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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獨 GO DIE - 이기호 한 뼘 에세이
이기호 지음, 강지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엔돌핀이 과다 방출되어 옆에 누군가 있다면 마구 퍼주고 싶다. ’한 소설가의 제멋대로 세상읽기’라는 부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기호라는 작가는 아주 제멋대로이다. 오랫만의 유쾌함이 뼈속까지 파고든다. 가끔은 이런 책도 읽어줘야겠다. 아주 살맛, 책 읽을 맛..제대로 난다. 작가의 프롤로그를 읽을때만 해도 이정도인줄은 감도 못 잡았다.
"1년 넘게 한국일보에 ’길 위에 이야기’란 이름으로 연재된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면서,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니는, 어느새 자라 온종일 나를 쫓아다니느라 바쁘시다. 아이 때문에, 아이 핑계로, 글을 쓰진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짠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아이 때문에 원고를 쓰진 않겠다. "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가 정직하기도하고,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보건복지가족부에 맡길 일이 아니다. 그건 한전의 일이다. 신혼부부 가정엔 밤 12시 이후부터 단전을 시키면 된다. 그 옆에 철도공사에서 기찻길 하나 놓아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어쨌든, 출산 장려정책의 핵심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한전에서 나설 일이다. -출산장려정책- (책본문 中)
밤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 하치장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백수의 고달픔, 비싼 슈퍼컴퓨터로 오보를 남발하는 대신 할머니들이 몸으로 일기예보를 해 주십사 비꼬기도 하고, 대형서점앞에서 진을 치는 풍채 좋은 아저씨들때문에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씁쓸함, 교회 바자회에서 바라본 유학파 십자가의 허상, 아이의 잠을 깨우는 아내의 자장가, 박태환 수영 경기도 음란물로 걸리겠다는 친구의 맹한 대답,반바지에 슬리퍼 하나 꿰차고 평일 오후 공원 벤치에 앉아 어르신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은 일 등..200여편의 그의 글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다. 그의 글에 한 표 한표 공감을 하다보니, 나의 전폭적인 지지를 한 몸에 받고 날아오르는 이기호작가가 보인다. 등에는 빨간 망토를 두르고, 달나라로 날아간다.
최근 읽은 이상운 작가의 <책도둑>은 지극히 냉소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류의 글을 쓰시는 분중 대장격인 이외수 작가는 독설적이고 거침이없다. 독고다이?..약간은 비굴하게도 보이는 글투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정직하고 맑아보인다. 생각컨데, 글을 쓰는데도 약간의 힘이 작용하나보다. 유명작가의 글이 거침없는것에 비해 안 유명한 분들의 글은 아직까지 겸손하다.
유쾌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듯한 핀잔이 숨어있는 책이다. 같은 말을 해도 밉상으로 징징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의 잘못을 사과하면서도 고마움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주는거 없이 미운 사람, 받는거 없이 좋은 사람..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 사람..받는거 없이 (책으로 유쾌함을 받았지만) 좋아지는 사람이다. 강지만의 삽화에서 오로지 하얀 메리야쓰(하얀것 같지는 않고, 약간 누리끼리하다)와 줄무늬 트렁크로 일관하는 그처럼, 그의 글도 치장하지 않은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유쾌하고 통쾌한 웃음을 실컷 웃고 나서, 주섬주섬 생각을 챙긴다.