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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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몰입해서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단락이 쉬어갈 때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위카의 주술처럼 엉켜들었다. 사랑과 운명을 간직한 소울메이트를 찾으려는 스물 한살의 브리다는, 그 시절의 나로  자꾸만 끌어들였다.  그랬던 듯 싶다. 운명같은 소울메이트를 만나면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을까? 정말 사람들의 말처럼 한 눈에 알아 볼 수는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들처럼...알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어깨 위에서 반짝이는 빛을 발하는 소울메이트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답을 들려줄 마법사도 찾을 수 없었다. 

브리다의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꿈 속에서 찾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답이 되었다. 성당앞에서 만난 반나절의 인연에게서 운명이었고, 아내였고, 친구였던 기억, 내 언젠가의 싯점으로, 눈에 반짝이는 물기를 머금은 누군가가 지나갔다. 분명하진 않지만 흐릿하지도 않은 그 기억은 순간 나를 아릿하게 했다.  


마법사에게 운명같은 사랑을 보여달라고, 보게 해 달라고 브리다는 어린 아이처럼 떼를쓴다.
나의 조급함도 브리다와 다르지 않았다. 파울로 코엘료의 주술적 언어들은 기다림을 요구했다. 다행히도 내겐, 마법사의 눈빛에서 묻어나는 기다림이 브리다의 조급함 못지않게 있었으므로 몰입되지 않는 이야기속을 끈기있게 유영했다. 순례자의 길은 지루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진리에 가까워졌다.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것, 이토록 오랜 시간과 애씀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해를 향해 서서 그림자를 보겠다고 떼를 쓰는 브리다는 마법사의 오랜 기다림의 눈빛을 읽는다. 그리고 해를 등진다.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분명한 진실이, 운명의 그늘이 펼쳐진다. 돌아서면 되는 거였다.  

사랑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충분한 무언가를 나는 기대한다. 밥을 굶고 잠에 주려도 매달리고 싶은, 나를 훨훨 날게하는 열정적 무엇을 기대한다. 사냥꾼의 망루에서, 사냥감을 기다리는 일보다 숲을 바라보는 것에 족했던, 두 운명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브리다의 등을 눈물없이 바라보는, 또 다른 긴 기다림을 선택한 마법사의 지혜를 들이마시며 나는 그것들을 기대한다.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목소리들을" 나는 원치 않는다. 때가 되면 그것들이 나를 찾을 것이고 나는 그것들을 알아 볼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한. 십 수년 뒤, 희미하게 드리워진 미소로 나는 이 책을 떠올리게 될 듯하다. 숲의 가르침을 이해했던 마법사의 어느 순간처럼.



"숲이 내게 가르쳐주었어. 당신이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야 당신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내가 고독했던 시절에는 희망이었고, 의심했던 순간들에는 고통이었고, 믿음의 순간에는 확신이었어"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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