 글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혈관을 누비고 다니며, 피 온도를 1도나 높일 수 있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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