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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철학, 요즘처럼 머리 아프지 않다면야 그 옛날에 훨씬 가까워졌을 우리 사이.
사상적 철학에 발목이 붙잡혀 허덕거릴 때는 도무지 두통이 가시질 않았는데, 두고 보면 볼 수록 빠져들게 하는 늪이다. 김용규 저자의 까페에서 만나는 문학들이 내 뿜는 철학의 향기는 카푸치노 커피 한 잔처럼 혀 끝을 달콤하게 간지른다. 그 맛은 진한 여운을 입 속에 남긴다. 일찌기 고전 문학의 난해성에 허우적거리며 글자들과 시름하느라 깊은 고찰을 담아내지 못했던 나는 저자가 읽어주는 문학에 한껏 기분좋게 취했다.
시간 여행자로서 악마와의 거래를 성사시켰던 <파우스트>에 대하여 ’악마마저 이겨낸 남자’란 고무적인 해석을 던진다. 근심을 이겨내는 파우스트의 신성한 자만심은 "밤이 점점 깊어지는 모양이구나.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밝은 빛이 빛난다. 내가 생각한 일을 완성시키자"라는 의지를 빛낸다. 근심은 인간의 뼈를 갉아 먹는다고 한다. 스스로 근심에 갇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고민한다. 그런 면에서 파우스트의 행동하는 자만심은 위대함으로 기억된다. 악마와의 싸움에서 그를 승리케 한 것은 근심을 벗어던진 용기, 그것이다. 사랑도 쟁취하는 것이라지. 인생도 그러한가보다.
사뮈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란 작품에서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가는 현대인의 단면을 보았다면, 저자는 ’텅 빈 무대의 대본 없는 배우’로 인간을 해석한다. 무대 자체가 인생이란 얘기다. 기다림 보다는 권태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둘 다 비슷한 결론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권태로움의 지리멸렬함이 인생에 바짝 붙어있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권태로움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우리의 삶이 가진 근원적인 모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상이 진저리나게 지겨운 것이라 할지라도 끝없는 ’시간 죽이기’를 통해 무엇은 손에 잡히기도 하고, 또 만나지기도 이뤄지기도 하니 말이다. 무대에 선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을 보여주듯 또 다른 인생의 무대에선, 고도를 기다리는 일 말고도 많은 일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대본 없는 인생에서 우린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들이 되어간다.
세기의 문학에 대한 작품적 해석을 다양하게 쏟아내는 책들 사이로 삐져나온 이 책은 평론이나 작품 해석 이상의 기대치에 부응한다. 작품에 내재된, 혹은 작품과 연계한 무수한 철학자들의 ’변’을 함께 담아내며 필요 이상의 친절한(?) 어투로 문학을 읽어주지만 밉살스럽지 않다. 카푸치노의 향기로 시작한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는 거품이 없었다. 싱거웠냐구? 아니다.
문학의 이해와 성찰을,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으로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