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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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때마다 매운내가 폐로 스며들었다. 정동길을 돌아 나오자 따끔거리는 통증이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런던의 스모그처럼 나의 도시엔 늘 최루가스가 자욱하게, 유령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이런 기억들과 때론 그리 맵지않은 기억들이 뒤엉켜 있던 젊은 시간들은 그냥 그대로 거기 두고 왔다.  



                                                 내.가.가.져.올.께.


신경숙, 그녀가 그것들을 내게로 가져왔을 때 풀러 볼 마음이 며칠이고 나지 않아 그냥 두었다. 그녀의 책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눈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스멀스멀 묻어나는 듯 했기때문이다. 내 기억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간간히 맡아지는 젊은날의 초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게, 어줍잖은 공감으로 다가왔다. 나와 그녀, 그리고 단이와 윤, 명서, 미라가 함께 공유했던 시간들이 되살아나며 꿈틀거린다. 


생각을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한꺼번에 밀려드는 많은 생각들과 사상, 갇힌 너머로 넘쳐나는 자유를 걷잡을 수 없었다. 명서의 방황은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미라의 흉터있는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양심에 대한 의무감으로 시위대 속을 떠도는 명서는 미라에 대한 의무감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연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단어다. . 갈색노트에 채워진 윤을 향한 기다림은 미라를 잃어버린 그 아픔을 또 다시 겪고싶지 않은 때문이었을까. 머리를 몸으로 말고 있는것처럼 움츠리며 걷던 미라의 모습이 명서의 그것이기도 했다.


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놓아버린 미라도, 거미를 두려워하는만큼이나 사랑에 대한 거절도 두려워했던 단이도, 미라의 손을 놓치못한 채 다른 곳을 바라보는 명서도, 모두가 지독스럽게 아파하며 견디고 있다. 더이상의 고통은 누군가를 기억하며 덜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단이와 윤이었고, 미라에게서 명서가 그랬고, 남아있는 윤과 명서의 몫이었다.  



젊은날은 오월의 장미처럼 아름답기만 하지도 않다. 벚꽃잎처럼 흐드러지게 찬란하지만도 않다.  별빛처럼 고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눈쌓인 달밤처럼 서럽지만도 않다. 다 받아들였다. 모두 들이 마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품었던 젊음이기에 그들은 오늘에 서 있다. 젊은날을 할퀴고 간 상처들은 시간의 이쪽으로 오면서 점차 아물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붙들고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희망을 찾아 길을 나선다.


시간 저쪽에 있던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무저항적이고도 자괴적, 자폐적 성향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들에게서 비롯한다.  네 사람 모두가 한 사람인듯 평면적이다. 시간에 기댄채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도 않았고 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전화벨 소리가 책 밖으로 흘러나올때마다 마음이 무겁게 울리는 것은 우리가 나눠 가졌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공유감, 그로 인한 공감이며 연민이다. 그 뿐이었다. 저항하지 않는 그들때문에, 그들 모두를 향해, 이 소설을 향해 심한 저항감이 일었다. 발목이 붙들린것처럼 신경숙, 그녀의 뇌까림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이상, 내 생각은 나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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